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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잔혹'에 해당되는 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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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언 고슬링이 내보이는, 잔혹한 본능의 폭발과 액션 <드라이브> 2019.10.09
  •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펼쳐지는 독재와 불복종의 잔혹한 이야기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2019.05.10
  • 정교하지 못한 기교로 '아름다운 잔혹함'을 표현한다면? <네온 데몬> 2016.10.26
  • 잔혹의 시대를 살아간 청춘을 위해 <말죽거리 잔혹사>(2) 2016.10.14

라이언 고슬링이 내보이는, 잔혹한 본능의 폭발과 액션 <드라이브>

오래된 리뷰 2019. 10.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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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드라이브>


영화 <드라이브> 포스터. ⓒ판시네마



오프닝으로 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영화들이 있다.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봐도 비교적 예전 것들엔 <007> 시리즈, <저수지의 개들>, <스크림>, <업> 등이 있고 비교적 최신 것들엔 <라라랜드>, <베이비 드라이버> 등이 있다. 모아 놓으니 하나같이 전체적 작품성도 빼어난 축에 속하는 작품들이라는 게 신기하다. 더불어 개성이 뚜렷해 꼿꼿한 듯하면서도 해당 장르를 선도하며 회자가 되는 작품들인 것도 눈에 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한 편 더 있으니, 덴마크 출신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분한 드라이버가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주며 LA의 색채감 있는 한밤중을 강렬하고 한편으론 차갑게 질주하는 장장 12분간의 오프닝이 인상적이다 못해 환상적이다. 당장이라도 도시의 밤거리를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멋진 시퀀스이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20년도 더 된 데뷔작 <푸셔>를 통해서도 감각적인 오프닝을 선보였는데,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색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자체로 완성된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영화 세계에 전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그만의 절대적 분위기와 색감 스타일은 최신작(2016년작) <네온 데몬>까지 이어진다. 2010년대 들어서 그의 영화들은 모두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드라이브>로 감독상을 받았다. 명백히 할리우드 액션 영화임에도 칸 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드라이버의 잔혹한 본능이 향하는 곳


미국 LA, 밤에는 범죄자들의 도주를 도와주며 낮에는 카센터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한편 스턴트맨으로도 활약하는 이름 없는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 분). 그에게 선과 악은 무의미하고 오직 차를 운전하는 '드라이버'로서의 삶만이 의미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띈 여인 아이린, 그녀에겐 아이도 있지만 드라이버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온다. 


아이린도 그에게 끌린 듯,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감옥에 가 있던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가 돌아오자 행복한 시간은 끝나고 만다. 쉽게 아이린 곁을 떠나지 못하는 드라이버, 우연히 스탠다드의 일에 휘말린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의 악연으로 협박 받고 있었던 것,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스탠다드뿐만 아니라 아이린과 아이한테도 가닿을 것이었다. 드라이버는 밤에 하던 일을 스탠다드와 함께 하기로 한다. 


별 것 아닐 줄 알았던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스탠다드가 죽고 만다. 드라이버는 위협을 받고 아이린과 아이도 위협을 받을 걸 깨닫자 잔혹한 본능을 폭발시킨다. 그 배후에 자신을 경주 드라이버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버니와 니노 일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거기엔 드라이버의 실력을 알아준 카센터 주인 섀넌도 껴 있었으니 그도 위험할 것이었다. 버니와 니노 일당은 드라이버와 그 주위 사람들을 노리고, 드라이버의 잔혹한 본능은 그들로 향한다. 그 끝은 어떤 식으로든 무자비할 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의 감정 한점 폭발과 충격 액션


<드라이브>는 할리우드 액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이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한 명백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이지만, 여타 동 장르의 영화들과 완연히 결을 달리한다. 기본적 스토리 뼈대는 별다를 게 없다. 폭력 범죄에 깊숙이 발을 담궜을 게 분명한 한 남자가 새로운 의미가 된 사랑하는 여자를 향해 앞뒤 볼 것 없이 직진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도 앞뒤가 없지만 그걸 표현하는 영화도 앞뒤가 없다. 범죄영화인 만큼 주를 이룰 수밖에 없을 액션은 실로 '쌈박하다'. 주인공이 이름도 없이 살아가며 오직 드라이브만 생각하다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여인만 생각하듯,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 따윈 거들떠 보지도 않고 핵심만 노린다. 주인공-영화-액션이 한 몸으로 움직인다. 감정이 썩이지 않은 채 계속되는 투박한 타격감이 두렵게 다가온다. 그 감정 없는 폭력의 강도와 수위는 충분히 충격적일 만하다.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복잡하면서도 다층적인 감정이 담긴 배우가 내보이는 '감정 없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의 액션일 테다. 그에겐 또래 할리우드 스타들에겐 없는 감정의 방이 있는 것 같다. 당연히 그가 맡은 배역은 그중 한 가지 내지 몇 가지를 내보인다. 하지만 <드라이버>의 드라이버는 그 어떤 감정도 내보이지 않기에 외려 그 안에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와중에 한 여인에게로 생긴 감정의 폭발이 본능의 폭발로 이어져 누구도 말릴 수 없고 누구도 형용할 수 없는 색채를 띄게 된다. 영화 외적의 '감정의 방'을 영화 내적의 '감정 없음'으로 응축시키곤 다시 '감정의 한점 폭발'로 내보이는 것이다. 


스타일리시, 그리고 '개구리와 전갈'


영화의 스타일리시함을 설명하는 데 색감과 함께 OST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둘 다 오프닝에서 완벽에 가깝게 내보였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종횡무진한다. 영화의 격을 높이고 결을 달리하게 하고 다른 세계 또는 차원으로 끌고가게 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여, 영화를 보다 보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전체적으로 미래지향적 세련됨이 아닌 고전복고풍 신선함이 스타일리시의 핵심이라는 게 신기한 한편 의아하다면 의아할 지점이다. 햇빛을 한껏 받은 한낮의 포근함과 네온불빛이 반사되는 한밤의 몽환적임이 대비를 이루는 스타일은 고전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는 영화에서 주인공 드라이버의 삶과 성향을 반추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편, 영화 중후반 드라이버의 폭발이 끝을 향해 갈 때 대사가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로, 개구리가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주는데 건너는 중에 전갈이 개구리에게 독침을 쏴서 함께 가라앉는다. 전갈은 '그것이 내 본성'이라고 이유를 댄다. 드라이버가 즐겨 입는 재킷 뒤에 전갈이 그려진 것도 그렇고 본성이 폭발해 무차별 폭력의 화신이 된 것도 그렇고 그가 전갈인 듯한대, 그는 한편 범죄자들을 태우고 도망치는 일도 하는 만큼 개구리라고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드라이버가 전갈이든 개구리이든,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에 따르면 그와 함께 있는 이가 파멸을 면치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온 아이린과 그녀의 아이 곁에 계속 있어야 하는가 떠나야 하는가. 이 아이러니까지 영화가 추구하는 주요 지점은 아닐 테지만, 보는 이로써는 그 이면과 이후까지 생각하게 된다. <드라이브>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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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개구리와 전갈, 드라이브, 라이언 고슬링, 본능, 액션, 잔혹,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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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펼쳐지는 독재와 불복종의 잔혹한 이야기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5.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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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포스터. ⓒ디스테이션


기예르모 델 토로의 최고작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상 '판의 미로')가 13년 만에 재개봉했다. 2006년 국내 개봉 당시, '기이한 판타지'라는 단어를 앞세워 어른들 아닌 아이들을 공략하는 오판 마케팅으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었다. 영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판의 미로>가 21세기 최고의 판타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는 걸 알겠지만 그러하기에 황당하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잘 모르고 봤던 이들은, 이 영화가 주는 여러 가지 의미의 잔혹성에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돌리고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재개봉하면서 '잔혹'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13년 전 그때 그 배급사는 잔혹함을 내세우면 관객들이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 판단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은, <판의 미로>가 갖는 급이 다른 영향력과 작품성과 연출력과 풍부함을 알기에 한편으론 익숙하게 한편으론 새롭게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재개봉작들이 과거 큰 흥행과 파급력을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시금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는 것에서 진정한 의미의 재개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사이 21세기 최고의 감독 중 하나라 불러도 손색없는 커리어를 쌓았다. 재작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거머쥐었으며 베니스에서도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역시 오스카를 평정한 알폰소 쿠아론과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와 더불어 멕시코 출신 영화감독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그(3명이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2017년을 제외하고 오스카 감독상을 독식했다)의 자타공인 최고작이니만큼 기대해도 좋다. 


오필리아의 세 가지 과제와 스페인 내전의 연장 전투


오필리아는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하고자 하고, 스페인 내전의 후과는 계속된다. 영화 <판의 미로>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먼 옛날 지하왕국, 행복과 평화로 가득 찬 그곳에 인간 세계를 동경하는 공주가 있었다. 햇빛과 하늘과 바람을 꿈꾸던 공주는 지상의 인간 세계로 도망친다. 하지만 너무나 눈부신 햇살에 공주는 눈이 멀고 기억을 잃은 채로 죽고 만다. 1944년 스페인,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지만 반란군은 산속에서 여전히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반란군 소탕을 위해 산밑으로 군대를 파견한다. 그곳은 비달 대위가 이끌고 있고, 어린 소녀 오필리아는 임신한 엄마와 함께 새아버지 비달 대위가 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도중에 요정을 만나는 오필리아, 산밑 주둔지 침소에 찾아든 요정을 따라 산속 신비의 세계로 진입한다. 현실의 반란군이 있기도 한 그곳에서 숲의 요정 판을 만나 그에게서, 자신이 원래 지하 세계 공주 모안나이며 지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선 보름달이 뜨기 전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녀는 판의 말을 굳건히 믿고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이어간다. 


한편, 산밑에서 비달 대위가 이끄는 정부군은 산속의 반란군과 계속해 대치하면서 잔인한 짓을 일삼는다. 무고한 이를 죽이고, 반란군 포로를 고문하며,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난 후 확인사살도 잇지 않는다. 비달 대위는 사실 오필리아는 물론 아내가 된 카르멘도 안중에 없다. 그에겐 오직 카르멘의 뱃속에 있는 아들(아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만 있을 뿐이다. 


영화는 오필리아와 판을 필두로 하는 환상 세계와 비달 대위를 필두로 하는 현실 세계를 자연스레 오간다. 두 세계는 엄연히 다른 곳에 있는 듯하지만, 비단 산속과 산밑이라는 절대적 공간만 다를 뿐인 듯도 하다. 더불어 오필리아의 하염없이 한가해 보이는 듯한 세 가지 과제 수행기와 두 집단의 피비린내 나는 대치 사이가 굉장히 큰 차이와 간격이 있어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 여러 맥락들의 일치 덕분일 것이다.


환상과 현실


환상과 현실을 환상적으로 오간다. 영화 <판의 미로>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맥락들엔 아무래도 오필리아와 비달 대위가 있을 것이다. 이 두 인물은 단순히 인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닌 투철한 상징성을 획득해 환상과 현실에서 활약한다. 오필리아는 현실의 비달 대위라는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환상을 택했고, 진정한 환상의 세계로 즉 모안나 공주로서 지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무모한 환상과 어두운 욕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오필리아가 보고 듣고 행하는 환상의 세계란 것이 오직 그녀에게만 보이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무모한 환상인지, 그 환상에의 여정에 우리도 동참해 지친 심신을 희한하게 위로받고 있는 게 아닌지. 그런가 하면, 비달 대위는 단순히 정부군 소속의 투철한 군인으로서만 비춰지지 않는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군이자 지배자로, 오필리아나 카르멘이 위협을 느낄 만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신념을 넘어선 뒤틀리고 어두운 욕망 덩어리가 아닌가. 


영화는 미장센보다 몽타주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으로 정통하게 접근했다고 볼 수 있겠다. 환상의 세계를 신화적 요소들로 채워넣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이 시대 새로운 고전이자 신화를 쓰고자 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스페인 내전이라는 20세기 최악의 사건은 충분히 신화의 요건을 갖췄거니와, 그 후과는 신화의 소재로 쓰일 만한 자질(?)을 갖췄다.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불가능하게 종과 횡으로 복잡다단하게 비극적인 사건인 것이다. 


독재자와 불복종의 신념


독재에 맞선 불복종의 신념. 영화 <판의 미로>의 한 장면. ⓒ디스테이션



스페인 내전으로 프랑코는 정권을 장악해 1970년대까지 독재를 계속한다. 영화 속 비달 대위는 프랑코 정권 독재의 현현(顯現)이다. 프랑코가 정권을 장악하게 도와준 이들이 다름 아닌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비롯 파시스트들이었기에, 넓은 의미로 독재 그 자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프랑코가 정권을 탈취한 이들은 좌익연합인 인민전선 내각으로, 그 때문에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다방면의 이슈가 생겨나고 말았기에 영화에서는 정부군과 대치하는 반란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로 그친다. 


영화에서 반란군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대신하는 이가 오필리아이다. 그리고 오필리아는 다시 그 역할을 한 번 더 대신하여 현실 아닌 환상의 세계에서 수행한다. 이 영화가 대단한 점, 연출과 각본과 제작을 맡은 기예르모 델 토로가 대단한 점은 이 지점이다. 오필리아가 반란군의 역할을 우회하고 우회해서 수행하는 게 세 가지 과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과제를 실패하면서 그 역할이 이루어진다. 물론 오필리아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위대하면서도 위험한 불복종의 신념을 지켜나간 것이었다. 


한편, 불복종의 신념은 현실에서 투철한 스파이들에 의해서도 지켜진다. 독재 지배에 맞서는 방법은 오직 불복종일 뿐이다. 독재에 독재로 맞서서는 안 되는 것이고, 독재에 테러와 전쟁으로 맞서는 건 한계가 있을 뿐더러 또 다른 독재를 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고, 독재에 평화로 맞서는 건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볼복종에 이은 희생, 그 굴하지 않는 끝없는 신념에의 무모함이 궁극적으로 독재를 물리칠 방법이다.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독재라는 초유의 사태에 맞서기 위해서 수행해야 할 일이겠다. 


영화가 수많은 비극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와중에도 빛을 잃지 않는 희망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독재자 비달 대위는 죽고 오필리아는 세 가지 과제를 모두 수행하여 지하 세계로 돌아가는 스토리일 것이다. 문제는, 신화란 그렇게 단면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비달 대위는 죽겠지만, 오필리아는 과연? 그녀가 다른 이유 아닌 비달 대위에게 죽는다고 상상해보자. 적어도 맥락을 아는 관객들에겐 불복종의 신념을 지키다가 독재자의 손에 죽은 어린 순교자가 아니겠는가. 기예르모가 그것까지 노렸다면, 그는 천재가 확실하다. 어떤 결말일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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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 독재, 불복종, 스페인 내전, 잔혹,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현실,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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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지 못한 기교로 '아름다운 잔혹함'을 표현한다면? <네온 데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10.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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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네온 데몬>


콘텐츠에 있어서 '기교'가 전부여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영화같은 긴 호흡의 콘텐츠는 더욱 그렇다. <네온 데몬>은 기교에 대부분의 힘을 실은 듯한데, 그조차 정교하지 못했다.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예술성이 가미된 콘텐츠를 평할 때 전문가들이 '기교가 전부'라는 말을 하며 혹평을 주곤 한다. 엔간히 출중한 능력을 믿고 기본을 제대로 연마하지 않은 채 기교를 부리는 데에 따른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엔 괜찮다고 할지 모른다. 현란하고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밑천이 드러나고 말 것이다. 


영화는 은근히 긴 호흡으로 진행되기에 기교가 어쩌고 저쩌고 하기가 쉽지 않다. 노래처럼 한 번에 판단하기가 힘들다. 그런 만큼 영화에 대고 기교를 말하는 건, 대상이 되는 그 영화가 얼마나 기교에 힘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시종 일관 기교를 보여주려 애썼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코타 패닝'의 동생 '엘르 패닝' 주연의 <네온 데몬>이 그런 경우다. 강렬하게 시작한 영화는 시종 일관 현란한 기교로 눈을 범하려 한다. 아무래도 모델에 대한 이야기니 만큼 으레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도가 좀 심하다. 그 기교가 졸음을 선사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한숨을 토해내게 하니 말이다. 종종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모든 기교가 그러하고, 가끔 탄성을 자아낼 뿐이다. 


정교하지 못한 '아름다운 잔혹함'


영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아름다운 잔혹함, 오직 하나뿐인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블랙 스완>이 생각나게 하는데, 과연 잘 표현해냈을까.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영화는 얼핏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2010년작 <블랙 스완>을 생각나게 한다. 단순한 욕망을 넘어선 광적 집착이 가져오는 아름다운 파멸을 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건 비슷한 극초반의 분위기에서 온 '눈속임'에 불과했다. <블랙 스완>은 그 특유의 분위기를 심리 스릴러 라는 장르에 훌륭히 장착해 끝까지 끌고가는 반면, <네온 데몬>은 그 분위기가 오히려 영화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결정적인 차이는 아마 주연 배우들의 연기 내공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치명적이긴 하다. 얼마나 아름다울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감독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2011년작 <드라이브>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른바 '아름다운 잔혹함'을 극대화시켜 보여주었는데, 잔혹함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정교한 기교를 사용했으면 아름답다고까지 했을까 싶다. <네온 데몬>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나지만, 그 기교가 정교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친절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느낌이랄까. 


이쯤에서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모델지망생 제시(엘르 패닝 분)는 혈혈단신으로 LA에 온다. 급하게 만난 사진가 지망생(듯한)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해 자신의 미모만 믿고 모델에이전시로 간다. 역시나, 그녀의 꾸미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에 누구든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디네이터, 모델, 실장, 수석 디자이너 할 것 없이. 


제시도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걸 잘 안다. 그 아름다움이 어느 누구라도 탄복해마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녀는 단번에 탑모델로 올라선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녀를 향한 시기와 질투, 무엇보다 집착이 심해진다. 혈혈단신 그녀 주위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녀는 믿고 의지할 만하다고 판단한 코디네이터 집으로 피신을 간다. 그렇지만 그 코디네이터는 그녀를 집착하는 다른 탑모델들과 친하다. 제시는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엉망, 스타일이라도 좋다면 괜찮았을 텐데...


이야기가 참으로 듬성듬성이다. 그 방면으로는 봐주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감독이 승부를 본 스타일만 남는데... 그마저 괜찮지가 못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 어쩌지.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순수함'은 선도 악도 될 수 있다. 모델이 되기 전 제시는 순수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모델이 되고선 그 순수한 아름다움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진 못했다. 겸손함이나 자신 없는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맹신이 불러온 순수한 악마만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도 화장을 지우고 모델의 옷을 벗으면 소녀로 돌아온다. 모델이라는 타이틀이 순수함의 방향타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런 심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패션 업계의 뒷 얘기와 심리 스릴러는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블랙 스완>이나 <버드맨>처럼, 겉으로는 화려하기 그지 없지만 그 뒤에서는 엄청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스타일에 맞게 잘 전달해주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물론 이 감독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보여주고자 한다. 문제는 그 스타일만을 과도하게 밀고 나가는 데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스타일로 조화롭게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따로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야기와 스타일이 아니라 이야기는 이야기고 스타일은 스타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스타일이 엄청나다면 다른 게 엉망이더라도 크게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의 향연을 잠자코 지켜봐야 하는데,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더욱이 그 절대적 양이 왜 그리 많은지, 지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거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난감하지 그지 없지 않은가.


기대만큼 실망이 크다


영화를 보기 전, 많은 부분에서 기대를 하게 했다. 제목, 포스터, 감독, 주연, 주제나 소재 등. 낚이지(?) 않을 수 없게 해놓고는, 결과적으로 낚인 듯.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영화는 2016 칸영화제에 상영되어 관객으로부터는 기립박수를, 평단으로부터는 혹평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평단도 관객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평하는 나는, 혹평세례를 퍼붓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나? 영화가 던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받아내지 못했나? 너무 아름다운 가운데 너무 역겨운 상극의 이미지가 던지는,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잡아내지 못했나?


고백하자면, 제목을 보고 영화 포스터를 보고 감독을 보고 주연 배우를 보고 나서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간 거다. 그만큼 치명적인 영화를 볼 기대를 한 것이고, 그 기대가 보란듯이 물거품이 된 것뿐이다. 그뿐이다. 이만큼의 기대를 하지 않고 봤으면, 그만큼의 실망도 하지 않았을 거다.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하는 제시가 내 눈엔 촌스럽기만 하다고 느껴졌을 때, 그 실망이 배가된 것 같다. 영화 안에서 그들이 보는 제시는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의 전형이다. 그들 자신은 절대 갖지 못할 그것. 그런데 영화 밖에서 보는 일반인의 입장은 다르지 않은가. 그녀도 꾸미지 않을 때보다 꾸몄을 때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이쁜 것 같은데 말이다. 그들은 제시를 보고 꾸미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꾸몄을 때를 상상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물론 영화는 그런 심리조차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주구장창 스타일만 고수하며 알 수 없는 '짓거리'만 철퍽철퍽 뿌려댈 뿐이다. 난 심리 스릴러를 보고 싶었지, 비주얼 스릴러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스스로 생각하고 유추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신 이와 같은 영화를 보고 싶진 않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영화라면 그냥 지나가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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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의 시대를 살아간 청춘을 위해 <말죽거리 잔혹사>

오래된 리뷰 2016. 10.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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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말죽거리 잔혹사>


검증이 안 된 신세대 스타를 앞세운 유하 감독의 차기작은 어땠을까?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도 대부분 신인을 벗어나지 못했다. 감독의 의도일까? ⓒ싸이더스



2004년 당시 데뷔 3년이 채 안 된 두 신세대 스타를 앞세운 영화가 개봉한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권상우, 여고 시절 KBS 도전 골든벨 출연 후 단번에 CF를 찍고 드라마 주연을 꿰차며 스타 반열에 오른 한가인이 그들이었다. 거기에 90년대 후반 패션모델로 데뷔한 후 연기자의 길을 꾸준히 걸으며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얼굴을 보인 이정진이 주연의 중심을 잡았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캐스팅이라 하겠다. 


조연의 면면도 비슷했다. 나름 잔뼈가 굵은 김인권을 제외하고는 이종혁, 박효준 등 경력은 물론 인지도에서도 거의 신인과 다름 없었다. 지금은 충무로 대세 배우 중 한 명인 조진웅은 이 영화에서 대사 한마디를 날리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감독의 의도였을까, 제작비 등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화려하기 그지 없는 현재의 영화 캐스팅 수준과 비교를 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경력을 떠나 인기나 연기 면에서 이 영화처럼 확실한 인지도 없는 이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독립영화라면 모를까 엄연한 상업영화에서 말이다. 


곤혹스러울 정도의 연기가 아쉽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두 주연배우의 연기는,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영화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당시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싸이더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랜만에 충무로에 돌아와 괜찮은 흥행과 비평에 성공한 유하 감독은 차기작으로 학교, 추억, 폭력의 앙상블 영화를 기획한다. 거리 3부작의 시작이기도 한 <말죽거리 잔혹사>다. 유하 감독은 학창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는데, '남자'라면 누구나 꿈꿔봤음직한 그때 그 시절을 깔끔하게 보여준다. 


전남 보성에서 강남 말죽거리로 이사온 모범생 현수(권상우 분), 태권도장을 하는 아버지의 폭압적인 가르침 덕분에 공부도 곧잘하고 달리기나 농구도 곧잘하는 평범하지만 여러 모로 평균 이상의 학생이다. 그 덕분인지 학년 전체를 주름잡는 싸움꾼 우식(이정진 분)의 눈에 띄어 친구가 된다. 


그는 오지랍이 넓은 건지 태권도 정신에서 비롯된 정의감이 투철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나서지 말았으면 하는 데에 나서서 일을 자초하곤 한다. 그 와중에 천눈에 반한 은주(한가인 분)를 구해주려다가 일 아닌 일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녀를 향한 사랑은 현수뿐만 아니라 우식이에게도 있었다. 결국 사귀게 된 건 우식과 은주, 소심하기만 한 현수는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고, 신인들을 내세웠다지만, 아무리 봐도 형편 없는 연기는 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그 중심에는 현수와 은주, 즉 권상우와 한가인이 있다. 현수는 후반에서의 싸움 시작과 끝에서만 톤이 올라갈 뿐 시종일관 힘 없고 우울한 톤을 한 음으로 유지하고, 은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시 힘 없고 우울한 톤을 한 음으로 유지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의도된 연기인가?


7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만큼 목소리에 있어서 당시의 느낌을 살리려 했을 지도 모른다. 당시 영화들을 보면 굉장히 연극톤이지 않은가. 그런 걸 의도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다른 이들의 연기는 너무 다르다. 지극히 현대적이다. 이 두 주연배우의 연기, 특히 연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발성이 터무니 없이 형편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에는 이 둘만 등장하는 장면이 꽤 있는데,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눈과 귀를 둘 곳이 없다. 그들도 곤혹스러워하는 게 느껴질 정도다. 감독은 왜 그런 연기를 그 정도로 넘어갔을까. 의문이다. 


이런 식의 교육은 폭력 이상의 악질이다


교육이 아닌 교화를 하는 학교. 모든 학생이 똑같을 순 없는데, 똑같으라고 강요하는 학교. 지금도 여전할까? 그때는 참으로 잔혹했다. ⓒ싸이더스



영화는 현수의 성장 스토리로 읽힐 수 있다. 평범한 학생이 일진을 모조리 깨부수고 퇴학까지 당하는 처지가 되니까 말이다. 이게 도대체 왜 성장이냐고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학교폭력을 미화하는 게 아니냐고 되받아칠 만하다. 하지만 당시 시대를 본다면, 당시 국가상을 들여다본다면, 그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통제했는지 듣는다면, 현수의 그와 같은 행동을 성장으로 해석할 수 있음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때는 1978년, 박정희의 친위 쿠데타 이후의 유신 시대 한복판이다. 학생들은 등교하면서 선도부에게 '충성'을 외치고, 학교에는 학생 교화를 이유로 군인이 상주했다. 학생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며, 국가가, 학교가 원하는 인간이 되길 바랐다. 그렇지 않을 때엔 가차 없는 폭력이 날아왔다. 


그 폭력에는 육체적 폭력, 정신적 폭력, 성적 폭력, 언어 폭력, 인권 유린 폭력 등 모든 종류가 망라되어 있었다. 차라리 단순무식한 육체적 폭력이 가장 낮은 수위의 폭력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그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해보고 싶음직한 행동을, 학교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폭력으로 교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엇나가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현수의 성장 스토리는 더 이상 성장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엇나감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런 폭력을 당하는데 당연히 움츠려들며 더욱더 국가가, 학교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하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인간이 되어 갔다. 어떤 인간으로 되어 갔든 그들의 잘못도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도 아니었다는 게 중요하다. 


반면 현수는 최소한 자발적인 선택을 했다. 반항심과 함께 체력을 키워 가며 반발했다. 그렇다고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싸움에 휘말렸고 약간의 다툼을 했다. 그리고 성적이 떨어졌다. 학교는 그를 잡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악질'이라고 몰아세울 뿐이었다. 그가 퇴학을 당하는 대형 사건을 저지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학교의 책임이 아닌가. 최소한 '너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제스추어는 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이거 악질이네. 안 되겠어. 혼 좀 나야겠다' 하고 끝나면 그게 무슨 교육인가. 


잔혹의 시대를 살아간 청춘을 위로하다


한 시대가 저무는 1978~9년. 그들이 헤쳐온 잔혹의 시대도 저무는가. 이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청춘을 위로해준다. 하지만 그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을 듯하다. ⓒ싸이더스



영화는 이소룡으로 시작해 이소룡 대 성룡으로 끝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영화의 시작이 이소룡 영화를 좋아해 빠져들듯 보는 현수의 어린 시절이었고, 영화의 끝이 영화관에 이소룡 영화와 성룡 영화가 동시에 걸렸을 때 현수의 이소룡 옹호와 흉내, 그리고 친구 햄버거의 성룡 옹호와 흉내가 대결하는 장면이었다. 


성룡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게 영화 <취권>이었는데 1978년에 나와 우리나라에는 1979년에 들어 왔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배경이 되는 1978~9년과 정확히 일치하는데, 그때까지도 아직 이소룡의 인기가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렇지만 곧 성룡의 전성 시대가 열리는 바,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떠오른다는 말이겠다. 


박정희 유신시대도 1979년에 비극적으로 종말을 고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또한 그건 곧 현수와 친구들의 '말죽거리 잔혹사'도 비로소 끝났다는 게 아닐까. 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가 열리는 건 시원섭섭하고 슬프고 흥분되고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건 그렇고 어떤 건 그렇지 않을 테다. 


이소룡의 시대가 저물고 성룡의 시대가 오는 건 그럴 테지만, 그들의 잔혹의 시대가 가는 건 조금은 다른 차원이다.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사랑과 우정과 청춘의 학창 시절을 자기 손으로 지워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찢어진 마음을 보상해줄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을 이해조차 하지 않을 이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영화는 그런 시대를 살아간 모든 청춘들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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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 성룡, 연기, 유신시대, 유하, 이소룡, 잔혹, 캐스팅, 폭력, 학교
  • 주
    2017.02.12 13:37

    오랜만에 옛정취 나는
    말죽거리 잔혹사 봤어요.
    그런데 친구 영화봐도 그렇고
    진짜로 남자 학교들 쨩싸움, 패싸움, 서열, 위계질서가 그렇게 심했나요?
    전 여자라, 이게 영화라 그런지
    실지로 그랬는지 궁금합니다.

    • BlogIcon singenv
      2017.02.12 13:39 신고

      흠, 전 남학교를 나왔는데, 실제로 말씀하신 식의 것들이 존재했었습니다. 물론 시대와 학교와 학급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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