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위플래쉬>



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천재와 폭군의 만남. 천재는 아직 자신이 천재인 줄 모르고, 폭군은 그의 재능이 진짜인 걸 안다. 천재는 최고가 되기 위해 폭군의 가혹한 채찍질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폭군은 역시 그의 재능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 모질고 가혹한 채찍질을 선사한다. 이들에게는 재능이 밑받침 되는 노력, 한계를 가볍게 넘어서는 열정,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의 광기만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천재는 자신이 천재인 줄 모르기 때문에 어느 순간 한계에 직면한다. 자신의 재능에 대해, 그리고 폭군의 가혹한 채찍질에 대해. 무엇보다 그 모멸감 가득한 채찍질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최고가 되기 전에 내 자신이 파괴될 것 같은 기분이다. 폭군 앞에서는 천재는 커녕 인간쓰레기에 불과하다. 


반면 폭군은 천재를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모멸감과 가혹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천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폭군은 철저히 교육에 의한 천재 양성을 지지한다. 문제는 방법에 있다. 누구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그는 칭찬은 개나 줘버리고 오직 채찍질만이 천재를 만든다고 한다. 


나를 따르면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 이야기다. 여기에서 천재는 주인공 앤드류이고, 폭군은 플렛처 선생이다.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최고의 명문 음악학교 신입생이다. 그는 학교의 모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음악 교수인 플렛처 눈에 들어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말그대로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했고 마침내 플렛처의 눈에 들었고 그의 반으로 직행한다. 


영화는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악연도 이제 시작이다. 완벽함이란 단어가 가장 완벽하게 들어 맞는 플렛처의 반에서는 연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말만 연습일 뿐이다. 연습 때라도 완벽하게 연주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메인과 보조의 자리가 바뀌거나, 아예 반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쫓겨난 이는 다시는 플렛처의 반으로 돌아올 수 없다. '연습도 실전처럼' 이란 명구가 생각나게 한다. 


플렛처의 교육 방법론은 피교육자의 실력을 최상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 먼저 그는 실력 뿐만 아니라 잠재능력과 열정이 있는 학생 만을 골라 가르치기 때문에 최상위로 오를 수 있는 기본 바탕이 갖춰져 있다. 그런 이들에게 자신 만의 지독하고 모질고 가혹한 방법을 선사하는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그의 방법은 다른 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될 때까지 하라' 단, 플렛처 교수 자신의 기준에서 단 1%의 오차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의 기준이 곧 최고가 되는 기준인 것만은 분명하기에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나를 따르면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음악 영화가 아닌 교육 영화, 황당한 교육 방식


앤드류는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시련을 겪으며 한 발씩 나아간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연습 시간을 버티며 보조에서 일약 메인을 꿰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시시각각 메인과 보조를 오간다. 플렛처는 왜 앤드류한테서 최고의 실력을 끄집어 내놓고는 곧바로 그를 내동댕이 치는 것인지? 앤드류는 분노가 폭발하기에 이른다. 


폭군 플렛처는 그의 분노가 폭발하기를 기다린 듯하다. 그리고 그의 분노가 열정으로, 광기로 변해 최상의 실력을 뽐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길 원한다. 그것이 바로 최고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생각은 한 장면에 꽂혀 있다. 


역사상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 '찰리 파커'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게끔 해준 '조 존스'의 이야기. 조 존스는 찰리 파커의 연주가 삼류라며 얼굴을 향해 드럼 심벌을 날린 적이 있다. 이 모멸감 가득한 사건을 계기로 찰리 파커는 각성했고 그 분노를 광기로 승화시켜 이후 최고의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플렛처의 교육 방식의 핵심 사례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 쇼박스㈜미디어플렉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를 다르게 보게 된다. 음악 영화가 아닌 교육 영화로. 전율이 흐르는 음악을 듣는 것도 황홀하지만, 전율이 흐르는 교육 방식을 보는 것도 황당하다는 걸. 그렇다. 플렛처의 교육 방식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그저 황당할 뿐이다. 또 눈살이 찌뿌려지고 짜증이 난다. 그가 만들어 낸 최고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다. 광기만 있을 뿐. 


그래도 <위플래쉬>는 영화 자체로 최고의 수작


문제는 수요에 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플렛처의 교육 방침을 기꺼이 따르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런 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교육을 추호도 옹호할 수 없다. 천재 또는 최고인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런 세상을 지탱해가는 이들이 바로 평범하지만 올바른 이들 아닌가. 


이런저런 논란을 제외하고 영화 자체의 재미로 보자면, 이 영화 <위플래쉬>는 가히 최고의 수작이다. 시종일관 눈과 귀가 즐거웠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너무나도 몰입이 잘 되었다. 자칫 무겁고 재미 없을 수 있는 소재와 주제임에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음악 영화로도, 교육 영화로도, 심지어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로도 감상할 수 있다. 앤드류의 광기 어린 연주는 전율 그 자체였고, 플렛처의 동작 하나하나는 마치 나를 향하는 것 같아 섬짓함이 폐부를 찔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