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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위대한 개츠비'에 올인하는 출판계,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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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셀러를 돌아보며, 출판계를 걱정한다]스크린셀러(Screenseller)는 영화를 뜻하는 스크린(Screen)과 베스트셀러(Bestseller)의 합성어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제작되면서 다시금 주목받는 원작 소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베스트셀러였던 원작이 있는가하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원작이 있다. 원작의 인기와 상관없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원작이 인기를 얻게 된 케이스이다. 엄밀히 말해서 스크린의 힘을 빌리지 않았을 때와 빌렸을 때의 인기의 차이가 꽤나 크다. 그리고 이런 양상은 최근들어 더욱 심해졌다. 이는 영화계의 콘텐츠 갈증 현상과 출판계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영화계는 소재 고갈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있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스토리 위에서 영상미를 입혀야 하는 영화는, 대중들이 점차 극도의 영상미를 추구함에 따라 기본적 스토리를 등한시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영화만을 위한 각본가는 설 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이런 차에 대중들의 눈썰미가 올라가고 탄탄한 스토리까지 찾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탄탄한 콘텐츠를 찾게 되었다. 대표적인 스토리 콘텐츠인 소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사실 영화계는 이미 90년대 들어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소설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박범신의 <미지의 흰새>,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시절에는 원작과 너무나도 똑같은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시너지가 폭발하지 못했다. (왼쪽부터) <태백산맥> 원작 소설과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원작 소설과 영화

출판계는 영상과 IT 혁명이 일어나며 콘텐츠의 전통적 강자의 자리를 잃게 되었다. 점점 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자, 영상과 IT 혁명의 수해자인 영상 콘텐츠로 눈을 돌린다. 최대 콘텐츠 산업이자 출판계보다 훨씬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영화계였다. 애초에 영화 개봉을 겨냥해 신(Scene) 중심의 소설들이 나오는가 하면, 화려한 영상미를 소설에 장착시키기도 하였다. 이들의 앙상블이 빚는 시너지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좋은 스토리와 화려한 영상미의 시너지를 넘어, 베스트셀러가 주는 신뢰와 무지막지한 마케팅의 힘이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갔고 다시금 거꾸로 소설로 돌아왔다. 또한 원작을 틀어 감독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주거니받거니하며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 것이다.  미국 할리우드의 경우, 2000년 초반부터 시작된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해리포터> 시리즈, 그리고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스크린셀러의 완벽한 아성을 굳혔다. 이어서 <헝거 게임> 시리즈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즉, 스크린과 베스트셀러 간의 합작이 아주 체계적으로 시스템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왼쪽부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 원작 소설과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원작 소설과 영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올해도 어김없이 스크린셀러의 힘이 강력하다. 지난 해 박범신의 <은교>,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등에 이어서, 올해도 <라이프 오브 파이>(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레 미제라블>(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고령화 가족(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등의 강세가 이어졌다. 이들 영화는 본래 소설로 충분히 입증이 된 콘텐츠를 영상화 시킨 것이어서, 몇몇은 흥행 돌풍을 일으킬 정도였다. 자연스레 소설 또한 열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열풍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띌 정도이다. <위대한 개츠비>(바즈 루어만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가 한국 2013년 5월 16일 개봉에 맞춰, 출판사들에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실시한 것이다. 전에 볼 수 없던 대대적인 마케팅이다. 또한 전에 없이 수많은 출판사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재출간하였다. 먼저 거대 출판사 두 곳에서 기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를 50% 할인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 각각 위대한 개츠비 미니북과 영화포스터 5종 엽서세트,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영한대역 특별판과 페이크노트를 증정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50% 할인이야 기존에도 수많은 출판사들에서 시행하는 것이지만, 각종 상품 증정 행사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런 대대적 마케팅에 힘입어 국내 주요 서점(yes24, 인터파크, 교보문고, 알라딘, 반디앤루니스)에서 10위권 내에서 20위권 내까지 포진하고 있다. 어떤 출판사들은 '전략'과 '꼼수'를 쓰기도 하였다. 또 다른 거대 출판사는 영화 개봉에 맞춰 재번역해 애초에 아주 싼 값에 출간하였다. 페이지 수를 살펴보았을 때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싼 값이다. 아무래도 기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를 대대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는 출판사들의 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료된다. 다른 출판사는 애초에 실용서로 포진해 출간하였다. 실용서는 정가제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맹점을 이용한 '꼼수'라도 해도 무방하다. 출간 즉시 50% 할인 판매를 실시하였다. 또한 2013년 3월부터 지금까지 약 2개월 동안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 관련 서적만 거의 30종에 이르고 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이다. 이는 먼저 원작 <위대한 개츠비>가 갖는 '위대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30년대의 '재즈시대', '잃어버린 시대'를 배경으로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과 상실을 그려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 소설로 꼽는다. 기본적으로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30만부 이상이 팔린다는 이 소설이 30년만에 리메이크된다니, 출판사에서 이 기회를 놓칠리가 없는 것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여기에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작용한 것이리라. 2013년 6월 10일 현재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전 세계 2억 8천 만불, 북미 1억 3천 5백 만불, 한국 140만 명을 돌파하면서 개봉 전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소설 판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동안의 '스크린셀러'의 일생(?)을 관찰하며 습득한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이런 스크린셀러 열풍에 대한 시선이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점 축소되고 있는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의견과 한 쪽으로 너무 치우쳐 출판의 다양성을 해치고 특정 출판사에 부(副)가 쏠린다는 의견. 솔직히 어느 의견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영화계가 언제까지나 소설에서만 콘텐츠를 찾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 할리우드의 경우, 이미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활개를 치고 있고 애니매이션 또한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얼마 전 개봉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처럼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크게 성공하고 있다. 크게 보면 대부분의 웹툰이 책으로 출간되기에 출판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웹툰이 출간되는 것보다 영화로 직행하는 경우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자명하다. 앞으로 출판계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본다. 


"오마이뉴스" 2013.6.13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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