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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극장의 만남과 존재와 추억에 대해, 영화 <너와 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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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너와 극장에서>


영화 <너와 극장에서> 포스터. ⓒ서울독립영화제



극장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아니, 사실 잘 가지 않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내가 진짜 보고 싶은 영화, 내가 생각하기에 진짜 좋은 영화는 극장에 잘 걸리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곳의 원하는 시간에 말이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발품을 팔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몇 번 그렇게 했다가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그곳엔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이나 벅참이 없었다. 


극장엔 설렘이나 벅참을 동반한 로망이 있기 마련이다.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오감만족하게 보여주는 곳이니까. 무엇보다 그곳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관객들이 있다. 공기에 퍼지는 공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난 극장을 잘 가지 않는다. 


멀티플렉스는 더 이상 '극장'이 아니다. 극장은 멀티플렉스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중이다. 대신 그곳엔 영화와 하등 관련 없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영화는, 극장은 단지 할 것 없어서 시간을 때우려고 오는 느낌이 강해졌다. 그런 곳에 매년 치솟는 가격을 지불하고 갈 이유를 점점 더 찾기 힘들어진다. 


영화 <너와 극장에서>는 극장에 관한 옴니버스 장편이다. <극장 쪽으로> <극장에서 한 생각.> <우리들의 낙원> 3개의 단편 에피소드를 각각 유지영 감독, 정가영 감독, 김태진 감독이 맡았다. 서울독립영화제가 2009년부터 격년마다 신인 감독 발굴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개봉/배급 지원을 해왔는데, 이 영화는 그 다섯 번째이다. 


극장의 만남


영화 <너와 극장에서> 중 '극장 쪽으로'의 한 장면. ⓒ서울독립영화제



아침엔 우유와 주스, 그리고 토스트로 떼우고 출근해서 점심시간엔 오무라이스를 먹는 선미. 그녀는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와 한국감정원 인포데스크에서 일한다. 타지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그녀에게 어느 날, '6시, 오오극장에서 만나요. 기다릴게요!'라는 쪽지가 전달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향한 오오극장, 하지만 그곳엔 설레는 일은 찾아볼 수 없고 막막하고 기가 막힌 일만 기다리고 있는데...


<극장 쪽으로>는 극장을 향하는 보편적 설렘과 이와는 별개로 대구라는 지역에 대해 유지영 감독이 말하는 바가 두루 입혀져 있다. 아침 점심 저녁 변치 않고 똑같은 생활을 하는 선미가 정말 특별히 향하는 곳이 다름 아닌 극장이다. 그곳엔 비단 영화뿐만이 아닌 '새로운 만남 '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극장에서만의 영화라는 점과 새로운 만남의 설렘이 주는 시너지랄까. 


한편 영화는 선미가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설상가상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오오극장에 처음 가보는 그녀이니 만큼, 더군다나 골목에서 담배를 피려다 아이들에게, 할머니에게 쫓겨 저도 모르게 이리저리 도망간 것이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골목길에서 빠져나가긴 힘들고,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핸드폰도 없어진 것 같고. 그녀가 대구에 내려온 이상 대구에서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은 것처럼, 이 오오극장 옆 골목길에서도 영영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다. 


극장의 존재


영화 <너와 극장에서> 중 '극장에서 한 생각.'의 한 장면. ⓒ서울독립영화제



토요일 아침, 영화 <극장살인사건> GV 시간에 정가영 감독과 사회를 맡은 임선미 기자가 있고 관객석엔 드문드문 관객들이 있다. 관객들의 질문과 감독의 답변이 오간다. 멜로만 찍던 감독님이 왜 스릴러를 찍게 되었냐, 앞으로 다시 멜로 찍을 생각이 있냐, 멜로를 더 좋아하냐 스릴러를 더 좋아하냐. 와중에 정가영 감독은 고백한다, 유부남을 사랑했던 적이 있다고. 어느 관객이 이 사실로 질문을 하고 물고 늘어지는데...


<극장에서 한 생각.>은 진짜 GV를 찍어서 보여주는 것인지 잘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현실감 넘치고 긴장감 어리다. 영화는 단순한 관객 질문과 감독 답변으로 이어지는 듯한데, 실상은 극장에 대한 솔직담백한 의견 제시다. 비관적인 의견. 영화 감독임에도 극장을 잘 가지 않고, 불법다운로드를 즐기며, 극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관심 없다. 


우리나라 영화산업, 즉 극장산업이 나날로 번창하는 것과 동시다발적으로 성행하는 게 다름 아닌 불법다운로드 시장일 것이다. 그것과 별개로 IPTV 또는 포털 다운로드로 영화를 편하게 즐기는 이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독립, 예술영화들 입장에서, 즉 영화의 다양성 추구 측면에서 이는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닐까? 


극장이란 게 영화를 보는 방법의 하나로 존재해야만 하지, 영화를 보는 방법의 전부로 극장이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그런 극장조차 대기업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독점은 심해지고 관객은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닌 봐야 하는 영화를 보게 된다. 언젠가는 영화계가 쇠퇴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극장의 추억


영화 <너와 극장에서> 중 '우리들의 낙원'의 한 장면. ⓒ서울독립영화제



반장 은정은 직장에게서 민철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회사를 나오지 않은 민철이 출납리스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은정은 수소문 끝에 민철의 학교 친구였던 정우네 부부의 도움을 받는다. 민철이 소싯쩍부터 유명한 영화광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가 있을 만한 곳이 몇몇 짐작된다는 것. 그들은 영화 잡지 기자까지 만나 '클래식 특별전' 마지막날 서울극장으로 향하는데... 


<우리들의 낙원>은 민철을 찾아, 민철의 낙원 '극장'으로, 민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우리들의 낙원>이 상영되는 서울극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여정을 그린다. 은정에겐 힘들고 의미없고 지난한 여정일지 모르지만, BJ로 활동하는 정우네 부부는 보이는 모든 것들이 콘텐츠이고 그곳 위에 서 있는 서로가 모델이며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우리는 <극장 쪽으로>에서 선미가 느끼는 '새로운 만남'에의 설렘을 함께 느끼는 것과는 다른, 온전히 '극장 영화'를 본다는 설렘의 발로를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이 향하는 곳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의 대기업 소유 멀티플렉스가 아닌 전통의 서울극장이다. 그곳은 '추억'이라는 또 다른 설렘의 원동체가 생생히 살아 숨쉬는 공간이 아니겠는가.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도 이곳에선 영화를 보게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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