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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졸업해야 하지만 졸업하기 싫은 소녀들의 사랑 또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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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영화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포스터. ⓒ해피송

 

폐교를 앞둔 어느 지방의 남녀공학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싱숭생숭하다. 마나미는 학생회장이 아님에도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재학생에게 답사를 보내게 되었다. 그녀는 졸업식을 앞두고 여느때처럼 남자친구 슌과 함께 몰래 도시락을 까먹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그녀에겐 큰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을까?

여자 농구부 부장 코토는 졸업 후 심리학를 공부하고자 도쿄로 갈 예정이다. 그런데 남자 농구부의 절친 테라다가 걸린다. 그는 이곳에 남아 공부하며 선생님의 꿈을 이어가려 한다. 그들은 서로의 꿈을 얘기하다가 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서먹서먹해졌다. 과연 잘 헤어질 수 있을까?

한편 사쿠타는 교실 대신 도서실에서 평온을 찾는다. 시끌벅적하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친구들 사이에 낄 수 없었고 도서실에서 혼자 책의 세계로 빠져드는 게 좋았다. 사실 그녀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실 담당 키시타니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보기로 하는데...

그런가 하면 경음악부 부장 쿄코는 졸업식 공연을 경음악부가 맡게 되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골치가 아프다. 인기투표로 순서를 정하기로 했는데 하필 실력도 별로고 시끄러운 음악이나 하는 밴드 '헤븐스 도어'가 1위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쿄코는 그대로 밀어부친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모리사키를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졸업해야 하지만 졸업하기 싫은 소녀들

 

영화 <소녀는 좋업하지 않는다>는 일본 굴지의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 수상자인 아사이 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원작 소설에는 7명의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반해, 영화는 감독이 4명의 에피소드만 뽑아 각색했다. 하여 영화를 보면 4명의 소녀가 비록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서로 접점이 없다시피 하다.

일본어와 한국어 제목이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인 반면 영제는 'Sayonara, girls'다. 외견상으론 정반대의 뜻이다. 졸업하고 싶어하지 않고 계속 고등학생이고 싶어하는 소녀들의 마음을 대변한 제목과 설렘과 기대를 앉고 멀리 날아가야 하는 소녀들에게 건네는 인사의 의미를 담은 제목. 다시 보면 주체가 다를 뿐 동일한 말이나 다름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비교적 인생의 초반기에 피할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해야 하고 적응되었다 싶으면 떠나야 하고, 그 자체로 훌륭한 인생 공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극 중 주인공 4명의 소녀는 모두 나름의 이유로 학교를 떠나기 싫어 한다. 졸업하고 싶지 않다.

 

사랑 또는 아쉬움, 애매모호한 감정

 

잠깐 나의 고등학교 졸업 때쯤을 돌아본다. 수능을 본 지 한참이지만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대학교에 갈지 재수를 할지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일단 놀면서 관망할지 각자 고민이 많다. 솔직히 졸업을 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학교를 떠나 본격적인 '어른'의 길로 나서는 게 두려웠지만, 학교 자체에 미련이 남진 않았다. 영화처럼 남녀공학이 아니어서였을까?

극 중에서 네 소녀의 청춘 끝자락은 '사랑'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마나미를 제외한 세 명은 애매모호하다. 고토가 헤어지는 걸 아쉬워하는 테라다, 사쿠타가 지난 3년 동안 힘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키시타니 선생님, 쿄코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는 모리사키를 위해 해 준 일까지. 좋아하는 감정인지 졸업할 때의 아쉬운 감정이 스며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 지점이 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이 될지 모를 자신도 알 수 없는 자기의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아마 옆에서 지켜보면 '좋아하는 거 맞네' 할 테지만 당사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거나 보기 힘들 테니 아쉬워서 그러는데' 할 것이다. 좋아하는데 못 보면 아쉬운가? 그렇다. 못 봐서 아쉬우면 좋아하는 건가? 그렇진 않다.

 

'마지막'에 방점이 찍힌 청춘 이야기

 

그렇다면 이 영화는 10대 마지막 청춘의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10대 마지막 청춘'의 사랑 이야기가 맞을 것 같다. 즉 '마지막'에 방점이 찍혀 있다. 졸업식도 졸업식이거니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폐교'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다신 '이곳'을 볼 수 없을 게 아닌가, '이곳'에서 보낸 시절이 기억 속으로만 남는 게 아닌가.

'다음에 보자' '또 보자'라며 헤어져도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시기를 명시하지 않은 '언젠가'가 생략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이든 장소든 사물이든 헤어질 땐 다시 만날 것을 쉽게 약속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극중에선 학교가 철거된다니, 아쉬움은 한컷 커지고 또 아이들 사이로 퍼진다. 아쉬움을 공유하다 보니 명확하지 않은 감정들이 강제로 끄집어내진다.

누구라도 피해가기 힘들 것이다. 감정과 감정이 부딪히는 게 아니라 감정이 스며들면, 그것도 공통의 감정이 스며들면 하나로 이어지기 쉬울 테다. 영화는 그 지점을, 그 알 듯 모를 듯 보일 듯 말 듯 미세한 부분들을 잘 잡아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푸르스름한 감정들의 향연이다. 부디 잘 헤쳐나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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