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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난 이상한 사람이 아냐, '쓴도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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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장. 절반가량이 '읽지 않은 책'이다. ⓒ김형욱


난 초등학생이 된 8살 때까지 한글을 떼지 못했다. 지금은 물론 당시로서도 상상하기 힘든 나이인데, 그런 내가 지금은 일주일에 적어도 2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출판사에서 편집자로도 일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당연한듯 이렇게 살고 있지만, 돌아보면 상상하기 힘든 생활 모습이고 직업 형태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졸랐나 동생이 졸랐나, 아니면 아빠가 당신의 의지로 사주셨나 기억 못하지만 처음으로 '책'이라는 걸 샀다. 한국 및 세계 위인전 세트. 정말 맹렬히 읽었다. 뭔가 읽는다는 것의 재미를 그때 처음 느낀 듯. 지금 보면 표지에 스티커가 붙여 있는데, 다 읽은 책에 표시를 해둔 거다. 그것도 '먼저' 읽은 책에. 


그렇다. 나와 동생은 경쟁적으로 위인전을 읽었다. 좋아하는 위인을 점찍어 두고는 먼저 읽고 스티커를 붙여 표시를 했다.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건 스티커 주인이 아닌 이는 볼 수 없었다. 피튀기는(?) 질주 끝에 남은 건 내가 어떤 위인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자가성찰이었다. 대신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책은 그렇게 나에겐 내용이나 콘텐츠보다 겉모양이나 물성으로 처음 다가왔다. 


그래서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책을 볼 때 내실보다 외양을 훨씬 더 보는 편이다. 책을 '상품'으로 '판매'해야 하는 입장인 출판사 직원의 입장도 입장이지만, 10여 년 전에 교보문고 인수처에서 일하며 하루에도 수백 수천 권의 책을 다뤄본 경험도 이런 나의 특이점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누군가는 책에서 텍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에 외양은 필요 없고 내실이 중요하다고 한다. 책이라는 건 읽는 게 우선이고 그럼으로써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책은 책 자체로 전부였고 전부이며 전부일 것이다. 


쓴도쿠


'읽지 않은 책'의 대표 1 ⓒ김형욱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내 돈으로 직접 책을 샀다. 내 돈이 아닌 부모님 돈이긴 하지만, 여하튼 서점에 가서 한 권 한 권 보고 싶은 책을 내 돈 주고 사는 맛은 지금도 기억날 정도이다. 짜릿했다. 그때는 호흡이 긴 책만 샀다. 위인전으로 첫경험을 해서 그런지 역사소설이 다수를 이루었다. 


동시에 그때가 시작이었다. 호기롭게 사고는 보지 않게 된 책이 속출한 건. 처음엔 그저 책이 좋아서, 다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재미있어 보이는 책만 구입했다. 다가가면 갈수록 무지막지해지는 게 책 세상이었다. 끊임없이 방대해졌지만 알지 못하는 게 너무 많았기에, 계속 살 수밖에 없었다.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거나, 반드시 읽어야 할 리스트에 올랐거나, 좋아하게 된 작가가 생겼거나 하면 책을 모았다. '책 사는 데 돈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셨던 부모님의 전폭적 지원으로. 그러다가 욕심도 생기도, 조바심도 났다. 어디가서 '책 좀 읽는다'고 하려면 누가 지은 무슨 책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가. 본격적 책 읽기를 늦게 시작했다고 느낀 만큼 남보다 더 빨리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싶었다. 


지금도 비단 책뿐만 아니라, 나는 접하는 대다수 콘텐츠를 단순 정보로 접하고 습득하고 외우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책은, 그 시작이 위인전 빨리 읽기였으니 오죽하겠나. 단순 정보로는 모자라니 약간의 추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눈앞에 항상 보이는 게 가장 좋다. 책은 그렇게 내 눈앞에 쌓여 갔다. 


사실, 이런 모습은 심하게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컵을 모아 전시하고 누구는 신발을 모아 전시하고 누구는 인형이나 프라모델을 모아 전시한다. 다. 컵은 물을 담는 목적이 있고,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목적이 있으며, 인형이나 프라모델은 갖고 놀아야 하는 목적이 있다. 책에도 읽어야 하는 목적이 있다지만 전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다. 


일본어로 '쓴도쿠(つんどく)'라고, '책을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두는 일'의 속어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딱 봐도 나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그리 좋지만은 않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 속이 좀 상한다. 그런 한편 나말고 그런 사람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해 안심이 된다. 여하튼,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안 읽는 책을 사고 있다고. 


난 읽지 않는 책을 산다


'읽지 않은 책'의 대표 2 ⓒ김형욱



결혼해서 사는 곳을 옮기기 전, 내 방은 책의 무덤 같았다. 보기 안쓰럽게 쌓여있었는데, 보다 못한 부모님이 꽤나 큰 책장을 사주셨다. 책들은 얼추 제자리를 찾았는데 그 책장마저도 금방 차버렸다. 나는 책들을 팔기 시작했다. 버리기엔 아까우니까. 추리고 추리고 추려서 팔고는 가차없이 다른 책들을 사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수백 권을 팔았지만 그보다 많은 수백 권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 


결혼해 이사를 하면서 문학 책들 위주로 들어왔다. 작디 작은 집의 거실 태반을 책장이 차지했고 이제 그 책장도 모든 자리를 책들이 채워가고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수백 권을 팔았지만 그보다 많은 수백 권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요즘은 책을 사는 걸 이전보다 많이 줄이는 편이다.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 살 책들을 장바구니에 수십 수백 권씩 모셔 놓고서. 


여전히 사는 책의 절반 가까이는 읽지 않는 책이다. '앞으로 영원히 절대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도 있고 '언젠가 한 번은 읽을 것 같은 책'도 있다. 이 책들은 안타깝게도 책의 목적인 '읽기'가 아닌 '관상'용으로 내 서재에 들어앉아있다. 그렇지만 나에게서 그 어떤 책들보다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상하게도 난 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에 더 시선이 가고 손이 간다. 심지어 어떤 기대와 설렘까지 느낀다. 


앞으로도 난 '읽지 않는 책'을 살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떤 '소설 쓰기'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어떤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산 책의 70%만 읽고 30%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난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 문구를 생각했고 생각하고 생각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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