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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5일의 마중> 페르소나 '공리'와 함께 돌아온 '장예모' 감독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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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5일의 마중>



영화 <5일의 마중> 포스터 ⓒ찬란



공리의 데뷔작이기도 한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데뷔한 장예모 감독. 그는 이후 중국 영화사에서 5세대라 칭하는 감독군의 중심에 서게 된다. 5세대는 기본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였지만, 엄격한 검열 때문에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하곤 했다. 한편 중국 전통의 '민족의식'을 신비롭게 포장하여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국적인 정서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이후 1990년대를 완전히 석권한다. 1991년에 나온 <홍등>을 시작으로, 5개의 작품이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탄 것이다. 이미 1988년 데뷔작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를 제패했던 그다. 거장은 2000년대 들어서 중국형 블록버스터로 눈을 돌린다. 


2002년의 <영웅>, 2004년의 <연인>, 2006년의 <황후화>까지. 2년을 텀으로, 점점 화려해지고 점점 돈은 많이 투입되었으며, 점점 영화는 안 좋아졌다. 물론 그만큼 자본적으로 대성공을 기록했지만 욕을 있는 대로 먹었다. 언론은 '거장의 추락'을 서슴없이 보도했다. 20세기 중국 영화의 거장은 그렇게 2000년대를 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페르소나 '공리'와 함께 돌아온 '장예모' 감독의 신작


그런 그가 2014년에 그의 페르소나 '공리'와 함께 돌아왔다. 장예모의 20번째 영화이자, 공리와 함께한 9번째 영화 <5일의 마중>이다. 그들은 80,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지만 <황후화> 이후 오랫동안 같이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8년 만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것도 과거에 2000년대가 아닌 1990년대의 그 느낌으로 말이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장예모의 연출이 완벽하게 부활했다. 


영화는 정치적인 느낌에서 시작해 지극히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느낌으로 끝난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당시 펑안위(공리 분)와 그녀의 딸 단단(장혜문 분)은 루옌스(진도명 분)이 투옥 중 탈출했다는 비보를 듣는다. 루옌스는 교수직에 있었지만 반동분자로 내몰려 투옥 중이었다. 탈출해서 갈 곳이라고는 가족 밖에 없으니, 당에서는 펑안위와 단단에게 경고를 내린다. 우물쭈물하는 펑안위와는 달리 신속 명확하게 반동분자 신고를 할 것임을 맹세하는 단단. 그녀에게 루옌스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영화 <5일의 마중>의 한 장면. ⓒ찬란



어김없이 가족들을 찾아온 루옌스. 하지만 그는 아내 펑안위는 만나지 못한 채 딸 단단만 만나고, 다음 날 기차역에서 볼 것을 전한 채 돌아선다. 사방에 감시의 눈이 번뜩이고 있음에도 펑안위는 루옌스를 만나러 가고 그 사이 단단은 아버지 루옌스를 신고하기에 이른다. 결국 펑안위와 루옌스는 바로 눈앞에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만다. 그리고 3년이 흐른 뒤, 문화대혁명은 막을 내리고 루옌스는 공식적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다. 힘들었지만 잘 된 것 같다. 


모든 것을 바꿔버린 '문화대혁명'


여기까지가 정치적인 부분이다. 너무 정확하다 싶을 정도로 딱 잘린다. 이후의 자잘한 사건들의 복선이 전부 여기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후 다시 만날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위해 극도의 불행하고 안타까운 장면을 넣어 놓았다. 너무나도 영화적인 스토리이지만 그 시대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10년 간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 된 극좌적 사회운동이다. 일종의 권력투쟁인데, 중국 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1950년대 대약진운동의 대실패로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자본주의 정책의 일부를 차용한 정책을 내세워 실효를 거두면서 권력의 실세로 떠오른다. 이에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이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부르주아 세력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전국을 휩쓸어 버린다. 이 격동은 모든 것을 바꿔버린다. 


마오쩌둥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었고,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꼭 신고를 해야 했다. 그렇게 파괴된 개인과 가정이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장예모 감독 또한 이 비극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고 하는데,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다. 루옌스와 펑안위 그리고 그들의 딸 단단. 


루옌스와 펑안위 그리고 딸 단단의 미래는?


20년 만에 돌아와 같이 살게 된 그들. 루옌스와 단단은 용서 없는 화해, 즉 가족 간의 용서가 필요 없는 화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루옌스와 펑안위는 그러지 못한다. 3년 전 루옌스와 비극적으로 헤어지고 난 후 심리적 기억상실로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필 이면 루옌스의 얼굴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제나 저제나 루옌스가 돌아올 것을 믿고 있는 펑안위. 그 앞에 이미 와 있는 루옌스. 하지만 펑안위는 루옌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루옌스와 단단은 온갖 방법을 이용해 펑안위의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한다. 당에서 내려와 루옌스의 신분을 확신 시켜 주고, 루옌스의 옛날 사진을 찾아와 펑안위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펑안위와 루옌스 만이 알고 있는 피아노 선율로 펑안위의 기억을 불러오려 한다. 펑안위에게 5일에 돌아올 거라는 편지를 보내고 루옌스가 기차에서 내려와 극적 상봉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펑안위는 그 어떤 것으로도 루옌스의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다만 매달 5일이면 기차역으로 나가 루옌스가 오기 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영화 <5일의 마중>의 한 장면. ⓒ찬란



결국 루옌스는 그동안 그녀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져와 읽어주고 최신 편지라며 가지고 와 읽어주기도 했다. 펑안위는 그렇게 얼굴 모를 그와 친해졌는데, 아픈 그녀 곁을 지키기 위한 루옌스의 가슴 아픈 결정이었다. 그는 그 결정을 평생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펑안위의 기억은 돌아올 수 있을까?


영화는 정치적인 부분이 지나간 다음 완전히 다른 장르가 된다. 가슴 아프지만 너무 아름다운 멜로. 기억을 잃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위한 희생과 헌신. 시나리오는 얼핏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나 <노트북>, 심지어는 <첫 키스만 50번째>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이들 영화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앞 부분이다. 


차원이 다른 슬픔과 '멜로' 장르 본연의 맛


다른 영화들이 굉장히 우연적으로 또는 영화적 기법으로 기억을 잃은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 아내가 기억을 잃은 이유는 명백하다. 그녀가 병에 걸린 직접적인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병에 걸려 기억을 잃은 게 아니고 말이다. 슬픔의 강도가 차원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5일의 마중>의 한 장면. ⓒ찬란



공리와 진도명이라면 연기가 넘치고 흘러야 마땅한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더할 나위 없었다고 표현하면 알맞을 그런 연기를 펼쳤다. 연출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과도한 연출을 행할 만 한데, 잔잔하게 진행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눈물샘을 쏙 빼놓고는 다시 보기 힘들게 하는 여타 영화와 다르다. 


장예모 감독의 귀환이 반갑다. 현재가 아닌 옛날 얘기이지만 장예모이기에 괜찮다. 과거를 다시금 되새기는 건 자칫 과거 미화, 그것도 현재와 미래를 애써 부정하고 나서의 과거 미화가 되기 십상이다. 반면 과거를 거울 삼아 현재와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하려는 의도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 <5일의 마중>은 그것을 나름 훌륭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멜로' 장르 본연의 맛을 완벽히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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