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호프 스프링즈>


노년의 사랑이 특별할 건 없다.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노년의 사랑을 코믹하게 그렸다. 특별함 대신 평범함을 선택했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결혼한 지 30년이 갓 넘은 노부부 케이(메릴 스트립 분)와 아놀드(토미 리 존스 분). 그들은 아놀드가 허리를 다쳤다는 이유로 각방을 쓴다. 케이가 큰 맘 먹고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버려 가며 먼저 다가가려 하면 아놀드는 피곤하다며 단칼에 거부한다. 단지 허리를 다친 것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사랑이 식어버린 게 아닐까. 


그래도 케이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놀드를 위해 계란과 베이컨을 대령한다. 신문을 보며 당연한 듯 받아먹는 아놀드, 케이는 짤막한 감사 인사와 가벼운 키스를 원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없다. 케이도 출근하는 건 마찬가지, 이런저런 것들을 따져 봐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부부 생활에 말이다. 뭔가가 빠져 있다. 사랑? 섹스? 


2000년대 이후로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가 많이도 나왔다. 전에 없는 풍년인데, 급격한 노령화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자칫 노년의 사랑이 특별하다고만 느끼게 할 수 있는 바,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역시 노년의 사랑을 그린 <호프 스프링즈>는 전 세계 노부부가 느낄 만한 평범한 주제로 특별함을 배제했다. 일명 '섹스리스 부부'. 노년의 섹스리스와 사랑을 코믹하게 그렸다.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풀기


다름 아닌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코믹하게 그려내지만, 들여다보면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자못 진지하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섹스에 사랑이 포함될 순 없지만 사랑에 섹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랑 없는 섹스는 가능하지만 섹스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말, 동의하는가? 플라톤의 <대화> '항연'편에서 비롯된 '플라토닉 러브'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할 테지만, 일반적인 견해에서 볼 땐 절대적 진리에 가깝다. 


케이와 아놀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노부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되는) 노부부처럼 그들도 식어버린 사랑과 섹스리스 문제를 겪는다. 특히 케이는 이를 참기 힘들다. 그녀는 질색하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진행되는 비싼 상담에 신청한다. 자그마치 4000달러나 하는. 


케이는 그곳으로 떠나는 것 자체가 좋다.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얼마만인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일탈하는 게 얼마만인가. 아놀드도 따라왔다는 건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다는 증표가 아닌가. 하지만 순조롭지 않다. 상담박사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그들에게 해야 할 '숙제'를 준다. 아놀드는 이에 대노하고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케이는 충격을 받는데...


문제 풀기의 제1단계는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를 직시하지도 못한 채 문제 풀기가 끝나버린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 단계를 지나가면 한층 수월할 터, 영화는 일면 '문제 풀기'의 단계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 같다.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우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우리만 그런 줄 알았다. 뻔히 보이지만 아무 문제 없다고 허풍을 떠는 것 말이다. 특히 '가족'이 된지 오래된 이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내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은 않게 만든다. 삶의 질을 위해서,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 간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중년, 노년 부부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산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는 중년, 노년 부부들이 '정'으로 사는 게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서양도 마찬가지인 바, 인류보편적인 삶의 진행인가 보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런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우리나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오는 중년 부부,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박해미와 이준하 부부의 닭살 돋는 모습이 어찌 '비정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부부상담,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정곡을 찌르고 들어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지치고 곪디곪은 사랑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한다. 당연히 반발이 심하다. 누구라도 처음엔 반발이 심할 터, '우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에서 시작해 급기야 상담사를 욕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엔 상대방을 질타할 것이고. 


서로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속시원히 드러내는 건 정말 쉽지 않다. 30년을 넘게 함께 산 '사랑하는 사람'과 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일단 1단계를 넘어서면 일사천리다. 그야말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한 것. 이제 노력하면 된다. 물론 그 노력이란 게 나이와 세월에 심각하게 가로막힐 수 있겠다. 그러면 '이해'와 '배려'의 2단계에 도달한 거다. 


볼품없는 노부부의 섹스를 응원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노부부의 섹스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노부부에게도 한 때 서로를 향한 끝모를 갈망이 있었다. 젊었을 때, 지금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나마 겨우 존재하고 있는 감정들이 그때는 항상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가? 아니다. 사랑도 나이가 들어 지치고 힘겨워 할 뿐이다. 그래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이 사랑스러운 영화는, 볼품없는 노부부까지도 사랑스럽게 만들고 심지어 그들의 섹스를 응원하게 만드는 이 영화 <호프 스프링즈>는, 그냥 그렇게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식어 있는 사랑의 불꽃이 봄에 새싹이 솟아나듯 다시 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정상체위'만을 일삼는(?) 남편에게 아내의 '섹스 판타지'를 선사하고, 자신만이 사랑의 피해자인 줄 알았을 아내에게 남편의 생각지도 못한 피해 사실을 말해주면서. 


현실과 이상은 구분해야 하겠지만, 암울한 현실과 유쾌한 이상 모두를 선사하는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구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당히 암울한 게 아닌 정녕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며, 충분히 실현 가능하지만 보이지 않는 허름한 벽에 막혀 있을 뿐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눈 꼭 감고 한 번만 해보자. 산전 수전 다 겪은 부부답게 한 번만 해보면 될 일이다. '가족끼리 왜 이래' '우린 아무 문제도 없어'라는, 만병통치약처럼 군림하는 해괴한 주장은 집어치우고 그저 해보면 된다. 도대체 뭘 하느냐고? 영화를 보면 되겠다. 아주 상세하게 알려줄 것이다. 아마 하지 않고는 못 배길듯, 한 번 하면 또 하고 싶어 할듯. 참고로 영화는 '청불', 상상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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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라우더 댄 밤즈>


'폭탄보다 거대한' 게 과연 무얼까?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라, 충격일까 슬픔일까 둘 다일까. 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린나래미디어


투철한 종군 사진 작가 이자벨, 그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이다. 남편 진은 그녀의 3주기에 맞춰 기념 전시를 열기로 한다.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큰아들 조나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진과 작은 아들 콘래드가 함께 사는 집,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어색하기보다 서먹하고, 서먹하기보다 반목이 존재한다. 이자벨이 죽기 전에도 그랬을까, 이자벨이 죽고 나서일까. 


한편, 이자벨의 동료였던 리차드는 이자벨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죽음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말한다. 그게 도리에 맞거니와 이자벨도 그걸 원했을 거라면서. 조나는 알고 있지만 콘래드는 아직 모르는 그 비밀을, 진은 말하고자 하고 조나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그 와중에 조나는 엄마에 대한 진짜 비밀을 알게 되는데...


영화 <라우더 댄 밤즈>는 북유럽 태생답게 건조하고 싸늘하고 잔잔한 느낌이 주를 이룬다. 거기에 무채색의 예리한 칼날이 도처에 있어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듯하다. 제목부터가 '폭탄보다 거대한'이 아닌가. 이 제목이 수식하는 단어는, 그 행간에 감춰진 단어는 아마도 '충격'보다는 '슬픔'이 아닐까 예측해본다. 강렬한 제목과 무미건조해 보이는 분위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이자벨, 진, 조나, 콘래드. 이 가족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자, 이 영화의 모든 것일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를 지닌 '문제적 가족'


이 문제적 가족의 균열은 종군 사진 작가 이자벨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직업 특성 상 집에는 거의 있지 못하고 세계 각지의 위험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지 않겠나. 남편도 남편이거니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문제다. 특히 작은 아들은 한창 학창시절을 보내며 사춘기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때인데. 더구나 위험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치기 일쑤이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군 사진 작가'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자벨, 그녀의 죽음. 그녀의 살아생전에도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가족은 문제가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문제들. ⓒ그린나래미디어



그 모든 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가슴앓이를 하는 이는 다름 아닌 남편 진. 그는 '가족'을 위해 연기자 생활을 접었기에 그녀를 보는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 가족을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것이나 다름 없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아주 복잡한 심정이다. 걱정도 되면서 화도 나는, 그녀에 대한 걱정이 곧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자신을 선택과 현재를 보며 그녀의 선택과 현재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소용돌이치는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큰 아들 조나는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러며 엄마 살아생전 아버지와의 이혼을 중용하기도 했던, 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무관심보다는 적대감에 가까운, 대면대면한 사이랄까. 한편 그는 이제 갓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지만, 그래서 어느 때보다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지만,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내를 자꾸만 피하게 되고, 오히려 옛 연인에게 더 마음이, 그런 자신이 괴롭다. 그 와중에 엄마의 살아생전 비밀을 알게 되니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 그렇지만 엄마를 그렇게 기억하긴 싫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아들 콘래드는 엄마의 죽음의 비밀을 모른다. 살아생전 비밀도 당연히 모른다. 그저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 품이 그리울 뿐이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지만 쳐다보기도 말을 섞기도 싫다. 사춘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엄마가 없기에 더 삐뚫어진 것 같다. 자꾸 대화를 위한 대화를 원하는 아버지가 더 싫어진다. 대신 오랜만에 돌아온 형과 자주 대화한다. 한편 그는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다. 좀 노는 아이인 것 같아 새차게 다다갈 순 없지만 용기를 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이 가족의 문제는 평범한 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다 사연이 있을 테니까, 그 사연의 크기와 종류가 다를 뿐이다. ⓒ그린나래미디어



이 가족은 사실 그리 문제적이지는 않다. 평범한 가족일 뿐이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는 그런 가족, 즉 대다수 가족에게서 보이는 문제들을 이들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다만, 엄마의 직업이 남달랐었다는 것. 이제는 엄마가 없다는 것. 엄마의 죽음이 특별했다는 것. 무엇보다, 문제를 풀 겨를 없이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엄마가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남은 이들끼리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태에 직면했다는 것. 3년이나 풀지 못하고 지속되어 왔다는 것. 


가족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뭔가 있어 보인다. 구성, 분위기,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포스가 그동안 많이 접해왔던 할리우드 영화와는 너무 다르다. 치밀한 복선과 꽉 찬 서사, 물 흐르는 듯한 전개, 확실한 기승전결을 이 영화에선 찾기 힘들다. 그래서 자칫 겉만 있어 보이려고 하는 영화로 비치기 십상이다. 별 것 아닌 내용을, 쉽게 보지 못한 것들로 만들어, 신선함만 부여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 가족이 지닌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것 같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들의 사적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남은 가족들이 대통합을 이루지도 못한 것은 물론이다. 3년 만에 만나 한순간 대통합을 이룬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오히려 엄마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어 아픔과 슬픔과 당혹감만 커졌을 뿐인 것 같다. 


문제의 해결보다 시급한 건, 문제의 인식. 그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아는 것. 그 존재 자체를 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 이상은 자연스러운 것. ⓒ그린나래미디어



'그런데'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런데 가족이 무엇인가. 가족 구성원들 서로서로의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해결하는 것이 목적인가? 개개인의 사적 문제를 일일이 알고 같이 고민하며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만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인가? 우린 사실 가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큰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작은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며 누구를 좋아하고 있는지, 아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어떤 생각으로 가족들을 대하게 되는지,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연기자를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다.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먼저 아는 것이다. 공유하는 것이다. 해결하려고 달려들기 전에 일단 알아야 한다. 뭐가 문제야?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네. 자, 해결됐지? 그럼 이제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족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부탁해. 대다수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역할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역할을 등한시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은 지옥이 될 수 있다. 


거기엔 분명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해야할 것들이 있다. 그건 그리 부담스럽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가족을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도우려 하고, 조금 더 생각하면 된다. 집에 가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푹 쉬고 싶고 가족들의 품 안에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싶다. 더불어 가족들을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 딱 그런 마음을 가족들 모두가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을 가족들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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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표지 ⓒ예담



결혼한 지 어언 3개월이 지나간다. 이렇게 지낼 줄은 나도 몰랐다. 결혼하면서 처갓댁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여차저차 이유를 댔지만 사실 집을 얻어 사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대출 안 받고 신혼을 시작하는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우리 딴에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모아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대가족이라 하기에는 뭣하지만, 엄연히 두 가정이 모여 사는 것이니 중가족 정도는 될 거다. 중가족 정도라도, 장인 장모 부부나 우리 부부나 방에 꼭 박혀 생활하는 걸 워낙 좋아한다고 해도, 은근히 부딪히는 것들이 많다. 속으로만 삭히고 있는 것들도 많을 거다. 그래도 이정도면 남들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훌륭한 편이다. 나름 괜찮다. 


다만, 장인 장모의 진짜 마음을 알 길이 없다는 게 조금 걸린다. 우리와 같이 사는 게 불편하시진 않을지. 편할 리는 없을 테지만, 너무 불편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다. 이제 나가서 살면 또 다른 신혼 생활이 시작될 거라 가슴 벅찬다. 다른 가족들은 어떨까? 대가족이 북적북적이면 불편하기도 재밌기도 할 것 같다. '오늘만은 무사히'를 외치는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예담)의 류타로, 하루코 부부의 대가족을 들여다보자. 


다시 대가족화,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72세의 류타로, 66세의 하루코 부부는 알츠하이머병(치매)에 걸린 92세 장모님 다케를 모시며, 30세 히키코모리 장남 가쓰로와 함께 살고 있다. 치매에 걸린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건 흔하다면 흔하다지만, 히키코모리 아들은 좀 그렇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존재감이 없던 아이니까. 신경이 쓰이지만 속 썩을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노후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순식간에 집안의 인원이 두 배로 늘어났다. 첫째 딸 가족과 둘째 딸이 들어오게 된 거다. 자신이 운영하던 치과 의원을 물려줄 사위를 바랐던 류타로의 기대와 다르게 증권맨과 결혼한 첫째 딸 이쓰코. 사업을 시작해 잘 나간다 싶더니, 급기야 빌려간 돈까지 다 말아먹고 사업이 망하고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까지 대동한 채 집에 들어와 살겠다는 게 아닌가. 


둘째 딸 도모에는 더욱 가관이다. 잘 사는 줄 알았더니, 이혼한 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해서 나타나 집에 들어오겠다고 한다.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 걱정 없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거기에 아이 아빠가 전남편이 아니라 열네 살 연하의 미래가 불투명한 신인 개그맨이라니. 뒷목 잡고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막장 드라마의 시초 같은 이 스토리는, 그러나 이 시대에서 아주 아주 흔하다.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드라마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의 30여 년 전 드라마에서도 알 수 있듯 예전에는 당연히 3대, 4대가 모여 살았다. 이후 급격히 햇가족화 되었고 사회 문제로까지 발전했었다. 그러던 것이 다시 대가족화 되어가고 있다. 전통으로의 회기? 전혀 아니다. 더 심각한 사회 문제다. 


극심한 경쟁에서 도태되어서, 사회병리에 희생되어서, 경제심리사회 문제의 당사자가 되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사회가 이들을 지켜줄 수 없으니 비빌 언덕이 그나마 가족인 것이다. 자기 앞가름하기도 빠듯한 대부분의 가족들에게는 그조차도 불가능하다. 사회에서 도태되면 곧 나락이다.


가족을 그림으로써 맞는 소설적 재미, 그리고 문제점


류타로, 하루코 부부는 괜찮게 사는 편이다. 그래서 돌아온 탕아들을 포용할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소설이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할 수 있었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동을 자아낼 수 있었다. 가난에 찌든 가족이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아쉬운 부분도 바로 그것인데, 사회에서 도태되어 돌아오려는 이들의 상황은 보편적인 게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돌아오려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과연 보편적이냐, 하는 점이다. 절대 그렇지 않을 거다. 


약간의 아쉬운 부분을 뒤로 하고, 소설은 재미와 감동을 거의 완벽하게 잡아냈다. 그 힘의 대부분은 작가 특유의 문체에서 비롯되었는데, 스토리나 그 안의 사건 사고들은 사실 크게 별 다를 게 없어 더욱 그러했다. 그러며 여러 생각 거리들을 던져 놓으니 대단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겠다. 


편편이 가족들 각자의 시선에서 이루어졌는데, 확실한 결말을 내지 않고 마지막에서 대단원으로 정리한 것도 상당히 괜찮았다. 그럼으로써 가족의 의미를 더욱 고찰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사회가 할 일을 가족에게 떠 맡기고 있는 이 웃지 못할 상황을, 가족의 의미를 드높이며 무마시키는 게 과연 옳은 건지. 더욱 사회를 비판하며 오히려 가족에겐 힘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하는 게 맞지 않은지 말이다. 여하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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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질문이 답을 바꾼다>


<질문이 답을 바꾼다> ⓒ어크로스

'우문현답'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한다는 뜻인데요. 흔히들 질문한 사람의 어리석음보다는 대답한 사람의 현명함을 칭송할 때 쓰이지요. 물론 그 반대인 '현문우답'도 존재합니다. 이에 비슷한 말로 '동문서답'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동쪽을 묻는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뜻이지요. 즉,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언급했던 고사들은 질문과 대답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옛적부터 소통을 중요시했고, 소통에 있어서 '질문'과 '대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요소들을 적절히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둘중에서도 먼저 꺼내어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요소인 '질문'을 잘하는 게 중요할 듯합니다. 

원하는 답이 있거든 그에 맞는 질문을 해야 하겠죠?


적절한 질문의 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약 '정치 스타'로 발돋움한 사건이 있습니다. 국회 5공 비리조사특위의 일해재단 청문회였는데요. 그때 그가 했던 질문을 보겠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죽은 노동자는 그 사람이 실수로 죽었거나 실수 아닌 걸로 죽었거나, 증인이 돈을 벌려면 노동자는 화약 옆에 가야 합니다. 기계 옆에 가야 합니다. 화약 앞에 가면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은 항상 노동자들에게 '우리 가족'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가족이 죽었는데 3,000만원 주니, 4,000만원 주니, 8,000만원 주니. 돈 10억, 5년 동안 34억 5,000만원. 권력자에게는 34억 5,000만원을 널름널름 갖다 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 주려다 죽은 그 노동자에게 3,000만원 주느니 8,000만원 주느니 하면서 그렇게 싸워야 합니까? 그것이 인도적인 것입니까? 그것이 기업이 할일입니까? 답변하십시오."


당시 많은 의원들이 사실규명보다는 정치연설과 알맹이 없는 호통으로 일관한 데 비해 그는 치밀한 논리를 동원한, 간명하되 예리한 신문으로 노한 증인들을 압도했습니다.(1988.11.11 경향신문) 이에 청문회 대상자는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못했습니다. 고의성 '동문서답'의 예입니다. 그런 모습이 청문회 자리에서는 질문하는 자가 원하는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리하고 좋은 질문이 필요한 순간이 많이 있습니다만, 청문회 자리만큼 올바른 질문이 필요할 때도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일화를 소개해 드립니다. <질문이 답을 바꾼다>(어크로스)에서 발췌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을 내 방에서 확 내쫓아버렸어요."

"뭐라고요?" 

나는 프레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똑똑하고 강인한 프레드는 얼간이를 보면 못 참는 타입이다. 그렇다 해도 그가 화를 내며 누군가를 사무실에서 억지로 내쫓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정말로 내쫓았다고요? 농담이죠?"

"농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 질문'을 했단 말입니다."

"무슨 질문이요?"

"요즘 제일 고민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프레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책은 전략 컨설턴트인 저자가 '답을 바꾸는 탁월한 질문' 매개체로 질문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질문부터 바꾸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스티브 잡스는 항상 직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합니다. "이게 자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한번 더 자신을 돌아보고 최상의 품질을 위한 고민을 해보게 하는 간단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군요. 


위의 일화에 대한 분석을 하며 답을 찾아 봅니다.(상대방이 높은 지위라는 가정 하입니다.) "요즘 제일 고민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런 류의 질문은 그냥 되는 대로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상대방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추상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문제'라는 단어의 선택입니다. 상대방이 조직에서 운영상의 문제를 담당하는지, 큰 비전을 세우고 성장과 혁신을 담당하는지 파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죠. 상투적인 질문이 아닌, 미래 비전과 관련된 질문, 상상력을 자극하는 질문, 상대방의 입장에 알맞은 질문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질문은 문제를 정확히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판단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혹자는 질문을 어렵게 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하는 것을 질문을 잘 하는 법이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물론 예를 들었던 청문회 자리 같은 경우에는 맞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 것이라면, 원하는 답을 듣고 싶은 거라면 탁월한 질문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판단을 올바른 곳으로 이끌고, 문제의 핵심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게 하고,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질문의 힘입니다. '원하는 게 있거든 질문을 바꿔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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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