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열전] 하정우


개인적으로 '하정우'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된 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청어람



2005년, 일병 정기휴가 때였다. TV를 틀어 우연히 보게 된 게 하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현역 군인이 제대로 된 한국 군대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못해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저 상병과 병장은 미래의 내 모습일 것 같고, 저 일병은 현재 내 모습인 것 같고, 저 이등병은 얼마 전 내 모습인 것 같고...


그때 배우 하정우를 처음으로 보았다. 하정우가 분한 유태정 병장의 군대 생활과 제대 이후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며, 그의 중학교 적 친구 이승영이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맛물려 누가 진짜 '용서받지 못한 자'인가를 신랄하고 가슴 아프게 전한다. 하정우의 실생활적 면모에 기반한 연극적·영화적 연기를 두루 감상할 수 있는데, 윤종빈 감독이 중요한 역으로 나와 함께 전설적 캐미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하정우의 스크린 데뷔작은 아니다. 그는 2002년에 드라마와 영화로 데뷔해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도 역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갔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한 자>가 개봉하기 전에 이미 <잠복근무>라는 당시 메이저급 영화에 조연으로 얼굴을 알리기도 했고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와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위한 방편처럼 느껴진다. 


열일 하정우


'열일' 하정우의 한창 때 작품이자, '대세' 하정우로의 다리가 되어준 작품 <추격자>의 한 장면. ⓒ쇼박스



그는 1998년부터 데뷔를 하고 나서인 2003년까지 거의 매년 한두 작품씩 연극무대에 섰는데, 그 나이 때 배우들이 많이들 듣는 '발연기' 논란 한 번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김용건'이라는 전국민이 누구나 알 만한 배우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자기만의 클래스를 만들고자 한, 멀고 험하지만 알차고 지능적인 경력생활이다. 


하정우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윤종빈이다. 이들은 자그마치 4편을 함께 하는데, 하정우는 단연코 어느 한 감독과 그만큼의 영화를 함께 하지 않았다. '페르소나'라고 할까. 이들은 다름 아닌 대학 선후배 관계다. 둘 다 중앙대학교 출신으로 하정우는 1978년생 연극학과, 윤종빈은 1979년생 영화학과. <용서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인데, 하정우를 비롯 학교 선후배를 총동원해서 찍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 이들은 훗날 일명 '윤종빈 사단'이 되어 많은 영화를 함께 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하정우는 말그대로 '열일' 한다. 하정우 하면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먹방과 열일인데, 열일 수식어는 아마 이때부터 그 싹이 보이지 않았나 싶다. 2년 동안 그는 자그마치 단역, 조주연 가릴 것 없이 6개 영화에 출연한다. 대부분 비대중적이지만, 모든 면에서 그의 연기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8년이다. '대세' 하정우의 시작이다.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2008년 <추격자>야말로 하정우의 이름값을 수직상승시킨 영화다. 희대의 사이코패스 지영민은 2000년대는 물론 한국영화사에 남을 만한 캐릭터로, 하정우는 '능청스럽게' 연기해버린다. <공공의 적>의 사이코패스 조규환이 준 충격을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10년이 지났어도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는 그 눈빛과 행동, 그의 나이 불과 31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해, 단역 한 편과 주연 세 편을 합쳐 네 편의 영화에 출현했다. 윤종빈 감독과 함께 한 <비스티 보이즈>처럼 조금 아까운 영화도 있고, <멋진 하루>처럼 멋진 영화도 있다. 


대세 하정우


그야말로 '대세' 하정우의 한 가운데에서 흥행과 비평, 이슈 모두 훌륭했던 작품 <터널>의 한 장면. ⓒ쇼박스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하정우라는 배우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굳어진 시점이. 사이코패스조차 능청스럽게 연기해버리는, 그만의 특유한 연기 방식이 말이다. 그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사람의 모습을 띤다. 거기에 어떤 '연기적' 요소를 찾기 힘들다. 여타 연기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톤 앤 매너가 그에겐 없다. 


반면, 지극히 '연극적' 요소는 항상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내 주위에도 있는데, 연극적인 일반인 말이다. 하정우는 그 연극적 요소들을 깨알같이 잘게 부수어 연기 전반에 촘촘히 박는다. 부자연스러움은 옅어지고 신선함과 재미짐이 떠오르는 광경을 우린 목격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아니 2005년 이후 2016년까지 2014년을 제외하고 하정우는 일 년에 두 편 이상 영화에 출현하지 않은 때가 없다. 그리고 최소 한 편 이상 흥행, 비평, 이슈 등으로 한 해 영화계를 흔들 만한 메이저급 영화에 출현한다. 나열해 보자면 2009년 <국가대표>, 2010년 <황해>, 2011년 <의뢰인>, 2012년 <범죄와의 전쟁>, 2013년 <베를린> <더 테러 라이브>, 2014년 <군도>, 2015년 <암살>, 2016년 <터널> <아가씨>... 누군가는 한 편 출현하기에도 힘들 영화들이다. 그리고 올해에는 엄청난 제작비와 함께 그 만듦새 때문에 엄청난 걱정거리(?)를 안기고 있는 <신과 함께>가 대기 중이다. 


하정우 하면 다가오는 이미지가 '믿음'과 '탄탄' 등일 것이다. 탄탄한 연기에 기반한 믿음가는 영화 또는 캐릭터랄까. 그건 하정우라는 사람한테까지도 충분히 적용될 만하다. 그는 이에 부응하듯 배우라는 타이틀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하고 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종합예술인 하정우


'아티스트' 하정우로서의 작품들이다. 하정우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인이 아닌가. ⓒ하정우



영화 감독 타이틀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2013년 <롤러코스터>와 2015년 <허삼관>을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했다. <허삼관>에는 주연까지 도맡아 했다. 비록 두 작품 모두 흥행 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고 비평 면에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 도전 자체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배우 열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언제 글을 쓰고 연출까지 했을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엄연히 수많은 아트페어와 개인전까지 연 '아티스트'다. 


하정우 열일의 절정기이자 대세 하정우의 시작점인 2008년, 그는 이미 아티스트로의 길을 암중모색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국가대표급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때 2009년, 자원순환 정크아트 공모전에 작품을 기증한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데, 캐릭터의 이미지와 심리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독백과 세상을 향한 방백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며, 인간, 배우, 남자로서 스크린에서 하지 못했던 또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리라. 


그야말로 하정우를 '종합예술인'이라고 칭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배우라는 타이틀에 한정짓기에는 하정우라는 사람의 면면이 너무 방대하고 이채롭다. 연극, TV드라마, 영화, 시나리오 작가, 감독. 그리고 에세이 작가, 그림 작가까지. 그 자체로 현대 '종합예술'의 결정판으로 여겨지는 영화의 한 가운데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그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하지만 같은 길을 가는 방면을 개척해 역시 중심으로 다가가고 있는 그.


이제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그의 이름 석 자가 아로새긴 예정작들이 즐비하다. 우린 그저 즐거울 뿐이다. 열일하는 그가 부러우면서 믿음직하고, 한없이 대세인 그가 계속 대세였으면 좋겠으며, 종합예술의 경지에 오른 그가 더 멀리 오래 비상하기 위해 조금은 몸을 추스렸으면 한다. 오래된 팬으로서 갖는 아이러니이지만, 여하튼 그를 여기저기에서 꾸준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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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4등>


영화 <4등>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4등은 참 애매하다. 특히 스포츠에선 애매하다못해 잔인하다. 1, 2, 3등만 시상식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누구는 4등이나 꼴등이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4등이라서 다른 누구보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4등이 참으로 잔인한 이유다. '희망고문'이라고 할까. 


영화 <4등>은 자타공인 수영에 소질이 있지만 대회만 나갔다 하면 4등을 면치 못하는, 즉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는 소년 준호의 이야기다. 그에겐 누구보다도 그를 챙겨주고 걱정하고 괴롭히는 극성스러운 엄마가 있다. 그녀에겐 4등이 꼴등과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준호가 소질이 있다는 걸 알거니와 하필 4등이기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녀는 어떻게든 메달을 따게 해준다는 코치를 찾아간다. 


한편 준호는 왜 1등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굳이 1등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수영에 소질이 있는 건 알지만, 수영이 좋고 물이 좋은 것 뿐이다. 물에 있을 때 편안하고 좋은데, 자꾸만 1등을 하라고 하면 그건 체질에 맞지 않는다. 그래도 이왕이면 메달을 따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니 엄마 따라 코치에게 배워보고자 한다. 신기하다. 성적이 올랐다. 그런데 이 코치가 사정없이 때리는 게 아닌가. 


영화 <4등>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오로지 1등을 위해서


영화는 이처럼 세 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아들 준호를 위해서' 오로지 1등을 외치는 엄마, 역시 '준호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코치 광수,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지만 수영이 하고 싶다는 것 하나는 잘 알고 있는 준호. 코치 광수는 때려야만 몸이 체득하고 말을 잘 듣고 악이 생겨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준호는 1등하는 건 싫진 않지만(1등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맞는 건 싫다고 말하며, 엄마는 아들이 맞는 건 싫지만 맞아서 1등을 하면 나쁠 것 없다고 말한다. 


"형, 1등하면 기분 좋아요? 그런데 왜 1등을 하려는 거예요?"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걸까. 여기에 옳고 그름이 존재하는 걸까. 중요한 건 당사자인 준호의 마음일 텐데, 또 그렇지만도 못한 현실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들이 커서 제 구실을 못할까봐 걱정이다. 경쟁의 정점인 스포츠에서 순위권에 들지 못하고 어떻게 제 구실을 할 거란 말인가. 극 중 엄마의 모습에 마냥 너무하다고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 <4등>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코치 광수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그는 가해자임에 분명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유로 인해 가해를 했다. 또한 그도 피해자다. 그는 오래 전 아시아 신기록까지 이뤄낸 적이 있는 천재였다. 하지만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고,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감독에게 체벌을 받아 그 분을 참지 못하고 대표팀을 뛰쳐 나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인데, 그에겐 굳이 스승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체벌(폭력)이 되물림 되었다. 


<위플래쉬>와 <4등>


이쯤에서 1년 전 개봉해 많은 인기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위플래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악마와 같은 인신 공격과 한계를 뛰어 넘는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천재성을 끄집어내는 플래처의 방식은 광수와 비슷하다. 그리고 그 방식을 뿌리치고 그만둬버리지만, 열정과 관심을 뒤로 돌리지 못하고 자신 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끄집어내는 앤드류는 준호를 연상시킨다. 


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개인적으로 <4등>이 훨씬 유려하게 풀어낸 것 같다. 앤드류는 플래처를 뛰어 넘는 엄청난 연습으로 플래처 앞에서 보란듯이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지만, 준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습을 한다. 그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거기에 엄마와 코치가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동안이나마 수영을 그만둘 수밖에 없지 않았다면, 그렇게 수영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대표팀 감독이 광수를 체벌하고 광수가 준호를 체벌하고 급기야 준호가 동생을 때리는(체벌하는 것처럼) 장면을 보고 있자니, 폭력의 되물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독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윤종빈 감독과 배우 하정우의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면 군대 내에서의 폭력의 되물림이 두 명을 죽음으로 몰고가는데, <4등>에서는 두 명의 수영 인생을 망치거나 망칠 뻔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폭력의 되물림, 정확히는 스포츠계에서의 체벌의 일상화와 되물림 또한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어려운 문제인 아이 교육, 답은 있을까?


영화는 참으로 중대하고 풀기 어렵고 심각한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다뤘다. 도무지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차라리 아이가 없었으면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다들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막상 닥치면 누구라도 준호의 엄마처럼 또는 그에 준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4등>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엄마, 내가 맞더라도 1등을 하는 게 좋아?


영화는 소년의 훌륭한 성장담을 유려하게 풀어내며 답을 제시한다.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사자에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아이의 앞날을 걱정해 1등을 외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부모 자신들의 위신도 그 1등에 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부터 여유를 갖고 중심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영화에서 준호가 지니고 있는 '천재성'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모든 걸 떠 맡기고, "너의 삶이니 너가 알아서 해라"하는 건 답이 될 수 없다. 이것도 완전한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여유를 갖고 "한 번 해봐"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칭찬해주고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럴 때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아갈 준비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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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영화는 토끼 사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아이들이 토끼 사냥하듯 한 친구를 몰아서 쓰러뜨리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다음 날 그 친구는 시체로 발견되고 학교에서 다른 한 친구가 용의자로 심문을 받는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용의자 친구 준(이다윗 분). 


그는 학교 지하의 숨겨진 곳으로 가 죽은 친구 유진(성준 분)을 입에 올리며 졸업 축하 파티를 하려는 몇몇 친구들에게 비아냥 댄다. 그 친구들 또한 맞받아친다. 이들은 서로에게 죽은 친구를 죽인 놈은 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준은 가져온 수제 폭탄으로 그들을 위협하며 솔직히 말하라고 한다. 그러며 영화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 잘 살려내


영화 <명왕성>은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을 잘 살려 충실히 계보를 이어나간 듯 보인다. 독립영화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스토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시공간 뒤틀기이다. 먼저 현재를 보여주고, 이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법 말이다. 


또한 사회 부조리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고, 관심 밖의 소외된 일들이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경우에도 눈을 돌리곤 한다. <명왕성>은 사회 부조리와 함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끝모를 경쟁에 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그리는 동시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군대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와 청소년기의 미성숙한 소통에 의한 파멸을 예리하게 집어낸 <파수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결정적으로 이들 독립영화가 추구했던 시공간 뒤틀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


준은 일반 고등학교에서 명문사립고로 전학을 왔다. 전 학교에서는 1% 안에 들었지만, 이곳에 오니 성적이 형편 없다. 룸메이트 유진은 전교 1등인데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데 과학 시간에 그와 반대되는 명왕성 이론을 주장하고 만다. 선생님이 질문한 명왕성의 퇴출 이유를 두고 유진은 당연한 듯이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제일 멀리 있고, 크기와 질량이 매우 작으며,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준은 작고 소심한 목소리지만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던진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본다면 명왕성은 퇴출일거야... 하지만 그 기준이 뭐지? 당연한듯 태양계를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는 건 옳지 않아."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그렇지만 준은 좋은 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반대한 태양계 중심 사상에 찬성하는 자기 모순적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전교 톱 10의 스터디 그룹 오답 노트. 준은 룸메이트이자 전교 1등, 그리고 스터디 그룹의 수장격인 유진에게 찾아가 오답노트를 구걸한다. 


이에 스터디 그룹 아이들은 준에게 아주 악질적인 미션을 부여한다. 행인 퍽치기와 성추행격 행위, 그리고 선생님에게 복수하려는 이유에서의 수제 폭탄 제조까지.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유진은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데...


영화는 기존의 여러 학원물 콘텐츠에서 차용한 듯한 분위기와 캐릭터, 그리고 문제의식을 여기저기 잘 버무려놨다. 한 발 더 나아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데, 이는 자칫 판타지로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죄책감 없이 이를 너무나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19살 고3에 불과한 학생들이 피말리는 경쟁 시스템에 내몰려 서로를 죽이는 비극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명왕성을 퇴출시키듯, 톱 10 안에 올라온 학생을 아주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살인까지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란... 


"난 19살 밖에 안 되었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돼!"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 고발


영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는 형식을 띤다. 비록 무한 경쟁에 내몰렸다고 하지만, 거기에 어떠한 편법이 존재하지 않고 정당함을 기반으로 한다면 충분히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방법임과 동시에, 획일성과 절대성을 띄지 않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어찌 보면 당연한 본성이 꿈틀댄다. 한 번 높이 올라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테지만, 떨어져 남들의 아래로 내려간다는 사실 너무나 싫고 두렵고 아니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는 횡포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리라. 


영화 <명왕성>은 그 방법으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인 살인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확실히,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인해 <명왕성>은 단순히 학원 부조리 비판 영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부조리 비판으로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7등인 준을 보고 유진이 말한다) 1등 하는 거 어렵지 않아. 너 위로 66명만 죽이면 돼."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이 영화의 감독은 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큰 그림을 잘 그렸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직하게 끝까지 끌고 나갔다. 비록 예측이 가능하지만 문제의식 또한 잘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영화로써 가지는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왕성 퇴출 이론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단지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했고, 그래서 준이 천체과학에 특기가 있는 부분은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그리고 준이 갑자기 그리고 악질적인 미션을 수행하면서까지 오답노트를 가지려 하는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준이 아이들을 찾아가 함께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한다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유진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게 된 이유도 충분치 않다. 이 또한 준과 마찬가지로, 유진이 죽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장치 없이, 인기 절정의 출연진 없이 이 정도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앞날이 밝다는 확고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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