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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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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여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딸에 대하여> 2017.10.23
  •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듯, 삐걱대는 이 가족의 평범함 <에브리바디 올라잇>(2) 2017.06.30
  • "동성 간의 사랑이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캐롤>(1) 2016.03.04

결국 '여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딸에 대하여>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10.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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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딸에 대하여>


소설 <딸에 대하여> 표지 ⓒ민음사



일찍 남편을 보내고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나', 남편이 유일하게 남긴 유산인 집에 서른을 훌쩍 넘었어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대학교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딸애'를 들인다. 딸애는 7년 간 사귀어 왔다는 '그 애'와 함께다. 나로선 정녕 상상하기도 싫고 어려운 그들과의 동거지만, 딸애의 부탁을 져버릴 순 없지 않은가. 서로를 그린과 레인으로 부르는 그들은 레즈비언 커플이다. 


딸애는 안 그래도 어렵게 살아가는 시간강사의 삶 위에 학교를 상대로 시위를 하는 삶을 얹혀 놓았다. 딸애처럼 레즈비언 시간 강사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기 때문인데, 나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의 일로 딸애가 그러는 걸 이해할 수 없다. 그건 내가 요양원에서 보살피는 무연고 치매노인 '젠'을 보면서,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서 뼛속 깊이 느낀 것이다. 


젠은 젊은 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고 한국계 입양아들을 위해 일해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주노동자들을 후원했다. 평생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이들을 위해 헌신해 왔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나', '딸애'와 '그 애', '젠'의 이야기 <딸에 대하여>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소설이다. 그 안엔 현시대를 가로지르는 첨예한 사항부터 시대와 상관 없이 오래도록 당연시 되어온 문제까지, 주로 소수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성애자 시간강사, 홀몸의 중년여인, 무연고자 치매노인, 모두 소수자이기에 앞서 모두 여성이기에 삶의 고단함을 향한 이중부과가 매겨져 있는 느낌이다. 


'딸에 대하여'보다 '여성에 대하여'


소설은 '딸에 대하여'라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동성애자이자 시간강사로 '평범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딸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있다. 아니, 제목을 앞세워 그렇게 포장한 것이리라. 실상, 딸보다 '나'와 '젠'에 대하여 즉 엄마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 게 맞다. 여기서 나에겐 젠이 딸애와 겹쳐 보이니, 결국 '여성에 대하여'가 궁극적으로 올바른 제목이라 하겠다. 


어떤 여성을 말하고자 함인가. 소설에선 남성이 주인공으로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전통적 보수의 전형과도 같은 나는 딸애가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성공과 여성으로서의 결혼적 성공을 동시에 바란다. 소설은 그 정도에 머물러 있는 내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는 깨달을 수밖에 없게 되는 '성장' 매커니즘을 따른다. 그 끝에는 '여성'이 아닌 '공동체'가 있다. 


한편, 소설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될 수 있는 '퀴어' 소재의 주인공들인 딸애와 그 애는 그 이슈를 가슴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현실상 머리로는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이중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왜 당연한 삶의 결정체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소설은 퀴어의 당위성에 집착하는 대신 객관적 사회문제로 격상시키는 묘수를 발휘한다. 


'젠'은 소설의 모든 것에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으로 와서 소설의 모든 것에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느낌으로 떠나간다. 그녀의 지난 젊은 시절은 딸애를 보는 것 같고, 그녀의 현 시절은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소설은 한국 모든 여성의 미래와 한국 늙은 여성의 현재, 그 한 단면을 젠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공동체를 향한 깨달음과 이해


남성은 여성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보이는 삶과 행동,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그녀들을 감싸고 있고 그녀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보내고 있으며 그녀들을 얽매기도 하면서 조종하기도 한다. 반면, 남성은 여성이 상상하는 딱 그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내가 종국에 만나게 되는 공동체란 상상할 수 없는 여성의 삶도 상상할 수 있는 남성의 삶도 뛰어 넘는 연대다. 자신의 일과 딸애의 일에서 겪게 되는 '나의 일이 될 수 있는, 아니 나의 일과 다름 없는 남의 일'의 정체를 깨닫고, 딸애의 성향을 이해할 순 없지만 딸애의 상상불가 위의 상상불가의 어려움은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단 하나의 가족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정도는커녕 혐오를 하는 딸애가,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겐 얼마나 크나큰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될 것인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런 매커니즘의 이해야말로 가족만이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나의 깨달음과 성장이 거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거기서 파생된 '가족 아닌 자'인 젠을 향한 마음 또한 크나큰 깨달음과 성장의 한 면이다. 가족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해가, 가족이 아닌 자를 향하고 있지 않은가. 그 자체가 공동체의 발로다. 그 모든 게 '딸에 대하여' 생각한 끝에 나아가게 된 이 시대 평범 평균의 여성의 깨달음이다. 이제 '위대'라는 뜻의 수정이 필요할 때다. 위대라는 단어에 '보수로 대변되는 완벽'이 아닌 '진보로 대변되는 나아감'이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이 여성들은 진실로 위대하다. 


딸에 대하여 - 10점
김혜진 지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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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공동체, 딸, 딸에 대하여, 레즈비언, 성장, 시간강사, 엄마, 여성, 중년여인, 치매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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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듯, 삐걱대는 이 가족의 평범함 <에브리바디 올라잇>

오래된 리뷰 2017. 6.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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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에브리바디 올라잇>


이 영화는 '복잡미묘'하지만, 결코 '섹시 코믹 스캔들'은 아니다. ⓒ(주)화천공사



의사 닉(아네트 버닝 분)과 조경사 줄스(줄리안 무어 분)는 각각 낳은 아이들 조니(미아 바쉬이코브스카 분), 레이저(조쉬 허처슨 분)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렇다, 그들은 레즈비언 부부이다. 큰딸 조니는 일찍 철이 든 케이스로 엄마들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녀는 똑똑하다. 반면 작은 아들 레이저는 사춘기의 한복판에 있어서인지 몰라도 의문과 함께 위화감을 지니고 있다. 그는 운동을 좋아한다. 


조니와 레이저는 아빠를 찾고자 한다. 그들은 누군가가 정자은행에 제공한 정자로 태어났는데, 공교롭게도 닉과 줄스는 한 명의 정자를 받아 임신해 그들을 낳았다. 생물학적 아빠 폴(마크 러팔로 분)을 찾은 그들, 조니는 좋은 느낌을 받은 반면 레이저는 그리 좋은 느낌을 받진 못했다. 이후 조니와 레이저는 번갈아 가면서 혹은 함께 폴과 시간을 보낸다. 서로가 끌리는 걸 그들이 막을 도리는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닉과 줄스의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다. 함께 식사자리도 마련하는 등 노력하지만, 가장의 역할을 떠맡은 닉은 더욱 노심초사할 뿐이다. 그 와중에 줄스는 오랜만에 조경사 일이 들어오는데, 다름 아닌 폴의 의뢰였다. 급기야 줄스는 자신의 성정체성까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데... 


'평범한' 동성결혼 가족


동성결혼 가족이라는, 한국에는 법적으로 없는 가족 형태. 이 영화는 극히 평범하게 그려낸다. ⓒ(주)화천공사



수많은 영화를 통해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 형태를 많이 봐왔는데, 영화 <에브리바디 올라잇>이 보여준 가족 형태는 또 새롭다. 특히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선 어설픈 상상은 가능하지만 실제에 기반한 현실적인 상상은 불가능하다. 그러하기에 허구에 기반한 영화에서도 비춰지기 힘들다. 


반면 이 영화에서 동성결혼에 의한 가족 구성은 아주 평범하게 보인다. 전혀 위화감이 없고 편안하다. 작은 아들 레이저가 지니는 의문과 위화감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감성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아마 거기엔 레즈비언 부부를 연기한 두 베테랑 줄리안 무어와 아네트 버닝의 연기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도 조금의 제약은 따른다.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보호막은 예전에 쳤을 테지만, 아이들 특히 레이저에겐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하다. 남들과 다른 가족 형태는 물론 남들과 다른 섹스 라이프까지도.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 할 정도로 모든 사생활을 남김없이 말해주어야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이 영화의 이 가족을 보며 하등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단, 생물학적 아빠 폴을 만나기 전까지. 두 아이들의 아빠 폴이 등장하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이를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즉 지극히 생물학적인 시선으로만 보자면 일부이처가 아닌가? 여기서 이처가 부부인 건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이처 중 하나가 일부와 다시 그렇고 그런 관계를 형성시킨다면... 모든 게 이상해지는 것이다. 


특수한 경우를 헤쳐나온 이들의 삐걱거림


특수한 경우를 수도 없이, 즉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에게도 삐걱거림이 존재한다. ⓒ(주)화천공사



사실 이 영화는 초반 20분도 채 되지 않아 1막이 끝난 느낌을 들게 한다. 레즈비언 부부의 두 아이들이 생물학적 아빠를 만나 어색한 인사와 대화를 마무리하고 헤어진다. 더 이상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2막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생물학적 아빠를 계속 만나는 것이다. 그런 한편 닉과 줄스는 뭔가 삐걱대는 것 같다. 


여기서 주목할 건 아이들이 생물학적 아빠를 계속 만나는 게 아니라 닉과 줄스의 삐걱거림이다.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레즈비언 부부라는 특수한 경우를 함께 헤쳐나온 이들이라면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리고 둘 다 여자이니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부부보다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들에게 삐걱거림이라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똑같은 삐걱거림이 존재한다. 18년 동안 함께 한 닉과 줄스에게도 당연히 각자의 역할이 생겼을 것이고 완연히 다른 성격이 존재할 것이다. 그에 따른 갈등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 모습에서 우린 역으로 올라가 레즈비언 부부의 평범함과 비(非)이질성을 감지한다. 그들은 레즈비언 이전에 부부다. 


이 영화에선 닉이 더 돈을 잘 벌고 더 괄괄하며 더 가부장적이다. 반면 줄스는 일을 거의 안 하는 반면 아이들과 집안을 책임지다시피 한다. 그들이 합의 하에 정한 역할일 테지만, 여느 부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2막에서 아이들이 폴과 가까워지는 모습이 아닌, 눈여겨 보아야 할 닉과 줄스의 삐걱거림에는 이런 연유가 있다.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듯, 이 가족


다른 누구도 아닌 이들의 삐걱거림은, 이들이 지극히 평범한 존재들이라는 반증이다. ⓒ(주)화천공사



영화의 3막 시작은 폴의 의뢰에 의해 줄스가 오랜만에 조경 디자인을 하게 되는 장면이다. 이내 그들은 어이 없게 한 몸이 된다. 그러며 닉과 줄스의 삐걱거림은 더 심해지고 그럴수록 줄스의 외도도 더 심해진다. 한편 아이들과 폴의 관계도 더 진전되어 어색함은 사라지고 의미있는 관계로 발전되는 기미가 보인다. 


결국 들킬 것이 분명한 폴과 줄스의 밀회, 이 황당하고 어이 없는 관계보다 우리가 이 3막에서 눈여겨 봐야 할 건 이 가족이다. 2막에서 닉과 줄스의 삐걱거림으로 이 레즈비언 부부의 평범함을 역설했듯이, 3막에서는 폴과 줄스의 밀회로 터져버린 네 가족의 삐걱거림으로 이 가족의 평범함을 역설한다. 


백 번 양보해 일반적이라고 할 순 없는 이 가족이, 거기에 폴이라는 생물학적 아빠의 출현으로 꼬여버린 듯한 이 가족이, 평범하다는 걸 역설하기 위해서 황당한 일을 겪었을 때 평범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린 생각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이라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을 겪었을 때 일반적이지 않은 모습을 대처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일반적으로 대처한다. 당사자들을 욕하고 배척하고 몰아세운다. 누군가는 비뚤어진다. 그럼에도 진심어린 사과와 속죄, 받아들임과 시작이 이어진다. 그게 가족이다. 그리고 이 가족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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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가족, 동성결혼, 레즈비언, 삐걱거림, 에브리바디 올라잇, 특수, 평범
  • BlogIcon 여름햇살
    2017.06.30 20:22 신고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저에게는 왠지 이 영화보다 영화평이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

    • BlogIcon singenv
      2017.06.30 21:57 신고

      감사합니다~ 영화가 더 재미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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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간의 사랑이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캐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3.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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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캐롤>



영화 <캐롤> 포스터 ⓒCGV 아트하우스



1950년대 어느 날 미국, 한 남자가 레스토랑에 들어온다. 우연히 한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는 어느 여자와 같이 앉아 있다. 여자는 남자와 맞은 편 여자를 서로 소개 시켜준다. 곧 맞은 편 여자가 일어나 가고, 남자가 곧 자리를 뜬다. 그 둘은 자리를 뜨며 여자의 어깨를 살짝 집었는데, 여자가 반응을 보인 건 맞은 편 여자의 손길이다. 여자도 자리를 뜬다. 차를 타고 가면서 회상에 빠져든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테레즈(루니 마라 분), 그 날도 어김없이 개점을 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한 여자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 테레즈보다 족히 열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캐롤. 차림새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그것이다. 캐롤을 바라보는 테레즈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건 캐롤도 마찬가지다. 그 눈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로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일시적 선망이나 부러움일까. 


그렇게 그냥 지나갔으면 되었을 것을, 캐롤은 테레즈의 점포로 와 딸의 장난감을 구입한다. 짧은 대화에 오가는 눈빛. 계속해서 힐끗 거리는 눈빛은 그 농도가 한껏 짙어진 듯하다. 곧 헤어지는 그녀들, 그런데 캐롤이 장갑을 놓고 간 게 아닌가. 테레즈는 고민 끝에 캐롤의 집으로 장갑을 부쳐주고, 전화로 캐롤의 감사 답장을 받는다. 곧 그녀들은 만난다. 오랜 여정의 시작이다.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그렇다. 이 영화 <캐롤>은 1950년대 미국의 레즈비언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그녀들의 생활로 봐선 그런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다. 캐롤은 10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인데, 딸의 양육권이 최대 걸림돌이다. 그녀에게는 '애비'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애비와의 절친한 관계를 좋지 않게 보고 있는 듯하다. 테레즈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녀의 의사는 상관 없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낌새다. 하지만 테레즈는 그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 만은 않다. 그를 엄청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 듯하다. 


1950년대, 캐롤과 테레즈, 여자 대 여자. 이 둘은 서로 첫눈에 '반했다'. 곧 '사랑'에 빠진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런데 나는 왜 위와 같이 말하고 있는 걸까. 왜 위와 같이 강조하고 있는 걸까. 그건 그들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흔하게 접하는' 형태는 이성 간의 사랑이다. 그런데 이들은 동성 간의 사랑이 아닌가. 그것도 60여 년 전. 참으로 어렵고 조심스럽다.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렵고 조심스러운 게 사라진다.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 처음인 테레즈는 캐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 같이 점심 먹을래? 네. 우리 집에 한 번 놀러 올래? 네. 너 네 집에 한 번 놀러 가도 돼? 네. 우리 같이 여행 갈래? 네. (세상이 던질 편견 가득한 눈에 대한) 고민도 없고 (캐롤을 향한 순수한 사랑 또한) 막힘이 없다. 그런 그녀의 결정적 한 마디. 남자친구에게 말한다.


"동성 간의 사랑이 아니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사랑인지, 일탈인지, 그럼에도 아름답다


고민도 없고 막힘도 없는 테레즈. 반면 캐롤은 다르다. 집안일이 얽히고 설켜 있다. 남편, 딸, 그리고 애비. 그녀의 남편이 계속해서 애비를 걸고 넘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캐롤이 테레즈와 가깝게 지내고 난 후, 급기야 남편이 캐롤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이유로 캐롤에게 딸의 양육권 포기를 강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상황을 미루어보아 캐롤은 동성애적인 기질이 있고, 남편은 그 기질을 비도덕적인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미국의 생각에 다름 아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캐롤과 테레즈. 캐롤은 남편에게 뒤통수를 맞고 테레즈에게 여행을 권유한다. 함께 떠나는 여행을. 테레즈는 역시 고민도 없이 '네, 같이 가요'. 그들은 여행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서로를 원하고 서로를 지극히 생각하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그런데 생각해 봐야 한다. 아니, 그들은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과연 사랑인지.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각각 남편과 남자친구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 또한 그들을 알아줄 마음이 없으며 마음도 이야기도 통하지 않고 공감도 전혀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만난 '영혼의 짝'. 성별의 문제를 제쳐두고, 그건 사랑이 아닌 일탈과 가까운 그 무엇일 수 있다. 결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결론을 어떻게 짓느냐에 달라질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영화를 보고 난 후 남는 감정은 '아름다움'이 주를 이룬다. 둘의 격정적 장면도 나오지만, 그마저도 아름답다. 그 덕분인지, '남녀 간의 사랑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라는 새로운(?) 명제가 머리 속에 자리 잡았다. 이 변화 혹은 깨달음은 인생의 크나큰 변화 혹은 깨달음이 될 수 있다. 부디 그들의 사랑이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부디 그들이 서로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캐롤이 자신을 되찾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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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레즈비언, 비도덕, 사랑, 아름다움, 여자, 일탈, 캐롤
  • BlogIcon MJstory
    2016.03.05 16:44 신고

    그 사랑에는 캐롤이 딸을 위해 자신의 양육권을 포기한 희생도 들어있었죠~ ^^

    잘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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