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10월의 쌀쌀한 날씨, 새벽의 진솔한 대화로 우리는 전에 없이 친해졌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였기에 선뜻 '사귀자'라는 말을 전하진 못했지만, 우리는 성의껏 붙어다녔다. 수업하는 반이 달라서 평일 수업시간에는 같이 할 수 없었지만, 저녁이면 같이 밥을 먹고 주말이면 같이 놀러다니곤 했다. 종종 점심도 같이 먹고.
점심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그것. 다름 아닌 '치킨 버거'. 그것도 학교 내 매점에서 파는 허접한(?) 치킨 버거를 그렇게 좋아했다. 점심만 되면 그것만 먹었던 것 같다. 참 특이한 순서로 먹었는데, 버거라면 응당 한 입에 내용물을 가득 넣어 먹어야 하거늘 그녀는 빵 따로 야채 따로 치킨 패티 따로 먹었다. 재료의 오리지널을 느껴야 한대나 뭐래나. 그 지론은 지금도 변함 없다.
또 하나 좋아하던 점심의 주 메뉴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라면'이었다. 한국 라면이 아닌 중국 라면! 그건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무슨 말이냐면,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너무 너무 너무 저렴하고 맛있었다. 라면 하면 한국, 한국 라면 하면 신라면인줄 알고 살아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특히 컵라면을 즐겼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환상의 맛이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중국 라면을 즐겼다.
자, 이런 걸 함께 할 정도로 우린 친해졌다. 전에 없이 친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봐도 '쟤네 정말 친해 보인다.'라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급기야는 사귀는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으니.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들이었다. 내가 연장자고 남자인데 먼저 말을 꺼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난 시간이 가도 가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왜? 도대체 왜? '용기'가 없었다. 그 놈의 용기가 터무니 없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공식적으로 사귀지만 않을 뿐 누가 봐도 사귀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관계. 우리는 지쳐갔다. 아마 그녀가 훨씬 더 지쳤을 것이다. 이 바보 멍청이. 친해지면 다야? 친해지는 게 목표인거야? 이 먼 타향 땅에서 그저 외로움을 덜고자 친하게 지내는 게 다란 말이야?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지르는 절규 아닌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어쩌랴... 용기 없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전긍긍. 뭐라고 말해야 할까. 노심초사. 과연 날 받아줄까. 이럴 땐 경거망동할 필요가 있는데. 너무 안타깝다. 그때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진짜 사랑한다면 앞뒤 가리지 말고 고백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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