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드셨다. 향년 89세.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듯 정정했던 그였기에, 조금은 충격이었다. 내 삶에서 처음으로 기억나는 대통령이 김영삼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의 기억이 있지만, 당시의 대통령인 노태우에 대한 기억은 없다.
문제는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결코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니, 치가 떨릴 정도로 나쁜 기억만 있을 뿐이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도시가스 폭발 사고, 대구 지하철 폭발 사고, 그리고 IMF... 10대의 어린 나이였지만, 비록 TV로 보고 들은 것들이지만, 그 기억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경우, 우리 아버지가 지나간 뒤 5분 만에 무너져 내려서 후덜덜하게 다가온다.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사건사고가 그의 통치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IMF는 한 번에 확 와 닿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 삶의 분명한 분기점이었다. 내 기억으론 IMF가 있기 전엔 우리 집도 꽤 잘 나갔다(?). 돈 걱정 없이 나름 펑펑 쓰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내가 뭘 사달라고 했을 때 엄마가 거절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 IMF가 지나간 후 중학교 때부턴 그러지 못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돈 얘기가 나오면 하얗게 질리곤 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게 김영삼은 내 기억 속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2010년대 대통령들이 하는 걸 보니, 김영삼 대통령이 그리워진다. 그가 비록 역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사건사고이 일어난 시기를 통치했지만, 한편으로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전두환, 노태우의 하나회를 단 칼에 척결했다든지, 계속 미뤄왔던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든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정식 선포하는 등 역사바로세우기를 실시했다든지, 등등. 어느 대통령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 가는 일들을 해냈다. 그것들은 그만이 할 수 있었던 업적이다.
그는 김대중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오랫동안 독재와 맞서 싸운 민주화 투사였다. 재야가 아니라 대놓고 정치판에서 싸운 뚝심 있고 겁 없는 투사였다. 그는 독재와 싸우며 당한 것도 참 많고, 이뤄낸 것도 참 많다. 그 중 제일 섬뜩한 건, '질산 테러'다. 1969년에 일어난 일로, 김영삼 의원이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대정부 질의를 한 일주일 후 귀가 길에 테러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직접적인 피해를 입진 않았는데, 왠만한 사람이라면 의원직을 내놓고 칩거했을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김영삼은 배후를 중앙정보부라 보고, 더더욱 달려들어 반대하고 비판을 가하며 싸웠다.
한편 그가 행한 유명한 '단식 투쟁'이 있다. 김영삼은 1983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3주년 기념일부터 6월 9일까지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바로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5월 27일에는 전두환을 대신해 권익현이 찾아 와서 단식 중단을 요청했으나 거절했고 다음날, 다다음날에도 찾아왔지만 거절했다. 이 투쟁은 민주화 투쟁에 불을 붙여 결국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있다. 그야말로 민주화 운동의 결정적 전환점 중에 하나이다.
김영삼 하면 잊지 못할 대사건이 하나 더 있다. 1990년 '3당 합당'이다.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정당과 제2야당 민주당, 제3야당 공화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지금의 새누리당 전신이다. 이는 노태우 정권의 철저한 노림수였다.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군사정권 청산 요구에 압박을 받고 있던 정권은, 급기야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자 보수 연합을 추진한다. 이에 내각제 개헌을 약속하며 3당 합당을 이끌어냈다. 노태우, 김종필 그리고 김영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김영삼 입장에서는 거악(巨惡)이나 마찬가지인 이들과의 조우라니. 어떤 변명을 대도 신통치 못할 사건이었다.
'애증'의 대상이라고 할까. 김영삼은 나에게,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그런 사람인 듯하다. 정말 잘한 일도 많고 위대한 일이라고까지 할 만한 일도 많이 했지만, 도무지 용서하지 못할 일들도 행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는 분명 부끄러운 짓을 행했다. 그럼에도 그를 마냥 증오하지 못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다. 김영삼을 규정하는 건 참 힘들다. 아니, 오히려 쉬울까? 어쩌면 김영삼의 적자니, 아들이니 떠드는 사람들에게 힘든 일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현 보수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이지만, 신념은 반독재와 민주화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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