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영화 <큐브>


영화 <큐브> ⓒ라이온스 게이트


오락적 성격이 강한 SF 영화에 인문학적 함의가 포함된 경우가 생각 외로 상당히 많다. 흔히들 SF 3대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위대한 선구자 ‘필립 K. 딕’의 소설들은 거의 모두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서 인류학적 고민을 선사해준다. 그리고 또한 이들의 소설의 상당수가 영화화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유명한 <스타쉽 트루퍼스>(폴 버호벤 감독, 1997년 작),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스탠리 큐브릭 감독, 1969년 작), <바이센테니얼 맨>(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1999년 작),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감독, 1982년 작)가 이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작품들로, SF 장르로서의 기본적인 재미와 함께 인문학적 생각 거리를 주고 있다.(감독만의 해석이 불러온 패착 <스타쉽 트루퍼스>는 제외하고)


영화 <큐브>(빈센조 나탈리 감독, 1997년 작)도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벗어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는 SF, 공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철학 영화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생각 거리를 주된 테마로 하는 (소설 원작의) 여타 다른 영화는, 서사가 있고 상반된 주장을 하는 캐릭터가 있고 고민 끝에 내는 선택의 순간이 있고 논란이 있고 결말이 있다. 작가나 감독의 생각이 깊숙이 관여하는 영화도 있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도 있다.


철저히 상징성으로 무장되어 있는 영화 <큐브>


반면 <큐브>는 서사가 없고 상반된 주장이 아닌 각자의 의견을 내는 캐릭터가 있고 예정되어진 선택이 있고 논란이 있고 결말이 있다. 언뜻 봐선 다를 바 없지만,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철학적 상징의 완벽한 발현이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해석할 거리를 주고 있다.


영화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하게 스토리만을 음미하며 즐기는 방법, 스토리에 덧씌워진 내러티브를 분석하는 방법, 캐릭터를 파고드는 방법, 영화사적 관점에서 보는 방법 등. 그런 면에서 볼 때, 영화 <큐브>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캐릭터를 파고드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캐릭터 분석 방법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여느 캐릭터를 해석할 때 그 이면에 기반 되어 있는 상징성을 주목하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캐릭터는 상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처한 공간배경 또한 마찬가지이다. 철저히 상징성으로 무장되어 있다. 18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와 비슷한 면이 상당 부분 있다. 이 소설 또한 캐릭터, 배경, 상황 등이 철저히 철학적 상징성들로 무장되어 있다.


영화 <큐브>의 배경 및 캐릭터, 그들이 처한 상황 등을 간단히 살펴보자. 영화는 시종일관 정사각형의 방을 공간배경으로 진행된다. 반면 상황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대신 그곳에 갇힌 6명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측하는 말들로 대신한다.


어느 날 갑자기 큐브에 갇힌 사람들 ⓒ라이온스 게이트


탈옥범, 경찰, 의사, 건축가, 수학자, (천재) 자폐아가 바로 그들. 이들은 이곳에 오게 된 6하 원칙을 알지 못한다. 즉, 누가 그들을 이곳에 데려 왔는지, 언제 오게 되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등.


그 상태에서 각 캐릭터들은 자신의 의견들을 발설하며 누군가는 행동에 옮기기 시작한다. 탈옥범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빠져나가려 한다. 왜 오게 되었는지, 여기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여길 탈출할 것인지가 중요할 뿐. 그는 탈출이라는 행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경찰은 바깥에 아이가 세 명 있다. 비록 아내와는 이혼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출해야 한다. 그는 목적 지향성 인물이다. 수학자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가, 경찰의 강력한 목적의식에 떠밀려 탈출의 키를 쥐게 되는 인물이다. 타고난 수학 실력으로, 이 공간이 정사각형의 방 17,576개로 되어 진 큐브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암호를 이용해 탈출을 주도한다.


의사는 여기에 왜 오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러며 정부나 거대 기업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을 이곳에 가둘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 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좌절하다가도 무섭게 몰아붙이곤 한다. 현상보다 본질을 추구한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는 이 큐브의 외형을 디자인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며 자신들이 이곳에 갇히게 된 이유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현상을 직시하지도, 목적을 지향하지도, 본질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현실에 안주할 뿐이다.


그리고 천재 자폐아가 있다. 그는 수학자도 풀지 못한 암호의 정답을 천재적으로 풀어서 사람들을 탈출 직전까지 인도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그야말로 큐브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영화 <큐브>에서 큐브란?


자, 영화 <큐브>에서 큐브란 무엇일까? 중간에 수학자가 힌트를 준다. 큐브는 가로 세로 높이 26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26x26x26=17,576개이다.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게 바로 26개의 알파벳이다. 이 또한 상징인데, 인간은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가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런 이유 없이 던져진 존재라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탈출을 꿈꾸고 목적을 갖고 살아가며 본질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이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걸 뜻한다.


결국 순진무구한 자폐아 한 명만 탈출한다. ⓒ라이온스 게이트

결국 그들 6명 중 살아남는 사람은 이 틀의 존재조차 모르는 순진무구한 자폐아 한 명 뿐이다. 나머지 5명은 함정 때문에 죽어서, 서로가 서로를 죽여서, 이 틀에서 탈출하기가 무서워서, 탈출하지 못한다. 여기서 큐브라는 것은 공간으로는 우주, 지구, 나라, 동네, 집까지 인간이 알고 있는 개념일 테고, 지각으로는 차원과 시공간 개념일 테다. 또한 인간의 언어 체계는 알파벳 26개(언어를 상징함)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제일 공감 가는 인물은 건축가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대략 알고 있고 관여도 한 인물로, 그 안에서 안주하길 즐긴다. 그것이 제일 편하고 안전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누구든지 그와 같은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어떻게 해서 탈출할 수 있는 순간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탈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이 영화는 밀폐된 공간에서 함정까지 설치된 곳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자체로 공포를 선사하고,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을 보며 치를 떨게 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는 너무나도 광범위하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철학의 진면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명확한 알레고리를 알고 보는 것도, 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영화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재미있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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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