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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의해 비정상화된 내가 정상이 될 수 있는 곳, 편의점 <편의점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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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편의점 인간>


<편의점 인간> 표지 ⓒ살림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편의점 알바'의 특별한 경험이. 중국 어학연수 비용을 벌기 위해 몇 개월 정도 하려고 했던 편의점 주말 야간 알바를 1년 동안 했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쳤던 사스로 어학연수가 한 학기 미뤄졌기 때문인데, 덕분에 돈을 더 모을 수 있었고 '편의점 주말 야간 알바'로 1년을 채우는 진기록(?)을 남겼다. 


역과 골목 사이에 위치해 은근 오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1년쯤 하다 보니 눈에 훤히 보였다. 어떤 사람이 어떤 시간에 어떤 물품을 사러 오는지, 나아가 그 사람이 어디에 살고 무얼 하며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까지도. 편의점 안의 것들이 아닌 게 그정도이니, 편의점 안의 것들은 그야말로 완벽히 내 손 안에 있었다. 


당시 대학 생활의 막바지에 있었던지라 여러 모로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편의점 알바를 위해 모두 희생했다. 1년간을 오롯이 주말에 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토요일 새벽과 일요일 새벽을 위해 불금에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토요일에는 아예 하루 종일 잠을 잤다. 그 어떤 직장인이나 알바생이 라이프 밸런스를 일터에 맞추지 않겠냐마는, 일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돌려야 하는 편의점에서 주말 야간에 일했던 나는 조금은 특별하지 않았나 싶다. 


18년간 편의점 알바한 소설가가 그린 '편의점 인간'


조금은 특별한 나의 경험은 여러 모로 소설 <편의점 인간>(살림)에 관심을 두게 했다. 일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상의 155회 수상작으로, 18년간 편의점 알바로 생활하는 무라타 사야카 소설가의 작품이란다. 그녀의 이력이 주는 특이함이 작품으로의 끌림을 더해준다. 그런 이력이 아닌 이의 '편의점'은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데로 그려질 공산이 크다.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그려질 것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편의점에서 일을 한 이가 그리는 편의점이란 완전히 다른 차원일 게 분명하다. 다분히, 어쩔 수 없이 '편의점 인간'으로서의 모습일 거다.  


후루쿠라(게이코)는 대학 1학년 때 단순히 알바에 대한 흥미로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다. 그녀는 연수받을 때 보았던 비디오의 여성과 사원을 '흉내내어' 훌륭히 일을 소화해낸다. 그렇게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된다.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편의점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어딘지 특이한 아이였다.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새가 죽은 걸 보고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남자 아이들이 싸울 때 누군가 말리라고 하기에 삽을 들고 가 한 아이를 패서 기절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그게 싸움을 멈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므로. 


통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비정상적이었던 그녀가 편의점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거니와 나아가 훌륭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편의점에 관한 모든 걸 꿰뚫어 보고, 편의점 밖의 생활을 완전히 편의점에 맞춘다. 그렇지만 편의점 알바를 18년이나 계속한다는 게 정상적으로 비춰지진 않는다. 그녀는 여동생에게 '배운 대로' 몸이 안 좋아서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 둘러댈 뿐이다. 편의점 밖의 생활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 보인다. 다른 무엇도 아닌 '편의점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타인에 의해 비정상화된 내가 정상이 되는 곳, 편의점


아무하고도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영위하는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가 사회를 강타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을 제멋대로 재단해버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주된 문제였는데, 편의점 인간도 동일한 맥락에서 독해가 가능하다. 다른 이들로 인해 비정상화된 자신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은둔하는 사람들과 편의점의 장막 뒤로 숨은 인간. 


그녀에게 편의점이란 매우 특별하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편의점 알바 18년이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녀에게 편의점이란 점원 제복을 입고 들어서는 순간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그런 곳이다. 완벽한 매뉴얼이 존재하고 그에 따르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이 되는, 그런 곳이란 말이다. 언제나 계속 돌아가는, 확고하게 정상적인 세계. 그녀는 그 세계를 믿고 있다. 


친구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편의점 인간이 아닌 게임 인간이었는데, 게임 세계만이 지극히 정상적인 세계라고 믿었다. 그곳에서라면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나름대로의 완벽한 매뉴얼이 존재하기에 그에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변칙은 테두리 안에 있었고, 그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질 염려는 전혀 없었으며, 결국엔 모든 것이 정상화되는 그런 곳이었다. 히키코모리가 가상 세계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나는 그를 '고치려' 들지 않았다. 그가 안타까웠지만 그를 내멋대로 재단하고 수정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비록 그게 친한 친구 사이이기에 가지는 관심과 걱정의 발로라고 해도 말이다. 그는 당시 현재 스스로의 삶에 애착을 갖고 즐거워했다. 그거면 된 게 아닌가.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다만, 그가 가끔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도움을 청할 때는 최대한 노력해서 방법을 가르쳐 줬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식 소품 소설


소설은 짧고 강렬하다. 강렬함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꺼림칙함'인 게 좀 기운빠지게 한다. 뒤로 갈수록 놀랍게 기분 나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다 읽고 나서는 놀랍게 기억에서 잊힌다. 후반부에서 '편의점 인간'의 정의를 내리고 또 내리며, 주요 인물들의 '정상과 비정상' 대화가 끊임없이 동어 반복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데, 잘 읽히고 일면 재밌기도 한 것과는 별개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소품이라는 느낌, 그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식 소품 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워내기 힘들다. 


'편의점'이라는 어감과 특성에서 기인한 것일까. 하지만 이 소설은 엄연히 편의점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쉽고 편한 '편의점'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그럼에도 편의점 같은 평이한 소재를 이용해 이처럼 현대사회의 행태를 생각하기 힘든 라인으로 풀어냈다는 게 대단한 건 사실이다. 


후루쿠라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그녀의 '정상적인' 삶에 있어서 더 이상 편의점이 도움이 되지 못할 때, 아니면 언제나 믿었던 '정상적인' 편의점이 더 이상 정상적이지 않게 되었을 때 편의점을 떠날 수 있을까. 그럼 그녀는 곧바로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녀는 편의점 안에서만 쓸모가 있으니까. 비단 그녀 뿐이 아니다. 우리를, 나를, 우리답게, 나답게 해주는 그 어떤 곳이라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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