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성장'을 부르짖었고, 실제로 성장을 실현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성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만, 개인의 생명과 안정을 중시하고 일상생활을 소중히 하는 가치를 충족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경제적 성장은 굳이 말할 것이 없고. 그리고 이는 곧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성장만을 위한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스템은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했다. 경제 성장은 멈추고 오히려 경기 불황의 장기화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자연스레 행복의 의미는 손상되기 시작했고, 경기 불황에서 파생된 많은 어려움들로 우울증 환자와 자살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유동하는 근대의 비상사태'(28쪽)에 살아가게 된 것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 표지 ⓒ 사계절출판사
재일교포 2세인 강상중 교수는 <살아야 하는 이유>(사계절출판사 펴냄)를 통해 이런 불안정하고 불안하고 절망적인 시대에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찾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 수많은 불행한 사람이 있겠지만, 저자만큼 불행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는 아들을 잃었다. 그의 아들은 번민과 고민 끝에 살 가치가 없는 이 세상을 버렸다고 한다. 1년 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미증유의 절망이 그를 덮친다. 개인의 불행 뒤에 나타난 거대한 사회적 불행의 현장을 마주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가 선택한 것은 이 고통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견디기 힘든 괴로움과 슬픔, 심한 좌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의 절망과 통곡. 저는 1년 전 그 순간 '고민하는 인간'(호모 파티엔스)의 삶을 살기 시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고민하는 힘> 후속편을 계속 써나갔습니다."(11쪽)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복을 찾아서
저자가 겪은 개인의 고통이 뿌린 비가 채 마르기도 전에 내린 폭우와도 같은 전사회적 고통. 이는 그가 이 사회를 되돌아보고 인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깊은 천착 끝에 나온 대답은 '거듭나기'이다.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을 헤맬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빠져나간 지경에 도달하고 세계의 새로운 가치라든가 그때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포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보다는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다시 사는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121쪽)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주창한 개념으로, 그의 사상은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저자 강상중은 책에서 이 두 명의 사상과 텍스트를 많이 참고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개해 나간다. 이들의 무엇이 그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고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을까.
소세키와 제임스, 그리고 베버.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비슷한 세대를 산 사람들이다. 이들 중 저자가 특히나 참조를 많이 하고 있는 텍스트는 소세키인데, 그의 날카롭고 풍부한 통찰력을 예로 들며 새로운 행복의 형태를 보여주려 한다. '고체화된' 근대 이전과는 달리 시장경제에 따라 자유경쟁이 심화된 근대 이후에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고뇌나 수고, 고민에 눈을 돌리고, 그 의미를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43쪽)고 하며 3.11 일본 대지진 이후 행복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다.
진짜 자기 찾기의 괴로움과 모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진짜'나 '자기다움'에 대한 지향이 사람들에게 극도의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주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본래적인(진짜의/자기다운) 존재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파고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진짜 자기 찾기는 괴로움을 수반하는가?
일단 진짜 자신이나 자기다움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시장경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진짜 자기 찾기는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만 노라고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견지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인간이 대체 가능하고 교체 가능한 '상품'이 되고 있고, 그럼에 여기저기에서 '진짜를 찾아라'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호에 편승하다보면 진짜 자기 찾기는 수많은 가짜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는 제1차 붐(1900년)의 게이타로(소세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또는 이치로(소세키 소설의 주인공)처럼 인간 불신의 결과로서 진짜 찾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2차 붐(1968년 세계 학생 혁명)의 대학생들처럼 낭만적인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략) 오늘날 우리의 자기 찾기는 점점 더 말기적인 현상이 빈발하는 사회 시스템과 여러 국면에서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탐정 놀이와도, 자기실현 놀이와도, 혁명 놀이와도 다른 무척 괴로운 진짜 자기 찾기입니다."(104쪽)
그럼에도 저자는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유일성'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상품이 아닌 이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 '자기를 찾아라'라고 외치며 우리를 부추기고 있는 게 바로 자본주의(106쪽)라고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각의 3.11 대지진 귀착화와 종교로의 편향
책의 내용은 접어두고 책에 대한 비평을 하고자 한다. 저자가 처음에도 밝혔고 이 기사에서도 처음에 밝혔듯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3.11 대지진'이다. 그걸 의식해서 인지는 몰라도 책의 곳곳에서 3.11 대지진은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저자가 하는 거의 모든 생각과 고민, 말들이 3.11 대지진으로 '귀착'되지 않는지, 그게 너무 심해 '고착'된 게 아닌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보자.
저자는 행복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3.11 대지진이 크게 기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진짜 찾기에 대해 말하며 '제2차 진짜 찾기 붐'은 3.11 이후 시민들의 탈원전 운동과 상당히 달랐던 것 같다(99쪽)고 말하고 있다. 3.11 대지진 이후 과학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고 말하고 있다. 3.11 대지진 이후 종교적인 입장에서의 의미 부여가 전무(137쪽)했던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다. '자연은 제어할 수 있다'는 '오만'과 '태만'의 조합의 결과, 3.11 대지진을 당했다(153쪽)고 말하고 있다. 시장경제 사회 시스템과 자연현상이 겹쳐 3.11 대지진의 결과는 더욱 참혹했다(158쪽)고 말하고 있다. 유일성의 상실의 폐해가 3.11 대지진에 나타났다(170쪽)고 말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계속 걸렸던 부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보았다.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행복, 진짜 찾기, 종교의 필요성,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 등이 모두 3.11 대지진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증유의 대참사를 여전히 통과하고 있는 중에 있음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해가 충분히 간다. 그럼에도 책을 다 읽고 덮은 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마치 3.11 대지진의 극복이라고 조금이라도 느끼게끔 한 것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3.11 대지진의 전과 후로 극명하게 나눠버리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 것은 어느 정도의 실책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삶의 의미를 어떤 종교적인 관점에 치우쳐 접근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과연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종교적 관점이 그들이 처한 현실에 와닿을 수 있게 다가갈 수 있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책은 훌륭하다. 연방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들이 판을 치는 한국 문화계와 출판계에 충분히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니, 이미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바닥까지 내려가 극도의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평소에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의 힘을 아는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오마이뉴스" 2013.1.1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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