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 읽기]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만화 <몬스터> 표지 ⓒ서울문화사



뇌리에 박혀 한 장면, 어쩌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지 모르는 한 장면, 누구에게나 그런 한 장면이 있을 테다. 나에게도 여러 장면이 있는데, 그 중 한 장면이 만화책에 관한 것이다. 여전히 만화책은(만화가 아닌 만화책이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 그 장면이 종종 생각난다.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 쯤이었나, 그때는 아직 동네에 도서대여점이 성행 중이었다. 반경 500미터 안에만 족히 5개는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당시 내가 주로 보는 장르는 학원물, 스포츠물, 판타지물 등이었다. 그야말로 그 나이에 걸맞는 장르가 아닌가. 그런데 한두 살 정도나 많은 형이, 당시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전혀 보고 싶지도 않은 장르의 만화책을 빌려가는 게 아닌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였다. 


한두 번이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우연히 계속 보게 되었다. 한두 권이 아니라 18권이나 되었으니까. 뭔가 어려워 보이고, 뭔가 수준 높아 보이는 그런 만화책. 왠지 내가 좀 수준 낮아 보여 그 형이 <몬스터>를 빌려갈 때면 난 기다렸다가 한참 뒤에 빌려가곤 했다. 내가 <몬스터>를 보게 된 건 스무 살이 넘어 어른이 되었을 때다.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몬스터>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내가 접한 모든 콘텐츠 중에서 가장 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내가 읽는 그의 작품은 <파인애플 아미> <마스터 키튼> <몬스터> <20세기 소년> <플루토> <빌리 배트>, 즉 국내에 나온 그의 작품 대부분을 접한 것이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마스터 키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몬스터>.


내용은 굉장히 미드스럽다. 안 그래도 미드로 제작 중에 있다고 하는데, 언제 나올지는 미지수다. 일본 국적의 독일의료계 신성 텐마는 천재뇌외과의사로 명성이 자자하다. 병원장 딸과 연애도 하고 있는 바, 차기 병원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는 병원 정치에 발을 내딛고 있기에 온갖 술수에 희생양이자 앞장이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논문을 병원장 이름으로 내고, 터키인보다 오페라 가수를 살리는 게 우선이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던 찰나 사건이 터진다. 망명 온 동독의 고문 가족이 피살당한다. 부모는 죽고 쌍둥이 아이들은 살았지만 남자 아이가 머리에 총상을 입어 중태에 빠진 것. 텐마는 이 아이의 담당으로 배정되지만, 뒤이어 실려온 시장의 담당으로 다시 배정된다. 고민하는 텐마, 결국 그는 병원장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를 살려낸다. 반면 중요한 인물이었던 시자은 죽고 만다. 텐마는 곧바로 치프 자리를 빼앗긴다. 


살려놓은 아이 '요한' 앞에서 병원장과 끄나풀들의 죽음을 간절히 바란 텐마, 며칠 뒤 거짓말처럼 병원 고위층이 한 자리에서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고는 감쪽같이 사라진 요한과 여동생 안나. 새로 부임한 병원장은 텐마를 외과과장에 앉히고, 그렇게 10년이 흘러간다. 어느 날, 우연한 사건으로 텐마는 자신이 살려낸 요한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일삼는 괴물임을 알고 그를 죽이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는 길을 나선다. 아울러 그는 연쇄살인사건의 중요참고인 혹은 용의자로 수배된다. 


이 만화의 무궁무진한 포인트와 등장인물들


이 만화의 포인트는 무궁무진하다.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쫓기는 천재외과의사, 그는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은 둘째치고 자신이 살려낸 괴물을 죽이고자 외로운 길을 떠난다. 그가 쫓는 괴물 요한의 정체는? 그의 쌍둥이 여동생 니나와의 접점은? 이 괴물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격인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괴물, 즉 피해자인가.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까도 까도 끝없이 까지는 양파처럼 이 만화에는 수많은 포인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나하나가 인간 군상의 개개인을 상징하고 있는 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캐릭터가 없다. 결국 모든 게 괴물 요한이라는 포인트로 수렴되지만 모두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공감이 간다. 


요한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괴물, 그뿐이랴? 그는 궁극의 혼란, 궁극의 파괴, 궁극의 고독을 원한다. 그런데 그에게 가까이 갈수록 슬픔을 느낀다. 그것이 과연 그가 원하는 것일까. 그가 원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 부분이 이 이야기가 가지는 매력이자 힘이다. 


'의사' 텐마가 요한을 죽이려는 건 결국 그를 '치료'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그를 찾아내어 처치하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인데,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도 치료한다. '네가 태어난 의미는 반드시 있어. 네가 살아갈 의미도 있어. 포기하지마. 희망을 가져.' 많은 이들이 요한으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삶을 포기하려 하는데, 텐마는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을 불어넣는다. 


우리가 고전 서사를 즐기는 이유, <몬스터>를 즐기는 이유


우리는 여전히 고전 서사를 즐긴다. 거기엔 인간의 전형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 서사를 변형한 콘텐츠도 부지기수인데, <몬스터> 또한 고전 서사의 변형으로도 볼 수 있다. 모든 걸 원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한 한 인간의 사투, 자신이 되살려 놓은 악을 섬멸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진 채 떠나는 한 인간의 모험, 악의 근원은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고 선의 근원은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되어 내려가는 순환. 


이처럼 <몬스터>는 서사가 가지는 힘을 잘 알고 그를 극대화시켜 내보낼 줄 아는 작가의 능력이 극대화된 콘텐츠라 하겠다. 거기에 오그라들 만하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해놓았다. 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캐릭터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소년에게, 당대 정세나 상황 설정은 장년에게 먹힐 만하다. 


이 세상에 나홀로 남게 되었을 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무얼까.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거라고 만화는 말한다. 그건 비단 진정 이 세상에 아무도 없지 않아도 가능하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는 바, 나를 아는 사람이 모두 죽으면 나는 자연스레 존재하지 않는 게 되지 않을까. 요한이 본 '종말'이 바로 그런 모습, 그가 모든 이에게 선사하고 싶은 바도 그런 모습. 


'세상이 만들어낸 슬픈 몬스터', 요한에게도 통용되는 말일까. 그가 가진 몬스터의 요소 중 하나일뿐, 온전히 설명하는 요소는 아닌 것 같다. 우린 이 만화에서 '몬스터'보다 '인간'에게 눈길이 갈 것이다. 몬스터의 슬픔보다 인간의 희망에 기대를 걸게 될 것이다. '포기하지마'라는 전언이 깊이 새겨질 것이다. 그 전언이 몬스터도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는 큰 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린 그런 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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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마스터 키튼>


어른이 되고서야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접했고, 나의 모든 콘텐츠 리스트 중 최상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중에 특히 <마스터 키튼>은 특별하게 남아 있다. <마스터 키튼> 표지 ⓒ대원씨아이



만화책을 처음 보기 시작했던 중학교 2학년, <미스터 초밥왕> <더 파이팅> 등이 주는 '노력이 모든 걸 압도한다' 식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드래곤볼> 류의 비현실적인 소년 만화는 조금 뒤에 받아들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콘텐츠를 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재미'와 '감동'이 된 게 말이다. 무엇보다 캐릭터에 나를 이입할 수 있는 걸 원하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만화가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오랫동안 나의 만화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다. 심각하고 우울하며 재미와 감동과는 거리가 먼 듯한 그의 만화에 관심을 둘리 만무했다. 다 때가 있는 걸까. 어른이 되고서야 그의 만화를 접했고, 나의 모든 콘텐츠 리스트 중 최상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마스터 키튼> <몬스터> <20세기 소년> <플루토> 등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었고, 소설도 이런 소설을 접하기 힘들었다. 그중에 특히 <마스터 키튼>은 특별하게 남아 있다. 


최고의 자리에 있던 그에게도 '꿈'이 있다


<마스터 키튼>은 히라가 키튼이라는 영국인과 일본인 혼혈 보험조사원의 활극을 다룬다. 세계 최고의 보험사인 로이드에서 일하면서, 파트너 다니엘 오코넬과 자체적으로 보험조사회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매 에피소드마다 완결성을 갖는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로, 심리 추리 스릴러가 주를 이루는 그의 만화 중에서 그나마 가볍게 볼 수 있다. 


키튼은 굉장히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세계적인 명문 옥스퍼드 대학교 고고학과를 졸업했다. 학생 시절에 옥스퍼드 최고의 미인과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파경을 맞아 이혼하고 만다. 그는 군대로 도망간다. 다름 아닌 SAS(영국육군특공대), 세계 최고 최악의 특수부대다. 키튼은 그곳에서 서바이벌 교관으로 있었다. 한편 포클랜드 전쟁과 이란대사관 점거사건에서 부사관으로 활약한 경력도 있다. 그야말로 '전투의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을 하든 '최고'의 자리에 있던 그이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다. 고고학자. 그것도 학계에서 이단 취급을 받을 정도로 비주류인 '유럽 문명의 도나우 강 기원설'을 지지하는. 그가 위험한 보험조사원 일을 계속하는 것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할 게 뻔한 유적 발굴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대학교에 강사 자리를 얻는 게 어렵거니와, 얻는다 해도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키튼의 고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의 현실과 꿈을 되새김질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가 현실을 멀리하고 있지도 않은 바, 그동안의 경력을 살리며 목숨까지 내놓고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불가능을 꿈꾸는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체 게바라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허구와 진실, 현실과 비현실의 조화


만화는 세계 정세가 급변하는 1989년에 시작되었거니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보험조사원 일을 하는 히라가 키튼을 주인공을 내세웠기에 그야말로 스케일이 크다. 더욱이 당대 세계 정세와 유럽 역사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취재가 엄청나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여서, 단순한 만화 읽기로 완전히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세계 정세와 유럽 역사만 보면 대하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만화라는 장르 특성상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다. 그것도 이 만화를 읽는 큰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반면 주인공의 활약을 보면 누가 보아도 만화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무슨 일을 하든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헤쳐 나간다. 


그 중심이 아주 잘 잡혀 있다. 허구와 진실, 현실과 비현실이 서로의 자리를 아주 잘 커버한다. 궁금할 필요 없이 그냥 키튼을 따라 가면 된다. 정 궁금하면 찾아 봐도 되고 직접 해봐도 된다. 그것도 이 만화를 읽는 한 방법일 터, 작가가 의도했을 법하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학력과 이력, 경험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것들을 크게 생각하지 않을 뿐더러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비현실과 현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가 히라가 키튼이다. 정녕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 만화를 계속 다시 보는 이유


20년이 훌쩍 지났으며, 당시의 시대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만화. 거기에 진지하고 때때로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제 아무리 고증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만화이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굳이 만화로 이런 내용을 들여다볼 이유는 하등 없어 보인다. 역사를 좋아하고, 진지한 리얼극을 좋아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 만화에는 여타 어느 콘텐츠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주인공 '키튼', 그리고 그의 주변 사람들.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어느새 극을 이끌고 있는, 허술한 듯 허당인 듯 행동으로 믿음을 안기는,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지만 굉장히 여린 마음을 가진 캐릭터다. 특히 아이들에게 '멋진' 사람인 그다. 


3대 째 이혼의 아픔이 있지만, 그가 대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에 비해서 더 하다고 할 수가 없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픈 거다. 멋진 사람이지만 잘못도 많이 저지르고 후회도 많이 하고 아픔도 많이 있다. 이 시대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키튼은 현대인에게서 점점 사라지는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 꿈, 이상, 동심 따위들이다. 굉장히 복잡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만화를 계속 다시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거다. 어느 콘텐츠에서도 찾아 보기가 힘들다. 지독한 현실을 헤쳐나가면서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들을 지켜나가는 캐릭터가 말이다. 아마 중심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욕 먹기 딱 좋기 때문일 텐데, <마스터 키튼>은 참으로 적절하다.


얼마 전에 <마스터 키튼> '리마스터'가 출간되었다고 한다. <마스터 키튼>이 끝나고 20년 후가 배경인데, 그가 지켜왔던 것들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20년이면 모든 게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모든 게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일깨워줬으면 좋겠다. 그걸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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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봐도 봐도 재밌고 또 봐도 감동적인 콘텐츠들이 있다. 드라마, 영화, 책, 만화, 음악 등. 퇴색되지 않는 재미와 감동은 물론이고,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볼 때마다 환경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필자가 살아가면서 보고 또보고 계속봤던,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콘텐츠들을 나름 엄선해 간단히 리뷰해본다. 이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다.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 만화③-2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책들]우라사와 나오키의 대표작 3편을 뽑으라면, 단연 <마스터 키튼>(1988년 작), <몬스터>(1995년 작), <20세기 소년>(2000년 작)을 뽑겠다. 이 순서가 1980년, 1990년, 2000년대 대표 작품으로 또 연대기 순으로 나열해 놓은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순서이기도 하다.(많은 분들이 <몬스터>를 우라사와 나오키의 최고 작품으로 선택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2005년 작품 <플루토>나 지금 한창 연재 중인 2010년 작품 <빌리배트>를 최고로 뽑을지도 모른다. [마스터 키튼]

마스터키튼 ⓒ대원씨아이


'RETURN'을 제외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정식 단행본 3번째 작품으로, 1988년도에 출간되었다. 사실상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며 작가의 작풍에 있어서 과도기적 작품이기도 하다. <마스터 키튼>를 전후로 <야와라>(1987년 작), <해피>(1994년 작) 같은 밝고 유쾌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이후 <몬스터>부터 SF, 스릴러, 공포를 이용해 무거운 주제로 인간을 탐구하는 쪽으로 추구하는 바가 달라진다.


주인공 '히라가 다이치 키튼'은 일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그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옥스포드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고 SAS(영국공군특수부대)에서 교관으로 현대사에 남을 사건들에 관여했다. 하지만 그는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했고, SAS 근무 사실은 숨긴 채 간간히 대학 강의를 하며 보험조사원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혼혈인으로써의 자기정체성 극복 과제와 고고학자로써의 호기심, SAS 출신으로써의 숨길 수 없는 본능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기본적으로 보험조사원으로 전세계를 누비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위의 특성들이 곳곳에서 발휘된다.


이 만화의 재미요소는 상당히 많다. 도무지 모르는 게 없는 주인공 '마스터' 키튼의 캐릭터, 역사와 정치, 경제 등이 섞여 있는 배경, 간단없이 터지는 사건 등. 이 모든 게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지만, 키튼이라는 뼈대가 있어 흔들리지 않는다. 


[몬스터]


몬스터 ⓒ서울문화사


일본 전역에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이름을 알린 <몬스터>. 1994년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연재되는 내내 주요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어느샌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게 된다. 그는 가히 '몬스터' 같은 인기를 누비지만, 이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몬스터' 같은 작업량을 선보인다. 즉, 쉴 타이밍없이 줄기차게 작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덴마'는 일본국적으로 독일의료계의 '신성', 천재외과의사이다.(하얀거탑의 장준혁?) 그에겐 약혼녀(병원장의 딸)가 있지만 탐탁치 않다. 정치에 관심도 없고 발을 담그기도 싫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하얀거탑의 장준혁?)


그러던 어느 날, 머리에 총을 맞고 실려온 아이를 살려내게 된다. 이는 병원장의 명령을 어긴 처사였다. 그는 스스로를 위안하며 병원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약혼녀와고도 깨지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고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병원의 고위층이 모두 독살당하고, 덴마가 살려줬던 아이 '요한'과 그의 쌍둥이 여동생인 '안나'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흘러간다.


어느 날 '요한'의 실체가 사이코패스 즉, '몬스터'라는 걸 알게 된 덴마.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돌려놓기 위해 요한을 쫓는다. 그 사이 알게 되는 거대한 음모. 덴마는, 요한은, 안나는, 어떻게 될까? 숨쉴 틈 없이 진행되는 스릴러와 공포. 재미있다. 아주 재미있다.


지금 한창 미드로 제작중이라고 한다. 감독은 그 유명한 길예르모 델 토로!(얼마 전 개봉한 <퍼시픽 림>의 감독이다.) 개인적으로 미드를 그다지 챙겨보지는 않는데, 이토록 기다려질 수 있다니 놀랍다. 


[20세기 소년]

20세기 소년 ⓒ학산문화사


우라사와 나오키는 <몬스터>로 정점을 찍은 듯했지만, <20세기 소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3000만부에 다다른 판매고를 올린 진정한 정점 <20세기 소년>은 영화로까지 이어진다. 600억이 투자된 초대형 프로젝트로, 1편은 2008년 일본 6위, 3편은 일본 영화 역대 50위권 내에 포진했다. 하나의 콘텐츠가 일본 만화와 영화, 관련 콘텐츠 시장을 뒤흔든 것이다. 2000년대 초 일본을 대표하는 콘텐츠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 '켄지'는 어렸을 적(1970년대) 친구들 5명과 함께, 그 나이 때는 누구나 할 법한 "지구(세계) 멸망"에 관한 장난을 하며 "예언의 서"를 만든다. 비밀 기지를 만들고, 세계 멸망 시나리오를 만들며 놀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발단이 되어 실제가 될 줄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켄지와 친구들. 어느 날 '친구'라는 종교집단이 나타나 세계 멸망을 꿈꾸기 시작한다. 켄지와 친구들은 '친구'의 세계 멸망 시나리오가 자신들이 어렸을 적 만들었던 "예언의 서"와 동일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테러집단'으로 몰려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들은 세계를 지킬 수 있을까?


사실 이 만화에 주인공은 '켄지'이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이라고 하기엔 출현 비중이나 호감이 여타 만화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즉, 만화의 간판 캐릭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20세기 소년>뿐 아니라, 우라사와 나오키의 모든 만화에서(모든 만화를 보지 못해서 섣불리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간판 '캐릭터'는 없다. 굳이 뽑는다면 <마스터 키튼>의 키튼 정도? 다만 간판 '스토리'와 '분위기'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넘친다.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역사, 문화, 과학, 경제, 사회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의 향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스피디한 전개와 자칫 눈을 떼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촘촘하고 꽉 짜여진 스토리 라인. 거기에 비록 눈에 확 들어오는 캐릭터는 없을지라도, 그의 만화는 만화로써의 보는 재미가 있다. 보고 보고 또 보게 되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만화에는 '인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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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도 봐도 재밌고 또 봐도 감동적인 콘텐츠들이 있다. 드라마, 영화, 책, 만화, 음악 등. 퇴색되지 않는 재미와 감동은 물론이고,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볼 때마다 환경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필자가 살아가면서 보고 또보고 계속봤던,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콘텐츠들을 나름 엄선해 간단히 리뷰해본다. 이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다.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 만화③-1[우라사와 나오키]중학생 때로 기억한다. 한창 만화책에 빠져 있었던 그때, 내겐 어떤 기준이 있었다. 만화란 고로 그림체가 굉장히 좋거나(투박하거나 거칠지 않고 잘 빠지고 매끈한), 우울하지 않고 재미있고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기준말이다. 또 출판사에 대한 기준이 있었다. 당시 만화책 시장의 메이저 출판사였던, 서울문화사나 대원아이씨 또는 학산문화사까지. 그런데 어느 날, 몇 살 많은 형이 생전 처음보는 출판사에서 나온 음울한 표지의 만화책을 빌리는 것이었다. 화려하고 이쁜 여타 만화책의 표지와는 달리, 그 만화책의 표지에는 흰 바탕에 엄청 큰 제목과 엄청 큰 캐릭터의 얼굴이 장식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름 충격적이었다. 속으로는 그 형을 아니꼽게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만화책은 이후 나의 만화책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그 이름도 오색창연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였다. 

우라사와 나오키'


이 꽃중년이 바로 우라사와 나오키이다. 1960년 생으로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44살 되시겠다. 대학교때 경제학과를 전공했고, 만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소학관(일본의 유명한 대중 문화 출판사)에 찾아서 만화기자를 하게 되었다. 편집자의 권유로 1982년 소학관 주체 공모전에 'RETURN'이라는 작품을 출품해, 신인코믹부문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후 1985년 '파인애플 아미'라는 군사물 작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거즌 30년 동안 꾸준히 그리고 있다. 데뷔 때부터 시작된 히트 행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그의 작품들을 합해 전세계적으로 1억부가 넘는 판매부수를 자랑한다. 상당수의 만화가들이 한 종의 작품으로 메가 히트를 기록하고 나서 울궈먹기 식으로 연재를 이어가는 모양새와는 달리, 우라사와 나오키는 1~2년 길어야 5년마다 새 작품을 들고 온다. 그의 대단함이 묻어 나온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1982년 'RETURN'으로 데뷔한 이래 1980년대 3작품(RETURN 불포함), 1990년대 2작품, 2000년대 2작품을 내놓았다. 그리고 2010년대 1작품을 연재 중에 있다. 그 중 대표작을 뽑으라면, 개인적으로 3작품을 뽑고 싶다.(필자는 그의 8작품 중 4작품을 보았다. 지금 한창 연재 중인 <빌리 배트>는 완결이 난 후, 볼 예정이다.) 바로 1980년대의 <마스터 키튼>, 1990년대의 <몬스터>, 2000년대의 <20세기 소년>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배경, 인물의 생김새나 성격 등을 볼 때 비슷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재미를 주는 만화들이다. 그의 작품 세계가 그만큼 방대하고 다양하며, 그의 만화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가히 엄청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시간에 우라사와 나오키의 주요 세 작품을 간단히 리뷰하며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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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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