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영화는 토끼 사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아이들이 토끼 사냥하듯 한 친구를 몰아서 쓰러뜨리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다음 날 그 친구는 시체로 발견되고 학교에서 다른 한 친구가 용의자로 심문을 받는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용의자 친구 준(이다윗 분).
그는 학교 지하의 숨겨진 곳으로 가 죽은 친구 유진(성준 분)을 입에 올리며 졸업 축하 파티를 하려는 몇몇 친구들에게 비아냥 댄다. 그 친구들 또한 맞받아친다. 이들은 서로에게 죽은 친구를 죽인 놈은 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준은 가져온 수제 폭탄으로 그들을 위협하며 솔직히 말하라고 한다. 그러며 영화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 잘 살려내
영화 <명왕성>은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을 잘 살려 충실히 계보를 이어나간 듯 보인다. 독립영화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스토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시공간 뒤틀기이다. 먼저 현재를 보여주고, 이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법 말이다.
또한 사회 부조리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고, 관심 밖의 소외된 일들이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경우에도 눈을 돌리곤 한다. <명왕성>은 사회 부조리와 함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끝모를 경쟁에 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그리는 동시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군대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와 청소년기의 미성숙한 소통에 의한 파멸을 예리하게 집어낸 <파수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결정적으로 이들 독립영화가 추구했던 시공간 뒤틀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
준은 일반 고등학교에서 명문사립고로 전학을 왔다. 전 학교에서는 1% 안에 들었지만, 이곳에 오니 성적이 형편 없다. 룸메이트 유진은 전교 1등인데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데 과학 시간에 그와 반대되는 명왕성 이론을 주장하고 만다. 선생님이 질문한 명왕성의 퇴출 이유를 두고 유진은 당연한 듯이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제일 멀리 있고, 크기와 질량이 매우 작으며,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준은 작고 소심한 목소리지만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던진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본다면 명왕성은 퇴출일거야... 하지만 그 기준이 뭐지? 당연한듯 태양계를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는 건 옳지 않아."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그렇지만 준은 좋은 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반대한 태양계 중심 사상에 찬성하는 자기 모순적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전교 톱 10의 스터디 그룹 오답 노트. 준은 룸메이트이자 전교 1등, 그리고 스터디 그룹의 수장격인 유진에게 찾아가 오답노트를 구걸한다.
이에 스터디 그룹 아이들은 준에게 아주 악질적인 미션을 부여한다. 행인 퍽치기와 성추행격 행위, 그리고 선생님에게 복수하려는 이유에서의 수제 폭탄 제조까지.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유진은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데...
영화는 기존의 여러 학원물 콘텐츠에서 차용한 듯한 분위기와 캐릭터, 그리고 문제의식을 여기저기 잘 버무려놨다. 한 발 더 나아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데, 이는 자칫 판타지로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죄책감 없이 이를 너무나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19살 고3에 불과한 학생들이 피말리는 경쟁 시스템에 내몰려 서로를 죽이는 비극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명왕성을 퇴출시키듯, 톱 10 안에 올라온 학생을 아주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살인까지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란...
"난 19살 밖에 안 되었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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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 고발
영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는 형식을 띤다. 비록 무한 경쟁에 내몰렸다고 하지만, 거기에 어떠한 편법이 존재하지 않고 정당함을 기반으로 한다면 충분히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방법임과 동시에, 획일성과 절대성을 띄지 않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어찌 보면 당연한 본성이 꿈틀댄다. 한 번 높이 올라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테지만, 떨어져 남들의 아래로 내려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고 두렵고 아니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는 횡포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리라.
영화 <명왕성>은 그 방법으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인 살인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확실히,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인해 <명왕성>은 단순히 학원 부조리 비판 영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부조리 비판으로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7등인 준을 보고 유진이 말한다) 1등 하는 거 어렵지 않아. 너 위로 66명만 죽이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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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은 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큰 그림을 잘 그렸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직하게 끝까지 끌고 나갔다. 비록 예측이 가능하지만 문제의식 또한 잘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영화로써 가지는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왕성 퇴출 이론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단지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했고, 그래서 준이 천체과학에 특기가 있는 부분은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그리고 준이 갑자기 그리고 악질적인 미션을 수행하면서까지 오답노트를 가지려 하는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준이 아이들을 찾아가 함께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한다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유진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게 된 이유도 충분치 않다. 이 또한 준과 마찬가지로, 유진이 죽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장치 없이, 인기 절정의 출연진 없이 이 정도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앞날이 밝다는 확고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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