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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서양 음악 사조

[서양 음악 사조] 근현대 음악 19세기 말, 낭만주의 음악이 저물고 서양 음악 사조는 음악사적 개념에 바탕을 둔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무슨 무슨 주의나 파 음악이 사라지게 된 것이고, 음악에도 문화역사적 의미의 구분이 사용됩니다. 문화역사적으로 근대는 자본주의와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19세기 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는 통상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구분되죠. 서양 음악 사조도 이 문화역사적 구분을 차용합니다. 제1차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현대 음악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낭만주의 음악이 저물기 시작한 19세기 말에서 제1차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사이를 근대 음악이라고 통칭하곤 합니다. 이 현대 음악의 시작을 알린 인물로 흔히 '쇤베르크'를 뽑습니다. 쇤베.. 더보기
[서양 음악 사조] 낭만주의 안에 꽃핀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은 서양 음악 사조의 큰 흐름 중 하나이지만,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조류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 낭만주의 음악을 시현함에도 '고전주의'에 기초를 두는 음악가들이 몇몇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음악가로는, 흔히 '독일의 3B(바흐, 베토벤, 브람스)' 중 하나라 칭하는 '브람스'입니다. 그는 오페라 이외에 모든 분야에 걸쳐 작곡을 하였고, 독일음악의 전통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존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낭만주의 시대에서도 고전주의 음악의 작풍을 견지하였죠. 거의 동시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생상스' 또한 고전주의에 기초를 둔 음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 형식을 고수하며 프랑스 음악의 전통적 기법을 현대음악에 반영했습니다. 그는 점차 사라져가는 바로크와 고전파의 과거 작품을 연구하고.. 더보기
[서양 음악 사조] 후기 낭만주의 역시나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사는 칼로 무를 베듯 정확히 단절시키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굳이 시대를 나눠야 한다면, 후기 낭만주의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최고로 성행하던 낭만주의가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사실 당시는 예술계 전반에서 사조가 바뀌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미술계의 '후기 인상주의'는 기존의 인상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개성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후기 낭만주의'도 기존의 낭만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개성을 찾음과 동시에 근대적인 수법을 나타내려 하였다. 혁신적인 표현수단과 창작기법,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 취향이 강했기 때문에 당시 출현했던 거의 모든 음악가들이 개개인으로 파가 나눠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 더보기
[서양 음악 사조] 낭만주의 국민악파 19세기 당시, 낭만주의 음악은 독일을 중심으로 꽃을 피웁니다. 사실 당시 독일은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최강국이었죠. '국민악파'는 이러한 당시의 경향에 반하여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본 배경에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조성된 자유, 평등의 전신과 민족 해방을 목표로 하는 국민주의 운동이 있다고 합니다. 여하튼 이렇게 나타나는 국민악파는 기법상으로는 낭만주의 음악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그 이름답게 점차 민족적인 색채와 독자적인 기법을 내세우며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확고하게 파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는 주로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북유럽 등의 '비주류'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음악적으로 볼 때, 소재를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게서 찾았다고 합니다. 특히 유명한 이들이 일명 '러시.. 더보기
[서양 음악 사조] 낭만주의 전성기 흔히 '베토벤'하면 고전주의 음악 사조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고전주의 음악을 확립했을뿐만 아니라 낭만주의를 잉태하는 업적을 낳기도 했습니다. 즉, 베토벤의 전기 음악은 고전주의를 대표하고, 후기 음악은 낭만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자연스레 낭만주의가 태동합니다. 그 태동기는 저번 시간에 말씀드렸었죠. 대표적 인물로, '슈베르트' '베버' 등이 있습니다. 이제 낭만주의는 1820년 경 수많은 낭만주의 음악가들에 의해 완연히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특히 낭만주의의 환상적인 면이 각 방면에서 실험적으로 행해집니다. 예를 들어, 곡의 감정이 더욱 섬세해졌고 형식과 한계에 대한 반발은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워낙.. 더보기
[서양 음악 사조] 초기 낭만주의 음악 18세기 후반을 화려하게 수놓은 빈 고전파 음악을 뒤로 하고, 19세기에는 낭만파 음악이 유럽을 강타합니다. 한마디로 고전파 음악의 반동으로 일어난 예술 형식이죠. 그 시발점을 18세기 말엽 독일에서 일어난 질풍 노도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질풍 노도 운동은 감정의 해방을 외친 문학 운동으로, 고전주의 문학의 반동으로 일어났었죠. 그리고 낭만주의 음악의 중심에는 18세기 말엽에 발생했던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 있었습니다. 이들 혁명은 기존의 체제 및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 등 모든 것들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말죠. 계속되는 혁명으로 현실이 지긋지긋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현실이 지긋지긋할 때, 꿈과 이상을 그리곤 합니다. 이것이 고스란히 낭만주의의 기저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낭만주의는 .. 더보기
[서양 음악 사조] 고전파 3총사 서양 음악사에서 제일 뚜렷한 족적을 남긴 두 사람을 뽑으라면 단연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뽑을 것입니다. 서양 음악사의 양대산맥이자, 고전파의 양대산맥이자, 정확히는 빈 고전파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목을 3총사라 한 것은, '하이든'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와 '베토벤' 이들은 서양 고전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빈에서 주로 활동한 빈 고전파의 핵심 멤버들로, 서로 스승과 제자였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한 때 베토벤의 스승이었던 것이죠. 한편 하이든과 모차르트도 교류를 한 적이 있다죠. 고전파 음악은 대체적으로 1740년경부터 1810년경까지 주로 빈을 중심으로 한 음악을 말합니다. 고전파란 후세에 지칭된 말인데.. 더보기
[서양 음악 사조] 바로크 음악 3총사 바로크 음악은 17, 18세기의 유럽 음악을 말합니다. 원래 바로크란 17, 18세기의 미술 양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음악에 대해서도 같은 명칭을 부여하고 있죠. 바로크 음악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절대주의 왕정으로부터 계몽주의로의 이행,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 정신사적으로는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사조의 흐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사회적 상황이 몇 겹으로 겹쳐 궁정, 도시, 교회 등 세 활동범위를 기초로 하여 바로크 음악이 형성되었습니다. 바로크는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습니다. 17, 18세기 유럽의 바로크 풍은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인 질서와 균형, 조화와 논리성과 달리 우연과 자유분방함, 기괴한 양상 등이 강조된 예술양식이라고 할 수 있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