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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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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이 지나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5편

생각하다 2017. 12. 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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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챙겨보자


올해에도 역시 참으로 많은 영화가 제작되어 우리의 눈과 귀와 머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영화를 이루는 기술, 스토리, 메시지 등에서 이제까지 축적해온 게 너무도 많아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들은 여지없이 그 생각을 무너뜨린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영화를 영상으로만 만들어진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영상은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야흐로 이야기의 시대, 영화도 이야기가 최소한의 기본이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영화에서 영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적으로 절대적이다. 그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게 아닌, 그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난 후 보이는 것들이다. 


올해 영화 이슈를 간략히 훑어보자. 역시 '송강호',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 운전사>가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중간에서 포기한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인데, 그럼에도 단연 으뜸의 흥행력을 보여주었기에 박수를 보낸다. <범죄도시> <청년경찰>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소위 대박을 친 경우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큰 즐거움과 큰 돈을 안겨준 신드롬의 주인공들이다. 


반면, 역대급 망작과 최고 기대작의 실패도 올해 영화계를 풍성(?)하게 했다. 김수현 주연의 <리얼>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지만 엄청난 논란에 휩싸여 역대급 '망작'으로 최악의 흥행과 함께 마감했다.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초호화 캐스팅과 엄청난 제작비로 2017년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지만,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 왜곡 등의 논란에 휩싸여 흥행 실패를 맛보았다. 역시 신드롬의 주인공들이다. 


올해가 가기 직전, 시간을 어떻게든 내서 봤으면 하는 작품들이 여기에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식견 하에 추려진,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다. 개중에는 누구나 알 만한 흥행 작품도 있고, 많은 인기를 끌지 못한 '듣보잡' 작품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어디에 내놔도 제 몫을 충분히 할 좋은 작품들인 건 분명하다. 


* 5편에 속하지 못했지만, 2017년이 지나가도 한 번쯤 봤으면 하는 2017년 작품들 10편을 추려 제목만 나열해본다. 이 작품들 또한 왠만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 <컨택트> <히든 피겨스> <겟 아웃> <지랄발광 17세> 

<프란츠> <몬스터 콜> <베이비 드라이버> <남한산성> <폭력의 씨앗>






영화 <문라이트> 포스터 ⓒ오드(AUD)


① 문라이트(Moonlight)


명실공히 2016년 최고의 작품이다. <라라랜드>를 제치고 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고야 말았는데, 그야말로 영화의 모든 이들이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영화 외적으로도 '쾌거'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한 인간의 성장을 오롯이 대면할 수 있다. 


영화는 미국이 아마도 가장 덮고 싶어 하는 부분을 들춰내고자 한다. 배경이 되는 곳은 마이애미 흑인 지구의 마약 소굴, 그곳의 작고 한 없이 힘 없는 아이 리틀. 희망도 슬픔도 없이 공허하게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런 그에게 후안은 많은 힘이 되는데, 그가 말한 '달빛 아래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빛나지'는 일종의 지침이 된다. 


성장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그에게 성장에의 길은 어둠 그 자체다. 그것도 겹겹이 쌓인. 그래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달빛 같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에 달빛이 스며들 때 전율하지 않는 이 없고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다. 성장을 함부로 논하지 말라. 성장은 파괴되고 파괴하는 어둠 속 빛의 미학이다.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② 덩케르크(Dunkirk)


명명백백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신작이다. 뜬금없이 전쟁영화를 들고 나온 그에게 의문을 품은 이들이 많았었는데, 재난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다른 차원의 전쟁영화를 선보여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저 유명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놀란은 전쟁영화를 재난영화로 둔갑시킴으로써 오히려 전쟁의 비인간적이고 무차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재난이란 예측불허하고 무차별적이며 인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영화는 재난 상황은 매우 미시적으로 재난에 처한 인간은 매우 거시적으로 그려내며, '재난'의 전형적이며 실제적인 무서움을 역설한다. 


이쯤에서 놀란이 택한 마무리는 '인간'이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재난전쟁을 버틸 수 있는 건,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숭고함이라는 것이다. 새삼 곳곳에 뿌리박혀 있는 인간성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런 세계이다. 폭력적일수록 더더욱 숭고해지는 인간성이 우리를 지켜주는 세계. 



영화 <윈드 리버> 포스터 ⓒ유로픽쳐스


③ 윈드 리버(Wind River)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을 맡아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한 테일러 쉐리던이 연출자로 데뷔했다. 그는 전작에서 여지없이 '속살'을 비추는 데 천착했는데, <윈드 리버>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인디언 보호 구역이자 끝없이 펼쳐진 설원 와이오밍주 '윈드 리버'로 가보자. 


야생동물 사냥꾼 코리는 설원 한복판에서 여인의 시체를 발견한다. 곧 FBI 요원 제인이 달려오고 공조 수사가 시작된다. 이 설원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미국의 축소판이다. 영화는 윈드 리버에 마지막 희망이 있다고 보고, 미국 그 자체인 제인이 그 희망의 키를 쥐고 있다고 보았다. 그녀가 얼마나 이 설원(자연)을 이해하고 윈드 리버(인디언)을 존중하고 그 모든 것에 공감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쉬워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단어들, 공감과 이해. 사실 그것들이 전부다. 그것들만 이행해도 세상은 한층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우리는 윈드 리버가 상징하는 막연하면서도 실질적인 '벽'을 허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다가갈 준비나 되어 있는가? 



영화 <우리의 20세기> 포스터 ⓒ그랜나래미디어


④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


영화는 나이도, 세대도, 성도, 삶의 방향이나 지침도, 생각도 완전히 다른 다섯 남녀를 통해 20세기의 면면을 보여준다. 상당한 미장셴을 앞세워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강한 스토리와 구성을 감각적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들의 소소한 서사와 20세기를 우리는 왜 보아야 하는가. 


그들의 20세기는 문자 그대로 1999년까지가 아닌 1979년까지의 시대다. 1980년대부턴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설대로 절제의 통제의 시대, 획일화된 시대로 진입한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20세기는 문화와 세대와 환경에서 비롯된 차이들이 서로 편견을 갖지 않고 인정하는 시대인 것이다. 


영화는 그런 모습들을 다양한 장치들로 보여주려 한다. 빨리 감기, 홀로그램, 미래지향적이고 몽환적인 음악들 말이다. 영화에 활기를 불어줌과 동시에 품격까지 최소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도출한다. 지나간 한 시대를 기억하기에 알맞은, 여운이 길고 짙게 나는 장치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봤으면 하는 가장 좋은 영화이다. 



영화 <빛나는>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⑤ 빛나는(光, Radiance)


일본 최고의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행간과 자간을 꼼꼼히 살피고 읽어내어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호불호가 갈린다. 그런데 이 작품 <빛나는>은 그런 단점(?)들을 해소한 느낌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아도 감동이 스며든다고 할까. 


영화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음성 해설을 쓰는 작가와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의 만남을 다룬다. 그러면서 관계와 성장과 상실의 하모니를 내보이는데, 그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개념들을 정교하게 잘 풀어낸다. 우린 그 와중에 '빛나는 순간들'을, 우리 인생에도 있을 빛나는 순간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다시 빛을 볼 수 없는 주인공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바, 옛날 어느 때 어느 순간을 그리게 되고 현재의 이 순간을 붙잡고 싶어지며 미래의 그때 그 순간을 기다리게 한다. 올해의 마지막을 수놓은, 수놓을 아름다운 영화 <빛나는>. 2017년의 마지막 빛나는 순간에 이 영화가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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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덩케르크, 문라이트, 빛나는, 영화, 우리의 20세기, 윈드 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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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게 이기는, 비인간적인 전쟁의 한 가운데 <덩케르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7.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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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


나오는 작품마다 끝없는 기대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그에 충족하는 작품을 들고 나오는 몇 안 되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덩케르크>.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란은 작가주의 감독이 아니다. 분명 그의 영화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명명백백하게 담겨 있지만, 많은 부분들이 영화를 만드는 이와 영화를 보는 이에게 맞춰져 있는 듯하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 중 하나로서, 놀란은 굉장히 사려 깊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에는, 특히 그가 단독으로 각본을 맡은 영화들은 사실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다. 대신 그 빈자리를 제대로 된 영화적 감각으로 채워 모자람이 없게 한다. 배경, 촬영, 음악, 음향, 편집, 캐릭터, 상황 등 영화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지 않은가. 놀란은 누구보다 잘 활용할 줄 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반드시 무엇 하나를 던진다. 절대 장황하지 않게, 아주 짧은 한 문장 정도의 물음이나 명제를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게 영화 내적일 때가 더 많기에, 우린 정확히 놀란의 '이야기'보다 '영화'에 열광한다. 그의 영화를 소비하고 향유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형태다. 


역사에 길이 남을 '덩케르크 철수 작전'


전쟁에서 '철수'는 곧 '패퇴'다. 불명예로 남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그 과정과 그 이후를 생각했을 때 정녕 위대한 철수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덩케르크>는 그의 19년 경력 동안 불과 10번째 작품이다. 동시에 <미행>과 <인셉션>에 이은 3번째 단독 각본 작품이다. 그의 필모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의 1번째 실화 바탕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전작들에서 어떤 작품에서도 비슷한 결을 찾을 수 없지만, 그나마 <인셉션>과 <인터스텔라>가 비슷하다 하겠다. 인간 존재를 훨씬 초월하는 상황에서의 인간을 그렸다는 점에서 말이다. 


한국에서라면 알 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만, 영국에서라면 모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 <덩케르크>는 이 작전을 기반으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군과 영프 연합군은 꽤 오래 대치만 한다. 그러던 1940년 5월 독일군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연합군은 독일군의 기만에 속아 프랑스 북동부 해안에 갇혀 포위당하고 전멸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다른 항구들은 모두 독일군이 점령, 덩케르크만 남은 상황이 된다. 


영화는 덩케르크만 남은 상황에서 처절한 철수작전이 시작되고 있던 시점에서 시작된다. 덩케르크에는 자그마치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자그마치 34여 만 명이 남은 상황, 어떻게 해서든 영국으로 철수해야 한다. 이제 곧 독일군의 총공세가 시작될 상황이었다. 남아 있는 이들만으로는 절대 철수가 불가능한대, 어떻게 철수할 것인가?


윈스턴 처칠 수상은 그 유명한 연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내어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에서, 또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를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성공한 직후 했다고 한다. 


놀란은 이 작전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을 게 분명하지만, 다름 아닌 이 연설에서 영화의 얼개를 얻었을 게 분명하다. 영프 연합군 보병들의 생존 투쟁을 그린 육지 해안에서의 일주일, 영국 어부들의 목숨 건 연합군 철수 도움을 그린 바다에서의 하루, 영국 공군의 독일 공군과의 필사적인 전투를 그린 하늘에서의 한 시간. 영화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바라본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다. 여기에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전쟁과 재난의 상관 관계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의 꼴을 한 재난영화다. 전쟁 자체가 재난이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재난은 전쟁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한 역수단이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덩케르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했음직한, '이 영화는 전쟁영화가 아니다. 재난영화다'. 누구보다 전쟁영화를 많이 봤다고 자부할 수 있는 필자의 눈에도 완벽한 재난생존영화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전쟁'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제해 눈에 보이고 예상이 가능한 위협을 주는 상황 하에 놓인 여러 인간 군상을 말하고자 한다. 아니면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전쟁' 그 자체를 논하거나. 


반면 이 영화는 도무지 예측불가능하고 예외없이 무차별적이며 상황은 미시적으로 보여주지만 상황에 처한 인간들은 거시적으로 보여주는 등 전형적이고 실제적인 재난재해의 무서움을 역설한다. 보병들의 육지 해안에서의 생존 투쟁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데, 오히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재난재해가 아닌 전쟁이 아닌가 싶다. 전쟁을 수단으로 재난을 보여주고, 다시 재난을 역수단으로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처한 말단 병사들의 생각(집에 가고 싶다)과 행동(그저 살고 싶을 뿐)이 재난재해에 처한 사람과 똑같다고 말함으로써, 전쟁의 비인간적이고 무차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영국의 일반인 어부가 목숨을 걸어가면서 지옥이 펼쳐지는 덩케르크로 향하여 '아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쟁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는 데 크게 작용하고 있다. 


너무나도 휴머니즘적인 요소들의 향연, 자칫 감상적인 전쟁으로서의 역주행 가능성을 놀란은 한스 짐머의 음악으로 완전히 급반전 시킨다.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귀는 물론 가슴을 꾸준히 묵직하게 짓누르는 음악으로 생존 투쟁과 죽음의 한복판의 전장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는 전쟁의 한 가운데다'라는 걸 깊이 새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음악들, 이 영화의 태반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인간적인 전쟁을 이기는 건 인간적인 숭고함


결국 '인간'이다. 가장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인 전쟁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숭고함을 더하는 인간이란... <덩케르크>를 보면 알 수 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전쟁의 비인간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인간 존재를 부각시키고자 한 게 <덩케르크>의 목표인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철수만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이름 없는 연합군 병사들의 겉모습과 툭툭 던지는 말엔 한없는 자기혐오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 그들은 자타공인 패전병이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군은 총소리, 대포소리, 폭탄소리로만 대변될 뿐 그 모습조차 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재난재해에 빗댈 정도의 비인간적이고 무차별적인 전쟁의 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처참할 정도로 힘없는 연합군에 반해 당시 최강최악의 힘을 자랑하는 독일군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에서 철수하는 자의 비참함과 살고 싶어하는 자의 비애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극대화된 모순의 자장 안에서 '철수'가 '패퇴' 아닌 '생존'으로 이어진다. 곧 '감성'이 '이성'으로 '감성적인 승화'를 이룩하는 순간이다.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 생존 투쟁을 한 이들이 아닌 덩케르크에서는 볼 수도 없는 이들이다. 그런 사실상의 사면초가 상황에서 살아 돌아온 건 위대한 승리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면면들까지도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친절하다면 친절하게 보여준다. 비인간적인 전쟁을 이기는 건, 더욱 비인간적인 무기와 역시 철두철미하게 비인간적인 작전이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숭고함이 아닌가. 영화는 그런 인간성들을 곳곳에 뿌리째 박아 놓는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그 뿌리들은 육지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수많은 이들을 생존으로 이끈다. 영화를 보고난 후 한동안 우리의 오감은 오롯이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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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생존, 인간, 재난, 전쟁, 제2차 세계대전, 철수, 크리스토퍼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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