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원했던 것은 너무나 적었건만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줄기 햇살, 가까운 들판, 한줌의 평온과 한 쪽의 빵,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기, 다른 이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기.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거부당했다. 동냥 주는 것을 거절하는 이가 동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 주머니 단추를 풀기 귀찮아서 그러듯이. 결국 내가 원한 것들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적막한 내 방에서 홀로 서글픈 심정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목소리가 혹시라도 수많은 목소리들의 본질, 수많은 삶들이 열망하는 자기표현, 그리고 일상에 매인 운명, 부질없는 꿈과 가능성 없는 희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영혼들의 인내심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나의 심장은 힘차게 고동친다. 삶이 고양될 때면 더욱더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내 안에 있는 어떤 종교적인 힘, 일종의 기도, 절규가 느껴진다. 그러나 자각은 나를 제자리로 되돌리곤 한다...... 도라도레스 거리의 건물 사층 방에 있는 나를 졸린 상태에서 본다. 무언가를 반쯤 써내려간 종이 위로 아름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삶과, 닳아빠진 압지 너머 손을 뻗어 재떨이에 비벼 끄려던 싸구려 담배가 보인다. 여기 이 사층 방에 있는 내가 삶에 대해 묻고, 영혼이 느끼는 바를 말하고, 천재나 유명 작가라도 되는 듯이 글을 쓰고 있다니! 여기, 내가, 이렇게!......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텍스트 6의 전문입니다. 한없이 우울하죠. 그리고 불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작가의 작품인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접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100년의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같은 시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네요.
첫 문장부터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리고 극히 공감이 가고요. 내가 원했던 건 정말 작은 건데 그것마저도 얻을 수 없다니요. 우울하지만 역사에 남을 대문호도 이런 심정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한편으로 위로(?)가 되기도 하는 군요. 물론 그가 느낀 바와 우리가 느낀 바는 차원이 다른 것일 수 있겠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질감을 느끼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랫 부분에서는 불안과 함께 분열적인 모습이 보입니다. 서글프다가, 생의 강력한 힘을 느끼다가도, 다시 울적해지며 자격지심이 듬뿍 담긴 생각을 합니다. 그러며 마지막에는 '나'에 대한 자각을 보이기도 하죠. 이 또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두루 보이는 모습과 일치해요. 앞엣것보다 조금은 더 고차원적일 수 있을 겁니다. 존재에 대한 것이니까요.
천천히...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그의 생각에서, 그의 삶에서, 이 책에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께도 해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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