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뽑을 만한 <해피 투게더>.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이다. ⓒ(주)서우영화사



벌써 20년이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하나로 뽑을 만한 <해피 투게더>가 나온지 말이다. 1988년 <열혈남아>로 연출 데뷔를 한 왕가위 감독의 6번째 작품이자 <아비정전>으로 시작된 '왕가위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갔다. 왕가위 감독의 수많은 명작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해피 투게더>를 골라야 할 것이다. 


<해피 투게더>를 말함에 있어 또 한 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이다. 1978년 영화계에 데뷔한 이래, 1985년 <영웅본색>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1990년 <아비정전>, 1991년 <종횡사해>로 최고의 배우로 거듭났다. 1993년에는 <패왕별희>로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섰다. 앞서 <아비정전>과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로 왕가위 감독과 함께 했다. 


<해피 투게더>의 또 다른 주인공을 맡은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의 자타공인 페르소나(왕가위와 양조위는 자그마치 7편을 함께 했다)라지만, 장국영이야말로 왕가위의 진정한 페르소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1983년에 데뷔한 양조위는 홍콩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해피 투게더>가 크게 일조한 건 당연하다. <와호장룡> <적벽대전> <일대종사> 등으로 친숙한 장첸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영화팬들에겐 잔치나 마찬가지다. 


간결한 스토리, 비로소 발휘되는 감독의 능력


누구나 예측할 만한 간결하고 단편적인 스토리다. 왕가위 감독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기 위해서 일까? ⓒ(주)서우영화사



야휘(양조위 분)와 보영(장국영 분)은 홍콩을 떠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아간다. 내성적이지만 책임감 강하게 삶을 영위하려는 야휘에 반해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이기만 한 보영, 헤어졌다가 만나기 일쑤이다. 떠나간 사람은 당연히 보영일 테니, 돌아오는 사람도 보영일 테다. 그렇지만 야휘는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괘씸하지 않은가. 어느 날, 양손에 피를 흘리며 찾아온 보영을 야휘는 받아들여 극진히 보살핀다. 보영도 평소완 달리 얌전히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손이 낳은 보영은 다시 예전의 보영으로 돌아간다. 바깥으로 싸돌며 야휘를 가슴 아프게 한다. 어김없이 파국을 치닫는 모양새다. 한편, 힘들어 하는 야휘 곁에 식당에서 일하는 동료 창(장첸 분)이 살며시 다가온다. 그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며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곧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한다. 각자의 길로 말이다. 야휘와 보영은 함께 가고 싶어 했던 이구아수폭포를 함께 갈 수 있을까.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힘들어하고 위로받는 절대보편의 간결한 스토리다.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감독의 능력이 발휘된다. 왕가위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 간결한 스토리에 투영되는 당시 사회 상황,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동성애, 그리고 제목과 연결되는 영화의 주제까지.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황홀하다. 만사를 제쳐두고 그저 왕가위가 구축해놓은 미장센만 감상해도 충분할 텐데, 그 수면 아래에서 편안하게 헤엄치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행운을 만끽하다니. 정녕 '해피 투게더'다. 


동성애, 시대상, 그리고 '해피 투게더'


간결한 스토리 안에 동성애, 시대상, 관계의 메시지까지 횡행한다. 하나하나 잘 짚고 지나가자. ⓒ(주)서우영화사



가장 먼저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는 남자들의 사랑. 영화는 시종일관 세 남자 야휘, 보영, 창만 비춘다. 여자는 단 한 명이 단 한 컷에 등장할 뿐이다. 시작과 동시에 러브신과 섹스신에 돌입하는 야휘와 보영의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하는 것도 잠시, 곧 그 기시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대신 흔하디 흔한 사랑 싸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들의 동성애는 인류보편의 연애인 것이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를 많이도 봐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 받아 본다. 아마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이런 느낌을 받을 영화는 없지 않을까. 심지어 '호모 포비아'도 이 영화를 보고 기시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그건 다분히 배우들의 연기에 기댄 바가 크겠다. 특히 왕가위 감독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설득시킨 양조위는 실제 동성애자인 장국영보다 더 동성애자처럼 보였다. 


더불어 당시 시대상을 엿봐야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홍콩 영화의 상당수가 1997년 '홍콩 반환'을 주제에 덧입힌다. 1985년작 <영웅본색>도 그러하니, 예견된 큰 사건에 홍콩 사람들의 심정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1997년에 제작된 <해피 투게더>는 더 말해 무엇하랴. 야휘와 보영의 끝이 헤어짐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바, '홍콩'이라는 단일 개체의 사라짐에 대한 불안이 투영된 것일 테다. 반면 창이라는 새로운 대상이 따듯할 것 같다고 예상되는 바, 중국으로 합병되는 불안 속 희망이 엿보인다. 


'해피 투게더'라는 단어가 주는 행복과 더불어 원제인 '춘광사설’(春光乍洩)이 뜻하는 ‘구름 사이로 비추는 봄 햇살'이 주는 희망까지, 중국과 홍콩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시기에 멀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내는 왕가위 감독의 메시지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 도시와 자연, 국가와 국가까지 어이진다. 우리는 이 작고 짧은 영화에서 대서사와 맞먹는 깊고 넓은 관계의 파노라마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다!


정녕 <해피 투게더>는 영화팬들의 잔치다. 감독, 배우, 영상, 장면, 메시지, 파격, 해석 등 즐길 게 너무나도 많다. ⓒ(주)서우영화사



왕가위 감독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다름 아닌 '미장센'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돋보적인 비쥬얼리스트다. 색감과 카메라 구도만으로 장면이 보여주려는 이면까지 설명한다. 이 영화에서도 단연 압권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건 색의 대비, 흑백과 컬러다. 의도적으로 야휘와 보영의 관계를 색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이가 좋을 때는 컬러로 좋지 않을 때는 흑백으로 처리하며 영화적 기법 사용에 있어 최상의 것을 보여준다. 덕분에 더욱 풍성하게 다각도로 영화를 볼 수 있다. 


독특한 카메라 구도와 슬로우 모션 또는 스톱 모션도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한몫 한다. 정확히는 카메라 구도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라고 해야 하겠다. 구도만 바꾼다고 해결되진 않기 때문이다. 색의 대비가 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면, 카메라 구도와 연기 앙상블은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 하겠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보이는 걸로 상태를 설명하기란 정말 힘들 텐데 말이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택시 장면 두 컷이다. 영화 초반, 헤어지고 난 후 보영을 본 야휘, 반면 보영은 야휘를 못 본 듯하다. 택시를 타고 떠나버리는 보영, 그때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슬쩍 뒤를 돌아 야휘를 본다. 그때 보영은 야휘가 필요하지 않았던 듯하다. 반면, 보영이 두 손을 다쳐 야휘를 찾아가고 함께 살아갈 때다. 택시릍 타는 둘, 보영은 살며시 야휘에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이때 보영은 야휘가 필요했던 듯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있다. 당대 최고의 감독 위치에 올라선 왕가위 감독에, 당대 최고의 스타 '장국영'과 '양조위'까지. 거기에 아르헨티나 현지 로케와 동성애 소재, 홍콩 반환 정서. 잔치도 이런 잔치가 있을까 싶다. 반면 스토리 자체는 솔직히 볼 게 없으니, 자연스레 속담이 생각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해피 투게더>로 황홀경을 맛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장면, 아니 한 프레임도 놓치고 싶지 않다. 오글거리기 짝이 없는 '한 땀 한 땀 장인이 만들었다'는 어구를 다름아닌 이 영화에 쓰고 싶다. 앞뒤 장면과의 연계를 무시하면서도 오직 최고의 한 장면을 추구하는 '왕가위 스타일'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그렇지만 왕가위 스타일에 함몰되지 않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왕가위 스타일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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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넘어 세계적인 비쥬얼리스트로 손꼽히는 왕가위 감독. 그는 특유의 미장셴(영화에서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연출가가 배열하는 작업)으로 독보적인 영상미학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1990년 <아비정전>에서 시작해 2000년 <화양연화>로 끝나는 1990년대의 왕가위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당시 영화팬들을 둘로 나눠본다면, 왕가위의 세계에 속해 있는 영화팬들과 그 밖의 있는 영화팬들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주로 각본 작업을 하다가 1987년 <열혈남아>로 데뷔한 이후 1990년 두 번째 작품인 <아비정전>으로 홍콩금상장영화제를 석권하며 홍콩영화계를 평정한 그였다. 이후 그는 1997년 <해피투게더>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정점을 찍는다. 


한편 양조위는 20대 초 약관의 나이로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주연을 꿰찬다. 이후 1980년대 후반 수십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실력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1990년 <아비정전>으로 왕조위와 조우한다. 소위 '대박'을 터뜨리며 win-win한 두 사람. 양조위는 이 인기가 반영된듯 1991년 5편, 1992년 6편, 1993년 7편, 1994년과 1995년 4편씩 주연을 맡는다. 1980년 후반에 엄청나게 영화를 찍었던 주윤발의 뒤를 이은 듯한 느낌이다. 


왼쪽이 왕가위, 오른쪽이 양조위


왕가위와 양조위는 1994년 두 편의 영화 <동사서독>, <중경삼림>으로 다시 조우한다. 이 두 작품은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전혀 촌스럽거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세련된 작품들이다. 그야말로 왕가위의 미장셴이 100% 담겨져 있다. 양조위는 이런 왕가위의 미장셴에 가장 적합한 배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바꿔 말하면, 양조위는 그 명성에 비해 자신만의 색깔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야만 왕가위 특유의 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여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양조위는 오랫동안 무던히도 사랑받는 배우가 되었다. 


이 둘은 1990년대 왕가위 전성시대 때의 대표작품을 합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도 명작으로 뽑히는 <2046>과 최근 개봉했던 <일대종사>를 함께 했다. 또한 2002년 왕가위가 제작한 <천하무쌍>의 주연을 양조위가 맡았으며, 2000년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서 함께 주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아비정선, 1990>





<동사서독, 1994>





<중경삼림, 1994>





<해피투게더, 1997>





<화양연화, 2000>





<2046, 2004>





<일대종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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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4회에 걸쳐 살펴보니, 중국 영화는 그 본격적인 시작이 불과 몇 십년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 전에는 나라의 정치적 강압 아래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움츠려서 활짝 꽃피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영화 시장을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영화계를 보고 있노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높이 비상할지 기대해보며 대륙 영화는 아니지만 중국의 문화권에 속해있는 홍콩과 대만의 영화에 대해 알아보겠다.


홍콩영화


1896년 뤼미에르 촬영 팀이 홍콩에도 오면서 주로 영화 상영을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홍콩의 영화는 1909년 아시아 영화사의 단편인 <옹기의 하소연>, <베이징 오리구이 도난사건>이 상영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20년대에 탄압을 피해 도망 오게 된 상하이의 좌익 예술가와 활동가들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그렇게 상하이의 영향 하에 종속된다. 1930년대 일본의 침략과 내전으로 상하이의 영향으로부터 독립되면서 국제적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홍콩의 주인이 된 일본에 의해 주로 오락영화만 제작되어진다. 그러던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원래의 위치를 찾게 된 홍콩 영화. 그것도 잠시. 국공내전으로 인해 또 다시 좌익들의 피난처가 되고 만다. 1949년 중국대륙에 인민공화국이 세워지고 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를 이용한다.



리 샤오룽(이소룡)



전통과 서구를 동시에 지향하였으며 상업적 성공이 최우선이었다. 1970년대 리 샤오룽(이소룡)의 출현으로 무협영화가 대성공을 거둔다. 비록 단순한 줄거리에 빈약한 내용이었지만 화려한 볼거리로 서구 관객을 매료시킨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도시 영화로 또 다시 대성공을 거두며 홍콩 영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이후 미국 영화학교 출신 영화감독들은 홍콩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영화를 제작한다. 그 당시의 홍콩 아방가르드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 홍콩 고유의 정체성, 중국 반환 후의 홍콩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고 고민하며 영화를 만든다. 과연 홍콩 영화가 과거 7,80년대 같은 성공과 명성을 얻을 수 있을지 그 귀추를 지켜볼 일이다. 대표적인 감독들로는 쉬안화, 팡위핑, 쉬커(서극), 왕자웨이(왕가위)가 있고, 이들 중 왕자웨이(왕가위)는 <중경삼림>, <화양연화>, <동사서독>, <일대종사> 등의 영화로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둔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



대만영화


대만영화의 경우는 1985년 일본에 할양되면서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사실상 1901년부터 시작된다. 1901년 11월 17일 타이베이에서 일본인 사진작가 타카마쓰 도요지로가 돌린 영사기가 대만영화의 효시이다. 하지만 1940년대까지 일본의 전쟁 선전 영화만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사이의 영화에 대해서는 논할 가치가 없다. 


1945년 일본이 항복 하면서 대만영화는 새롭게 시작된다. 대륙에서의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온 장제스에 의해 반공 영화가 제작되었고 1960년대에는 경제 발전으로 인해 상업 오락 영화가 만들어졌다. 1970년에는 그런 상업 오락 영화가 인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상업화와 예술, 주제 설명의 제약으로 인해 점차 할리우드 영화가 부상하게 되었다. 1975년에 장제스가 사망하고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1982년을 기점으로 예술영화가 붐을 일으킨다. 1988년에는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도 사망을 하고 대만영화는 그들의 고유문화와 현실로 눈을 돌리게 된다. 



리안 감독



과연 대만영화의 미래가 어찌될지 궁금하다. 그들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할 것인지 이대로 서구적 스타일에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 영향 하에 들러리로 전락할 것인지. 중국과의 관계가 그들 미래의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리안, 허유샤오젠, 양더창 등이 있으며, 이들 중 리안 감독은 세계적인 감독으로써 할리우드까지 진출하여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음식남녀>, <와호장룡>, <색계>, <헐크>, <라이프 오브 파이> 등의 대표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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