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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생존, 그리고 치즈… 한 소년의 거친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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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영화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포스터. ⓒ필름다빈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쥐라, 젖소를 충실히 길러 얻은 우유로 치즈를 만들어 먹고산다. 열여덟 살 소년 토톤은 절친 둘과 함께 매일 밤 춤추고 술을 마시며 여자를 꼬실 생각만 한다. 운이 좋으면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엄마 없이 아빠와 일곱 살 여동생 클레르가 가족의 전부다.

어김없이 친구들과 춤추고 술을 마시던 토톤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진상을 피우는 아빠를 발견하곤 집으로 보낸다. 문제는 그가 직접 운전을 했다는 것.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만다. 졸지에 고아가 된 토톤과 클레르, 토톤은 동생을 건사하려 공장에 취직하지만 오래지 않아 쫓겨난다.

와중에 알게 된 ‘콩테 치즈 경연 대회‘, 우승하면 3만 유로를 준다기에 출전하고자 고군분투를 이어간다. 하지만 치즈를 만들려면 우유가 있어야 하는데, 잠깐 취직했던 공장 주인 딸을 이용해 우유를 훔친다. 그녀가 그에게 첫눈에 반했던 것. 과연 토톤은 콩테 치즈 경연 대회에 출전해 우승까지 할 수 있을까?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토톤이라는 캐릭터

19금 프랑스 영화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는 약관 18세, 어리다면 어리고 알 만큼 아는 나이라고 해도 또 그런 나이의 소년이 졸지에 피부양자에서 부양자가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빠 말은 안 듣고 어린 여동생도 케어하지 않는, 비호감 10대 후반의 전형인 토톤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영화의 표면상 대략의 내용이다.

그러니 우울하면서도 처절한 분위기가 펼쳐질 것 같으나, 영화는 유쾌하진 않아도 상당히 밝은 분위기를 유지한다. 충분히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상황에 압도되거나 굴복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나름 원탑 주인공 토톤의 성향이 재거나 계획에 목매는 게 아니라 일단 저지르는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토톤은 상처를 받았고 무기력하며 성숙하지 못하다. 아직은 어른의 돌봄이 필요하고, 성장의 통과의례 끝에 본인이 어른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척박한 시골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소외감과 고립감이 그의 내면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제목의 첫 단어가 ‘사랑’이라는 게 눈길을 끈다. 토톤은 사랑이라는 게 뭔지 아직 알 수 없을 때 ‘사랑 따윈 사치일 뿐’인 삶을 새롭게 시작했으니 말이다. 영화가 다분히 현실적인, 처절하기까지 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한편 낭만도 잊지 않고 선보이려 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겠다.

우유에서 치즈로, 소년에서 어른으로

그런가 하면 영화에서 ‘우유’와 ‘치즈’는 토톤의 성장, 단단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과 겹친다. 젖소를 제 자식처럼 키우고 새끼를 받아 키우길 진심으로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우유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우유를 가지고 역시 끊임없는 반복과 더불어 물리적 힘, 세심함, 예리함까지 동반되는 작업 끝에 비로소 치즈가 만들어진다.

소년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 다르지 않다. 지루한 반복 와중에 습득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나이를 먹으며 몸이 어른이 된다고 해서, 진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스스로 인지하고 노력하며 좌절하고 문제를 반복하면서도, 나아가고 고치고 다듬어 가는 것이다. 토톤의 경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쳤다. 하여 어른이 될 자격을 얻었다.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건 바로 ‘돌봄’이다. 그는 이제껏 부모의 돌봄, 즉 어른의 돌봄을 받아 왔지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타인을 돌봐야 한다. 어린 여동생을 건사하는 게 당면한 과제이겠지만, 알게 모르게 그와 관련된 여러 관계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곳은 젖소라는 생명체가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생명을 돌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비호감의 전형이었던 토톤이 조금씩 호감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니, 그가 부디 자신과 타인을 구원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라는 날카로운 깨달음을 넘어서는 ‘연대’의 이유를 깨달았으면 한다. 비단 토톤뿐만 아니라 우리도 깨달아야 할, 연대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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