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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성대

임진왜란 직전: 조선은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전에 패하고 말았다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가 있은 후, 조선과 왜국이 내통할지도 모른다는 명나라 조정의 의심도 풀어졌다. 이후 조선 조정은 왜국의 동태를 걱정하여 국방에 밝은 사람을 뽑아 하삼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방비하게 한다. 병기를 준비하고 성지를 수축했으며, 병영을 새로 쌓거나 더 늘려 수축하게 하였다. 이처럼 흔히 알려져 있는 바와는 달리,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전 혹시 모를 전란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데에서 터져 나온다. 그건 바로 오랜 전에 4군 6진 개척으로 북방을 안정시키고 쓰시마 정벌로 왜구 침략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져, 태평성대의 시대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유성룡의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임진왜란 직전의 상황으로 들어가 보자... 더보기
<13인의 자객> 태평성대의 사무라이가 존재 증명하는 방법은? [오래된 리뷰] 일본 영화 1950년대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인 '구로사와 아키라'. 그의 중기 1954년작 . 이 영화는 산적들의 행패에 맞서는 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를 그렸다. 2007년 개봉해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수많은 패러디까지 양산했던 영화 .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에 저항하는 스파르타의 300명 소수 정예의 싸움을 스타일리시하게 그려냈다. 다수에 대항하는 소수의 싸움은 숭고함과 비장미를 선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별것 아닌 장면에서도 숭고함에 감동을 받으며, 극도의 비장미를 위해 실제보다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자기희생으로 최후를 맞이한다거나 잔인해진다거나 하는 것이다. 위의 두 영화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