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선한 이웃>


<선한 이웃> 표지 ⓒ은행나무



민주화 30주년의 2017년 6월,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시점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올해 6월 참으로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민주화 영령들이 불려 나왔다. 그중엔 당연히 소설도 있는 바, 이정명 작가의 <선한 이웃>(은행나무)도 그중 하나다.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선과 악의 대립 또는 선과 악의 모호함 등의 소재, 이정명이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픽션적 뒷이야기들. 


세종의 한글 창제 뒷이야기를 집현전 학자 연쇄살인 사건으로 풀어내고,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과 관계의 뒷이야기를 추리적 기법으로 풀어냈으며, 윤동주와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의 뒷이야기를 검열관 죽음과 미스터리로 풀어내는 등 이정명의 소설은 구미를 당기는 무엇이 있다. 나는 앞의 두 책 <뿌리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은 재밌게 읽었는데, 뒤의 책 <별을 스치는 바람>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주제인 '민주화 운동'과 관련되었다는 이 책 <선한 이웃>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좋던 나쁘던 기존의 이정명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실존 인물을 참조했겠지만, 적어도 실존 인물이 나오진 않는다. 유명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그만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핵심인물들에 천착하는 건 여전하지만, 조금 더 서사에 집중했다는 데서 사건과 인물에 집중했던 이전 작품보다 고전적이 된 것 같다. 고전적 의미로 더욱 소설가다워졌지만, 소설로서는 재미가 많이 반감되었다. 


정교한 시나리오가 몇 겹에 걸쳐 잘 짜인 소설


신출귀몰 용의주도 얼굴 없는 운동가 최민석을 잡기 위해 김기준 팀장을 위시한 정보요원팀이 출동한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추적을 비웃듯 눈앞에서 놓치고, 관리관에 의해 김기준 팀은 해체되고 모두 좌천된다. 한편 극작가 이태주는 <줄리어스 시저>로 화려하게 데뷔하지만 마지막 공연에서 대사가 문제시 되어 정보당국에 잡혀간다. 그를 제외하고 모두 고문을 받고, 극단주와 주연배우는 구속된 반면 그는 풀려난다. 


변절자로 낙인 찍힌 이태주는 삼류 에로극 주연 여배우 김진아와 연인이 된 후 함께 <엘렉트라의 변명>을 힘들게 준비한다. 김진아는 알고 있다, 이태주가 이 연극으로 세상에 맞서려고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를 진정 사랑하기에 망설임 없이 그를 도와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 


좌천당하고서도 여전히 최민석에게 심히 집착하는 김기준, 관리관은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김기준은 여러 후보군을 추려 <엘렉트라의 변명> 연출자 이태주를 최민석으로 점찍고 공작에 들어간다. 그는 이태주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완벽하고 정교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하는데... 


정교한 시나리오가 몇 겹에 걸쳐 등장인물들을 옭아매는지 모를 정도로 잘 짜인 소설 <선한 이웃>.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선과 악의 모호함이 소설의 절정에서 그 절정을 맞이한다. 거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건 없다. 앞으로 계속 생각하게 될, 생각해야 할 개념이 생겼을 뿐이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선한 이의 악


이전 작품보다 서사의 흐름과 상징의 모호함에서 오는 깨달음을 더 절실하게 전하며 새로움을 선사하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정명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특출한 캐릭터성을 엿볼 수 있다. 김기준, 이태주, 김진아 그리고 관리관까지. 이들이 얽히고 설킨, 물리고 물린, 복잡다단한 관계와 자기 신념들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악한 이의 악이 아니라 선한 이웃의 악이다'를 대변한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거기엔 일면의 긍정적인 면은 없고 부정적인 면이 도사린다. 1980년대 서슬퍼런 독재 정권 시대, 어쩔 수 없이 악에 부역하며 그렇지만 자신은 악이 아니라는 신념을 가졌던 이들이 있다. 아주 많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본래 평범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평범하고 힘없는 이가 악을 행하면서 '나는 악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지옥이다. 


사실 이는 식상하기 그지 없는 개념이자 도식이다. 한나 아렌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아이히만의 '나는 맡겨진 일을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이라는 말을 빗대어 '악의 평범성' 개념을 만든지 오래다. 이후 수많은 콘텐츠에서 이 개념은 인용되고 변주된다. 이 책의 제목인 '선한 이웃'도 사실 '악의 평범성'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식상한 변주가 있다. 명백한 악을 행하고서도, 심지어 그것이 악인 줄 잘 알면서도, 그걸 행한 자신을 평범하다고 성실하다고 신념화 시킨다면 여지 없이 '악의 평범성' 개념을 꺼내들어 변주해야 한다. 물론 '잘' 해야 한다는 단서는 있다. 그런 면에서 <선한 이웃>은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쉽지 않은 소재와 주제를 풀어나가고자 정공법을 택했는데, 고대 그리스 배경을 위주로 한 연극의 내용을 대대적으로 가져와 비유와 상징으로 쓴 것이다. 연극도 연극이지만, 고대 그리스 배경이 주는 생소함과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인간 자체에 대한 비유와 상징들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잘 뒷받침해준다. 작가가 한탄하는 것처럼 3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것만 있지 변한 게 없는 한국 사회와는 달리, 이정명 작가는 달라지는 것 대신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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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발자크의 식탁>


<발자크의 식탁> 표지 ⓒ이야기나무


이런 책, 좋다. 치열한 연구, 오타쿠적이기까지 한 관심과 열정, 종횡무진 오가며 확대재생산시키는 와일드함으로 무장한 책. 일단 뿌리 부분을 완벽히 꿰고 있어야 하겠다. 그에 못지 않게 가지나 잎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바, 보는 입장에선 얻을 게 무궁무진하다. 지식은 물론, 앎에서 오는 재미도 한가득이다.


앙카 멀스타인의 <발자크의 식탁>(이야기나무)이라는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뿌리 부분은 다름 아닌 '발자크'다. 19세기 초중반 프랑스 소설가,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 말이다. 90편이 넘는 개별 소설들을 통해 당대를 완벽히 그려낸 방대한 소설 <인간 희극>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 세계는 <인간 희극>으로 집약되어 있다고 봐야 하겠다. 여기에 '식탁'이라니. 발자크의 음식 사랑을 탐구하는 책인가, 싶다. 


막상 읽어 보면, 발자크가 아닌 발자크의 소설을 들여다본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 희극>을. 솔직히 말해, 발자크를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너무나 유명한 <고리오 영감> 정도? 하지만 그 기억도 가물가물하니,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럼에도 책에 손이 가고 글에 눈이 가는 이유는, (읽어보지 못한) 위대한 소설가와 음식의 만남 때문이다.


일단 이런 류의 '콜라보레이션'을 좋아한다. '딱'하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 것들의 만남은 많은 재미를 준다. 더군다나 관심은 지대하지만 막상 대한 적은 없는 발자크 아닌가. 발자크와 음식, 둘 다 따로따로 놔둬도 관심이 가는데 둘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그것도 지금의 나로선 전혀 알 수 없는 19세기 프랑스 파리가 배경 아닌가.


발자크의 대표작 <인간 희극>, 미식의 도시 파리가 보인다


저자는 발자크가 장갑과 돈과 음식에 집착했다고 한다. 그중 뜻밖의 것이 음식인데, 그는 미식가도 아니었거니와 제대로 된 식습관의 소유자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음식에 집착했던 이유는 당대의 사회상을 짚기 위해서 였다. 그에게 음식은 영양 섭취 대상이나 미식적 대상이 아니라, 그의 소설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다.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소설들에는 여지 없이 음식이 등장하는데, 인간 군상의 성격이나 재력, 집안 내력까지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있기 전, 파리에는 제대로 된 레스토랑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 자체가 그다지 훌륭한 식생활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혼란한 시기에 으레 그렇듯 신흥 부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혼란한 시기의 부담감 때문에 자신의 부를 함부로 과시할 수 없었기에, 도망간 황족들이 남겨두고 간 궁전 요리사들이 차린 레스토랑을 은근한 부의 과시 장소로 택한다. 프랑스 파리에 비로소 식산업다운 식산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미식의 도시 파리의 시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발자크가 이런 시대 변화를 누구보다 발빠르게 알아차리고 소설에 수용했다고 한다. 그가 <인간 희극> 속 등장인물들을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부터 가장 싸구려 레스토랑까지 찾아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 희극>은 파리 사회와 미식 문화에 대한 실용적인 보고서나 다름 없다. 발자크 소설이 곧 19세기 프랑스 파리였고, 19세기 프랑스 파리가 곧 발자크 소설이었다. 저자는 발자크와 발자크 소설과 프랑스 파리를 종횡무진 누비며, 발자크를 읽고 싶게 만들고 나아가 파리를 여행하며 온갖 음식들을 먹고 싶게 만든다. 


특별한 날과 평범한 날, 구두쇠와 음식 숭배자


저자는 본격적으로 <인간 희극>에 뛰어 든다. 특별한 날, 평범한 날, 구두쇠와 음식 숭배자, 그리고 침대까지. 들여다보면, <인간 희극>을 예로 드는 건지 당대 프랑스 파리를 예로 드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이다. 그만큼 발자크가 당대를 완벽히 파악하고 재연해낸 것이리라. 저자의 철저한 치밀한 연구도 한 몫 했다.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음식과 함께 특별한 연회가 있어야 함은 상식이다. 하지만 당대, 특별한 음식과 연회(술)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막 '야만'의 식생활에서 벗어난 신흥 부자들이 뭘 알겠냐는 것이다. 그건 발자크도 마찬가지. 갓 습득한 예의범절과 겉치레는 음식과 술이 섞이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뿐이다. 발자크는 가장의 권위와 취향, 야망에 탐구를 바탕으로 특별한 날의 음식과 연회를 글로 옮겼다. 다분히, 인간 군상 중 하나인 '가장'을 표현하기 위해 음식이라는 수단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매일의 평범한 일상은?


저자에 의하면 발자크는 의외로 <인간 희극>을 통해 프랑스의 중심인 파리 사람들의 음식 이야기는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리 사람들이 열정 없이 음식을 먹고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데, 음식보다 사업을 하고 음모를 꾸미고 정보를 얻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자크가 생각한 이상적인 미식은 신선한 재료를 쓰고 자연 그대로의 풍미가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에 있다며, 평범한 식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시골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발자크에게 돈을 향한 강한 집착의 소유자와 음식을 향한 강한 집착의 소유자는 같은 종류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도가 지나치면 살을 위협한다는 발자크의 철학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발자크는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너무 잘 챙겨 먹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했던 아버지의 지론을 충실히 따랐다. 그는 구두쇠와 음식 숭배자를 구분하지 않고 탐욕스러운 등장인물에게 엄격한 심판의 철퇴를 내렸는데, 악인이 아니라 해도 스스로 만들어 낸 집착의 노예가 되게 하였다. 그가 생각한 미식의 천국은, 자연 그대로의 풍미가 이상적인 미식이듯 어머니의 손길로 만들어진 과도함 없는 디저트였다.


매력적인 창작 도구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발자크는 음식을 소설로 옮겨왔다. 저자는 이를 그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는데, 반면 발자크 이후에는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 프루스트가 각자의 방식으로 미식의 세계를 소설에 담았다고 한다.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굴의 맛을 감상하고 싶다면 모파상을, 노란 크림으로 가득 찬 항아리를 꿈꾼다면 플로베르를, 소고기 아스픽을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지럽다면 프루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전에 석영중 교수가 지은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예담)라는 책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여러 위대한 러시아 소설가 중 고골은 엄청난 대식가이자 식도락가로 글쓰기 외의 관심사는 오로지 음식이었다고 한다. 한편 체호프는 음식의 코드에 의존해 범속한 일상을 전달하려 했다고 하고 푸슈킨은 먹는 것을 좋아했지만 음식을 탐하지는 않아 그 소박한 식성이 소설 문체와 분위기, 주제와 소재로 나타났다고 하니, 발자크와의 접점이 보인다. 그들에게 음식은 단순히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영양물 또는 살아가는 데 가장 자주 접하는 욕망 중 하나가 아닌, 그야말로 매력적인 창작 도구가 아니었을까. 


발자크에게 음식이라는 창작 도구가 있었다면, 저자에겐 역사적 인물이라는 창작 도구가 있는 것 같다. 전기 문학 분야에서 발군의 능력을 자랑하는 저자 앙카 멀스타인은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메리 스튜어트, 프루스트, 로스차일드, 메디치를 다룬 책을 출간했다고 하는데, 한국에는 이 책이 처음 소개되었다. 근래 출간 예정인 <프루스트의 서재>가 심히 기대된다.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창작 도구가 있을 것이다. 아니, 창조 도구라고 해두자. 나와 삶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 '책과 영화'다. 삶의 거의 모든 것들을 책과 영화를 통해 풀어낼 수 있고, 표현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아내는 '음식과 공부'일 것 같다. 누군가는 돈일 테고, 누군가는 사랑일 테며, 누군가는 더 디테일한 하위 개념의 무엇일 테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 없다. 그걸 '어떻게' '어떤 이유'로 사용하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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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공의 벌>


<천공의 벌> 표지 ⓒ재인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5.8 지진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걱정이었던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연상케 하는 '원전 사고' 여부였다. 이번 대지진의 진앙지인 경주에서 불과 27km 떨어진 곳에 월성 원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월성 원전은 이번 지진으로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생한 사건이다. 월성 원전은 규모 6.5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5.8 정도의 지진이 일어날 거라는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설계라 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일이 터지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원전 사고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995년 일본 고베에 규모 7.0을 넘어서는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일본 역사 70년 만에 최악의 피해를 주는데,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부상당했으며 당시 일본 GDP의 2.5%에 달하는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같은 해 12월에는 '꿈의 원자로'라 불린 고속 증식로 '몬주'의 나트륨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실 방사능이 유출된 건 아니었지만, 사고 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많은 비난을 샀다. 일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제대로 대처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지진과 원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진이라는 게 예측하기 힘든 사고라서 원전처럼 절대적 안정이 필요한 것에 상극인 것이다. 원전을 주체로 둔다면, 위험한 건 지진뿐만 아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수많은 지진으로 그에 대한 대비라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후쿠시마 원전 주위는 아무도 살지 못하는 폐허가 되었단 말이다. 이건 이제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최고의 안전성이 필요한 원전에 테러 위협이 가해지다


일본 추리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데뷔 10년 후인 1995년, 한신 대지진과 고속 증식로 몬주의 나트륨 유출 사건 사이에 소설 <천공의 벌>(재인)을 내놓는다. 다름 아닌 '몬주'를 모델로 한 고속 증식로 '신양'을 무대로 한 테러 스릴러다. 소설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 모델에서 그런 사건가 발생했으니 그야말로 '예언'이나 다름 없는 '소설'이었는데, 16년 후엔 소설에서 내보인 '경고'가 실체화되었으니 씁쓸하기 그지 없다 하겠다. 추리 스릴러 소설에서조차 경고를 보인 원전 사고가 실제로 터졌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소설은 그 어떤 일에도 제대로 대처해야 하는 최고의 안정성이 필요한 원전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극비리에 일본 자위대에 납품할 예정인,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헬기 '빅 B'. 최종 비행만을 남겨두고 있는 때에 누군가에 의해서 접수당한다. 헬기는 테러범에 의해 무선 조종으로 고속 증식로 '신양' 상공으로 가 호버링 한다. 시간이 지나면 연료가 떨어져 대량의 폭발물과 함께 추락하게 될 것이었다. 그럼 원전 대폭발이 일어날 건 자명한 일, 남은 시간은 8시간이다. 


테러범이 전국민이 알게끔 하는 걸 전제로 요구한 건 다음과 같다. 현재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사용 불능 상태로 만들 것,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건설을 중지할 것, '신양'은 정지하지 말 것. 헬기를 이동시키려 하지 말 것. 일본 정부를 비롯해, 자위대, 원전 관계자, 경찰들이 총출동하는데,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테러범의 요구대로 모든 원전을 정지할까? 엄청난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니면 주민들을 대피시키며, 헬기가 추락해 원전이 폭발할 것을 감수하고 테러범과 협상에 들어갈까?


소설은 다분히 문제의식을 표출하며, 실수로 헬기에 아이가 타게 되는 사고를 넣어 서스펜스를 극대화 하는 한편, 일찌감치 범인의 정체를 보여 주고는 각각 다른 지방의 경찰이 범인의 윤곽을 서서히 좁히는 과정을 긴장감 있고 치밀하게 서술한다. 무엇보다 압권이자 소설의 중추는 '원전'이다. 혹여 어마어마한 사고가 터질지도 모르는 '신양'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벌이는 설전과 암중모색, 대책강구 등이 이 소설을 보는 최대 묘미이다. 정녕 선택이 쉽지 않은 딜레마다. 이는 곧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는 원전의 실체와 같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의 경각심을 깨워라!


"원전이 대형 사고를 일으키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도 피해를 입게 돼. 말하자면 나라 전체가 원전이라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셈이지. 아무도 탑승권을 산 기억이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사실은 그 비행기를 날지 않도록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럴 의지만 있다면. 그런데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아. 승객들의 생각도 모르겠고. 일부 반대파를 제외하곤 대부분 말없이 좌석에 앉아 있을 뿐 엉덩이조차 들려고 하지 않아. 그러니 비행기는 계속 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비행기가 나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비행기가 잘 날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어." (본문 423쪽 중에서)


소설에서 사람들 눈을 속이며 자연스레 행동하는 범인이 피력하는 주장이다. 그는 비록 테러를 일으키고자 하는 악질일지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바는 원전 사고의 핵심을 정확히 찌른다. 이번 경주 '대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때 내가 원전을 걱정했을리는 없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동일본 대지진 때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범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나라 전체'가 원전에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원전은 위험하기 짝이 없기에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면 없애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다. 관심조차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원전을 안전하게 잘 돌아가게끔 하면 될 일이다. 그것도 가능하지 않다. 역시 관심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 원전을 대할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뿐일 거다. 계속해서 원전 사고가 일어나는 것. 일은 일어나고 대처하는 거라고, 사고가 일어나야 그나마 경각심을 갖지 않을까? 범인은 그런 논리 하에 이와 같은 초유의 테러 위협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개인적으론 '모순에 부딪혀 돌파구 없는 분노' 때문일 것이고. 그 분노가 사람들 무관심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이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결국 료스케의 고통이나 도모히로의 죽음이나 그 원인은 같은 것에 있지 않을까. 둘 다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피해의 근원은 무엇인가... (중략) 집단 괴롭힘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모히로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을 만났을 때 보았던 그 가면 같던 얼굴들. 아이들만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어른이 돼서도 가면을 벗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침묵하는 군중'을 형성한다. (본문 632쪽 중에서)


범인이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결정적 사건은 아마도 아들의 죽음일 것이다. 아들의 죽음에는 반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있었을 거라 추측된다. 하지만 그들도 피해자다. 범인의 아들은 원전 관계자의 아들이라는, 아들을 괴롭힌 아이들의 리더는 반원전 관계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더 큰 문제이자 분노의 진정한 발화점은, 그 사건을 확인하면서 보게 된 '가면 쓴 얼굴'들. 그 얼굴은 곧 '침묵하는 군중'에 다름 아니다. 침묵은 원전 사고라는 크나큰 대재앙 앞에서도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해 그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아간다. 그들은 명백한 피해자이지만, 또한 명백한 가해자이기도 하다. 피해 자각이 없는 피해자, 가해 자각이 없는 가해자. 어찌 이럴 수 있는 것인지. 


지금 우리들에게, 이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아니, 소설로 읽었다면 다시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침묵하는 군중은 아닌지, 자각 없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아닌지, 국민을 속이려 드는 정부 관계자는 아닌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원전 관계자는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지진은 더 이상 남의 나라, 남이 당한 불가항력의 사고가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직 원전에 이상이 생길 정도의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일 뿐이다. 5.8이 일어났으니, 우리나라 원전 평균 내진 설계 기준인 6.5가 일어나지 않을리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에 관한 한 '침묵하는 군중'임에 분명하다. 침묵하는 군중은 '침몰하는 배'를 절대 끌어올리지 못한다. 함께 침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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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의 유명한 구절을 모토로 삼아 격월간으로 '도서출판 은행나무'에서 출간하는 잡지 <AXT>

'소설을 위한, 소설독자를 위한, 소설가들에 의한 잡지'라고 당당하게 천명하며 지난 7월 시작했다. 시작부터가 가히 파격이었다. 원래 무료 배포로 기획했다는데,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놀라지 마시라, 2900원이다. 10% 할인된 가격으론 2610원이고. 페이지는 평균적으로 270쪽을 상회한다. 잡지에 실리는 글만 해도 20편이 넘는다. 모두 소설에 관한 글이다. 


예전에 비해 소설 시장이 터무니 없이 침체되었다. 개중에서도 한국 소설은 거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한다. 책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그나마 있는 독자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래도 소설 독자는 있음에, 그들조차 외국 소설을 찾는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 잡지가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


<AXT>는 매 호마다 국내의 유명 작가를 메인으로 내세운다. 창간호는 천명관, 2호는 박민규, 3호는 공지영. 그야말로 한국 최고의 인기 소설가들이다. 그렇다고 대중적으로만 치우쳐졌냐면, 그렇지 않다. 이들은 인기도 최고지만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소설가들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있는 소설가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잡지는 특별하다. 이 정도의 캐스팅 능력이 있다면 충분히 초특급 외국 작가들도 캐스팅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이보다 훨씬 센세이션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작가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 잡지에 실린 글을 보면 느낌이 다르다. 외국 소설에 대한 글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오롯이 한국 작가와 한국 소설로만 모든 글을 채운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또한 그리 하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아쉬운 게 사실이다. 모순적이지만. 


이 잡지는 표지는 크게 특이할 게 없지만, 내지 디자인이 굉장히 특이하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겠지만, 뭐랄까 정식으로 출간하기 전의 교정지 느낌이라고 할까? 누군가에겐 조잡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의도로 그렇게 작업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 창간호와 3호를 구비했다. 2호는 그때 마침 박민규 소설가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구비하지 않았다... 솔직히 쉽게 읽히진 않는 편이다. 아마도 짤막짤막한 글들이 무식하게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글자가 너무 작아 단순하게 읽기 힘든 점도 있고. 


여튼 정말 좋은 시도다. 정말 괜찮은 콘텐츠다. 진심으로 오래가길 바란다. 아무리 많이 팔린다고 해도 꽤 많은 손해를 볼 게 불보듯 뻔한데 말이다. 잘 만든 책, 잘 팔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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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휴가를 위한 책 5]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네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지난주 7월 말과 이번주 8월 초에 여름 휴가를 많이 다녀오실 테지요. 2주 정도 전에 포스팅을 했어야 했는데 늦어졌습니다. 그래도 휴가를 조금 늦게 가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남들 다 가는 성수기에는 아무래도 비싸고 사람도 많잖아요? 무엇보다 올해는 유난히 더워서 오히려 그 더위를 피해서 휴가를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각설하고 이제 휴가를 떠날 분들을 위해 책 몇 권을 준비해 봤습니다. 물론 여름 휴가를 다녀왔거나 못 가는 분들께도 여름 나기에 유용할 책이 될 거예요. 그래서 그에 맞게 나름의 기준을 세워봤습니다. 속도감 있게 빨리 읽혀야 되고, 유쾌상쾌통쾌하거나 여름 더위를 날려버릴 정도로 재밌어야 하겠지요. 머리 싸매지 않게 어려운 책이면 안 되겠습니다. 더우니까 너무 가슴을 따뜻하게 하거나 열불(?)나게 하거나 어떤 열정에 불타오르게 해도 안 됩니다. 한마디로 '킬링 타임'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단, 작품성만은 좋아야 하겠습니다. 흠... 쓰고 보니 선정하는 게 만만치 않겠네요. 


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하게 저도 아직 읽지 않은 책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입소문이 좋고 인기도 좋고 많이 찾는 대중적인 책들이요. 저야말로 이 책들을 이번 여름 휴가 때 한번 보고 싶다는 말입니다^^ 웬만하면 2015년에 출간된 책들을 선정하고자 했고요. 분야가 겹치지 않게 총 5권을 선정해 봤습니다. 한번 훑어보시죠~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분야: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우리나라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입니다. 

속도감, 문장력과 구성력, 흡인력, 복선과 반전을 두루 갖춘 소설이라고 하네요. 

오쿠다 히데오가 처음 선보이는 서스펜스 스타일로, 두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에요. 

그녀들은 남편의 폭력에 대항해서 '남편 실종 계획'을 세워 남편을 살해하여 실종으로 처리하려 합니다. 

하지만 과연 잘 될까요? 마지막 한 줄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는 소문!




씨네 21

씨네 21 편집부 엮음

(분야: 잡지)



올해 20주년을 맞이했죠? 영화 잡지 부분에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씨네 21>입니다. 

휴가에서 책 읽는 게 말처럼 쉽지 않죠. 요즘엔 태블릿 pc 챙겨가서 영화, 드라마, 예능 많이 봅니다. 

그래도 읽을 거리가 없으면 섭섭해요~ 참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땐 단연 영화 잡지죠! 읽을 거리와 볼 거리를 두루 챙길 수 있어요^^

비싸지 않고 얇고 재밌고. 모르긴 몰라도 휴가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했을 거라 생각해요~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분야: 만화)



전통적으로 휴가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만화'죠! 최고입니다ㅋ

그런데 요즘엔 웹툰이 있어서 굳이 만화책을 가져가진 않는 것 같아요. 

참 편리하죠. 웬만한 웹툰이 퀄리티가 높아 재미와 감동을 보장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이 작품 앞에서는 쉽게 명암을 내밀진 못하겠죠?

<심야식당>입니다. 얼마 전 영화로도 개봉했고, 한국에서 드라마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을 정도로 

한일 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아시아 베스트셀러라고 하네요. 

자그마치 14권까지 나왔는데, 부담스러우시다면 몇 권만 보아도 좋습니다~ 옴니버스식이니까요!

해가 떨어지고 돌아와 편안하게 한 편 한 편 즐기시면 되겠습니다^^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

이용한 지음

(분야: 에세이)



제목이 특이하고 귀엽죠? 뭔가 고양이스러워요ㅋ 

요즘 들어 고양이를 정말 키우고 싶어지네요. 너무 귀여운 것 같아요. 

일단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게 막 엔돌핀이 돌지요~ 저 표지에 나온 고양이들을 보세요! 꺅!

예상하셨다시피 이 책에는 다양한 고양이들이 페이지마다 나옵니다. 한없이 예쁜 고양이들이죠. 

더 이상 무슨 힐링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아이들만 보고 있으면 되지요~

(고양이들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죄송합니다.)




잠시멈춤, 세계여행

오빛나 지음, 배용연 사진

(분야: 여행)



여행을 왔는데 무슨 여행 책이냐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행 와서 여행 책을 보면 그 재미가 2배 이상이 되지 않을까요!

가진 자(?)의 여유도 부려보고요~ 다음 여행도 생각해 보고요~

그렇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세계 여행'이기 때문이죠. 

다른 누구와도 아닌 부부가 함께 아시아에서 남미까지 636일 간 52개국을 여행했다고 해요. 

정말 정말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가고 싶어요. 63일 간 5개국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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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앵무새 죽이기' '그해 여름'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열린책들의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지음/김욱동 옮김)

이숲의 <그해 여름>(마리코 타마키 글/질리안 타마키 그림/심혜경 옮김)

<앵무새 죽이기>는 소설, <그해 여름>은 만화네요. 


<앵무새 죽이기>는 일찍이 1999년에 한겨레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큰 사랑을 받았죠. 2010년에는 문예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요. 이번 2015년에 열린책들에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자그마치 55년 전인 1960년에 출간되어 역사적인 사랑을 받았고 저자인 하퍼 리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55년 만에 하퍼 리의 두 번째  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파수꾼>이라는 소설로, <앵무새 죽이기>의 프리퀄로 알려지면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더군요.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앵무새 죽이기>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습니다. 아울러 <파수꾼>이라는 소설도요. 얼마 만큼의 대작품인지, 대작가인지. 


<그해 여름>은 2014년에 출간되어 미국의 주요 상이란 상은 전부 휩쓸다시피 한 만화입니다. 만화란 형식을 띈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철없던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앓아야 할 성장통, 이성에 눈뜬 소녀가 겪어야 할 풋사랑의 아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기 힘으로 세상에 맞서야 할 청소년이 치러야 할 통과의례를 섬세하고 감동적인 필치로 그려낸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하네요. 어마어마한 찬사인데요. 너무 기대를 부풀려 놨기 때문일까요? 한 시간 만에 다 봤는데, 임팩트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여운도 남을까 말까한 느낌이고요. 전 여운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특히 그 부분이 아쉽네요. 


<앵무새 죽이기>는 반드시 서평을 쓰고 싶은데요. 상당히 호흡이 긴 소설이라 당장은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잘 읽힐 것 같으니 노력해보겠습니다~


두 책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요

 앵무새 죽이기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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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표지 ⓒ이야기공작소



한국 근현대사는 참 재미있는 것 같다. 마치 삼국지처럼 대단한 인물들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낭만과 격이 다른 처절함으로 시대를 창조하고 해체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리라. 그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박진감를 선사해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이면에는 '나와는 동떨어진' 그러나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의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마냥 편안하게 그리고 재밌게 접할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겠다. 그 박진감을 마냥 재미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재밌겠는가? 그들끼리 치고박고 죽고죽이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야기들. 그들만의 이야기들. 난 3자의 자세로 보고 즐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또는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을 것 같다면 말은 달라진다. 특히 그 이야기가 극악무도하고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치가 떨리는 내용이라면,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게 된다. 배워야 하고 깨우쳐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재미, 감동, 분노, 슬픔이 모두 있는 평전 아닌 소설


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이야기공작소)는 그 경계선에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부'라는 별칭이 달릴 정도의 인물인 故 김근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평전이 아닌 '소설'이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김근태의 어릴 적, 의외로 학생 운동에 거리가 멀었던 학창 시절, 그리고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대학생 이후의 이야기까지. 소설은 위에서 말한 두 대척점을 오고 간다. 결과는 대성공. 시종일관 재미도 있고 그를 넘어서는 감동, 분노, 슬픔도 있었다.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이 소설은 어떻게 두 가지를 모두 섭렵할 수 있었을까? 소설적 재미를 잃지 않으려고 장치를 삽입하면서도,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 전개를 기반으로 소설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분명 김근태라고 하는 사람은 인터넷만 쳐봐도 그 일생을 대략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작가는 모험 아닌 모험을 시도한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철저히 장치를 넣었다고 봐야 하겠다. 


소설은 김근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작가가 어지간하게 김근태를 연구하고 그 시대를 연구하고 사람을 연구하고 사상을 연구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인건지 필연인건지, 작가 방현석은 일찍이 1980년대 노동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였다. 김근태 그리고 그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설가인 것이다. 


그러면서 소설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두 가지의 장치를 해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미시적 장면이다. 소설의 큰 줄기가 한국 근현대사 통사라고 본다면, 김근태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장면 장면들은 소설가가 지은 것이다. 이 장면들 중 어느 장면은 유독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데, 아마도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 같다는 느낌도 든다. 


김근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하나는 소설가가 만든 장면 뒤에 따라 오는 인터뷰 형식의 증언들이다. 일종의 증거라고 할까. 이 소설은 100% 사실에 기반해서 지어졌다고 항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인터뷰들이 적절하게 잘 들어가 있고, 그래서 믿음과 생생함을 더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재미와 함께 또 다른 걸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 인터뷰를 볼 때마다 소설 속에서 현실로 나왔고, 현실이 그때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는 치가 떨리곤 했다. 그건 소설가가 자신을 버리고 완벽히 김근태에 빙의 되어 나를 당대로 데려갔다가 현실로 데려오곤 하는 걸 계속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것에는 김근태라는 인물이 있다. 그 덕분에 가능했다. 그의 이유 있는 의식의 전환이, 이후 보여주는 그 지난하지만 고귀하기까지 한 여정이, 그리고는 오금이 찌릿찌릿 저리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정도의 고문에도(글로 느끼는 치명적인 상상이란...) 끝내 굴복하지 않은 인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토록 끈적끈적하고 음습한 시대를 단백한 모습으로 헤쳐나오지 않았나. 


당분간 쉬이 빠져나오지 못한 터널에 들어선 기분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김근태가, 그가 살았던 그 시대가, 그리고 이 소설이 그러하다. 내가 살고 있는, 앞으로 살아갈 이 시대는 어떠한가? 끈적끈적하지는 않고 더 음습해지기만 하지 않았나? 메마르고 음습한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헤쳐나가야 할까. 외려 내가 끈적끈적해져야 할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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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책] '네메시스' '아이디어가 자본을 이긴다'


이번 주 내가 고른 책은

문학동네의 <네메시스>(필립 로스 지음//정영목 옮김)

한겨레출판의 <아이디어가 자본을 이긴다>(퀸터 팔틴 지음//김택환 옮김)


'네메시스'는 소설이고, '아이디어가 자본을 이긴다'는 경제인 것 같아요. 


<네메시스>는 현대 미국 소설의 거장이자 한국의 고은,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단골로 오르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하네요. 한국 나이로 83세 밖에(?) 안 되는 나이에 절필이라니요ㅠ 문학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고 하잖아요? 오히려 나이가 많으면 풍부한 경험으로 인해 더 좋고 깊이 있는 작품이 나올 텐데요. 개인적으로 필립 로스는 그리 즐겨 읽지는 않지만, 안타깝네요. 일전에 읽었던 <로드>는 정말 좋았었죠.(http://singenv.tistory.com/203) 출판사 입장에서는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증명된 흥행 카드를 잃어 아프기도 하겠네요. 


<아이디어가 자본을 이긴다>는 창업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유럽을 배경으로, 어떻게 창업을 하고 어떻게 창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기반으로 풀어나간다고 하네요. 그건 알고 계시겠죠? 누구나 창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장사를 하든 회사를 차리든 프리랜서를 하든지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책을 미리 조금씩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디어가 자본을 이긴다>가 더 보고 싶지만,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네메시스>를 지나칠 수 없네요. 


두 책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요~

 네메시스

 아이디어가 자본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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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소설 잘 나가죠? 미스터리 장르에 많이 기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제가 한 번 세어보았어요. 2015년에 나온 일본 소설이 100권을 훌쩍 상회하더군요. 거기엔 유명한 소설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어요. 역시 베스트셀러에 대거 올라갔고요. 북유럽 소설과 함께 요즘 소설계를 이끌어 나가는 쌍두마차다운 위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중국의 소설은 어떠할까요? 2015년에 나온 중국 소설은 30여 권 정도이고, 그 중에서 제대로 된 소설은 10권 안팎. 나머지는 고전 소설의 재탕이 많더군요. 뜬금없이 김용 소설이 다시 나오기도 했고요. 이 중에서 베스트셀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몇 년 전에 나온 '위화'의 소설들이 현재 중국 소설을 지탱하고 있더군요.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중국 하면 떠오르는 '촌스러움'이나 '고리타분' 때문일까요? 실제로 중국 소설은 이런 '중국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게 매력이란 말이죠. 이번에 새로 나온 류전윈 소설가의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또한 그래요. 보편적인 인간들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맞지만, 서술이나 서사 방식 그리고 캐릭터들이 여타 잘 나가는 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촌스럽죠. 


그런데 저는 이런 게 좋습니다. 가식 없이, 빠르지 않고, 너무나 무던한. 그럼에도 중국 소설의 부흥은 요원해 보입니다. 비록 중국에서는 100만 권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중국 최고의 문학상을 싹쓸이 했다고 해도 말이에요. 우리나라와는 안 맞나 봐요. 


그래도 중국 소설을 응원하렵니다. 제가 중국학부를 나오고 중국을 좋아해서 이기도 하지만,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요즘 잘 나가는 소설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를 필두로 한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 사실 거의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물론 저도 이 소설들을 종종 읽고 또 거침없이 빠져드는 그 소설들을 좋아해요. 문제는 잘 나가는 소설들이 판박이 같이 비슷하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일본 소설 뿐만 아닌 것 같아요. 제작년에 나와서 대박 친 소설 있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보다 유쾌통쾌상쾌하게 잘 읽히는 소설이 없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이와 거의 판박이 소설이 나와서 아주 잘 나가고 있다고 해요. <오베라는 남자>. 같은 북유럽 소설이고, 비슷한 분위기에 따뜻하고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보니, 다양성 운운할 수가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일본 소설이나 북유럽 소설이 각각 하나의 큰 줄기를 형성해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중국 소설도 보면 하나의 큰 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렇다는 건 중국 소설 자체가 시대를 이끌어 가지 못하다는 것일까요? 시대에 뒤떨어져서?





문제가 중국 소설 자체에 있든, 독자에 있든, 여하튼 안타깝습니다. 여기서 또 생각나는 건 고전 재출간 상황이에요. 일본의 경우, 나쓰메 소세키를 필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자이 오사무, 오에 겐자부로, 요시카와 에이지 같은 근현대 고전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지요. <겐지 이야기>같은 고전도요. 


반면 중국의 경우는? 중국 근현대 고전 중에 루쉰 밖에 모르지 않으신지요? 들춰보면 루쉰을 비롯해 마오둔, 라오서, 바진, 왕멍 등 대문호라고 불러도 손색 없는 소설가들이 많죠. 그런데 이들 소설은 전혀 꾸준히 출간되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제일 큰 이유는 중국 근현대사 때문일 거예요. 굉장히 정치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배경 안에서 대문호로 인정 받고 있어도 다른 나라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죠. 소설이라는 게 그 지역과 그 나라와 그 시대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언제쯤이면 중국 소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지 알 수 없어요. 분명한 건 중국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푸대접을 받는다 해도, 해당 소설가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죠. 중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훨씬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죠. 중국 소설 판권 최고가는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의 소설가 류전윈이 '나는 판진롄이 아니다' 1억 원 이상이고, 한국 소설 판권 최고가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약 8,000만원입니다. 그래서 제가 걱정하는 건 그들이 아닌 우리 독자들이에요. 편식은 몸에 이상을 낳잖아요. 


주저리 주저리 횡설수설 말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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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젓가락여자>



<젓가락여자> 표지 ⓒ아시아



"예리한 바늘이 정곡을 찔러 육체에 음산하고 정교한 수를 놓으며 살 속에서 맴돌던 언어를 해방시킨다"


소설가 천운영이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바늘>로 당선되었을 당시의 심사평이다. 소설을 읽는 다양한 이유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게 두 가지 있는데, 바로 '재미'와 '감동'이다. 이 둘만 있으면 그 소설은 나에게 최고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이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재미'를 고르겠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시선이 바뀌었는데, '감동'조차도 큰 틀에서 '재미'의 요소 중 하나로 편입되었다. 이 둘은 더 이상 동등한 입장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보고 흔히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읽자마자 그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다. 거기엔 스토리, 캐릭터, 사건, 형식, 문체, 분위기 등의 요소가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의 소설은 재미있을 것 같다


천운영 작가의 소설은 접한 적이 없었지만 그 명성과 함께 스타일은 익히 알고 있었다. 누구는 스타일리쉬하다고 하고, 누구는 그로테스트하다고 하며, 누구는 날카롭다고 했으며, 누구는 불편하다고 했다. 종합해서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그녀의 소설은 '재미있을 것' 같았다. 흔하지 않고 정형화되지 않았으며 식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젓가락여자>. 제목부터 흥미가 돋지 않는가?


소설은 시종일관 화자의 원맨쇼로 진행된다.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하는 식이다. 그래서 서술이 일체 없다. 그야말로 한 번 손에 쥐면 물 흐르듯 자연스레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형식도 이러한데, 내용은 더욱 나를 옥죈다. 다음 장을, 아니 끝 장을 보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든다.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소설이 나의 욕망을 부추긴 이유에서 일까?


화자는 조그마한 독서토론회 모임의 회장이다. 그녀는 회원들로부터 서진이라는 유명한 작가를 한 번 초청해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힘 좀 써볼 것을 부탁 받는다. 그녀가 다름 아닌 서진 작가의 학교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반신반의하는 회원들에게 서진 작가와의 첫만남을 이야기해준다. 한 마디 붙인다. 서진 작가가 자신한테 빚진 게 좀 있다고. 


서진 작가의 본명은 양영은이었다. 영은과 그녀는 첫만남부터 뭔가 통하는 게 있어 사 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어울릴 수 있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정말 멋진 사람이었던 영은에게 인간적으로 반했던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영은에게는 남의 기운을 자기 쪽으로 끌어모으면서 단번에 잡아 채는 매력이랄지 마력이랄지 아무튼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영은의 별명은 '고물상'이었다. '고민고물상'. 고민을 가지고 가면 들어본 다음에 해결책을 주거나 방향을 제시해주거나 위안을 주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기 그 고물들이 소설의 소재가 된 것이 아닌가? 그 중에서도 그녀와 할머니 사이에서 있었던 '닭 모가지' 이야기를 고스란히 소설로 옮긴 게 아닌가? 그녀는 추억이 소설로 되살아났다고 좋아하면서도 그 경험을 소설로 옮기는 행위를 비꼰다. 


"제 추억을 소설로 쓴 게 미안해서 자꾸 그렇게 생각하시나 본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언니가 그 글을 베껴 쓴 것두 아니구. 나한테 들은 얘기 소설로 쓴 건데. 언니가 진정성 이런 거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까. (중략) 물론 언니가 그거 쓰겠다고 나한테 허락을 받은 건 아니지만. 내 추억을 누구도 쓰면 안 된다고 상표등록 해놓은 것도 아니고. 내가 소유권 주장하겠다고 나설 사람도 아니고." (본문 중에서)


소설을 관통하는 욕망의 충돌


소설의 서사는 별 게 없다. 독서토론회 회장이 학교 선배였던 유명한 작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이다. 거기에 어떤 갈등이나 마찰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녀의 시각으로만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잘 살피지 않으면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도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녀의 말투가 지독하리 만치 비꼬아져 있고, 중간 중간 섬뜩한 말 한 마디들이 오고갈 뿐이다. 


그 한 마디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설을 관통하는 욕망의 충돌이 보인다. 독서토론회 회장인 그녀는 사실 익명의 파워 블로거(리뷰어)이기도 하다. 그것도 서진 작가의 안티 행위를 선도하는. 서진 작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 행위들을 모두 다 캡처해 벼르다가 이 만남을 기해 따지려 한 것이다. 이는 그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먼저 어떤 짓을 한 건 서진 작가였다. 대학교를 다닐 당시, 그녀를 학생회도 아닌 운동권도 아닌 철학 공부회 비스무리한 비밀스러운 조직(학생 운동)에 집어 넣고 자신은 아예 졸업을 해 소설가가 되겠다고 전문대에 들어갔던 것이다. 5학년으로 남아서 총여학생회장으로 출마해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어 있던 것도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야말로 '배신'이었다. 


그녀는 이 배신을 잊지 않고 유명 파워 블로거가 되어 서진 작가의 소설 리뷰를 쓴다. 아니 서진 작가의 소설 리뷰를 쓰며 유명해진다. '진정성' 있는 리뷰. 하지만 그 리뷰는 서진 작가에게 만은 '배신'이었다. 자신에게서 체득한 걸로 자신을 공격하는 짓이었던 것이다. 욕망의 충돌은 계속 이어진다. 


그녀는 서진 작가가 타인의 경험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걸 두고 계속해서 비꼬면서 말하고, 서진 작가는 그녀의 블로그 대문에 자신이 대학교 때 해준 이야기를 고스란히 올린 것을 두고 비난한다. 이 둘은 이미 폭발한 게 분명한데, 소설의 형식 상으로 보면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녀의 한 마디에서 유추할 수 있다. 


"언니한테서 깃발을 가져온 건 좀 미안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언니도 내 거 가져가셨잖아요. 

내 닭 모가지." (본문 중에서)


누구라도 한 번 생각해 봤을 것 같은


표절에 대한 욕망인가. 더 크게 보면 글쓰기에 대한 욕망인가. 나만 아는 비밀을 폭로하고 싶은 욕망인가. 이는 소설 쓰기 혹은 작가 되기의 욕망으로 까지 이어지는가. 그녀의 입장에서 더 자세히 보자. 소설가가 되지 못하고 대신 파워 블로거 되어, 다른 방면으로 나마 욕망을 분출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욕망. 


그렇다면 서진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행위는 어떤 욕망인가? 이건 소설가가 소설을 짓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도 평생에 걸쳐 해보지 못할 것이니 남의 이야기 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던 박경리 소설가가 될 수 없었던 서진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즉, 남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훔치는 '꼼수'로 소설을 지으려는 질 나쁜 욕망의 분출이었나? 


소설을 읽으며 뜨끔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얘기 같고, 아는 사람의 얘기 같고, 누군가의 얘기 같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한 번은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해 봤을 것 같다. 바늘로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이 소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확실한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보장한다. 


아시아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와 함께 앞으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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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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