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1'에 이어집니다.
데너비 농장은 그냥 규모가 큰 농장이 아니라 한 남자의 인내와 기술이 낳은 기념비적 농장이었다.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집, 넓은 축사들, 낮은 산비탈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목초지는 모두 존 스킵턴 노인이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이룩한 성취의 증거였다. 그는 교육도 전혀 받지 못한 농장 일꾼으로 출발하여 이제 부유한 농장주가 되어 있었다.
그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존 노인은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했을 만큼 힘든 일을 평생 계속해왔다. 그 생애에는 아내나 가족이 들어갈 여지도 전혀 없었고 육체적 쾌락을 누릴 여유도 없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에게는 농사 문제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있었고, 그것이 존 노인을 이 지역의 전설로 만들어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 길로 갈 때 나는 다른 길로 간다”는 그가 즐겨 인용하는 격언이었고, 다른 농장들이 파산으로 내몰리고 있던 어려운 시기에도 그의 농장들이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 데너비는 존 노인의 여러 농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데일 저지대에 각각 150헥타르쯤 되는 넓은 경작지를 두 개나 갖고 있었다.
그는 승리를 얻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랫동안 승산 없는 싸움을 했고, 너무 격렬하게 자신을 몰아대서 이제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온갖 사치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밑에서 일하는 일꾼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도 존 영감보다는 나은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 잠시 멈춰 서서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 집을 바라보았다. 혹독한 기후를 300년 넘게 견뎌온 그 저택의 우아함에 나는 새삼 감탄했다. 사람들은 데너비 저택을 보려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납으로 씌운 높은 창문이 달려 있고 이끼가 자란 낡은 기와 위로 거대한 굴뚝들이 우뚝 솟아 있는 우아한 장원 저택의 사진을 찍었다. 방치된 정원을 지나고 넓은 계단을 올라가 거대한 문 위에 돌로 만든 넓은 아치가 씌워져 있는 입구까지 가보는 사람도 있었다. 옛날에는 중간 문설주가 있는 그 여닫이 창문에서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아름다운 여인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고, 주름장식이 달린 저고리와 반바지를 입은 기사가 끝이 뾰족한 갓돌을 얹은 높은 담장 아래를 걷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존 노인이 초조하게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단추도 다 떨어지고 누더기가 된 그의 코트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허리에 두른 기다란 삼실 한 가닥뿐이었다.
“잠깐 들어오시오, 젊은 선생.” 그가 외쳤다. “갚아야 할 외상값이 조금 있다오.”
그는 앞장서서 집 뒤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요크셔에서는 청구서가 항상 ‘약간의 외상값’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우리는 판석이 깔린 부엌을 지나 우아하고 널찍하지만 가구라고는 탁자 하나와 나무의자 몇 개와 부서진 소파 하나밖에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존 노인은 벽난로로 다가가서 시계 뒤에서 종이 다발을 꺼냈다. 그리고 종이 다발을 뒤져서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은 다음, 수표책을 꺼내 내 앞에 탁 내려놓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청구서를 꺼내 거기에 적힌 금액을 수표에 옮겨 쓴 다음 서명해달라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중하게 정신을 집중하여 글씨를 썼다. 이목구비가 작고 세파에 찌든 얼굴을 낮게 숙여서, 낡은 헝겊 모자의 앞챙이 펜에 닿을 지경이었다. 바지가 다리 위쪽으로 치켜 올라가서, 의자에 앉으면 앙상한 장딴지와 복사뼈가 드러났다. 그는 양말도 신지 않고 맨발로 무거운 장화를 신고 있었다.
내가 수표를 주머니에 넣자 존 노인은 벌떡 일어났다.
“강까지 걸어가야 할 거요. 말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는 거의 뛰다시피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갔다.
나는 기구 상자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꺼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닐 때마다 내 환자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상자는 납으로 가득 찬 것처럼 무거웠고, 담장으로 둘러싸인 목초지를 지나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가벼워지지는 않을 터였다.
존 노인은 쇠스랑으로 건초꾸러미를 푹 찔러서 자루를 어깨 위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경쾌한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통용문을 차례로 지나갔고, 목초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를 때가 많았다. 존 노인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나는 숨을 조금 헐떡거리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그가 나보다 적어도 쉰 살은 더 많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절반쯤 왔을 때 우리는 오랜 전통의 ‘담쌓기’ 작업을 하고 있는 남자들과 마주쳤다. 데일스의 푸른 언덕 비탈 곳곳에 무늬를 그리고 있는 돌담에 뚫린 구멍을 보수하는 작업이었다. 남자들 가운데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그는 쾌활하게 외쳤다.
“안녕이고 뭐고 어서 일이나 해.” 존 노인은 투덜거리며 대꾸했고, 사내는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비탈을 다 내려가 평지에 도착하자 나는 기뻤다. 내 팔은 몇 센티나 늘어난 것 같았고,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존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였다. 그가 어깨에 걸쳤던 쇠스랑을 흔들자, 갈퀴에 꽂혀 있던 건초꾸러미가 풀밭에 쿵 떨어졌다.
말 두 마리가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좁은 강변은 초록빛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잔디밭으로 차츰 변했다. 그 강변 바로 너머에 자갈이 깔린 여울이 있었다. 말들은 그 여울에 발목까지 물에 잠긴 채 서 있었다. 말들은 우리가 접근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서로 코와 꼬리를 맞대고 턱을 상대의 등에 부드럽게 문질렀다. 건너편 강둑 위로 튀어나온 높은 벼랑이 바람을 막아주었고, 우리 양쪽에는 참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숲이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말들이 아주 멋진 곳에 있군요.” 나는 말했다.
“그래요. 더운 날씨에도 여기서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고, 겨울이 오면 헛간으로 가지요.” 존 노인은 문이 하나뿐인 건물을 가리켰다. 벽이 두껍고 지붕이 낮은 건물이었다. “말들은 제 마음대로 오갈 수 있지.”
그의 목소리에 말들이 뻣뻣하게 굳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쳐서 강물에서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말들이 정말로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말은 밤색이었고 수놈은 적갈색이었지만, 회색 털이 너무 많이 섞여서 둘 다 회색이나 흰색 얼룩이 있는 말처럼 보였다. 특히 얼굴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하얀 털이 얼굴 전체에 흩뿌려져 있고 눈은 움푹 들어가고 눈 위에 깊은 구멍이 있어서, 정말로 고귀해 보였다.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생각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4 (0) | 2016.10.30 |
---|---|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3 (0) | 2016.10.29 |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1 (0) | 2016.10.25 |
"경계를 넘어 결합하고 융합해야 해요." (0) | 2016.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