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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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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를 이루는 또 다른 무엇들... 현실이 된 동심 <이웃집 토토로> 2019.06.12
  • 봉준호의, 봉준호에 의한, 봉준호를 위한 <옥자> 2017.07.07
  • 현대사회에 대한 치명적이고 통렬한 실험 우화 <더 랍스터> 2017.07.05
  • <세상물정의 사회학> 헤르메스가 세상과 조우하는 방법(12) 2014.01.28
  • <로드> 명백한 죽음의 길을 가며 기어코 살아가는 이유(12) 2013.10.21

세계를 이루는 또 다른 무엇들... 현실이 된 동심 <이웃집 토토로>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6. 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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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웃집 토토로>


영화 <이웃집 토토로> 포스터. ⓒ대원미디어



아내가 아직 여자친구였을 때, 그러니까 20대 중반쯤 아내가 몇 번인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스무 살 때까진 동물과 얘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훨씬 어렸을 때는 남들 눈엔 안 보이는 걸 볼 수도 있었다고 한다. 난 어렸을 때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느끼게 된다. 때론 귀여운 느낌으로, 때론 뼈저리게. 동심을 느낄 때면 행복에 졌지만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생각하면 슬프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비단 나나 아내뿐만은 아닐 테다. 만화의 천국 일본에서도 굴지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해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사실적 판타지를 선사한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래했나 보다. 50세에 가까운 나이, 1988년에 <이웃집 토토로> 같은 작품을 내놓은 걸 보니. 자그마치 30년이 넘은 이 작품, 작년 30주년을 맞이해 중국에서 리마스터링으로 최초 개봉을 했고 1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가져와 재개봉을 했다. 한국에서도 최초 개봉은 2001년으로, 비로소 일본과의 문화 교류가 시작되어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난 2013년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장편 애니메이션 2번째 은퇴 선언을 했다가 번복하고 내년쯤 복귀한다고 한다. 그 사이에 국내에 그의 명작들이 재개봉, 최초개봉했다. 2014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재개봉, 2015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재개봉, 2017년 <루팡 3세> 최초개봉, 2019년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재개봉 등 그야말로 '러시'가 이어졌다. 이밖에도 그의 명작들이 수두룩한 바, 개봉 러시는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토토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마스코트 토토로.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대원미디어



<이웃집 토토로>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숙한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1985년에 세워진 지브리 스튜디오로서는 불과 4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는데, 오래지 않아 토토로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마스코트가 되어 지금까지 로고로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이자 캐릭터로 군림하고 있다. 


1950년대 일본, 사츠키와 메이는 아빠와 함께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온다. 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가 퇴원하면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자 이사를 온 배경이 있지만, 아이들은 처음 보는 환상적인 환경이 그저 신기하고 재밌을 뿐이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는 무수히 많은 검댕이들을 발견하고, 숲에서는 그림책에 나오는 토토로들을 발견한다. 


이웃집 할머니는 검댕이의 존재를 안다. 아무도 없는 낡은 집을 먼지투성이로 만드는 존재들. 할머니도 어렸을 땐 보였다며, 아이들에게도 보인 거라 맞장구쳐준다. 아이들은 검댕이가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무섭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다음날 사츠키는 학교에 가고 메이는 혼자 놀다가 도토리를 흘리는 꼬마 토토로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서 큰 토토로를 만나는 메이, 처음 보는 낯설고 큰 괴생명체이지만 전혀 무섭지 않고 그러기는커녕 토토로의 품이 한없이 포근할 뿐이다. 다음 날, 혼자 있기 싫은 메이는 사츠키 학교에 찾아오고 함께 집으로 향한다. 비는 쏟아지고 메이는 꾸벅꾸벅 조는 와중, 큰 토토로가 그들 앞에 모습을 보이는데... 꿈같이 환상적인 경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삶의 발로


단순히 아이들 동심의 발로가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의 발로이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대원미디어



어른 아닌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고 아이들하고만 얘기를 하는, 오직 아이들만의 환상적인 경험을 다룬 이야기들은 많다. 비단 <이웃집 토토로>를 비롯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특출난 게 아닌 것이다. 그런 류의 많은 작품들에선 어른들로 대변되는 '적'이 존재한다. 아이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걸 무시하고 부러워하고 없애버리려 하던가 이용하려 하던가.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을 하려 하고. 


<이웃집 토토로>에선 적이 없다. 모든 살아 있는 것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일본의 토착 사상을 가져와, 그 자장 안에서 어른과 노인도 아이들의 허무맹랑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지지해주는 것이다. 아니, 자신들도 어릴 땐 보였고 아이들 눈엔 보이기 마련이라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한 면이라고 말이다. 


토토로는 단순히 아이들만의 동심이 발로된 결과물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큰 틀에서 더불어 사는 삶이 발로된 결과물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인간 세계나 자연 세계가 아니라 차원을 달리하는 영혼 세계까지 함께 하는 큰 세계다. <이웃집 토토로>의, 현실적이지만 판타지적이기도 한 세계는 앞으로 계속될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를 이루는 기본과 변칙


세계를 이루는 기본과 변칙을 보여준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 ⓒ대원미디어



<이웃집 토토로>의 세계가 아이들에게 완벽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그곳엔 아빠만 있을 뿐 엄마가 없다. 10살 사츠키와 4살 메이에게 물론 아빠도 꼭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필요한 존재가 엄마일 수 있다. 근데 엄마가 아파서 거의 볼 수가 없으니 아이들의 마음엔 불안이,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 불안이 항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불안으로 인한 상처, 그리고 오묘한 세계를 향한 호기심으로 인한 쾌감. 


이 상반된 두 감정은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감정일 테다. 한편, 호기심에는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아이들의 긍정적 경험이 담겨 있다. 그건 세계를 이루는 기본에 해당되는데, 누구나 무엇이든 이 기본을 거치게 되어 있기에 오히려 현실에 가깝다. 반면, 불안에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아이들의 부정적 경험이 담겨 있다. 그건 세계를 이루는 변칙에 해당되는데,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이 변칙이 들이닥칠지 몰라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고 하겠다. 영화는 세계를 이루는 기본과 변칙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담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믿지 않을 수 없다. 이 세계를 이루는 또 다른 무엇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것들은 무섭지 않고 나쁘지도 않으며 그저 우리처럼 살아갈 뿐이라는 걸. 몸과 마음이 풍성해지는 걸 느낀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 얼마나 든든한가 말이다.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건, 그 얼마나 꿈만 같은 일인가. 다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때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본 적이 없으니 돌아갈 때도 없겠다.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 나에게 오지 않은 것일까. 꿈에서라도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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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 아이, 이웃집 토토로, 일본,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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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봉준호에 의한, 봉준호를 위한 <옥자>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7.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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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봉준호 감독의 <옥자>


'거장' 봉준호 감독이 4년 만에 들고온 영화 <옥자>. 개봉한 지 열흘 가량 지났지만, 몇 달은 지난 느낌이다. ⓒ넷플릭스



봉준호 영화는 대체로 직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지닌다. 확실한 목표가 거기에 있고, 우리의 주인공은 그곳에 다다르고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그 자체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대, 영화를 통해 가장 재밌게 대리만족 또는 대리경험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에드벤쳐적 요소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 관객을 끌어모으고는, 봉준호는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이야기다. 


봉준호처럼 필모에서 흑역사가 없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2000년의 시작에서 <플란다스의 개>로 시대를 앞서간 실험적인 현실 풍자 코미디를 선보이고는, 에누리 없이 3~4년에 한 번씩 작품을 들고 왔다. 여전히 그는 현실을 그리고, 가감없는 코미디적 요소를 적재적소에 흩뿌리며, 누군가에게는 실험적일 수 있는 풍자를 선보인다. <옥자>라고 다르지 않을 텐데,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가 '봉준호 영화'라서 좋다. 


문제는 그의 영화에서 문제점을 찾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사건은 이해하기 쉽고, 등장인물은 따로 또 같이 개성과 조화를 두루 갖췄으며, 메시지는 도처에서 두루두루 양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영화를 영화적으로도 현실적(영화 외적)으로도 비평하기가 너무 힘드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럴 땐 '봉준호 영화'가 싫다. 


<옥자> 간략 스캔


'미자의 옥자 되찾아 오기 여정'이 주를 이루는 영화 <옥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넷플릭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설국 열차>를 어느덧 4년 전으로 뒤로 하고, 그보다 더 많은 말과 탈을 안고 우리 앞에 나타난 <옥자>를 들여다볼 때다. 상황 논리에 따라 봉준호 영화가 좋다느니 싫다느니 라고밖에 운을 뗄 수 없는 리뷰 초입을 뒤로 하고, 영화를 간략히 스캔해보자. 


글로벌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는 회사를 환경친화적인 기업으로 변화시키고자 거대 프로젝트인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세계 26개국에 슈퍼돼지를 분양하고 잘 키워진 슈퍼돼지를 10년 후에 데려오는 것이다. 강원도 두메 산골에 살고 있는 미자(안서현 분)의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인 '옥자'가 바로 그 슈퍼돼지인데,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이들이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간다. 


미자는 할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앞뒤 볼 것도 없이 옥자를 끌고 가는 이들을 쫓는다. 두메산골에서 내려와 미란도 한국 지부에 쳐들어가고,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는 트럭에 매달리는 등 위험천만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옥자를 이용해 그들만의 작전을 벌이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와의 협치, 그리고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협박과 회유로 미자는 뉴욕에서 옥자와의 재회를 꿈꾼다. 


하지만, 그 사이 옥자는 ALF의 대의명분과 미란도의 탐욕, 나아가 한때 동물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미란도의 하수인이 된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진렌할 분)의 광기로 당해서는 안 될 잔인하고 잔혹한 짓을 당한다. 과연, 미자는 옥자와 함께 강원도 두메산골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옥자는 '돼지고기'로 전락하지 않을 것인가?


전형적인 봉준호 영화 <옥자>


여러모로 봉준호가 생각나는 영화다. 봉준호 스타일 구축에서 봉준호 월드 창조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넷플릭스



<옥자> 역시 전형적인 봉준호 영화였다. 자연스레 봉준호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동시에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흐름과 사건과 캐릭터와 카메라워킹과 미장센과 메시지였다. 오랫동안 고심한 흔적과 고심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길 수 있는 능력과 능력을 만천하에 영화 내외적으로 이슈화하면서 떨침에 여한이 없었다. 


봉준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어들진 않는다. '영화'로서 우리가 기대하는 최소한의 기대치가 아닌 최대한의 기대치에 근접한 퀄리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봉준호 영화가 아닌 봉준호 스타일인 것 같다. 처절하게 와닿는 비판이나 작정하고 비꼬는 풍자가 아닌, 다분히 상업영화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지고 보여지는 것들이다. 그래서 봉준호 영화는 점점 이슈는 늘어나고 논의는 적어진다. 


또 봉준호 영화는 그 안에서 다른 요소들에 비해 직선적이고 단편적인 스토리 라인을 띄고 있기 때문에, 보여주고 전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질수록 독이 된다. 그건 다름 아닌 메시지에서 비롯되는데, 덕분에 사건 진행은 산만해지고 캐릭터는 소모되며 영화 내적 재미가 아닌 영화 외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요소는 줄어든다. 


신념과 교조주의 사이에서 흔들리며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ALF의 위상과 존재 의의,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운전기사로 잠시 잠깐 얼굴을 비춰 약간의 추임새로 자본주의의 대명사 대기업과 현대사회 젊은이의 우환을 드러낸 김군이 아닌 배우 최우식의 쓰임새, 연관되어 '초호화 캐스팅'과 '사건 진행과 메시지 전달'을 위한 수많은 주연급 배우들의 소모 등. 


그의 영화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입장에선 안타깝지만, 그의 입장에선 이해가 간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지, '예술'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영화'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지, '스타일'을 보여주려 하는 게 아니다. 이처럼 거시적으로나마 또는 거시적으로밖에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또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부분이다.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봉준호 영화는 <설국열차> 이전에 이미 모든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봉준호 월드'를 구축하지 못한 게 또 마음에 걸린다. 


봉준호 영화를 본다


누가 뭐라해도, 봉준호 영화가 나오면 보지 않을 수 없다. <옥자> 또한 최소한 몇 번은 볼 것 같다. ⓒ넷플릭스



그럼에도 우린 봉준호 영화를 본다. 그는 자타공인 지금, 아니 21세기 들어 한국에서 가장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다. 그를 만나지 않고는 한국 영화를 제대로 만났다고 하기 힘들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 '영화'를 하게 된 건 수많은 이들에게 축복인 것이다. 영화의 총본산 할리우드와 영화의 본고장 유럽에서 인정하고 찬양하는 봉준호다. 


한편 드는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하필 한국에서 태어나 영화를 하게 된 게 그에게는 결코 축복이 아닐 거라는 거다. 할리우드였다면 그는 단연코 크리스토퍼 놀란 이상 가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일본이었다면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지난 <설국열차>, 이번 <옥자>를 접하고 더욱 확고해진 생각이다. 


<옥자>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보였는데, '비판을 위한 비판'과 '디테일을 위한 디테일'이 그것이다. 둘다 지금의 봉준호를 있게 한 요소들인데, 천착과 스타일은 자칫 울궈먹기와 흐르지 않는 물로 변형·고착될 수 있다. 우린 여지없이 <옥자> 전체와 부분들에서 자본주의 비판적 요소를 볼 수 있었고, 찰나의 순간이나 단역급 캐릭터에게서 봉준호가 던지는 메시지의 핵심들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봉준호가 파격의 길을 서슴없이 가길 바란다. 언제나 빈틈없이 완벽한 '영화'를 내놓은 그가 이제는 '세계'를 창조하길 바란다. 나는 봉준호의 예술작품이 아닌 영화를 보길 원하지만, 그가 샛길로 빠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자가 옥자를 기어코 데리고 강원도 두메산골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미자와 옥자의 여정이 봉준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들로 점철되어 목적이 아닌 수단처럼 비춰지지 않길 바라며, 무엇보다 내가 봉준호 감독의 속깊은 의도를 넘겨짚지 않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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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봉준호, 비판, 세계, 영화, 예술, 옥자, 이슈,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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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대한 치명적이고 통렬한 실험 우화 <더 랍스터>

오래된 리뷰 2017. 7.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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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더 랍스터>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로도, 사랑에 대한 기막힌 상상으로도 읽을 수 있는 압도적 수작 <더 랍스터>. ⓒ영화사 오원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은 데이비드(콜린 파렐 분)는 호텔로 오게 되었다. 그곳은 일명 '커플 메이킹 호텔'로, 45일 간 머무르며 커플이 되는 교육을 받는다. 만약 그 시간이 지나서까지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 단, 매일 숲으로 가서 마취총을 이용해 서로 사냥을 하는데 거기에 성공한 횟수만큼 기간이 늘어난다. 이 시대는 누구나 반드시 사랑을 하고 커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그런 시대다. 


데이비드는 혹시 동물이 되는 상황이 되면 랍스터가 되고자 한다. 100살까지 살 수 있고 피는 귀족적인 푸른색이며 근시다. 그렇지만 동물이 되긴 싫다. 동물이 되면 숲에 버려지는데, 위험에 상시노출되어 있지 않은가.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찾아 다닌다. 그것이 일차적인 사랑의 증표인 것이다. 데이비드는 커플 되기에 성공할까?


우여곡절 끝에 호텔에서 탈출해 숲으로 향한 데이비드, 그곳은 호텔과는 완전히 반대로 절대 사랑을 해서도 안 되고 커플이 되어서도 안 되는 솔로 구역이다. 안 그러면 동물이 되는 게 아니라 죽는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하필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근시를 가진 여인을 말이다. 데이비는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까? 또 탈출 감행?


영화 <더 랍스터>는 현대사회에 대한 실험 우화를 치명적으로 통렬하게 보여주는 데 정통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네 번째 장편이다. 그리스에서 온 이 젊은 감독을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지극히 사랑하는데, 이 영화는 제68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세상은 넓고 좋은 감독과 작품은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퍼포먼스다. 


'솔로 지옥 커플 천국' 커플 메이킹 호텔


절대적으로 커플이 되어야 하는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커플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사 오원



먼저,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버리는 '솔로 지옥 커플 천국' 커플 메이킹 호텔 이야기다. 개인의 자유를 심히 억압하는 전체주의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아프게도 민주주의 한복판에 위치한 우리도 이 전체주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려준다. 참으로 눈물난다. '커플 천국'의 아이러니다.


굳이 과거의 우리나라나 이웃나라 중국의 산아 제한 정책이나 출산 장려 정책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당연한 시각이 지배하고 있음을 안다. 동물로 변해버리는 것 못지 않게 커플이 되지 못한 이, 결혼을 하지 못한 이가 갖는 절망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건 역사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개인으로 내려온 역겨운 전통이다. 


문제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조차 없는 분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체제'일 텐데, 그렇다면 누군가는 '체제 전복'을 외칠 만한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여기에 온 이들도 사랑을 하고 싶기 때문일 거다. 그렇지만 사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부분에서 사랑은 더 이상 지극히 은밀하고 가장 아름다운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라, 자유를 속박 당한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의무가 된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솔로 천국의 숲으로 도망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된다. 그 이상의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어지는 것이다. 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장막을 걷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어찌저찌 도망을 간 솔로 천국의 숲은 어떨까? 거대한 장막의 자장 밖에 있을까?


'솔로 천국 커플 지옥' 숲


절대적으로 솔로가 되어야 하는 '숲'에서는 솔로로 남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영화사 오원



다음, 커플이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솔로 천국 커플 지옥' 숲 이야기다. 커플이 되지 않을 자유를 찾아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탈출한 이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어째서 자유로운 곳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솔로 지옥 입장에서 보면 솔로를 선택할 수 있는 이 곳이 자유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솔로도 커플도 자유로운 제3자 입장에서 보면 거기나 거기나 거기가 거기다. 도긴개긴이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는 새 운명적인 '만남'은 들어봤어도 운명적인 '헤어짐'은 익히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역설이 이성적인 깨달음이라면, 이것저것 볼 것 없이 만남은 감성과 이성을 초월한 깨달음이다. 커플이 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솔로로 살아가는 거라는 말이다. 


이런 초월성을 죽음으로 막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안다. 사랑을 택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수많은 커플들의 역사를 말이다. 솔로 천국의 아이러니다. 굳이 이들의 세계에 전체주의의 뱃지를 달아주지 않는 이유다. 대신 이곳에는 어리석음의 뱃지를 달아주고자 한다. 


단순 비교를 하자면, 무조건 커플과 무조건 솔로의 통제 중 무조건 솔로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본능, 인간다움, 아니 생물다움을 버린 처사다. 물론 이 역시 역겨운 처사다. '사랑을 해야 한다' 안에는 조금이나마 '사랑하고 싶다'가 내재되어 있는 반면, '사랑하면 안 된다' 안에는 '사랑하기 싫다'가 조금도 내재되어 있지 않다. 


뼈아프게 잔인하고 잔혹한 이 세상의 실체, 나의 실체


이 영화가 치명적인 이유는, 세계를 형성하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부분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사 오원



나부터도 그러한대, 우리는 흔히 이것을 피하고자 저것을 택한다. 아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지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기 때문일 거다. 남자 아니면 여자, 커플 아니면 솔로, 삶 아니면 죽음, 커플 메이킹 호텔 아니면 숲. 데이비드도 그렇게 했다. 나름 자의적인 선택, 그나마 혁명의 끄나풀 정도 잡고자 한 행동. 그것도 결코 쉽지 않은 게, 자그마치 죽음을 각오한 탈출인 거다. 


고약한 건, 내가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만을 선택해야 하는지 안타깝고 분통 터지고 욕지거리까지 튀어 나오지만, 나는 이곳에서 탈출할 용기나 지혜, 하다못해 지식도 없다. 세상에서 알고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게 가장 '나쁜' 거라는데, 나는 못난 것도 아니고 나쁘다. 


영화에서 제3지대나 제3자는 아예 나오지 않거니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말로 꺼내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원하는 것들이 불편하고 역겨울 때가 시도때도 없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하고 어딜 가나 똑같을 거라고 말할 뿐이다. 그건 사실이다. 영화에서 보지 않았나. 


원점으로 돌아간다. 커플 메이킹 호텔의 짓거리가 전체주의적이라 했던가? 숲 인간들의 짓거리가 한심하다 했던가? 둘 다 똑같다고 했던가? 그렇다. 내가 고작 생각할 수 있는 한도치는 '둘 다 똑같다' 정도의 깨달음과 비판이다. 감독은 영리하게, 너무 영리하게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이상의 깨달음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실체, 나의 실체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잔인하고 잔혹하다. 고작 현실의 부정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우화의 나열과 그 사이를 건너는 한 인간의 서사를 보여줄 뿐이지만, 이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부분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감히 말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정확한 이 세계의 지도(MAP, 地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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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세계, 솔로, 숲, 실험 우화, 전체주의, 커플, 커플 메이킹 호텔,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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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헤르메스가 세상과 조우하는 방법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1. 2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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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상물정의 사회학> ⓒ사계절

2007년 시작되어 지금은 최고의 미드(미국드라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평행이론'에는, 두 천재 물리학자가 나온다. 이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길 수 있을 만한 지능을 가졌지만 세상살이는 꽝이다. 자신들이 배운 이론의 창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이 나온다. 평소에는 잘 열리던 문이 열리지 않을 때 그들은 과학적·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지나가던 학생이 아주 쉽게 문을 열어젖힌다. 거기엔 어떠한 이론적인 지식이 필요치 않았다. 단지 눈을 조금만 돌리기만 하면 되었다. 아니, 사실은 너무 쉬워서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행동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세상과 제대로 조우할 수 없이 살아간다. 


그런데 은근히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많다. 흔히 말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머리에 피도 안 바른', '세상의 쓴 맛을 못 본' 사람들일 것이다. 아직 사회 생활을 접하지 않은 학생들, 사회 생활은 했지만 조직 생활은 안 해본 어른들, 위에서 언급한 이들과 비슷하게 평생 책만 파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반면, 조직 생활은 안 해봤지만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먹고 살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는 사람들, 질곡의 역사를 헤쳐온 사람들도 있다. 


사회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


<세상물정의 사회학>(사계절)은 저자 노명우 교수가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 쓴 서평에세이 형식의 문화비평서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대중서와 학술서를 오가는 느낌이다. 챕터의 형식 또한 그러하다. 무조건 읽기 쉬운 느낌의 에세이 형식으로 현재의 문화세태를 보여주는 식으로 글을 시작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대체적으로 고전 학술서를 인용한다. 그러며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서평도 겻들인다. 그리고나서 저자의 생각으로 챕터를 끝마치는 것이다. 


저자는 대중서 느낌의 글은 '세상으로써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서 쓰고, 학술서 느낌의 글은 '세계로써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서 쓰고 있다. 그렇게 대중적인 소재를 가져와 학술적인 주제의식으로 글을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고민한 흔적이 뚜렷이 보인다. 스스로 밝혔듯이, 이론에만 함몰되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사회학은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


"언제나 사회학자는 세속의 존재였다. 단지 자신이 세속의 존재였음을 깨닫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세속에선 특정 이론의 권위보다, 그 권위 있는 이론에 대한 해설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부각된다.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 덩어리이다. 그 고민 덩어리는 어느 이론에 대한 해석과 해설보다 긴급하고 중요하다." (본문 중에서)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되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세상물정 이야기들은 자그만치 25개의 챕터로 나누어 펼쳐진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명품, 언론, 종교, 성공, 섹스, 자살, 노동, 집 등. 이런 소재들을 그람시, 마르크스, 베버, 손택, 벤야민 등의 삶과 사상과 저서들로 푸는 방식이다. 자칫 이질적이고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순전히 저자의 글 솜씨에 의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세상'(대중 혹은 세속)과 '세계'(학술 또는 이론)의 훌륭한 접목이 성공한 것이리라. 책에서는 이를 헤르메스(그리스 전령의 신)의 다리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학술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앞의 대중적인 글을 가져다 붙인 듯한 느낌이 드는 챕터도 눈에 띄었다. 반대로 대중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학술적인 고전을 가져다 붙인 듯한 느낌이 드는 챕터도 있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럼에도 책을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일관적인 생각들이 정말 속시원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거북하거나 실증나지 않는다. 저자는 주로 자본주의와 성장 지상 주의의 폐해, 기득권층의 교묘한 술수와 어긋난 욕망, 무지하게 흘러가는 문화세테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실명까지 들어 매몰차게 비판할 때는 희열까지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개인에 대한 사랑과 신뢰, 사회에 대한 비판과 질책이 이어진다. 사회의 짐을 개인에게 떠맡기는 현재의 세태를 두고 볼 수 없다는 고민의 흔적 또한 엿보인다.


세속을 위하여 썼지만, 세속으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한편 비판을 하며 깊숙히 숨겨왔던 현실의 속살을 함께 끄집어내곤 하는 장면에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 중에는, 시궁창같은 현실에 맞대응하기 싫어서 피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그 현실을 증오하며 격렬하게 부딪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살아간다. 저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 즉 사상이나 신념을 딱히 갖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내놓은 것 같다. 일단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겉모습 뒤에는 이런 추악한 본질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그런 뒤 문제의식을 내비치는 것이다. 


"상식이 바람직함을 갖추면 양식이 된다. 하지만 상식은 양식보다 힘이 세다. 권력자들은 상식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을 이용해 정치를 하기에 상식적인 말을 늘 언급하지만, 상식에만 머물 뿐, 상식으로부터 양식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상식을 이용하는 세력과 상식을 교정하려는 세력이 싸움을 벌일 때, 보통 상식을 이용하는 편이 승리한다. 상식을 자극하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보수정당은 '서민'의 표를 얻고, 경제정의를 외치는 진보정당은 빈민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 (분문 중에서)


하지만 더 이상 들어가지는 않는다. 저자는 직접 시민들 사이로 뛰어든 보들레르를 비판한다. 직접 경험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겠다는 보들레르의 목적이 실패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지루하고 딱딱한 이론서를 쓸 생각도 없었지만,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가서 경험하고 고발하는 르포를 쓸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이론이나 학술적인 느낌이 더욱 많이 들고, 대중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들을 취합함에 있어서 완전히 나의 얘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선택한 소재나 문제의식이나 풀어가는 글이나 속시원한 비판 모두가 마음에 들었지만, 나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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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리얼리티, 문화, 보들레르, 성장주의, 세계, 세상,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속, 자본주의, 평행이론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1.28 09:47 신고

    세상물정의 사회학......
    서평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4.01.29 23:24 신고

      감사합니다-

  • BlogIcon 서흔(書痕)
    2014.01.28 09:48 신고

    아직 전부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의 서문을 읽었을 때 감탄이 나왔습니다.
    문장과 문체가 너무 깔끔해서 정말 좋은 느낌을 받은 책입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셨다니
    저는 읽고 어떤 마음이 들지 궁금하네요. ㅎㅎ
    서평을 읽으니 얼른 저도 얼른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 BlogIcon singenv
      2014.01.29 23:25 신고

      문장과 문체가 좋다는 말씀은 동의합니다 ㅋ

  • BlogIcon MINi99
    2014.01.28 12:06 신고

    가끔 어떤 책을 접해야 하나 고민 할때가 많은데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BlogIcon singenv
      2014.01.29 23:25 신고

      이 책은 정말 재밌더라구요 ㅋ

  • BlogIcon 에스델 ♥
    2014.01.28 12:54 신고

    나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정말 아쉽게 다가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행복한 화요일 보내세요!

    • BlogIcon singenv
      2014.01.29 23:26 신고

      안녕하셨죠?
      오랜만에 돌아오셨어요ㅋ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BlogIcon 김하늘
    2014.01.29 06:57

    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향 가시는 길 안전운행하시고 잘 다녀오세요?
    즐겁고 행복한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singenv
      2014.01.29 23:26 신고

      감사합니다-

  • BlogIcon 미미르의 샘
    2014.01.29 20:35 신고

    그냥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책이라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에세이를 통해서 어려운 사상서들을 찾아 읽게하는 서평서의 역할도 충실하게 하는 책이었군요 'ㅁ'!!

    • BlogIcon singenv
      2014.01.29 23:27 신고

      저도 제목만 봤을 때는 그렇게 느꼈었죠 ㅋㅋ
      그런데 막상 보니, 재미있으면서도 만만치 않은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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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명백한 죽음의 길을 가며 기어코 살아가는 이유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3. 10. 2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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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


<로드> ⓒ문학동네

세계 문학계의 주류인 미국 문학과 유럽 문학. 당초 두 문학은 그 뿌리가 같다. 하지만 필자가 읽었던 소설들에게서 느꼈던 바는 사뭇 다르다.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미국 문학은 간결한 가운데 유머가 있고 유럽 문학은 끈덕진 가운데 클래식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국 문학은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조금은 밝은 분위기가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유럽 문학은 묵직한 주제 위에서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가 함께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묵직한 주제 위에서 지극히 어두운 분위기가 감도는 미국 문학은 어떤 느낌일까? 거기에 미국 문학의 특징인 간결한 문체가 함께 한다면?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코맥 맥카시의 2006년도 작품 <로드>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허무 위에 새겨진 소멸의 이미지를 그리다

 

문장의 대가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문학동네)를 들여다본다. <칼의 노래>의 첫 소절은 이렇다. 우울할 겨를도 없이 허무와 싸웠던 이순신을 그린 <칼의 노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이번엔 <로드>의 초반 부분 중 한 소절을 읊어본다. 군더더기 없는 김훈 작가의 문장과 분위기상으로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준다. 허무 위에 새겨진 소멸의 이미지. 단 몇 줄로 그 이미지를 이리도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든다.

 

“강이 있는 골짜기 건너편에서 길은 완전히 검게 타버린 곳을 통과했다. 가지를 잃은 채 숯이 돼버린 나무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길 위에서 재가 움직였다. 검게 변한 전신주에서 뻗어나온 늘어진 손 같은 눈먼 전선들이 바람에 가늘게 훌쩍였다.”(본문 속에서)

 

명백한 죽음의 길을 가는 부자(父子)

 

알 수 없는 대재앙으로 모든 것이 불에 탔고, 재가 하늘을 덮어 하늘을 볼 수 없다. 햇볕이 들지 않는 대지에는 살아있는 생물이 없고, 죽어있는 사물만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사물을 쟁취하려 서로를 죽이고,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물을 잡아먹으려고 서로를 죽인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죽음의 길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다. 아내이자 엄마는 그 길 끝에 결국 죽음 밖에 없을 거라는 걸 직시하고 자살을 택했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도 욕할 수 없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반면 아버지와 아들은 그 힘든 길을 택한 것이다. 명백한 죽음의 길.


그들은 시종일관 추위와 배고픔에 직면한다. 그에 모자라 살아남은 다른 인간들의 위협에도 직면해 있다. 이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내가 도와줄 사람 또한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명백한 죽음의 길을 가며 기어코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는 게 두려워서? 그렇지 않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는 언제든 죽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건 심지어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담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냥 사는 거지, 뭐”와 같은 당위론적인 이유일까? 그렇지 않다. 소설은 종말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고, 세계 또한 대부분 파괴되었다. 차원이 다른 어려움과 두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지 알 수 없지만, “그냥”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다. ‘희망’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다

 

이 절망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에서, 그들에게 남은 건, 서로의 존재뿐이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가 아니었으면 벌써 죽고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 채 순간순간을 견디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그들의 순간순간이, 한 발 한 발이 기적과도 같아 보인다.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본문 속에서)

 

그리고 ‘희망’ 어딘가 반드시 ‘정상적인’ 인간이 있을 거라는 희망(종말 이후의 세계에서는 ‘정상’이란 기준이 달라졌을 테지만, 종말 이전의 ‘정상’ 개념으로 상정해서),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 어떻게든 아들만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아버지의 희망, 그리고 아직 종말 이전의 정상적인 인간의 마음씨(착하고 순수한)를 간직하고 있고 이를 실천할 수 있을 거라는 아들의 희망. 이 희망들로 그들은 길을 가고 있다.

 

“남자는 이제 죽음이 다가왔다고, 남들 눈에 띄지 않고 숨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소년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걷잡을 수 없이 흐느끼곤 했다. 하지만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남자는 무엇 때문인지 잘 몰랐지만, 아마 아름다움이나 선(善)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본문 속에서)

 

그들이 궁극적으로 품었던 희망이자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아들의 희망일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자는 모습을 볼 때 걷잡을 수 없이 흐느끼곤 했던 이유가 죽음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나 선(善)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버지는 모든 기력을 동원해 아들만을 보호하려고 다른 무엇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반면 아들은 이 묵시록보다 더욱 참혹한 세계에서도 ‘인간’임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길 잃은 아이와 노인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아버지를 다그쳤던 것이다. 지금 세계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일지 몰라도,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는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넓게 멀리 생각해보면 아들의 이 생각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일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그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죽어가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혼자 남게 될 아들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아들이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 세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다”(본문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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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로드, 미국 문학, 세계, 아들, 아버지, 유럽 문학, 재앙, 종말, 죽음, 책으로 책하다, 칼의 노래, 코맥 매카시, 희망
  • BlogIcon 와코루
    2013.10.21 11:10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여겨왔던 일상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 BlogIcon singenv
      2013.10.22 09:05 신고

      맞아요. 일상의 소중함... 정말 중요하죠.

  • BlogIcon *저녁노을*
    2013.10.21 17:00 신고

    리뷰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 BlogIcon singenv
      2013.10.22 09:05 신고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 BlogIcon 포장지기
    2013.10.21 19:53 신고

    인사 드리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BlogIcon singenv
      2013.10.22 09:05 신고

      안녕하세요~
      즐겁게 하루 시작하시길!

  • BlogIcon 늙은 호텔리어 몽돌
    2013.10.21 20:49 신고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블친중의 한 분이 영화를 소개해 주셨는데 조만간 아이랑 같이 봐야겠군요.

    • BlogIcon singenv
      2013.10.22 09:06 신고

      영화로 보시면, 더욱 실감나게 느끼실 수 있을 듯해요!
      절망 안의 희망을요.

  • BlogIcon 오렌지수박
    2013.10.22 00:36 신고

    숨이 턱턱 막히는 내용이네요. 죽음의 길을 걷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인 아들.. 나중에 책을 읽고 꼭 다시 이 리뷰를 보고 싶어요.

    • BlogIcon singenv
      2013.10.22 09:07 신고

      말씀하신대로, 숨이 턱턱 막히더라구요.
      줄거리도 복잡하지 않고 분량도 많이 않은데, 다 보는데 오래 걸렸어요.
      꼭 책 보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지후대디
    2013.10.22 19:46 신고

    이책을 읽을때는 아들이 없었는데 아들이 있고나서 다시 읽어보니 또 새롭게 와닿고 아들에 대한 남자의 행동들이 사뭇 다른의미로 느껴집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0.22 22:24 신고

      저도 결혼을 해서 만약 아들이 생기면,
      이 소설이 새롭게 와닿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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