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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도쿄'에 해당되는 글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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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곳에서 찾은 소울메이트, 또 다른 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2020.01.10
  • 상실, 불안, 고독으로 점철된 삶에서 사랑으로 힘내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2019.02.20
  • 고양이와 도쿄의 알쏭달쏭 산책 이야기 <고양이 눈으로 산책>(4) 2015.08.31
  • [내가 고른 책] '박진영의 공룡 열전' 그리고 '고양이 눈으로 산책'(2) 2015.07.12
  •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당대 최고의 탐미주의 문학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조우하다(6) 2015.05.01
  • [내가 고른 책]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그리고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8) 2015.04.22
  • <경성천도> 일본의 수도가 서울에 들어선다면?(3) 2014.04.09
  •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4 2013.11.23
  •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3(3) 2013.11.22
  •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2(1) 2013.11.21

낯선 곳에서 찾은 소울메이트, 또 다른 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오래된 리뷰 2020. 1.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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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소피아 코폴라, 한국 나이로 올해 50세가 된 미국 대표 여성 감독이다. 그녀는 아버지 덕분인지 태어나자마자 영화에 데뷔하는 영광을 얻었는데, <대부>가 그 작품이다. 그렇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헐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불리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이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누구의 딸도 아닌' 소피아 코폴라 말고 '그 아버지에 그 딸' 소피아 코폴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대부> 3부작에 모두 출연한 그녀, 3부에서는 최악의 연기를 펼쳐 영화 자체에 해악을 끼쳤다는 평까지 얻었다. 


그녀의 연기 흑역사는 감독으로 전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1999년 장편 연출 데뷔를 이룩한 그녀, 영화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았다 싶었을 것이다. 이후 그녀의 필모는 누구의 딸도 아닌 '소피아 코폴라' 자신만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고 평하기에 충분하다.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각본상을,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는데 공통적으로 극명한 호불호를 동반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영화 외적으로, 스파이스 존즈 감독과의 결혼 경력과 2009년 루이 비통과의 협업으로 직접 디자인한 SC 백을 출시한 것도 유명하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감독으로서 그녀의 이름을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400만 달러 정도의 소규모 자본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대박'을 터트리기도 한 이 작품은, 감독뿐 아니라 두 주연 배우인 빌 머리와 스칼렛 요한슨에게도 수많은 상을 안긴 '비평 대박' 작품이기도 하다. 두루두루 호불호 없는 완벽한 작품인 셈.


낯선 곳에서의 만남, 가까워지는 그들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미국 영화배우 밥 해리스(빌 머리 분)는 산토리 위스키 CF 촬영 차 일본 도쿄에 와 있다. 중년의 그는 멀리서도 아내와 사소한 집안일 결정을 위해 통화하곤 한다. 그런 한편 도쿄는 무료하기 짝이 없다. 해외까지 와서 힘들지 않게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사람이 그를 알아보지만 정작 진짜 그 자신은 없는 게 아닌가. 통역도 있고 보디가드도 있지만 의사소통은 없다. 그는 외롭다. 


예일대 철학과를 나온 수재 샬롯(스칼렛 요한슨 분)은 갓 결혼한 사진작가 남편을 따라 일본 도쿄에 와 있다. 어리디 어린 그녀는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학교를 나와 앞날이 창창해 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뭘 할지 몰라 불안한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다. 남편은 허구헌 날 외근에 출장을 일삼는다. 그녀를 돌보기는커녕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없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물론 일본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그녀는 외롭다. 


같은 호텔에 머물고 있던 그들,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만난다. 유일하다시피 혼자 있는 서양인이어서였을까, 서로에게 끌리기보다 서로를 알아채고 서로를 바란다. 극심한 무료함과 외로움에 그저 의사소통이 되는 상대가 반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무료함과 외로움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로를 찾고, 즐거운 만남을 갖는다.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그들, 하지만 빌은 계약에 매인 몸으로 며칠 후에 떠나야 한다. 


실존과 사랑 본질을 짚어내다


영화는 인간의 실존 본질과 사랑 본질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본질로 들어가기에 앞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외'여행'에 설렘과 기대를 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행보다 해외에 방점이 찍히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세계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지만 증폭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이 도처에 있는 것이다. 필자도 소싯적 여행 아닌 경험과 돈을 위해 호주에서 1년을 산 적이 있는데 도착 이틀만에 집에 가고 싶어 울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어려움은 참고 견딜 수 있는 종류이기에 실존까지 도달해 건드리진 않는다. 하지만, 망망대해 혼자만 있는 것 같은 두려움과 다를 바 없는 외로움이 엄습하면 나라는 심연으로 파고든다. 밖에선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진짜 위기에 닥쳤을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진짜를 알 수 있듯, 군중 속의 고독에 닥쳐 보면 진정한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밥과 샬롯이 힘들어 하는 건 외로움이 아닌 허무함 때문일 수 있겠다. 다른 듯 같은 이유로 둘 다 자신의 '위치'라는 게 보잘 것 없고 쓸모없이 느껴졌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어란 말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기나 한가, 지금까지 한 일은... 우린 실존 본질의 고민을 계속 해왔어야 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런 시간을 갖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극중 도쿄라는 곳은, 그래서 본격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완벽한 '판'이자 '장'이라 할 수 있다. 즉, 누구든 밥과 샬롯일 수 있는 건 당연하고 누구든 밥과 샬롯이어야 한다. 그들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오직 사랑, 서로가 또 다른 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제목에도 나와 있듯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전혀 사랑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사랑의 외피를 쓴 꿈 또는 일상 도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라고 보는 게 맞다. 아니, 사랑이라고 보고 싶다. 그건, 사랑이어야 한다. 인간의 본질에, 인간의 실존 본질에 가 닿으면 그곳에 있는 오직 한 가지는 사랑인 것이다. 


밥과 샬롯은 비록 생면부지에 나이 차이도 엄청나고 각자 가정도 있다. 낯선 곳에서 외롭고 따분한 시간을 떼울 말상대일 뿐일 수 있다. 그건,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인식하고 있다면 별 게 아니겠지만,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다시 없을 인연이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끌리는 인연이라면 '소울메이트'라는 철 지났지만 명확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겠다. 내가 아닌 내 안의 본질이 찾아다닌 반쪽. 소울메이트는 단순히 오랜 시간의 육체적, 정신적 교감과 만남만으론 형성되기 힘들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또 다른 나인 것이다. 


그들은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낯선 곳에서, 나를 돌아보고 진짜 나를 만나, 서로에게서 진짜 나를 발견했을 테다. 그들 간의 사랑은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애써 멀리 했던 진짜 나를 향한 위로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을수록, 서로를 찾을수록, 서로를 사랑할수록 그 시선은 나를 향한다. 고맙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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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사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소울메이트, 소피아 코폴라, 실존,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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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불안, 고독으로 점철된 삶에서 사랑으로 힘내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2.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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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포스터. ⓒ(주)디오시네마



영화를 즐겨 보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야깃거리가 있는 영화는 리뷰를 써서 소개하고 기억에 남기려고 애쓰다 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군(群)'이 형성되는 걸 느낀다. 소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좋아하는 작가군이 형성되는 것처럼, 영화는 감독군이 형성된다. 


믿고 보는 배우가 있듯이 믿고 보는 감독도 있을 텐데, 영화에서 배우에 비해 감독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기에 그냥 지나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감독군이 형성될 때 말 그대로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7년에 개봉했지만 한국에는 이제야 상륙한, 그동안 제목과 포스터, 최소한의 스틸컷과 내용 등의 단편지엽적인 정보만으로 기대를 품고 있었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이하 '도쿄의 밤하늘')도 그중 하나다. 


한국 개봉이 확정되고 찾아보기 시작하기 전엔 전혀 몰랐다. 감독 이시이 유야가 <행복한 사전> <이별까지 7일>을 연출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00년대 중순부터 꾸준히 작품을 내왔던 그의 유이한 한국 개봉작인 두 편 모두 필자가 굉장히 잘 보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도쿄의 밤하늘>을 인상 깊게 보고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상실로 점철된 삶들의 만남


상실로 점철된 청춘의 삶들이 도쿄의 하늘 아래에서 만난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일본 도쿄, 미카(이시바시 시즈카 분)는 시골에서 홀로 상경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고 아빠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낮에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걸즈 바'에서 일한다. 그녀는 연애에 대해 비관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이다. 


신지(이케마츠 소스케 분)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공사판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자신에게 알맞다고 생각하는, 한 쪽 눈이 잘 안 보이는 말 많고 책 열심히 보는 청년이다. 그는 그저 절대적 절망 없이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갈 뿐이다. 


미카와 신지는 우연히 만난다. 이 천 만 명이 넘게 사는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몇 번이고 우연히 마주친다는 건 참으로 기막힌 우연, 이를 필연으로 이어가는 건 그들의 선택이자 몫이다. 


한편, 그들은 삶은 '상실'로 점철되어 있다. 미카는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지금은 매일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미카는 친구 아닌 친구 같은 공사판 친구였던 토모유키(마츠다 류헤이 분)가 갑자기 죽는 걸 시작으로 하나둘씩 자신의 곁을 떠나는 걸 막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는 영화


이 영화는 시에서 감성을 빌려온 만큼,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기자.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쉽지 않은 원작인 사이하테 다히의 시집 <밤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푸른색이다>를 모티브로 삼았다. 시에서 감성을 빌려온 만큼, 영화는 가히 몽환적이고 이미지적이고 그래서 불친절하다. 이야기 서사가 없다시피 하고 대신 그 자리를 여러 영화적 기법과 시적 대사가 차지하니, 누군가는 보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 


반면, 누군가는 시쳇말로 '마약에 절은 것 마냥' 이 영화에 심취할 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나름의 결론까지 지어야 하는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겨도 괜찮기 때문이다. 감독의 메시지나 의도가 심오하고 현실적이기까지 하다고 해도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이 '왜' 푸른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푸른 밤하늘'을 감상하는 데 방점을 두는 것이다. 


필자는 사실, 후자 아닌 전자 타입이다. 생전 시라는 걸 거의 읽어본 적 없고, 소설도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서사의 깊이가 어마어마한 대하소설만 읽었다. 그런데, 위에서 주지했다시피 아무런 정보 없이 이런 시적인 영화를 봤으니 어떻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론까지 짓는 와중에도 나름 충분히 받아들이고 느끼고 즐겼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전반부는 도쿄 특유의 동경할 수밖에 없는 도시적 풍모와 더불어 한없이 고독하고 불안하고 단편적이고 진정성 없는 다층적 매력을 잘 표현해냈다. 그게 매력이라고 하기 힘들지라도 매력이라도 느끼게끔 말이다. '블루'는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슬픔'을 상징한다. 도쿄의 밤하늘이 항상 가장 짙은 블루라는 건 도쿄가, 도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슬프다는 것, 슬픔을 느낀다는 것...


'도쿄'를 서울로 바꿔보자. 혹은, 베이징으로 뉴욕으로 런던으로 파리로 바꿔보자. 서울은 왠지 잘 어울릴 것 같다. 다른 대도시들은? 역시 어울린다. 도시의 슬픔은 누구도 극복하기 힘든 삶과 죽음의 간극을 비정하게 담고 있다. 


죽음의 공포와 불안, 그래도 힘내요


상실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떠는 삶. 그래도 힘내라고 말한다.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장면. ⓒ(주)디오시네마



영화는, 그러나 일본 도쿄가 배경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종종 '튀어나오는' 불안들 중 '지진'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잊혀지지 않는 그 사고 그리고 사건 말이다. 인간의 태생적인 불안 중 가장 심오한 건 역시 '죽음'이다. 살면서 항시 죽음의 공포와 불안을 안고살 수밖에 없는데, 일본 도쿄라는 세계적인 대도시에는 직접적인 죽음이 함께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영화는 여러 뜻하지 않는, 의도하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죽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단순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영화는 또 한 번 더 들어가 빈곤과 단절로 방황하고 힘들어 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삶에 얹힌다. 도쿄, 청춘, 죽음의 세 키워드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삶 위에 턱 하니 주저앉아버린 형국이다. 


어찌해야 하나, 삶과 죽음이 구분 없이 명멸하는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해 살 수밖에 없이 만들어진 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그러나 사실 시종일관 굉장히 낙관론적인 비전을 내보인다. '힘내요', 여긴 도쿄지만 그래도 '힘내요'라고 말이다. 


결국 사랑이다. 죽음이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손짓해도 사랑이 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곳곳에서 이 모습을,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모습을 공감력 있게 보여준다. 그때 잊을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그래서 나아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 힘내라는 건 사랑하라는 말과 한 치의 오차 없이 같다. 삶과 죽음의 모습이 모두 같다면 불행하지만, 사랑의 모습은 모두 같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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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도쿄,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불안, 사랑, 상실, 죽음,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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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도쿄의 알쏭달쏭 산책 이야기 <고양이 눈으로 산책>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8.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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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고양이 눈으로 산책>



<고양이 눈으로 산책> ⓒ북노마드


동네에 고양이가 많은 편이에요. 하루에 한 번은 마주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고양이에게 관심이 딱히 없어서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요즘엔 고양이랑 참새가 어찌나 귀여운지 눈에 띄기만 해도 웃음이 나요. 개와는 달리 차분한 몸짓으로 쳐다보는 그 눈빛은 저로 하여금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가끔은 말을 거는 것 같아요. 안녕? 오늘도 수고했어. 


고양이는 참으로 몸이 유연해요. 골목마다 그들만의 아지트가 있겠죠. 사람의 눈에 절대 띄지 않을 곳일 거예요. 능력이 되면 한 번 따라가 보고 싶어요. 얼마나 아늑하고 포근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지내는지. 아니면 데려와서 같이 지내고 싶어요. 대체적으로 똑똑하다는 고양이랑 지내는 건, '집사'라는 말까지 있는 걸 보면 고양이 기르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울 듯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일일 것 같아요. 


일본은 대만과 함께 고양이 천국이라 불려요. 그만큼 지천에 고양이가 있고 사람들 또한 고양이를 좋아하며 자연스레 고양이에 관련된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지요. 몇몇 곳은 사람 반 고양이 반일 정도로 많은 고양이들이 살고 있기도 해요. 참 신기하죠. 어떤 동물도 그런 식으로 자체적인 모임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텐데 말이에요. 한국 고양이는 일본 고양이를 부러워할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 수준의 도쿄 산책


일본엔 고양이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고 했죠? 아사오 하루밍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가 있는데, 그녀는 고양이에 관련된 저작을 굉장히 많이 남겼다고 해요. 우리나라에는 <3시의 나>라는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1년간 매일 오후 3시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그림과 글로 기록한 책이라고 해요. 고양이에 관련된 책은 아니죠. 그녀의 고양이 관련 저작 중 유명한 건 <나는 고양이 스토커>가 있는데, 제목 그대로 고양이 스토커가 되어 골목길을 순례하는 내용이라고 하네요. 


이번에 출간된 그녀의 책은 <고양이 눈으로 산책>(북노마드)이라고 해요. 고양이 스토커인 그녀에게 고양이가 들어와 앉아(?) 함께 도쿄를 사부작사부작 누비는 내용이에요. 그리 귀엽지는 않은 일러스트와 함께 오밀조밀하게 소개하고 있어요. 도쿄를 가본 적이 있어 반가운 마음이었는데, 읽어갈수록 정반대의 마음만 들더군요. 전혀 들어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 곳으로 데려 갔기 때문이에요.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 수준의 도쿄 산책이었어요. 그리고 주(主)는 도쿄라는 도시가 아니라, 자신과 고양이였고요. 도쿄라는 도시를 다른 눈, 즉 고양이의 눈으로 새롭게 살피고자 하는 마음에 이 책을 들었다면 상당한 실망감이 들었을 게 분명해요. 비교적 친절하게 지도를 그려 놓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된 것인지 의문이 들기까지 하니까요. 후지산을 도서관보다 작게 그렸으니 말 다했죠. 다른 후지산일까요?


고양이와 도쿄의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다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건 다름 아닌 '고양이'예요. 비록 상당히 이상해서 가끔 거북하기까지 했지만, 종종 나오는 또 다른 나(?)인 고양이가 말하는 게 재밌었어요. 고양이 특유의 그 시크함과 애교, 이 정반대의 조화가 이끌어내는 시너지를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역시 고양이 스토커라고 불릴 만하더군요. 


그렇지만 내 안으로 고양이가 들어왔다는 설정은 정말 아니었어요. 판타지적인 설정을 하고자 했다면, 말하는 고양이와 함께 하는 도쿄 산책을 그리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양이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의지의 표명이었겠지만 말이에요. 그만큼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뜻이겠죠. 


고양이 눈으로 보는 세상은 잘 표현되었을까요? 나쁘지 않았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서로 맞물려 있는데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제대로 된 도시 산책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한편으로는 이게 바로 고양이 눈으로 보는 도쿄라는 것이죠. 사람 눈으로 볼 때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보이지만, 고양이 눈으로 보면 작가가 표현한 도쿄가 맞을 지 몰라요. 그런 면에서는 완벽히 표현해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전 고양이 눈으로 본 도쿄가 뭔지 잘 모르지만요. 


이것저것을 감안할 때 책 자체로 큰 메리트가 있진 않아 보여요. 에세이가 반드시 남겨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 '여운'도 거의 남아 있지 않고요. 그건 아마도 이상한 설정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문제는 '공감'에 있었던 것 같아요. 공감이 되지 않았던 것이죠. 문체가 달달하다 못해 사차원적이기 까지 한데요. 그것이 도시 산책이라는 어떤 큰 느낌의 콘텐츠에 부합되지 못하는 느낌이었어요. 도시 산책이 아니라 동네 산책이었다면 딱 알맞았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면에서는 성의 없이 보이기도 했고요. 글이 제대로 끝맺음을 못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고양이 하나 믿고 읽기엔 모자란 점이 상당하지 않나 생각해요. 고양이와 도쿄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것 같아 아쉽네요. 둘 중 하나에 힘을 실었으면 어땠을까요. 


고양이 눈으로 산책 - 6점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북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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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고양이, 고양이 눈으로 산책, 도시, 도쿄, 일본
  • BlogIcon 空空(공공)
    2015.08.31 12:44 신고

    내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게 가끔 의미있다 생각합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9.06 17:46 신고

      의미는 있겠지만, 하기 나름이죠 ㅋㅋ

  • BlogIcon 새 날
    2015.08.31 13:13 신고

    일본과 대만은 고양이 천국이군요.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고양이 지옥이 아닐런지.. 그나저나 무언가 신겐브이님 맘에 안 든 구석이 있었는가 봅니다요^^ 이도 저도 아닌 게 돼버렸나 봐요.

    • BlogIcon singenv
      2015.09.06 17:46 신고

      네~ 설정이 조금 이상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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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박진영의 공룡 열전' 그리고 '고양이 눈으로 산책'

생각하다 2015. 7.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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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박진영의 공룡 열전' '고양이 눈으로 산책'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뿌리와이파리의 <박진영의 공룡 열전>(박진영)

북노마드의 <고양이 눈으로 산책>(아사오 하루밍//이수미)


<박진영의 공룡 열전>은 과학이고, <고양이 눈으로 산책>은 에세이인 것 같네요. 


어릴 때부터 공룡을 참 좋아했던 거 같아요. 포악한 티라노사우루스, 우직한 트리케라톱스, 착할 것 같은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 등. 아직도 몇몇은 이름을 외우고 있네요~ 그래서 영화 <쥬라기 공원> 시리즈도 참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요. 요번에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쥬라기 월드>가 소위 초대박을 이어가고 있다는데요. 그에 맞춰 나온 책인 듯해요. <박진영의 공룡 열전>. 모르긴 몰라도, 유명한 공룡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 하겠죠? 재밌을 것 같군요ㅎㅎ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면 좋을 듯해요~


언제부턴가 고양이가 그렇게 귀엽더라고요! 개와는 다르게 조금은 새침한 고양이들이 왜 그렇게 예쁜지! 보자마자 막 달려들고 그랬으면 눈길이 안 갔을지도 모르겠네요ㅎㅎ 일본이야말로 고양이 천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일본 사람들과 고양이가 비슷한 느낌이 좀 있는 것 같기도? <고양이 눈으로 산책>은 고양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저자가 고양이의 시선으로 도쿄를 산책한 일상을 기록한 책이라고 하네요. 아직 감이 잡히진 않은데요. 막상 받아 보니 큰 기대가 되진 않아 아쉽네요!


다음 주 서평은 <박진영의 공룡 열전>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책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요~

 박진영의 공룡 열전

고양이 눈으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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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고양이 눈으로 산책, 공룡, 과학, 도쿄, 박진영의 공룡 열전, 에세이, 쥬라기 월드
  • BlogIcon 조아하자
    2015.07.13 22:52 신고

    안그래도 전 오늘 고양이와 관련된 동화를 구매하려다가 말았어요 ㅎㅎ

    • BlogIcon singenv
      2015.07.19 16:56 신고

      고양이,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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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당대 최고의 탐미주의 문학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조우하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5.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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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정은문고



참으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항상 뛰어다닌다. 걸어다니는 건 열정이 없는 것이고 무능한 것이며 '반역'에 가까운 것이다. 이 시대에서 변화 그리고 빠름이란 진리이자 지상 최대 목표가 되었다.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며 '빠름, 빠름, 빠름'을 외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런 와중에 '느림'을 말하고 '옛 것'을 입에 올리면 지리멸렬한 보수주의자 딱지를 맞기 십상이다.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건 당연지사이다. 지식인이라면 응당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발맞춰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옛 것이나 전통을 말하고 있나니 한심해 보일 만하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정은문고)에서 보여지는 저자 나가이 가후의 모습이 딱 그렇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그는 20세기 초 어마어마한 속도로 변하는 도쿄를 '어슬렁어슬렁' 산책한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게다(나막신 같이 생겼다)를 신고, 지팡이 대용인지 모를 박쥐우산(우산을 펼치면 박쥐가 날개를 펼친 것 같다)을 든 채. 


당대 최고의 탐미주의 문학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조우하다


나가이 가후는 당대 최고의 탐미주의 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더 유명한 건 화류계 여인을 사랑했다는 이력이다. 예술가의 기질이 다분해서 인지, 미를 탐하는 탐미주의자로서의 모습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단지 그런 모습으로만 기억되기에는 너무 아쉬운 측면이 있다. 책 한 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책이 지어진 공간적 배경은 주지 했다시피 일본 도쿄이고, 시간적 배경은 1915년 전후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동아시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 수많은 나라들의 역사에서 온갖 치욕으로 깊이 아로새겨질 시기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다시피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역사상 유례 없는 번영과 평화의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1915년을 전후한 도쿄는 철도가 개통되어 넓어졌고, 컬러 영화가 개봉하고 대형 백화점이 개장해 풍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기차역까지 들어섰다. 그야말로 추후 100년 동안 도쿄를 지탱할 것들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변혁의 시기 한복판에 탐미주의 문학가의 최고봉 나가이 가후가 살았다. 그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도쿄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변화하는 도쿄를 비판적으로, 그럼에도 소소한 것들에는 사랑을


먼저 말해두고 싶은 건 100년 전의 위와 같은 변화가 지금의 변화보다 그 폭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지금의 변화, 그 빠르기와 폭이 인류 역사 전체의 변화의 그것보다 더 하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그 변화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상태이다. 반면 19~20세기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나가이 가후도 그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저자는 변화하는 도쿄를 그리 좋게 바라보고 있지 않다. 아니, 비판적으로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장이니 다리니 건물이니 철도니 하는 현대적인 것들. 100년이 지난 지금의 서울에서도 여전히 많은 것들을 지워버리며 현대적인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전선을 잇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길가의 나무를 베고, 사랑받아온 풍광이든 유서 깊은 나무든 전혀 개의치 않고 붉은 벽돌집을 높다랗게 지어버리는 오늘날 작태는 실로 자국의 특색과 예부터 계승해온 문명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난폭한 행위다." (본문 속에서)


그러며 한편으로는 일상의 소소한 측면들을, '훅'하고 지나가 버릴 작고 볼 품 없는 것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당이니 나무니 절이니 골목이니 석양이니 하는 옛 것들. 불과 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던 것들인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어 유적 같이 되어 버렸다. 


"순수하면서도 미천하기 그지없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습관은, 남사당패의 익살스런 탈춤이나 수수께끼 혹은 에마 속 서투른 그림처럼 한없이 내 마음을 위로한다." (본문 속에서)

부디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길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편하게 사는 데에 현대 문명은 거의 모든 면에서 기여했다. 그러하기에 현대 문명을 비난하고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내가 선 이곳의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누워서 침 뱉기 격이 아닌가. 


하지만 어릴 적 소중했던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내 부모님 세대를 형성했던 것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부정하고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려는 것 또한 나를 부정하는 처사가 아닌지? 그렇다면 어느 것 하나 홀대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게 아닌지?


다른 무엇보다 슬프고 공허할 것 같다. 새로움이 뿜어내는 활기와 열정, 그것에 대한 설렘도 크게 다가오지만, 사라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못 견딜 때가 있다. 너무 그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 시선은 그런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며 대변해준다. 부디 따뜻한 감성과 날카로운 이성이,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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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空空(공공)
    2015.05.01 09:33 신고

    느릿 느릿 걸어가는 모습이 연싱이 됩니다
    뒷짐 지고 ㅎㅎ

    • BlogIcon singenv
      2015.05.03 15:39 신고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잊지 않지요!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보면서도 말이죠^^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5.05.01 23:14 신고

    우리가 너무 바삐만 가니깐..가끔은 어슬렁 거리며 주변도 돌아보고 자신도 돌아보는일이 중요할듯 싶어요.

    • BlogIcon singenv
      2015.05.03 15:40 신고

      저도 가끔은 그럴려고 하는데, 오히려 더 불안하고 초조해질 때가 있어요!

  • BlogIcon 조아하자
    2015.05.03 14:28 신고

    쩝.,.. 안바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바쁘게 살아갈 수밖엔... 안그러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니까요... ㅠㅠ

    • BlogIcon singenv
      2015.05.03 15:40 신고

      그래요ㅠ 안 바쁜 게 죄가 된 세상이에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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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그리고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생각하다 2015. 4.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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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정은문고의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나가이 가후 지음, 정수윤 옮김)

메디치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김시덕 지음)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은 에세이,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역사인 것 같아요.

보니까 공교롭게도 둘 다 일본에 관련된 책이네요. 흠흠.


일전에 도쿄를 가본 적이 있는데, 20세기 초 일본 최고의 문학가가 쓴 도쿄 산책기라고 하니 

조금 구미가 당겼어요.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왠지 모르게 귀엽지만 날카로울 것 같군요. 

에세이는 잘 안 읽지만 '도시' 에세이라서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김시덕 교수는 임진왜란 전문가 중 한 분이신데, 

이번에도 역시 임진왜란과 관련된 저서를 출간하셨네요. 아마도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시선이겠죠? 

우리나라 역사의 영원한 숙제인 '임진왜란'을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 지 개인적으로 엄청 기대됩니다. 


다음 주 서평으로 어떤 책을 고를 지 굉장히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겠는데요. 

다음 주에는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다다음 주에는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의 서평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로요~

☞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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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空空(공공)
    2015.04.22 10:08 신고

    임진왜란에 관한 여러가지 책을 읽어 보고 싶네요^^

    • BlogIcon singenv
      2015.04.26 16:25 신고

      워낙 어마어마한 사건이라 여러 책들이 있을 거예요~

  • BlogIcon 조아하자
    2015.04.22 22:19 신고

    항상 볼때마다 책을 구매하시는듯... 저는 집에 책 놓을 공간이 없어서 전자책으로 구매합니다. ㅠㅠ

    • BlogIcon singenv
      2015.04.26 16:26 신고

      아, 저는 구매하지 않아요~
      일종의 협찬을 받는 거예요^^

  • BlogIcon 늙은도령
    2015.04.23 01:32 신고

    저도 책을 많이 읽은 편이지만, 님은 정말 많이 읽나 봅니다.
    정말 부럽네요.
    제가 읽은 책들은 거의 다 전공자들이 주로 읽는 책들이라 드럽게 재미없습니다.

    • BlogIcon singenv
      2015.04.26 16:27 신고

      일주일에 1~2권 정도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 제나
    2015.04.23 12:25

    두 권 모두 리뷰해주심이....소망^^

    • BlogIcon singenv
      2015.04.26 16:27 신고

      네, 그럴려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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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천도> 일본의 수도가 서울에 들어선다면?

지나간 책 다시읽기 2014. 4. 9.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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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경성천도> 어느 군국주의자의 외침


<경성천도> ⓒ다빈치북스

제 작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중 <각시탈>이라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로 '키쇼카이 집단'(실제로 존재하는 이 집단은, 극 중에서 메이지 유신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무라이 무사들을 발빠르게 규합해 만든 극우단체로 설정되어 있다.)이 등장하는데, 이 집단은 드라마의 중반에서 '경성천도'를 주장한다. 잠시 그 대사를 옮겨본다. 


"(조선의) 경성으로 수도로 옮겨 섬나라 일본이 제국의 일본으로 거듭나야 한다."


극 중 키쇼카이 회장의 딸이 한 말이다.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비록 당시가 일제 시대였다고 하지만 일본 본토에 있는 수도인 도쿄를 조선 반도의 경성(서울)으로 옮기려는 음모였다. 이 음모가 실현되었다면 지금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복거일 지음, 문학과 지성사, 1987)의 배경처럼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드라마를 통해 이 음모를 처음 접해보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극에 극적 장치에 불과한 허구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성천도'의 주장은 80년 전 실제로 존재했었다. 


1933년, 서울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앞에는 흥아연구소라는 조직이 꾸려진다. 연구소의 소장 도요카와 젠요는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일본 제국주의 평창책의 일환으로 1급 문건을 작성한다. 이 비밀 작업은 일본의 수도 도쿄를 서울로 이전 시켜 만주와 일본 열도를 잇는 거점이자 대동아공영권의 중추로써 한반도를 영구 지배하려는 야심찬 공작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경성천도>라는 책의 서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책의 저자이자 흥아(興亞, 아시아를 흥하게 하자는 의미)연구소의 소장인 도요카와 젠요는 조선으로 건너오기 전, 일본과 해외 각지에서 교편을 잡았던 이력이 있다. 일종의 사상가였던 것이다. 


<京城遷都論(경성천도론)> 도요카와 젠요 지음, 1934 ⓒ독립기념관

그는 이 책에서 진정 자신의 나라를 걱정하며 작은 일본에서 큰 일본, 즉 대륙으로 진출해야 한다며 수도를 경성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런 류의 주장은 허무맹랑해보이며 말도 되지 않는 얘기라 치부해 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해양, 지리, 지질, 역사, 풍속, 문화, 군사, 일본 및 국제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나아가 한반도와 만주 침략의 마스터 플랜까지 제시하고 있다. 


도요카와 젠요는 체계적으로 책을 구성하였다. 먼저 일본이 할 일이 동양 평화의 보전이라 주장하면서 바다 쪽과 육지 쪽의 생명선 즉, 임시 경계선을 긋는 작업을 한다. '극동을 지배하는 자가 태평양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면서 극동이야말로 일본이 취해야 할 요충지라고 설파한다. 극동의 자급권, 자위권, 문화권을 풀어내면서 그 통합 지점을 조선 반도라고 설명한다. 


결국 그가 주장하는 것은 대륙으로의 진출이다. 하지만 대륙이나 일본 본토에 수도가 위치해 있는 것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불안전하다고 하면서, 그 중간에 있는 조선 반도의 경성(서울)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진구 황후의 신라 정벌'이야기가 나온다. 임나 일본부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알려진 사실과 다르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취하고 명나라를 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당시의 현실에서 경제적인 이유로도 대륙으로 진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일본·만주 경제 블록을 촉진할 것을 주장하면서 미국, 소비에트, 영국, 구주 대륙 경제 블록을 예로 들고 있다. 작금의 FTA가 상호 호혜를 내세우는 듯 하면서도 본질은 시장 논리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집어 삼키는 블록형 경제정책이라고 할 때,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주장한 '경성천도'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일본의 수도 도쿄의 위치와 지반, 국방 문제 등이었다. 영국의 수도 런던과는 달리 도쿄가 일본 본토 중에서도 바다 쪽에 치우쳐 있어서 적(미국)의 침입에 취약하다는 점, 도쿄가 산맥이 만나는 곳의 바깥쪽에 있는 간토 평야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지반이 화산재의 흙으로 덮여 있다는 점을 들면서 이 모든 면을 만족 시킬 수 있는 곳이 조선 반도의 경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성천도는 천황 중심의 일본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경성은 고대의 로마이며 현대의 가마쿠라이다. 정치상, 경제상, 국방상 이곳으로 천도 하여 나쁠 것이 없다. 경성으로 근거지를 옮겨 무를 연마하고, 문을 새 일본의 커다란 깃발로 삼는다면 그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경성천도> 결론 238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조선인은 4천년 동안 조선반도에 거주해 왔을 뿐 지금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적이 없다. 


일본 극우주의자의 조선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문구라 하겠다. 


몇 달 전 일본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 확정 지으면서 우리나라와 독도, 중국과 센카쿠 열도에 대해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역사의 반복성'이다. 일본은 역사의 반복성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고 있는 듯 하다. 식민 족쇄를 채우려 했던 저들의 교묘한 책동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재하다면 역사를 대하는 현재의 의미는 저감될 우려가 있다.


80년이 지난 허무맹랑한 주장이라 치부할지라도, 이런 음모가 실제 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지금도 해박하고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누군가가 계획을 획책하고 있을지 모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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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포장지기
    2014.04.09 09:36 신고

    좋은 하루 되세요..
    인사만 드리고 갑니다^^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4.10 06:36 신고

    생각만해도 끔찍...ㅠㅠ
    글 잘읽고 갑니다~~

  • BlogIcon 에바흐
    2014.04.10 07:07 신고

    내선일체. 만약, 일본에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완벽한 역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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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4

생각하다/카프카의 편지 2013. 11. 2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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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 여행 중입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평생 동안 극심한 내면 고통으로 힘들어 했습니다. 다음의 짧은 편지들에도 그런 상태가 절절히 나타나 있는데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그는 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요. 20세기 초의 찬란한 유럽의 한복판에서 그는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요. 

(참고로 저는 여행에서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묘지와 동상.

막스 브로트 앞 

[그림 엽서(레호보트 식민지). 

빈, 우편 소인 : 1913년 9월 9일]


친애하는 막스, 무자비한 불면증, 감히 손을 이마에 대지 못하겠어, 그랬다간 열 때문에 놀랄 테니까. 도처에서, 문학 그리고 회의에서 도망치고 있어, 드디어 가장 흥미롭게 되어가는데 말이야. 

프란츠



펠릭스 벨취 앞

[그림 엽서. 빈, 우편소인 : 1913년 9월 10일]


즐거움은 별로, 많은 의무, 더욱 많은 권태, 더욱 많은 불면증, 더욱 많은 두통 - 이렇게 살아가오. 그러다 바로 지금 10분 동안 조용히 빗속을 바라보고 있어요, 호텔 마당에 내리는 비를

프란츠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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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3

생각하다/카프카의 편지 2013. 11. 2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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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 여행 중입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그의 제일 친한 친구 '막스 브로트' 앞으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친구로 유명하지만, 그 자체로도 유명한 작가이자 평론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죽은 후 원고를 모조리 불태워버려 주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무시하고, 오늘날 유명한 카프카의 책들 원고를 태워버리지 않은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카프카의 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카프카는 그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보냈을까요.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감상하시죠. 수많은 편지 중 한 개를 골랐습니다.


왼쪽이 '막스 브로트' 오른쪽이 '프란츠 카프카'



프라하의 막스 브로트 앞

프라하, 1910년 3월 12일 토요일


나의 친애하는 막스, 타르노브스카에 대한 것을 이해할 수가 없네, 그 대신 비글러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겠어. 그런데 비글러의 판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들의 판단이지. 왜냐하면 그에게서 이미 여론이 시작되거든. 나를 위해서 시 두 편이 준비되어 있다는 소식은 자네의 상상 이상으로 나를 기쁘게 하네. 그러나 나는 위안이 필요해. 이제 제때 위통과 자네가 원하는 것이 시작되었네, 너무 강해서 뮐러식 운동으로 다져진 사람에게나 맞을 정도의 통증이네. 오후 내내 얼마가 되든 소파에 누워 있었네. 위장 속에다 점심 식사 대신 차 몇 모금을 담은 채, 그러고는 한 15분쯤 잠들고 깨어나서 한 것이라곤 고작 날이 저물지 않음에 화내는 일이었네. 4시 15분경에도 밝은 기운이 떠돌더라니까, 그건 그냥 단순히 그치지 않으려들었지. 하지만 이어서 날이 어두워졌지만 그 또한 좋지 않았어. 막스, 처녀들에 대해 불평하는 일인랑 그만두세, 그네들이 자네를 괴롭히는 고통이야 좋은 고통이지. 아니라면 자넨 그것을 버텨서, 그 고통을 잊게, 힘을 얻고, 하지만 나는 뭔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나를 겨냥하고 있어. 나를 겨냥하는 것이라면 더는 내 소유가 아니지. 예컨대 나를 - 이건 순전히 하나의 예인데 - 내게 고통을 주는 것이 내 위장이라면, 그렇다면 그것은 더는 내 위장이 아니라, 어떤 낯선 자의 소유물, 나를 몽둥이질함으로써 재미를 삼는 그런 자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 그러니 모든 것을 가지고서, 나는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급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에 저항하고 힘을 소모하는데, 그것은 다만 급소들을 더 잘 누르는 것이 되지. 때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져, 하늘은 아시겠지, 대체 내가 어떻게 여전히 고통을 감지할 수 있느냐 말이지, 그 고통이 내게 야기하는 그 절박함에 넘쳐서 도무지 수용할 수가 없게 되는데 말이야.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 나도 그것을 알지, 난 정말이지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고. 난 정말이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을 모르는 인간이야. 그러니까 나는 소파 위에서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네, 제때 그쳤던 밝음에 대해서 화를 내지도 않았고, 어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네. 그러나 친애하는 막스, 믿고 싶지 않더라도 날 믿어야 하네. 이날 오후의 모든 것은 꼭 그런 식으로 나열되었기에, 그러니까 내가 만일 나라면, 그 모든 고통들을 꼭 그런 순서로 느낄 수밖에 없었노라고. 오늘부터는 중단 없이 더 많이 말할걸세. 한 발의 사격이면 최선의 것일 게야. 나는 자신을 내가 있지도 않은 그 자리에서 쏘아 없애고 있네. 좋아, 그것은 비겁일 게야, 비겁은 물론 비겁으로 남겠지. 어떤 경우 다만 비겁만이 존재한다 해도 말이야. 한 경우가 여기 있네, 여기에 하나의 상황이 있어.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없애야만 할 상황이. 그러나 어느 누구도 비겁으로 그것을 없애지 않네, 용기는 비겁에서 다만 경련을 불러일으키지. 그리고 경련 중에 머무네, 걱정 말게나.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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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막스 브로트, 일본 여행, 편지, 프란츠 카프카,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 BlogIcon 에스델 ♥
    2013.11.22 13:18 신고

    막스 브로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카프카의
    책을 볼 수 있군요...ㅎㅎ
    여행 즐겁게 하시고 계시지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BlogIcon 포장지기
    2013.11.22 23:34 신고

    즐거운 여행중이시겠네요^^
    건강 유의하시기를..

  • BlogIcon Chris
    2013.11.25 07:52

    잘 읽었습니다.
    카프카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영국에서 첫 연출도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를 선택했었지요.
    자주 놀러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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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2

생각하다/카프카의 편지 2013. 11. 2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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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박 4일동안 일본 도쿄 여행 중입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방문, 댓글, 추천, 작성 등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대신 이렇게 편지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내는 편지가 아닌 '프란츠 카프카'가 보내는 편지라는 것이, 그것도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편지라는 점이 심히 마음에 걸리지만요.) 연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들을 보면서 그 애뜻함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이 워낙에 내면 세계가 심오하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면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성향이 강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작품보다도 일기나 편지, 산문, 에세이 등에서 그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고 하네요. 읽으시는 김에 이왕이면 '프란츠 카프카'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그의 연인 '헤트비히 바일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역시나 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카프카답게 '편지쓰기'에 대한 내용을 실었네요. 

"편지 쓰기란 마치 해변의 철렁거리는 물과 같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감삼하시죠.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솔


트리쉬의 헤트비히 바일러 앞

프라하, 1907년 9월 초


무엇보다도, 은애하는 이여, 그대 서신이 늦게 도착했소. 그대는 편지에 쓴 내용을 철저히 생각해봤군요. 나는 그것이 더 일찍 도착하도록 강요할 수가 없었소. 한밤중 침대에 앉아 있는 것으로도, 옷을 입은 채 소파에서 잠들거나 낮 동안에 평소보다 더 자주 집에 오는 것으로도 소용없었소. 내가 그 모든 것을 중지하고 그대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던 오늘 저녁까지 말이오. 그런데 서류함 속에서 몇몇 서류들을 만지다가 그 안에서 그대의 서한을 발견했다오. 진즉 와 있었지만, 누군가가 먼지를 터는 동안 조심하느라 서류함 속에다 넣어둔 것이었소. 

편지 쓰기란 마치 해변의 철렁거리는 물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러나 그 물 튀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아니었소. 

그러니 이제부터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읽으며, 나의 문자 대신 나를 직접 그대 눈으로 바라보아주오.

A가 X에게서 편지를 받는다고 상상해보오. 그리고 매 편지마다 X는 A의 존재를 부정하려 한다고. 그는 계속 점층법으로, 다가가기 힘든 논거, 어두운 색조로, 그 논거들을 끌어내어 어느 고도까지 이르는가, A가 거의 벽 안에 갇힌 느낌을 갖게 되고, 논거들의 결함은 그를 눈물나게 할 정도까지 만듭니다. X의 모든 의도는 처음에는 감추어져 있고, 그는 다만 자기로서는 A가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인상을 받지만 상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고 말할 뿐이오. 뿐만 아니라 A를 위로하지요. 무엇보다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A는 불만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 사실은 Y도 Z도 안다. 결국에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불만의 원인을 가지고 있음을. 그를 보면, 그의 온갖 상태를 보면, 아무도 반박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자세히 관찰하면, 심지어 A가 충분히 불만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고까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자기 처지를 X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검토하게 되면, 그는 더 살아갈 수도 없을 테니까. 여기에서 이제 X는 그를 더는 위로하지 않지요. 그리고 A는 봅니다. 열린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X가 최고의 인간이며 그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구나,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일을 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마지막 순간에조차 얼마나 선량한가,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하다니. 그렇지만 한때 불 붙은 빛은 무차별로 비친다는 사실을 망각하다니. 

닐스 리네에서 인용한 이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그리고 행복의 성이 없는 모래는 또. 물론 그 문장은 옳지만, 그러나 흐르는 모래에 대해서 말하는 이가 옳은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모래가 흐르는 것을 보는 사람은 성 안에 있지 않고, 모래는 또 어디로 흐르는가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겠소? 어떻게 나 자신을 응집시켜야겠소? 나 또한 트리쉬에 있으며, 그리고 그대와 함께 광장을 건너고 있소. 누군가가 나와 사랑에 빠졌고, 나는 이 서한을 받고, 그것을 읽는데, 이해하기가 어렵소.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겠어요. 그대 손을 잡고, 내달으며, 다리 쪽으로 사라지오. 오 제발, 그것으로 충분하오. 

나는 프라하에서 그대를 위해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소, 10월 1일 이후 나는 아마 빈에 있을 테니까요. 용서를 비오. 

그대의 프란츠 K.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솔)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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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에스델 ♥
    2013.11.21 15:23 신고

    해변에 철렁거리는 물과 같다는 표현이
    너무 멋집니다.^^
    행복한 여행길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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