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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고 허술한 대규모 범죄 행각의 매력 <로건 럭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4.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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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로건 럭키>


영화 <로건 럭키> 포스터. ⓒ스톰픽쳐스코리아



스티븐 소더버그는 20대 때 내놓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선댄스와 칸을 휩쓸며 굴지의 천재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그는 연출과 각본뿐만 아니라 편집과 촬영과 기획, 그리고 제작에 이르는 영화판 일련의 작업을 거의 모두 섭렵했는데 진정 영화를 즐기는 느낌이랄까. 데뷔 30년이지만 아직 50대 한창의 나이다. 


2000년대 극초반 <에린 브로코비치> <트래픽> <오션스 일레븐>을 잇달아 내놓으며 최전성기이자 지금까지 보건대 마지막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오션스 일레븐>으로 범죄 전문가들이 한 탕을 계획하고 치밀한 전략 하에 다채로운 기법으로 흥미로운 강탈 범죄를 저지르는 '하이스트 무비'(케이퍼 무비)의 전형을 수립했다. 


2010년대 흥행과 비평에서 나쁘지 않은 작품들을 내놓으며 부활의 날개짓을 펴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려는 것인가? 와중에 하이스트 무비 <로건 럭키>가 눈에 띈다. 현대판 하이스트 무비의 전형을 세운 장본인인 만큼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지만, <오션스 일레븐>의 후속편들이 워낙 처참했기에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스티븐 소더버그의 하이스트 무비라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나 싶다. 


비(非) 범죄 전문가들의 대규모 범죄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고교 시절 미식 축구 스타였지만 부상으로 다리를 다쳐 지금은 공사장 인부 일하는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 분)은 어느 날 갑자기 다리 부상을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이혼도 한 마당에 살길도 막막하고 할일도 없는 그는 세계 최대 규모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털 '한탕' 계획을 세운다. 레이싱 경기장 보수 공사 인부로 일하던 중 그 수많은 돈이 어떻게 지하 금고로 모이는지 그 원리를 터득한 덕분이다. 


그는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이라크 파병을 나갔다가 왼쪽 팔꿈치 아래를 잃고 지금은 바텐더로 근근히 생활하는 남동생 클라이드 로건(아담 드라이버)과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여동생 멜리 로건(라일리 코프 분)의 '로건 남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일명 폭파 전문가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 분)와 두 남동생들의 '뱅 형제'. 


문제는, 그들 중 누구도 '범죄 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로건 남매는 범죄 전문가는커녕 제대로 된 범죄를 저질러 본 적도 없는 시골 촌뜨기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다. 어설프고 허술하기까지 한 그들이 어떻게 세계 최대 규모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터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자. 


매력적인 소소함, 어설프고 허술함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는 기대완 다르게 소소하다. 앞서 말한대로 어설프고 허술하다. 아둥바둥 사는 모습이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그 스스로가 정립한 전형적인 하이스트 무비의 범죄자 같지 않은 이들이 저지르는 깔끔하고 체계적이고 완벽하리만치 믿을만한 행각이 이 영화엔 전혀 나오지 않다시피 한다. 


그 점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기대완 다르다'는 말의 한 꼭지에 해당한다. 전문가 아닌 우리도 이들처럼 어마어마한 강탈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 하는 환상 아닌 환상을 품게 해주는 면도 있겠지만, 그들의 아둥바둥 지리멸렬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자체에 연민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범죄 행각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비록 꽤나 치밀한 전략을 세웠지만 너무도 쉽게 쉽게 실행에 옮기는 장면들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영화 한 편 또는 드라마 한 편 전체를 할애하는 탈옥을 몇 초만에 실현시키지 않나, 수많은 리허설로도 실패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금고까지의 초행길을 역시 몇 초만에 실현시키는 것이다. 


반면 영화는 캐릭터들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 그들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연유을 되짚어보는 게 아닌,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연유를 말이다. 이는 그들이 어설프고 허술하고 소소하기까지 한 이유임과 동시에, 한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티와 이어진다. 


트럼프 시대를 향한 이유 있는 항변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자본주의 세상에서 휴머니티란 무엇일까. 반자본주의까진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로건 남매가 금고를 터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누구도 납득할 만한 명분이라는 게 없다. 


몸이 성하지 않다는 이유로, 블루칼라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명분이랄까. 자본주의, 그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터는 걸로 세상에 소소한 하이킥을 날리는 것이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영화 외적으로도 메이저 배급사를 통하지 않는 배급으로 자본주의 세상에 소소한 하이킥을 날렸다. 


영화는, 그래서 스티븐 소더버그의 이유 있는 항변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항변이냐, 어디를 향한 항변이냐. 자본주의 세상, 더 파고들면 미국의 현 트럼프 시대다. 그는 통계로도 나와 있듯이 블루칼라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엎고 그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영화에서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형편 없는 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 웨스트 버지니아는 최악. 


상당히 노골적인 반 트럼프 어조를 영화 전반에 깔고 있음에도 잘 느끼지 못하는 건, 그 진지할 수 있는 어조를 상쇄시키는 발랄한 어조의 연출과 촬영과 편집 센스 그리고 그동안의 연기톤을 180도 바꾼 다니엘 크레이그를 비롯 배우들의 대체적인 톤 다운 덕분이었겠다. 그런 한편, 만연해 있고 당연시 되는 차별과 혐오의 풍토가 현 시대를 잠식하고 있어 잘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서늘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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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럭키, 범죄, 소소, 스티븐 소더버그, 자본주의, 트럼프 시대, 하이스트 무비, 허술, 휴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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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 가는 일본 영화의 마지막 버팀목 '고레에다 히로카즈'

생각하다 2017. 6.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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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열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망해 가는' 일본 영화의 버팀목,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긴 역사, 엄청난 제작 편수와 관객수, 질 높은 작품성까지 겸비한 '일본 영화', 하지만 급격한 쇠락의 길로 접어든 지 꽤 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질보다 흥행에 더 초점을 맞춘 결과라 하겠다. 그래도 일본인들의 일본 영화 사랑은 높다. 단, 여기서 말하는 일본 영화는 여전히 일본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만화 원작 위주다. 일례로, 그나마 일본이 자랑하는 현대 일본 영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특급작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러브라이브> 극장판에 밀려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렇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현대 일본 실사 영화의 마지막 보루 같은 느낌을 준다. 모든 일본 영화인들이 그만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바다 건너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지난 20년 넘게 그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 물론 부침이 없지 않았다. 스타일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은근히 욕을 먹기도 했을 테다. 여하튼 그는 일본 영화의 버팀목이다. 


충격적 데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충격적 데뷔작 <환상의 빛>. ⓒ씨네룩스



우린 영화 감독들의 충격적인 데뷔를 많이 접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창동의 <초록 물고기>,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 등. 1970~90년대인데,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이후엔 많이 접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이 있다. 1995년작으로, 자그마치 20년이 넘었다. 그는 명문 와세대학 문학부를 나온 문학수재인데, TV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다가 이 작품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한다. 그래서인지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였고 다큐멘터리적 작풍이 다분하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그보다 정적인 구도에 따른 미장셴에 집착했던 것 같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케무샤>가 보여주었던 구도가 일면 엿보인다. 거기에 상실과 기억의 소재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 유미코는 계속되는 상실을 겪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 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상실 전의 기억들이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의 국제영화제상 수집은 이미 데뷔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환상의 빛>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 제52회 촬영상을 수상한다. 이후 불과 수 개의 영화에서 족히 수백 개는 될 듯한 상들을 수집한다. 세계 3대 영화제 진출만 보아도, 제5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디스턴스>, 제5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아무도 모른다>, 제6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진출 <공기인형>,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경쟁부문 진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제6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바닷마을 다이어리>,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진출 <태풍이 지나가고>. 즉, 그의 필모그래피 절반 이상이다. 


'가족'에 천착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최근까지 계속 이어가고 있는 '가족' 천착의 진정한 시작 <걸어도 걸어도>. ⓒ영화사 진진



그의 영화가 조금 바뀌게 되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일면 이해가 가는 <하나>부터이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 이력 중 가장 범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사무라이의 복수극을 통해 '가족'을 말하고자 한다. 물론 소소하고 잔잔하게 행복을 이야기한 무난한 이 작품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닌 이가 만들었다면 충분한 호평을 받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는 이후 10여 년 동안 가족에 천착한다. <하나> 이후에 나와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대표하는 확실한 가족 영화로 자리매김한 <걸어도 걸어도>를 필두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까지 쭉 이어졌다. 그 사이에 <공기인형> 정도가 튀는데, 아마 가족이 아닌 소재를 새롭게 시작하려다가 실패한 케이스라 하겠다. 


그의 필모 상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이 이 부분이다. 계속되는 천착은 그만의 세계를 확고히 하며 그에 걸맞는 거장의 칭호를 그에게 안겨주는 등 좋은 결과을 낳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을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모두가 아는 시기가 왔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나온 <태풍이 지나가고>가 그 분기점이어야 하고,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든다. 


밝은 소소함에 날카롭고 서늘한 게 깃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타일을 규정하는 '밝은 소소함과 날카롭고 서늘함의 조화와 공존', 그걸 잘 볼 수 있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티캐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20년 넘게 천착하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이건 아마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을 그만의 것인데, 밝은듯 쓸쓸한듯 유쾌한듯 서늘한듯 한 분위기이다. 대체로 그의 영화 분위기는 밝고 유쾌한 것에 가깝다. 소소하고 잔잔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내재되어 있는 혹은 드러내지 않는 사건사고는 가히 인생을 흔들 만하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영화일수록 이 구도가 극에 달하는 것 같다.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의 필모 전반에 걸쳐 있다. 기억에 남는 건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공기인형>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 밝은 소소함엔 특별하고 날카롭고 서늘한 것이 있다. 그게 인생이라는 걸까? 그게 인간이 가진 면모들이라는 걸까? 이 기조는 그가 지난 10여 년간 천착하는 '가족'이라는 키워드와는 달리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도 무방할 것 같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보편성이 담보되지 않는 특별함이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이 나오면 주저 없이 보고 악착 같이 평할 준비가 되어 있다. 1~2년에 한 편씩 꾸준히 신작을 내고 있는 걸 보면, 내년 안에는 차기작이 나올 것 같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수상 후보에 오르고 무수한 호평이 쏟아질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도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그의 변화를. 비록 그동안 실패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덕분에 더 나은 길을 걸어올 수 있지 않았나 반추해본다. 자기 혁신적 모습의 일환이라면, 무엇이라도 괜찮다. 기대와 설렘과 불안의 삼중주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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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공기 인형, 바닷마을 다이어리, 변화, 상, 서늘, 소소, 일본영화, 하나, 환상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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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커플의 소소하고 귀여운 생일 데이트

생각하다/그대 그리고 나 2015. 7.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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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자친구 생일 데이트가 있었다. 생일 당일은 아니었지만, 주말이었기에 겸사겸사. 그녀의 생일을 챙겨준 건 2011년부터 5년째.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만족하는 생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름대로 준비했다. 사실 준비라고 해봤자 큰 게 아니었다. 


베이징 카오야(북경 오리)를 꼭 먹고 싶다고 해서 중점적으로 검색했다. 원래는 어느 음식점에서 먹고 싶다는 것까지 말했는데, 내가 다른 곳을 골랐다. 그녀가 말한 곳은 연희동의 '진북경', 내가 고른 곳은 경리단길의 '마오'. 경리단길 데이트가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였다. 결과적으로는 잘 모르겠다ㅠ


왜냐하면, 그날이 너무 더웠다. 지난 주 토요일 말이다. 정말 너무 더웠다. 나름 코스를 짜서 경리단길 한바퀴를 돌 생각이었다. '마오' 근처에 있는 유명한 케이크집에 들려 줄을 서면서까지 케이크를 득템하고, 점심 시간에 맞춰 '마오'에 간 다음, 케이크를 먹으면서 촛불이라도 불어볼 요량으로 알아둔 카페로 갔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괜찮은 카페로! 결국 생각해 놓은 경리단길 한바퀴를 돌았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큰 무리 없이 하루를 재밌게 보냈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냐면, 모두 지난 4년 간의 큰 무리가 '있었던' 여자친구의 생일 데이트 때문이다. 정말 바보 같았던 지난 날들을 생각해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한편으론 너무 너무 너무 미안하다. 


생일 케이크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었던 적이 있고, 하루 데이트 플랜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뭘 할지 몰라 헤맨 적도 있다. '이번에는 나한테 맞겨' 하며 최악의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심지어 생일 케이크를 같이 고른 적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날이었다. 


그 좋은 날이 부담스러운 날이 되는 건 정말 싫었다. 그러던 게 이번에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장소, 선물, 케잌 등 많은 고민을 했지만 좋아할 생각을 하니 얼마나 좋던지? 정말 찌는 듯이 더웠던 것만 빼면, 그래서 여자친구가 열사병 직전까지 갔던 것만 빼면, 최고의 생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난 뭘 하든지 남들보다 많이 정말 많이 느린 편이다. 행동이나 생각이 느린 게 아니라, 무엇을 이해하고 깨닫는 게 느리다는 것이다. 생일 챙겨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때는 몰랐던 걸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한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다. 여자친구가 그런 모습을 이해해주고 알아줘서 정말 다행이다. 그걸 알아주지 않는 다면 난 마냥 느리고 답답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이번 생일도 소소했다. 아무리 소소한 걸 좋아하는 우리라고 하지만, 생일 때 만큼은 근사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래도 아직은, 소소한 걸 즐길 수 있는 지금은, 소소한 걸 즐기고 싶다. 나중에는 소소하고 싶어도 소소하지 못할 때가 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그리고 아직은 귀엽고 싶다. 이 역시도 마찬가지. 다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나의 느린 행보도 그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미국산 가정용 미싱과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 4권을 선물했다. 미싱은 직접 구매하고 내가 나중에 돈을 주었는데, 아무래도 선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 따로 선물을 했다. 그런데, 만화책이라니... ㅋㅋ;; 그래도 여자친구가 평소에 너무 보고 싶어 했던 거라 서로 만족했다. 난 이런 게 지금만 할 수 있는 거라고 본다. 지금만의 우리만의 '소소'함과 '귀여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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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데이트, 생일, 소소, 여자친구,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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