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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을 오가는 환상적 이야기와 치명적인 디스토피아 세상 <인셉션>

오래된 리뷰 2019. 8.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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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인셉션>


영화 <인셉션>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08년 <다크 나이트>라는 슈퍼 히어로 영화로 '천재'에서 '거장'으로 거듭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이 영화의 흥행과 비평 양면 큰 성공을 바탕으로 워너브라더스에서 큰 돈을 투자받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보라는 전언과 함께. 그에 놀란은 10여 년 동안 갈고 닦은 시나리오로 2년 만에 <인셉션>을 들고 와 또 한 번 흥행과 비평 앙면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둔다. 


놀란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인터스텔라> <덩케르크>까지 워너와의 윈윈 작업을 이어나간다. <다크 나이트> 이전, <배트맨 비긴즈> <프레스티지> 또한 함께 한 그들이다. 그리고 내년 개봉 예정인 국제 첩보 액션물 <테넷>도 함께 할 예정이다. 15년 여를 함께 한 놀란과 워너의 작업물들 중 최고는 단연 <다크 나이트>일 테지만, 놀란의 독자적인 천재성이 돋보이는 <인셉션>도 또 다른 최고가 아닐까 싶다. 


범죄 및 스릴러 장르에 천착해 온 놀란은, <인셉션>을 기점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선보였다. 그러는가 하면, 기획과 제작과 프로듀서 방면으로도 발을 넓히기도 했다. 놀란에게 <인셉션>은, 그의 이름을 알린 <메멘토>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평을 듣는 <다크 나이트> 이상 가는 의미를 지닌 영화라 하겠다. 그 놀라운 이야기의 간략한 줄거리를 살펴보겠다. 


꿈속에 침입해 생각을 주입하는 '인셉션'


코브는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꿈을 공유하고 타인의 꿈속에 침입해 비밀을 추출해내는 추출자이다. 그는 사이토라는 일본 기업가의 비밀을 추출해내려 하지만 실패해 고용주 코볼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코브의 실력에 감탄한 사이토는 역으로 그에게 협박 및 제안을 한다. 코브는 죽은 아내와 얽힌 사건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처지인데, 사이토가 해결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코브가 해야 할 일은 꿈속에 침입해 비밀을 추출해내는 게 아니라 생각을 주입하는 '인셉션'이었다. 


사이토가 제안한 일은, 사이토 기업의 경쟁 기업이자 세계 에너지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는 피셔 모로우의 후계자 피셔의 머릿속에 '물려받은 기업을 분할하겠다'는 생각을 심는 것이었다. 코브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위해 드림팀을 조직한다. 기존의 한 팀인 포인트맨 아서와 함께 하고, 교수인 장인에게 설계자 아리아드네를 소개받고, 위조꾼 임스와 약제사 유서프를 물색해 찾아낸다. 사이토는 관광객이지만 직접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함께 한다. 


한편, 코브는 팀원들 몰래 매일 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내 맬과의 기억을 투영한 꿈의 세계를 유영하며 기억의 최하층에 맬의 무의식을 가둬놓는 실험도 병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맬은 코브가 임무에 임할 때마다 무의식 형태로 등장하며 방해를 했고 그 방식은 점차 대담·대범해졌다. 불가능에 가까운 인셉션 임무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끝없는 난관 위의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절대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꿈속의 꿈속의 꿈속의 꿈, 그곳엔 무엇이 있는지. 


꿈과 현실의 환상적 이야기의 이면, 디스토피아


영화 <인셉션>의 주된 내용 자체는 거창하지 않다. 드림팀을 조직해 불가능에 가까운 큰 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최동훈 감독의 '케이퍼 무비'를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영화 내적으론 팀을 조직해 강탈을 주된 목적으로 활동하고, 영화 외적으론 치밀한 각본과 화려한 촬영 테크닉을 자랑한다. <인셉션> 또한 여기에 거의 완벽히 부합한다. 다만, 그 안에 들어찬 이야기 및 의미가 전혀 다르다. 


영화는 우선 강탈이 아닌 주입이 목적인 점이 다르다. 이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인데, 한 사람을 규정하거나 망가뜨릴 수 있는 생각 자체를 주입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작업이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는 점 자체로 이미 전에도 후에도 없을 디스토피아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했다손 쳐도, 세상이 아무리 파멸에 가까워진다손 쳐도 꿈속에 침입해 생각을 주입한다는 게 가능할까. 또한, 그건 어떤 세상을 불러올까. 생각하기도 힘들고, 생각하기도 싫다. 


영화는 그러니까 놀란 감독은, 아주 흥미진진하게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세상을 우리 앞에 내보였던 것이다. 큰 범위에서 그가 <인셉션> 이전까지 선보였던 '인간 타락'의 끝이자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나의 것이 아니고, 나의 세상이 나의 것이 아니며, 결국 나의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만다. 우리는 영화의 치밀하게 직조된 각본과 화려하기 그지 없는 촬영 테크닉에 압도되고 '꿈과 현실'이라는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환상적 이야기에 경도되어 그 이면을 살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고, 있어 보이는 영화


'영화는 영화다'라는 명제 하에 이 영화를 본다면, 이 만큼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쫄깃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찾기도 힘들다. 영화 외적으로 파고들어도 양파 껍질처럼 한없이 뭔가가 나올 것 같은 이 영화는, 그 반대로 영화 내적으로 즐기고 즐겨도 한없이 즐거울 것 같다. 꿈속에 침입해 비밀을 추출하고 또 생각을 주입하는 과정과 방식과 그에 따른 단어들은 마니아틱한 상상력과 DB력을 불러일으키고, 꿈속의 꿈속의 꿈속의 꿈까지 들어가 찰나의 찰나까지 쥐어짜는 쫄깃함을 맛볼 때는 그야말로 100% 이입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해석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떡밥'들은 그 자체로 영화를 둘러싼 재미요소다. 예를 들어, 작년에 8년 만에 밝혀진 결말 부분의 '꿈과 현실 논쟁'이 그것인데 코브가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토템을 돌려놓고는 끝까지 보지 않고 가버렸고 결말이 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나버렸다. 사실 별거 아닐 수 있음에도 <인셉션>의 가장 큰 논쟁이 그 부분이었는데, 이 영화의 아우라가 어느 정도인지를 반추하는 결정적 모습이라 하겠다. 


한편 이 영화를 보다 훨씬 '있어 보이게' 한 결정적 요소가 음악이다. 각본에 더해 촬영까지 있어 보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한스 짐머 특유의 웅장하면서도 긴장감 어린 음악이 없었다면 상당히 밋밋했을 게 분명하다. <배트맨 비긴즈>를 시작으로 <덩케르크>까지 짐머는 놀란의 음악적 페르소나로 6편을 함께 했다. <인셉션>은 <인터스텔라> <덩케르크>와 더불어 놀란 보다 짐머가 더 돋보이는 영화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인셉션>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에디트 피아프의 마지막 대히트곡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Non, Je Ne Regrette Rien>이다. 극중 꿈에서 나올 때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던 노래, 그 구슬픈 음색 안의 가사는 코브와 맬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에디트 피아프를 그린 영화 <라 비 앙 로즈>는 물론, 영화 <몽상가들>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청춘의 지난날을 감싸기도 했던 이 곡은 참 절묘하다. <인셉션>과 <몽상가들> 모두 꿈에서 빠져나오는 데 이 곡을 쓰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우리네 인생이 그 옛날 장자가 들여다봤던 것처럼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현실이면 또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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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디스토피아, 떡밥, 생각, 음악, 인셉션, 촬영, 크리스토퍼 놀란,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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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 같지 않던 그 날-프로포즈 1

생각하다/그대 그리고 나 2015. 10.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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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 같지 않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마음속) 준비는 몇 달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가 지인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혼자 생각을 했던 건 거의 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거였다. 즉,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싶은 게 거의 다 였다. 차 트렁크에서 풍선을 다발로 넣어둔 뒤 짜잔 하는 건 차가 없어서 패스, 간단한 분장을 한 후 커다란 상자 안에서 짜잔 나오는 건 너무 쪽팔리고 민망해서 패스, 해가 진 후 운동장에 촛불로 만든 길과 하트를 만들어 놓고 오라고 해서 짜잔 하는 건 소심해서 패스 등. 


지인들한테 물어보는 건 애초에 성립이 되지 않았다. 주위에 결혼한 사람은 있어도 프로포즈를 했다거나 프로포즈를 받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요즘에는 프로포즈를 하지 않고 결혼한다고 한다나 뭐라나... 아마 우리나라만 그러겠지? 설령 프로포즈를 한다고 해도 결혼하기 직전에 한다고 하니, 제대로 된 도움을 얻기엔 글렀다. 


남은 건 역시 인터넷 검색인가. 혼자 하기보다는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장소는 무난하게 레스토랑으로. 반지와 꽃다발과 케잌. 영상과 편지. 그리고 맛있는 식사까지.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였다. 문제는 다름 아닌 인터넷 검색이었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우리 둘만의 장소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마치 프로포즈 이벤트 공장 같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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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생각, 인터넷 검색, 지인, 프로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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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0.28 08:59 신고

    진정한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최고일듯....

    • BlogIcon singenv
      2015.11.08 16:16 신고

      그렇겠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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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위한 시간> 명징한 정신과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이 그립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11.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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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침묵을 위한 시간>


<침묵을 위한 시간> 표지 ⓒ봄날의 책

우리가 잘못 인지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말'에 대한 것이다. 하나는 전자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 간의 대화 시간이 줄어 들었다는 생각.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의사소통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여자는 하루 평균 25,000개의 단어를, 남자는 10,000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이는 자연스레 다른 하나의 오해로 넘어가는데, 말을 입으로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는 것. 이제는 입으로 뿐만 아니라 손으로 하는 말도 넓은 의미의 말로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확실히 우리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말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생각의 과잉으로 이어진다. 입으로 생각을 방출하지 않고 손으로 저장하다 보니 생각은 계속 쌓이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리 없는 침묵이 더해가지만, 실상 소리 없는 소음이 우리를 시시각각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진짜 침묵이 너무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침묵이 무언지 알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무섭고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수도원이란 어떤 곳인가?


아무래도 침묵하면 떠올리기 쉬운 것이 종교이다. 경건함 속에서 신을 영접 하는 장소, 그리고 시간. 그 중에서도 가톨릭의 수도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싶다. 개인적으로 수도원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지만 '유럽 수도원 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침묵을 위한 시간>(봄날의 책)이라는 책을 통해, 수도원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케케 묵은 오해도 풀 수 있었다. 


이 책은 '패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영국의 전쟁영웅이자, 독특한 문체와 깊이 있는 관찰이 돋보이는 20세기 최고의 여행작가 중 한 사람인 패트릭 리 퍼머가 유럽의 4개 수도원을 여행하고 쓴 에세이다. 여행기 답게 기막힌 묘사와 함께 잔잔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음에도 이 책 만으로 수도원이 그려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이 책은 절대 찬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에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는 무엇이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수도원에 관련된 역사, 수도원 생활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정보,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할 수도사의 생활과 그에 반하는 바깥 세상의 생활 등이다. 각주를 제외한 본문 분량 만으로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에 그런 부분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다.  


수도원에 대한 하찮은 오해


물론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지 60년이 흘렀지만, 수도원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금욕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고독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수도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지는 검정색 수도복을 입고 중얼거림조차 배제한 침묵의 일생을 보낼 것이 아닌가?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그들에게서는 묘지를 연상시키는 음침함이나 편협함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의에 바친 자신의 삶에 진지하게 임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서로 어울릴 때 보면 그들은 균형 잡히고 박식하며 재치가 넘치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여느 프랑스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본문 중에서)


이런 수도원이 있는가 하면, 다른 수도원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음침하기도 하다. 그들은 황야에서 겪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겟세마니 동산에서 방황했던 그리스도의 고뇌, 십자가의 길과 골고타 언덕에서 끝난 그리스도의 마지막 희생에 대한 평생에 걸친 모방의 일환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영적 수련을 평생에 걸쳐 한다. 그들에게 수도자의 삶이란 길게 이어지는 속죄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고행 하는 삶이 어떤 영적인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그 위안은 곧 '길게 이어지는 천국의 암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 그 이상이다. 이를 행복한 침묵이자 행복한 고독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전적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생각의 과잉에 하루라도 골머리를 썩지 않을 날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줌이 분명하다. 


"수도원은 무덤의 정 반대가 되었다. 수도원은 어떤 비밀스러운 길을 찾는 사원이나 고통을 잊게 하는 마법의 약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조용한 대학이자 시골 저택이었고 일상의 괴로움과 고민거리들이 닿지 못하는 공중에 뜬 성이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저자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수도원 4개를 여행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수도원에 대한 하찮고 편협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을 것이고, 궁금했을 수도원 생활과 수도사의 삶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며, 수도원에 관련된 박학다식한 지식을 뽐내고도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수도원에 간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술과 파티로 런던 생활에 환멸을 느끼며, 서머싯 몸이 그를 두고 '상류층 여성들을 상대하는 제비'라고 칭한 적이 있을 정도의 '끼'가 있었던 저자는 삶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도원을 전전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면서 여행서로서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구성과 문체를 선사해 주니 저자는 상당히 영악한 자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 우리에게 와 닿는 의미가 빠져 있는 것 같다. 무엇일까? 침묵과 고독의 대명사인 수도원과 우리의 삶이 맞닿아 있는 게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건 수도원 생활을 방문객 신분으로나마 직접 체험하면서 저자가 겪은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니, 순간순간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든 것에 시달린다. 더군다나 스마트폰 혁명의 광풍이 불어 닥친 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의 속도와 양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와중에 저자가 수도원 생활을 하며 느끼는 변화, 즉 '명징한 정신과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은 더없이 진하게 다가온다. 어느새 상상하기 힘들게 된 그것들이, 이 책을 보며 조금이나마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삶에 '침묵을 위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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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말, 생각, 수도사, 수도원, 침묵, 침묵을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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