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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볼품없는 노부부의 섹스를 응원한다! <호프 스프링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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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호프 스프링즈>


노년의 사랑이 특별할 건 없다.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노년의 사랑을 코믹하게 그렸다. 특별함 대신 평범함을 선택했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결혼한 지 30년이 갓 넘은 노부부 케이(메릴 스트립 분)와 아놀드(토미 리 존스 분). 그들은 아놀드가 허리를 다쳤다는 이유로 각방을 쓴다. 케이가 큰 맘 먹고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버려 가며 먼저 다가가려 하면 아놀드는 피곤하다며 단칼에 거부한다. 단지 허리를 다친 것 때문이 아닌 것 같다. 사랑이 식어버린 게 아닐까. 


그래도 케이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놀드를 위해 계란과 베이컨을 대령한다. 신문을 보며 당연한 듯 받아먹는 아놀드, 케이는 짤막한 감사 인사와 가벼운 키스를 원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없다. 케이도 출근하는 건 마찬가지, 이런저런 것들을 따져 봐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부부 생활에 말이다. 뭔가가 빠져 있다. 사랑? 섹스? 


2000년대 이후로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가 많이도 나왔다. 전에 없는 풍년인데, 급격한 노령화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자칫 노년의 사랑이 특별하다고만 느끼게 할 수 있는 바,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역시 노년의 사랑을 그린 <호프 스프링즈>는 전 세계 노부부가 느낄 만한 평범한 주제로 특별함을 배제했다. 일명 '섹스리스 부부'. 노년의 섹스리스와 사랑을 코믹하게 그렸다.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풀기


다름 아닌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코믹하게 그려내지만, 들여다보면 굉장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자못 진지하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섹스에 사랑이 포함될 순 없지만 사랑에 섹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랑 없는 섹스는 가능하지만 섹스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말, 동의하는가? 플라톤의 <대화> '항연'편에서 비롯된 '플라토닉 러브'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할 테지만, 일반적인 견해에서 볼 땐 절대적 진리에 가깝다. 


케이와 아놀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노부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되는) 노부부처럼 그들도 식어버린 사랑과 섹스리스 문제를 겪는다. 특히 케이는 이를 참기 힘들다. 그녀는 질색하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진행되는 비싼 상담에 신청한다. 자그마치 4000달러나 하는. 


케이는 그곳으로 떠나는 것 자체가 좋다.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얼마만인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일탈하는 게 얼마만인가. 아놀드도 따라왔다는 건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다는 증표가 아닌가. 하지만 순조롭지 않다. 상담박사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그들에게 해야 할 '숙제'를 준다. 아놀드는 이에 대노하고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케이는 충격을 받는데...


문제 풀기의 제1단계는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를 직시하지도 못한 채 문제 풀기가 끝나버린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 단계를 지나가면 한층 수월할 터, 영화는 일면 '문제 풀기'의 단계를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 같다.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 


'우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우리만 그런 줄 알았다. 뻔히 보이지만 아무 문제 없다고 허풍을 떠는 것 말이다. 특히 '가족'이 된지 오래된 이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데이지엔터테인먼트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내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은 않게 만든다. 삶의 질을 위해서,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 간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중년, 노년 부부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산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는 중년, 노년 부부들이 '정'으로 사는 게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서양도 마찬가지인 바, 인류보편적인 삶의 진행인가 보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런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우리나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오는 중년 부부,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박해미와 이준하 부부의 닭살 돋는 모습이 어찌 '비정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부부상담, 노부부의 섹스리스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정곡을 찌르고 들어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지치고 곪디곪은 사랑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한다. 당연히 반발이 심하다. 누구라도 처음엔 반발이 심할 터, '우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에서 시작해 급기야 상담사를 욕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엔 상대방을 질타할 것이고. 


서로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속시원히 드러내는 건 정말 쉽지 않다. 30년을 넘게 함께 산 '사랑하는 사람'과 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일단 1단계를 넘어서면 일사천리다. 그야말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한 것. 이제 노력하면 된다. 물론 그 노력이란 게 나이와 세월에 심각하게 가로막힐 수 있겠다. 그러면 '이해'와 '배려'의 2단계에 도달한 거다. 


볼품없는 노부부의 섹스를 응원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며 노부부의 섹스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노부부에게도 한 때 서로를 향한 끝모를 갈망이 있었다. 젊었을 때, 지금은 희미한 기억 속에서나마 겨우 존재하고 있는 감정들이 그때는 항상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가? 아니다. 사랑도 나이가 들어 지치고 힘겨워 할 뿐이다. 그래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이 사랑스러운 영화는, 볼품없는 노부부까지도 사랑스럽게 만들고 심지어 그들의 섹스를 응원하게 만드는 이 영화 <호프 스프링즈>는, 그냥 그렇게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식어 있는 사랑의 불꽃이 봄에 새싹이 솟아나듯 다시 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정상체위'만을 일삼는(?) 남편에게 아내의 '섹스 판타지'를 선사하고, 자신만이 사랑의 피해자인 줄 알았을 아내에게 남편의 생각지도 못한 피해 사실을 말해주면서. 


현실과 이상은 구분해야 하겠지만, 암울한 현실과 유쾌한 이상 모두를 선사하는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구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당히 암울한 게 아닌 정녕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며, 충분히 실현 가능하지만 보이지 않는 허름한 벽에 막혀 있을 뿐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눈 꼭 감고 한 번만 해보자. 산전 수전 다 겪은 부부답게 한 번만 해보면 될 일이다. '가족끼리 왜 이래' '우린 아무 문제도 없어'라는, 만병통치약처럼 군림하는 해괴한 주장은 집어치우고 그저 해보면 된다. 도대체 뭘 하느냐고? 영화를 보면 되겠다. 아주 상세하게 알려줄 것이다. 아마 하지 않고는 못 배길듯, 한 번 하면 또 하고 싶어 할듯. 참고로 영화는 '청불', 상상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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