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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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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헤리엇'이라는 영국 수의사의 이야기 시리즈가 국내에 다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계속해서 재출간되었는데, 2010년대에도 어김 없이 돌아왔다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판매가 되었고,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2,0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해요. 


이번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이 1탄이고, 올해 말에서 내년까지 계속 이어진다고 해요. 네이버 책/문화판에서 10.11~10.20까지 '출간 전 연재'가 있었고, 제 블로그에서 특별히 4회에 걸쳐 '출간 연재'가 있겠습니다. 사실 맛보기죠~ 아시아 출판사에서 협조해주셨습니다^^ 본문 36화 중에, 25화에 해당됩니다. 다시 4회를 쪼갰어요. 오랜만에 정말 재밌는 글 읽은 것 같아요. 많이 봐주세요!



나는 아침 식탁에 앉아서 아침 햇살에 가을 안개가 차츰 사라지는 것을 내다보았다. 오늘도 맑은 날씨가 될 것 같았지만, 낡은 건물 안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어서 몇 달 동안 계속될 혹독한 겨울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상기시켜주듯 오슬오슬 추웠다.

“여기 이런 기사가 실려 있군.” 파넌이 《대러비 타임스》지를 커피포트에 조심스럽게 세우면서 말했다. “농부들은 키우는 동물들한테 동정심이 전혀 없다고.”

나는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잔인하다는 뜻인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농부에게 가축은 영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친구는 주장하고 있어. 가축을 대하는 농부의 태도에는 어떤 감정도…… 애정이 전혀 없다는 얘기지.”

“농부들이 모두 킷 빌턴 같다면 도저히 해나가지 못할 겁니다. 모두 미쳐버릴 거예요.”

킷 빌턴은 트럭 운전수였는데, 대러비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족의 식용으로 마당 한구석에 돼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돼지를 잡아야 할 때가 오면 킷이 사흘 동안 흐느껴 운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그가 돼지를 잡았을 때 우연히 그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와 딸은 고기를 삶아서 소금에 절이기 위해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었지만 킷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화덕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100킬로그램이나 되는 곡식자루를 번쩍 들어서 트럭 짐칸에 던질 수 있는 거구의 사내였지만, 내 손을 움켜쥐고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헤리엇 선생님. 그 돼지는 기독교도 같았어요. 정말로 꼭 기독교도 같았다니까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파넌은 몸을 앞으로 구부려서 홀 부인이 손수 구운 빵을 한 조각 잘랐다. “하지만 킷은 진짜 농부가 아니야. 이 기사가 다루고 있는 건 많은 동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가축한테 휘말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거지. 쉰 마리의 암소한테서 젖을 짜는 낙농가가 그 암소들을 정말로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암소들은 단순히 우유를 생산하는 기계에 불과할까?”

“흥미로운 문제군요. 원장님은 가축의 수를 강조하신 것 같은데, 고지대에는 가축을 몇 마리만 키우는 농부도 많습니다. 그들은 암소한테 이름을 붙여주지요. 데이지라든가 메이벨이라든가. 요전 날에는 키펄러그스라고 불리는 암소도 만났습니다. 이런 농부들은 자기가 키우는 가축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가축을 키우는 농부들이 어떻게 애정을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파넌은 식탁에서 일어나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아마 자네 말이 맞을 거야. 어쨌든 오늘 아침에는 자네를 정말로 많은 가축을 키우는 농부한테 보낼 거야. 데너비 농장의 존 스킵턴이라는 사람인데, 이빨을 갈아야 할 말이 있다는군. 늙은 말 두어 마리가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인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니까 기구를 모두 챙겨서 가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복도를 지나 작은 방으로 가서 치과용 기구를 조사했다. 큰 동물의 이빨을 치료해야 할 때면 언제나 중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고, 말이 짐수레를 끌던 시대에는 그것이 정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어린 말의 낭치(狼齒: 앞어금니 앞쪽에 있는 작은 어금니)를 뽑는 일이었다. 이 이빨이 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의 어금니 바로 앞에 작은 낭치가 있었다. 어린 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낭치가 책임을 뒤집어썼다.

퇴화하여 흔적만 남은 작은 이빨은 말의 건강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고 문제는 아마 기생충 때문일 거라고 수의사들이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 농부들은 완강했다. 어쨌든 그 이빨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끝이 둘로 갈라진 금속 막대를 이빨에 대고 나무망치로 때려서 이를 뽑았다. 낭치는 제대로 된 뿌리가 없기 때문에 뽑아도 별로 아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가 망치로 한 번 때릴 때마다 말은 대개 두세 번쯤 앞발을 들어 올려 우리의 귀 주위에서 휘두르곤 했다.

이 일을 끝내면, 단지 농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잠깐 마술을 행했을 뿐이라고 말해주곤 했지만, 곤혹스러운 것은 그 후 말의 상태가 호전되고 그때부터는 계속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농부들은 우리가 치료비를 더 많이 청구할까 두려워 대개는 우리의 수고가 성공한 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지만, 이 경우에는 조심성을 모두 던져버렸다. 그들은 시장 건너편에서 우리를 보면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이봐요, 당신이 낭치를 뽑아준 말을 기억하슈? 그 말이 아주 좋아졌어요. 낭치가 문제였던 거요.”

나는 치과용 기구를 떨떠름한 눈으로 다시 살펴보았다. 60센티미터 길이의 팔이 달린 겸자, 날카로운 턱을 가진 가위, 개구기, 망치와 정, 줄. 마치 종교재판소의 조용한 구석에 있는 고문 기구들 같았다. 우리는 손잡이가 달린 길쭉한 나무상자에 그 기구들을 넣어서 갖고 다녔다. 나는 꽤 많은 기구를 골라서 나무상자에 담고 자동차로 가져갔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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