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평생 높은 지대에 위치한 집에서 살았기에, 장마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직장을 강남역 근처로 잡고 보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의 대표적 물난리 단골 장소 강남역. 시간을 거슬러 2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본다.
2011년 7월 말경으로 기억한다. 한시간 반 정도 걸려서 강남역에 도착했었다. 교대에서 갈아탈 때 지하철 역 안으로 물이 졸졸 들어오는 게 보며, 신기하기도 했고 불길하기도 했다. 그때의 기억때문에, 작년 여름철 폭우 기간에는 출근할 때마다 물이 샜는지 확인하곤 했다. 악몽까지는 아닐지라도 뇌리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오전 9시가 되지 전, 강남역 9번 출구 앞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우산을 안 들고 왔나 하는 생각을 하며 출구를 나섰다. 그런데 내 앞에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강이었다. 출구에서 몇 발자국 나서니,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몇몇은 신발과 양말, 스타킹을 벗고 맨발로 지나갔다.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나는 우회로를 찾아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회사에 도착했는데, 회사 앞은 더욱 믿지 못할 진풍경이 펼쳐졌다. 사거리는 구정물로 뒤덮였고 자동차가 둥둥 떠다녔다. 차주인들은 헤엄을 쳐 자동차를 사수하러 갔다. 회사 건물은 지하 1,2,3층이 모조리 침수되었고 정전되어서, 일을 할 수 없었다. 이후 일주일 간 회사에 출근할 수 없었고 재택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겪어본 물난리에 놀란 가슴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2012년 물난리가 일어났다. 상당히 호전되었지만 1년 전과 거의 똑같은 난리를 겪었다. 2010년에도 물난리를 겪었다고 하는데, 어찌 3년 연속으로 똑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자못 궁금하였다. 자연재해가 비록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하지만, 오랜 세월 겪어 왔기에 언제나 대책이 제기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2011년 물난리 당시, 강남역 9번 출구 앞의 모습 ⓒ김형욱
위험을 가까이 해야 위험의 본질을 안다
몽테뉴는 그의 저서 <수상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어디에서 죽음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곳곳에서 기다리지 않겠는가!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킨다."
여기에서 '죽음'을 '위험'으로 바꿔넣어도 충분히 말이 될 것이다.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애써 피하고 무시한다. 심지어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위험을 무시하곤 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여러가지 생각들과 행동, 심리가 작용한다.
이는 4월달에 있었던 감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감사 결과 하수도 등이 계획된 도로 지하에 보도시설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한 규칙이 지켜지지 않아 침수 사태가 이어졌다는 결론이 난 바 있다. 이때문에 제대로 된 하수관로 모양이 갖춰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1만 5,000톤 규모의 빗물저류소를 설치해 폭우가 내릴 때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임시 방편에 불과해 올해에도 강남 물난리는 계속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 예측된다.
[관련 기사: 반복되는 강남역 침수 '왜 그럴까', MBN TV 2013년 5월 19일]
2011년 물난리 당시, 강남역 삼성 본사 대로 모습 ⓒ김형욱
너무나도 눈에 뻔히 보이는 위험이다. 그에도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임시방편적인 대책을 가동한다고 하니 답답함을 넘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애초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걸 인지했음에도 보도시설 설치를 승인한 관리당국과 관리자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겠지만, 그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작은 위험들을 무시함으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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