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랜드 오브 마인>


제2차 세계대전에 수많은 입장들이 존재한다. 전쟁 전, 중, 후에도 마찬가지. <랜드 오브 마인>은 전쟁 후의 어떤 입장이다. ⓒ싸이더스




영화 <랜드 오브 마인>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만큼, 전쟁영화의 외형을 띠고 있다. 정확히는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영화겠다. 거기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세상살이의 도식이 존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직 피해자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만 양산하는 전쟁 따위를 왜 해야 하는가.


수많은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영화가 미국, 영국, 소련의 손에 만들어졌다. 승전국이자,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패전국이자 가해자인 독일, 일본 입장에서도 만들어졌다. 가해를 정당화하거나 반대로 가해 사실을 공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일본은 종종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여 비난 받아왔다. 많은 경우, 진정한 가해자의 손에 피해를 입은 자국민들이나 성숙하기 전에 전쟁에 투입되었던 소년병들을 다루곤 한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입장들을 대변하는 수많은 콘텐츠를 양산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양산할 것이다. <랜드 오브 마인>은 그동안 종종 보아왔던 독일군 소년병 포로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그것도 종전 후의 이야기이다. 종전 70년이 지나가는 시기에서, 전쟁 '중'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 '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의 잔해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소년들


패전국 나치독일, 그들이 전쟁 중에 남긴 치명적인 잔해들을 소년병들이 목숨 걸고 치운다. ⓒ싸이더스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 이듬해 4월에는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침공한다. 덴마크는 즉시 항복, 독일은 덴마크 서해안 전역에 방어선을 구축한다.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연합군의 상륙은 프랑스였고, 덴마크 서해안 방어선은 종전 후에도 그대로 남는다.


나치독일이 저지른 전쟁의 잔해, 덴마크는 나치독일 포로들에게 지뢰 제거 임무를 맡긴다. 그 중 상당수가 소년병이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다름 아닌 소년병들의 지뢰 제거 임무를 주로 삼는다. 그 어떤 도구도 사용할 수 없는, 맨손과 막대기 하나에 의존한 지뢰 제거. 그야말로 목숨과 바꾼 임무다.


엄청나게 위험한 작업인 만큼 사전 연습부터 철저해야 한다. 사전 연습도 실전처럼, 연습에서도 죽고, 실전에서도 죽어 나간다. 이 임무를 맡은 덴마크군의 칼 상사는 처음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계속해서 죽어 나갈수록 느낀다. 이 아이들은 전쟁에 투입되어 명백한 죄를 저질렀지만, 지뢰 제거 임무를 맡아야 할 건 최소한 이 아이들은 아니라고.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누구한테건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그들이 전쟁 중에 저지른 '짓'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그들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로지 명령에 따라 한 행동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이 저지른 짓을 합당화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총탄에 쓰러진 수많은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식의 '방법'과 그런 '방향'은 잘못 되었다


복수를 하는 건 좋다. 승전국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것들은 예상된다. 하지만 명백히 방법과 방향이 틀린 게 존재한다. 이 영화는 그걸 보여준다. ⓒ싸이더스



여기서,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고 그저 고통만 있었다는 식으로 풀어갈 순 없다. 이 나치독일 소년병 포로들이 가해자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종전 후의 모습만, 그것도 포로가 된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선량해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쟁 중에 그들이 잔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 못할 것이다. 미성숙을 앞세워, 잔악한 명령을 그 누구보다 앞서 실행했을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그들이 아닌 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 이들의 모습이다. 감독이 의도한 것일 수 있겠는데, 종전 후 나치독일 포로들에게 덴마크군이 보이는 행동은 나치독일이 보여준 잔악함 못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은 '방향'과 '방법'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소년병 포로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면 안 되는 것이었고, 아무런 제대로된 도구 없이 굶어 죽을 듯이 일을 시키면 안 되는 것이었다.


범죄에는, 주범이라는 게 존재한다. 주도하고 기획하고 결정하고 명령을 내리고 책임지고 가장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 종전 후 주범 중 상당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전쟁 중에 혹은 내분으로 인해 죽었다. 물론 많은 주범들이 사형 당했다. 그렇지만 그 바로 밑의 이들에겐 아마 정치적일 거라 예상되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누구는 주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려 잘 살아가고, 누구는 종전 후에도 전쟁 중보다 더 죽음에 직면한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각각 저지른 짓에 따른 각각의 속죄가 필요할 테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상은 불공평하니까. 문제는 그렇게 내려온 죄의 무게를, 왜 가장 '인간'에 가까울 이들이 짊어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악마' 같은 이들이 해결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설사 그들이 짊어져야 한다고 쳐도, 그런 식으로라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대응하면 똑같이 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더욱이 덴마크는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곧바로 항복했다.


그들을 인간으로 대해야만, 그들은 뉘우칠 수 있다


마냥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들을 인간으로 대해줘야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을 인간으로 대해주어야만, 그들은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병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뉘우칠 수 있다. ⓒ싸이더스



감정적으로 이해는 한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대응했을 것이다. 내 국토와 내 가족를 무참히 짓밟은 이들. 대상의 구체적 물상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대상이 속해 있는 집단의 악마성에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들여다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보여야 한다. 용서할 순 없더라도 인정은 해야 한다는 걸.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걸 말이다.


영화는 인간을 보여주려 애쓴다. 아니, 애쓸 필요도 없다.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나치독일이 남긴 잔해를 인간들이 처리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아름다운 해안을 뒤로 하고 무참하게 죽어가는 건 광포에 휩싸인 병사들이 아닌 두려움과 배고픔에 벌벌 떨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들 뿐이다. 그들을 그렇게 대하는 순간, 과거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만약 그들을 포로답게 대했다면 오히려 그들을 인간이 아닌 병사로 생각했을 듯하다. 이런 비인간적인 처사를 통해 그들의 인간성을 발현시키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계속해서 떠올렸을 것이다. 잘못을 뉘우치던가 계속해서 광기에 휩싸였던가 하는 건 그 이후의 일이겠다. 그것이 오히려 '이쪽'을 위한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우 힘든 일이었겠지만 이성적으로 대처했다면 방향과 방법을 달리했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죄 이상으로 지독했던 전쟁 이후의 기억이 아닌 자신이 저지른 죄를 생각하며 살아갔을 테다. 그들을 병사가 아닌 인간으로 인정하고 인간으로 대할 수밖에 없게 한 파렴치한 짓은 정말 바보 같았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도식을 넘어, 미성숙한 이들에게 저지른 잔혹한 행위의 부당위성을 넘어, 그들도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까지 넘어, 즉 선악의 개념을 넘어 그들에게 행한 행위의 무뇌아적 지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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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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