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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언론이 질문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해요" <공범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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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최승호 감독의 <공범자들>


최승호 감독이 그동안 천착해왔던 탐사 보도의 장점들을 최대한 발휘해 재밌고도 의미있는 작업을 해냈다. ⓒ엣나인필름



지난 9월 4일, KBS와 MBC 노조는 공영방송을 회복하기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 실질적 목표는 고대영 KBS 사장과 MBC 김장겸 사장의 퇴진, 그리고 불공정 보도 시정 등이겠다. 대한민국에 큰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이전보다 좋은 세상으로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와중에 대대적인 언론 총파업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뭣 모르고 봤을 땐 KBS와 MBC 모두 공영방송인 만큼 정부에 반하는 파업이기 때문이다. 


한꺼풀만 벗겨보면 알 수 있다. 두 방송국의 현 사장이 전 정권의 하수인이었다는 걸. 정부의 충실한 하수인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묵살하고 통제해왔는데, 정부가 바뀌고서도 그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이젠 현 정부의 언론 자유 불가침을 이용해 스스로가 권력의 정점이 되어 전횡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챙겨보는 프로그램을 못보는 건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크다. 


이실직고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실 때인 대학생 시절까지도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밝지 못했다. 다른 이들만큼 취업에 목 맸던 것도 아니었는데, 대신 주말엔 알바를 하고 평일엔 학교를 오가기 바빴다는 정도만 말해두련다. MB 시대 한복판에 난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와 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공영방송 문제 시작이 그때이고, 지금의 막장 한국 시작이 그때라는 걸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더할 나위 없는 이명박근혜 시대 언론 투쟁기


이명박근혜 시대에 공영방송에 어떤 일이 있었나... ⓒ엣나인필름



작년 <자백>를 히트시키고는 올해 초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서 조금 삐끗한 최승호 감독, 쉼 없이 <공범자들>을 들고 나왔다. 시대에 순응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콘텐츠들, 이제는 시대를 이끌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앞의 두 작품에서 작품성을 별개로 큰 감흥을 받진 못했다. 관심이 가지 않는 주제 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주제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하여 <공범자들>에도 자연히 눈과 귀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더할 나위 없었다'. MBC와 KBS를 비롯한 한국 방송사의 '이명박근혜' 생존투쟁기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어느새 역사가 되어 버린 그 시절은 한편으론 위대하고 한편으론 서글프다. 


우리 손으로 뽑은 두 명의 대통령, 그들은 뭐가 그리 찔리는 게 많았는지 정부를 향해 울리는 북을 찢어 더 이상 북소리가 나지 않게 만들었다. 대신 자신들이 직접 만든 소리나지 않는 무(無)피막 북을 배치했다. 그렇게 북소리가 나지 않는 북처럼 언론은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의 기치 하나로 온갖 어려움을 헤쳐 나온 언론인들에게 그건 존재 말살과 다름 없었다. 두 발 딛고 선 땅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저항했고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징계를 받았다. 합리적이고 합당한 저항에 따른 불합리적이고 부당한 처사였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도 그런 저항-징계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이 공범자들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속한 공영방송이 다름 아닌 나라를 망친 자들의 공범자들이었다고. ⓒ엣나인필름



정부, MB 정부의 언론 장악 시작은 2008년 이명박 취임식 당일 장관 임명자를 향한 비판적 날선 보도로 당사자로 하여금 자진 사퇴하게 만든 KBS 사장 정연주 해임 및 체포였다. 그 자리에는 낙하산을 내리고 정부에 비판적인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시켰으며 탐사보도팀은 사실상 해체시켜버린다. 


이후 YTN을 간단히 제압하고는 쇠고기 수입 문제를 집중 보도한 MBC 장악에 나선다. MBC를 대표하는 주요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을 차례로 낙마시키고는 엄기영 사장까지 해임시켜버린다. 그 자리에는 그 유명한 김재철 사장이 낙하산으로 내려온다. 정부의 언론 장악이 사실상 완료된 것이리라. 


저항은 이미 시작되었다. 하지만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2012년 MBC로부터 시작된 언론 노조 총파업 대결기, 그 결과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바뀌지 않았다. 사장이 퇴진해도 이사회가 물갈이 되도, 그 자리에 또 다른 정부의 하수인이 들어올 뿐이었다. 


그리고 세월호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다. '이게 나라냐'의 결정적 한 방들이었지만, KBS와 MBC는 제대로된 보도는커녕 다분히 의도적인 오보로 수많은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고 한국을 헬조선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이 '공범자들'이었다고 당시 그들에 속해 있던 이들이 말한다. 


좌우 없이 팩트만이 존재하는 언론을 위해


자유와 독립이라는 권리와 팩트 추구라는 의무를 다한다면, 그게 언론이다. ⓒ엣나인필름



영화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을 인터뷰하고 인터뷰하려 시도한다.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지키고자 권력에 저항했고 저항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통제하려는 권력이었거나 권력의 끄나풀이었던 이들. 후자의 경우, 공통적으로 말을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그들 모두가 '팩트'로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언론인일텐데 어찌 하나같이 팩트를 전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 언론인이기를 포기한 지 이미 오래인 이들이겠다. 문제는 그들이 그들의 본분을 다하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크나큰 소용돌이들이다. 언론이 대상으로 하는 건 권력과 일반대중이다. 권력만이 대상이 아닌 것이다. 


언론이 권력만을 대상으로 여길 때 언론은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필시 그 질문이라는 것이 권력으로 하여금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거나 대답을 하기 싫은 종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이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 나라를 구성하는 한 축인 일반대중이 진짜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하게 되고 모든 걸 소수의 권력이 주무르게 되기 때문이다. 결과, 우리나라는 지난해 한 번 망했다. 아니, 이미 2008년에 망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며 그래도 다행이라고 느낀 건 그것들을 부당하다 느끼고 안팎에서 계속 저항하는 구성원들이다. 끝없는 저항과 역시 끝없이 되돌아오는 부메랑과 같은 징계에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는, 최승호 감독은 KBS와 MBC에 대해 거센 비판을 쏟아내지만 그만큼 짙은 애정을 보낸다. 결국 그들이 원 상태로, 언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에 좌우가 없듯이, 언론에도 좌우가 없다. 모두 하나하나가 독립된 개체이고 자유로운 영혼이다. 하지만 그걸 보장받지 못했을 때 그만큼 크나큰 타격을 받고 그에 연결된 수많은 것들이 근본적인 피해를 받는다. 언론을 없앨 순 없으나 언론의 본분을 망각한 언론을 없앨 순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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