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낮술>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 여러 모로 보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때론 너무 웃겨서, 때론 너무 답답해서, 때론 너무 불쌍해서, 때론 너무 나 같아서. ⓒ영화사 진진



실연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혁진을 위로 하기 위해 친구들이 뭉쳤다. 의미 없는 말이 오가고 혁진은 여전히 실의에 빠져 있다. 기상이가 제안을 하나 한다. 내일 당장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 아는 형이 폔션을 하고 있으니 몸만 가면 된다는 것. 마침 장날이기도 하단다. 폔션 잡고 놀다가 강릉 해수욕장에 가서 겨울바다를 마주하며 컵라면에 소주 한잔 들이키자는 것. 술김에 생각할 것도 없이 모두 승낙한다. 


혁진은 홀로 정선에 도착한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장은 어제 끝났다고 한다. 혁진은 점심을 먹는다. 기상한테 전화가 왔는데 서울이란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일모레나 갈 수 있다고 한다. 혁진은 기상을 욕하며 반주를 한다. 기상이가 계속 전화를 건다. 이왕 거기까지 간 거 폔션에 가서 쉬라고, 내일 모레 가겠다고. 혁진의 모험 아닌 모험이 시작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영화 <낮술>은 <조난자들>의 노영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 두 작품으로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상도 많이 탔다. 비록 두 작품이지만 그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본격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이다 보니 흥행하기가 쉽지 않고 영화를 계속 만들기도 쉽지 않다. 


주인공 혁진은 술을 엄청 좋아하는, 그런 이는 아니다. 다만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으니, '술 잘 마시네~'. 그럴 때마다 혁진은 좋아하며 더 마신다. 우리 모든 남자의 자화상. ⓒ영화사 진진



영화는 내가 보아 온 여타 '주류' 독립영화와는 다르다. 독립영화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킴이 주를 이루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문제를 건드리곤 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 <가시꽃> <마돈나> <4등>이 그랬다. <낮술>은 장르부터가 '코미디'이고 '술'이 주요 소재인 만큼 이들과는 멀 수밖에 없을 거다. 


영화에서 술 마시는 장면만 열 장면 이상이다. 장면당 5분씩만 해도 영화의 절반에 해당한다. 거기엔 어김 없이 주인공 혁진이 있는데, 술을 향한 폭주는 아니다. 그는 술을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가, 누군가가 무슨 이유를 대서 술을 권하면 때론 즐겁게 때론 억지로 술을 마신다. 빠지지 않는 말이 있으니 "이야, 술 잘 마시네~" 


정말 찌질하지 않나. 왜 그러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런데 혁진에게서 내 모습이 보인다. 나 뿐만이랴? 여러 남자들이 보인다. 대다수이지 않나 싶다. 딱 저 한마디면 된다. 그러면 아마 대다수 남자들은 술을 거절하지 못할 거다. 술 마시는 장면만 나오면 손발이 오그라 들면서, 웃기고 슬프다가, 우울해지고, 술 진탕 마신 것처럼 허탈해진다. 그걸 의도한 거라면 정녕 잘 해냈다. 


홍상수표와는 또 다른 '진리'


남자 입장에서 술이 있는 자리에 여자가 빠질 수 없다. 혁진은 술이라면 거절을 못하는데, 또 여자도 거절 못한다. 혁진은 며칠의 여행 아닌 여행 동안 온갖 처참한 꼴을 당하는데, 온전히 술과 여자 때문이다. 애초에 실연을 당하고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정선에 가게 된 거 아닌가. 또 폔션에서 옆방 여자에게 들이대려다가, 옆방 여자의 유혹에 못 이겨 그리 된 게 아닌가. 


홍상수표 영화인듯 아닌듯, 가장 먼저 홍상수표 영화가 생각나지만 또 다르다. 또 다른 '찌질'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사 진진



술과 여자, 술자리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홍상수표 영화'. 그의 영화에 빠짐 없이 등장한다. 그의 영화에, 특히 술자리에서 꼭 등장하는 게 있으니, 허세 가득한 술자리 비평들이다. 다 상대방을 꼬시려는 수작이다. 그게 너무 눈에 드러나는데, 그래서 너무 찌질해 온몸이 가려울 정도인데, 너무 나와 똑같아서 무섭기까지 하다. 


반면 <낮술>에는 술자리 비평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술을 마실 뿐이다. 고작 하는 얘기가 술에 관한 거다. '술 한잔 하러 가실까요' '술 한잔 쭈욱 들이키시죠' '술 잘 마시네' '주량이 어느 정도세요?' '거국적으로 건배' '원샷입니다' 등. 정녕 아무 의미 없는 말이 오간다. 홍상수표 술자리와는 또 다른, '진리'에 가까운 모습이다. 


'재미'의 향연, 그 뒤엔 여지없이 '술'로 인한 씁쓸함


한편으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 어른 남자의 로드 무비로도 읽힌다. 생각나는 소설이 하나 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최고의 성장소설 중 하나로, 아이지만 스스로가 어른 같다고 자부하는 홀든 콜필드가 학교를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흘 동안 겪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다뤘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는 한편 천사 같은 이들도 만난다. 진정한 천사인 여동생 피비를 만나며 콜필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술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저 혁진의 여정에 포커스를 맞춰도 좋다. 일종의 폭소 로드 무비랄까. 그저 재밌고 재밌다. 또 보고 또 봐도 마찬가지. 단, 남자한테만 그럴듯? ⓒ영화사 진진



혁진은 어땠을까. 변태도 만나 당할 뻔하고 호의를 갖은 척 접근한 이들에게 제대로 털리기도 한다. 이상한 말을 해대는 못생긴 여자에게 명확한 거절의 뜻을 내비치니 쌍욕을 해대지 않나, 알고 보니 그 여자가 기상이의 아는 형의 사촌 여동생이라지 않나... 정말 되는 게 하나 없는, 콜필드의 여정 못지 않는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콜필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콜필드는 집에 돌아가기 싫어 여정을 택한 거고 혁진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다.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너무 재밌고 생각하며 봐도 역시 너무 재밌다. 박장대소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몇몇 등장한다. 조금은 예상이 되지만 너무도 천연덕스러운 연기 덕분에 웃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웃음 뒤에는 항상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 앞에 여지 없이 '술'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일 년에 한 번은 꼭 술 때문에 인생에 남을 만한 사고를 치곤 한다. 차마 말 할 수 없는 그런 정도로 말이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술을 진탕 먹고 사고를 치곤 하는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다. 혁진이도, 아니 술을 마시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겨울바다를 배경으로 컵라면에 소주 한 잔',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환상적이다. 춥긴 너무 추울 텐데, 뜨거운 컵라면에, 속 깊이 지져주는 소주까지. 혁진이 직접 해보고 친구한테 말해줬다. "야, 너무 춥기만 하더라. (너무 추워서 컵라면하고 소주를 먹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그렇다. 술은 항상 핑계가 있다. 핑계는 핑계로만 끝나지 않고 술도 술로만 끝나진 않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언더 워터>


상어와 여인의 한판 승부? 상상이 안 간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는 말한다. '그냥 따라와' ⓒUPI코리아



화보용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아리따운 여인이 서핑을 즐기는... 카메라 워킹도 그에 맞춰져 있다. 적절히 치고 빠지는 역동성이 제격이다. 모든 시선이 주인공을 향해 있다.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그런데 왜 불안할까?


주인공은 의대생으로, 슬럼프에 빠져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듯 이름 모를 해변을 찾았다. 아무도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꼭 한 번씩 던지는 말, '조심해요'. 뭔가 있는 걸까. 


영화가 시작할 때 해변에서 어느 꼬마 아이가 떠내려온 카메라 헬멧을 주운다. 카메라를 가득 채운 상어의 벌린 입과 날카로운 이빨. 꼬마는 어디론가 달려간다. 상어가 출물할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상어와 주인공 여인의 한판 승부인가? 상상이 안 간다. 


상상할 필요 없다, 그냥 따라 와라


화보 찍는 초반부, 하지만 그것조차 뭔가 불안하고 초조하고 긴장된다. 상어의 존재를 미리 내비췄기 때문일까? 괜찮은 선택인듯. ⓒUPI코리아



영화 <언더 워터>는 시작부터 스토리 전개가 추측 가능하다. 상상이 잘 안 될 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있다는 것일 게다. 왠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그러나 지구 상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게 아름다운 해변에서 벌이는 여인과 상어의 사투를 아주 빼어나게 연출할 자신이 감독에게 있다는 걸로 보인다. 굳이 상상할 필요 없이 그냥 따라 와라. 


정작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선 그럴 기미가 전혀 없다. 평화롭게 서핑을 즐기는 여인 낸시(블레이크 라이블리 분). 그럼에도 불안감이 엄습하는 건, 파도가 집채보다 크고 낸시가 불안정한 상태고 시작부터 상어를 봤기 때문일 거다. 그럼 이미 긴장된 상태라는 걸까. 


그런 와중에 특히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을 극대화시키는 건 카메라의 시선이다. 간간히 물 아래에서 낸시를 주시하는 듯한 시선을 보여주는 게 왠지 상어의 시선 같다. 상어가 아니라고 치더라도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곧 낸시도 느낀다. 하지만 이미 늦지 않았을까? 동물의 감은 사람의 감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영화 <테이큰>으로 회춘한 리암 리슨과 심리 게임이 가미된 액션 3부작을 비교적 괜찮게 내놓은 감독인지라,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사람을 감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순전히 배경과 카메라와 음악으로만 보여주는 신세계다. 짧은 러닝타임도 여기에 한 몫 하는데, 덕분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정신 차릴 새가 없다. 


스릴러에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가미하다


1인 고립 영화답지 않게 스릴러에 인간 승리 드라마를 가미했다. <그래비티>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는데, 과연 그 향기가 좋을까 나쁠까. ⓒUPI코리아



영화 곳곳에서 향기가 난다. 여러 영화의 향기가. 감각적이고 스피디한 전개는 <127시간>을 연상케 하고, 낸시가 고독하지 않게 곁을 지키는 갈매기 '스티븐 시걸'은 <캐스트 어웨이>의 배구공 '윌슨', <터널>의 강아지 '탱이'가 생각나게 한다. 상어가 출현하니, <죠스>나 <딥 블루씨>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짜깁기'나 '짝퉁'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외려 클리셰를 적절히 잘 가져다 썼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나아가 대단하다고 느낀 건, 이 영화가 일명 '상어 영화'의 재발견이라 불릴 정도의 퀄리티를 선보였다는 것이다. 상어는 항상 출현을 예견해주는데,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장르가 공포 아니면 액션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게끔 진행된다. 


<언더 워터>는 스릴러와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가미했다. 공포가 아닌 스릴러가 될 수 있었던 건, 낸시와 상어의 쫓고 쫓기는 일방적이지 않은 추격전이 시종일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상어에게 당해낼 수는 없는 법, 와중에 낸시는 계속 공격을 당하고 몸은 회복불능 상태로 빠르게 진행된다. 거기에 '물'과 '햇빛'이라는 자연과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화들짝 놀라기 보다 심장이 쫄깃한 상태가 지속된다. 


예측할 수 있듯, 그녀가 살아난다고 가정하면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필수다. 끝없이 계속되는 위협에도 자신을 놓치 않고 살아나가려는 불굴의 의지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어간다. 여기서 <그래비티>의 향기가 물씬 풍겨난다. 스톤 박사가 내디딘 한 발이 꽉 쥐는 낸시의 주먹과 오버랩되는 것이다. '상어 영화'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는 듯하다. 부디 이정도로만 만들어 달라. 


악랄하고 무차별한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


주인공 여인이 악랄하고 무차별한 상어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가장 궁금하다. 더욱 악랄하고 무차별하게 맞대응할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라도? ⓒUPI코리아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낸시는 유일한 여성이다. 두 명의 여성이 나오지만 낸시가 영상통화하는 여동생과 문자로만 보여지는 친구 뿐이다. 카메라 헬멧을 주은 아이, 낸시를 해변까지 태워주는 이, 해변에서 서핑 삼매경인 두 명, 낸시의 도움 요청과 만류를 무시한 이가 모두 남자인 것이다. 그들 중 세 명은 낸시의 만류를 무시하고 상어에게 먹히고 만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지. 


여자가 도움을 청할 때 무시하는 건 남자가 해야 할 짓이 아니다, 라고 배웠다. 더군다나 여자가 만류하면서 도와주려 하는데 그 또한 무시하는 처사라니, 예전이었으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자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남자들을 모조리 집어 삼킨 상어와 말이다. 


상어는 뭘까. 전투 준비가 충만한 남자의 상징일까. 여자의 도움 요청과 만류를 통한 도움을 무시하는, 남자답지 못한 남자를 해치우고 여자에게 진짜 남자의 힘을 보여주려는 걸까.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러서야 하나. 사실 낸시는 이미 전투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서핑 준비의 자세, 서핑의 도구들이 마치 전쟁을 하러 나가는 병사의 모습이다. 그녀는 전쟁에서 이길까, 질까. 불굴의 의지를 보인다는 건, 이긴다는 뜻일까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뜻일까. 


과도하고 돼먹지 못한 해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류의 여전사는 일전에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랄하고 무차별한 공격에 대응하는 건 더욱 악랄하고 무차별한 맞대응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맞대응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더욱 악랄하고 무차별한 맞대응이 아닌, 다시는 그런 식의 공격을 할 수 없게 무용지물 상태로 만드는 게 맞을 것이다. 여러 방법이 있지 않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서프러제트>


지금은 당연한 것들 중 하나인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꽃 ‘선거’. 여성과 흑인의 참정권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고 나서도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 그 어떤 참정권 운동보다 길었다. 결정적으로 과격했다.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UPI코리아


영화 <서프러제트>는 일방적이다. 20세기 초 영국, 50년 동안 계속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끄떡없다.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과격해진다. 그들 말마따나 정부가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이 폭력이기 때문이다. 돌을 던져 건물 유리창을 박살내는 걸 시작으로, 비어 있는 건물에 불을 지르고 유력 정치가에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라는 급진적 구호를 내건 서프러제트의 주요 활동이었다.

 

가상의 인물 모드 와츠가 어떻게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되어 과격한 폭력 활동까지 하며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나를 앞뒤 가릴 것 없이 직진하는 식으로 그려낸 영화는, 심오한 고민이나 산재한 문제들을 뒤로 하고 현상에 집중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의 한 면과 본질을 무시한 것인데, 하등 이상할 것 없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서프러제트를 이끈 전설적 인물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아닌 그녀에게 감화된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을 가상의 인물로 내세운 점만 봐도 그렇다. 감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될 때까지 수많은 시련이 있었다는 걸 안다. 그중 하나가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의 꽃 선거. 특히 여성과 흑인의 참정권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고 나서도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 그 어떤 참정권 운동보다 길었다. 결정적으로 과격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과 결이 완전히 반대인바,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흔한 여성 노동자가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까지


영화는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흔한 여성 노동자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가 남성 고용주의 부당한 심부름(남자가 해야 하는 일을 떠맡김)을 가는 도중 서프러제트에 의한 폭력 활동을 목격하며 시작된다. 이후 세탁공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남녀차별에 차츰 눈을 뜬다. 우연히 엉겁결에 의회에서 증언을 하게 되는 모드,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증언했다는 진심어린 말이 여기저기 회자된다. 때문에 정부에서 찍은 요주의 인물이 된다.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흔한 여성 노종다인 모드 와츠는 우연히 서프러제트의 폭력 활동을 목격한다. 이후 세탁공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차별에 차츰 눈을 뜬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UPI코리아



여성 참정권 가부 발표가 있던 날 현장에 참여했다가 체포되는 모드, 감옥에서 여성의 굴욕을 맛보고는 발을 빼려 한다. 하지만 더 심해진 차별을 보고 다시 현장으로 향한다. 그때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연설을 듣고 감화된다. ‘물러서지 말아요,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이길 거예요. 노예가 되느니 반역자가 됩시다!’ 한 번 더 잡혀갈 위기에 처한 모드, 그런데 감옥이 아닌 집 현관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남편한테 맡기면 알아서 할 거란 말과 함께.


남편의 행동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진정한 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정부가 행하는 폭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편은 그녀를 쫓아내고는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입장 보내 버린다. 남자인 남편의 머릿속에 뿌리박힌 사상, “‘아내이고 아이의 엄마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녀들이 맞서야 했던 건 참정권이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남자, 나아가 여자들에게도 뿌리박힌 그와 같은 사상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지금은 물론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참정권은 돌아갔지만, 뿌리 깊은 사상은 아직 인 것 같다. 여전히 여자를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로만 생각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장 효율적으로 강한 목소리 내기, '폭력'

 

쫓겨난 모드가 갈 곳은 서프러제트 일원의 집뿐이다.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족에게까지 한순간에 내팽개쳐진 그녀는 서프러제트 활동에 매진한다. 아무도 그녀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상황, 가장 뼈아픈 건 같은 여성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대다수 여성들은 위험을 무릎 쓰고 현실을 바꿀 마음이 없다.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게 운명이니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 50년 동안 계속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끄떡없다.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과격해진다. 정부가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이 ‘폭력’이기 때문이다. 서프러제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라는 급진적 구호를 내걸고 활동한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UPI코리아



남은 건 뭘까. 격렬히 시위하고 유리창을 깨고 의회에 청원해도 그녀들의 목소리는 속절없이 묻히지 않는가. 정부는 그 행위를 관심을 얻어 보려는수작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렇다면 남은 건 차원을 달리하는 행동이다. 그들이 행하는 짓보다 더한 행위, 힘없고 무능하다고 여기는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유능한 행위인 폭력말이다. 그것도 생각하기 힘든 폭력.

 

폭력은 격렬한 고민을 수반한다. 아니,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 폭력이라는 건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가장 악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서프러제트는 폭력을 목소리로 인지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편으로 말이다.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남성이었기에.

 

지금 한창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페미니즘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말할 필요가 있겠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페미니즘에 속해 있긴 하지만, 여성 참정권은 겉으로 드러난 활동이자 시작일 뿐이다. 거기서 끝나는 건 아무 것도 아닌 것과 다름없다. 진정 쟁취할 건 남녀평등에 있겠다. 아직 여러 면에서 남녀평등은 실현되지 않았다.

 

올바른 일이라면 행동하라

 

남녀평등에 대해 말할 때 굉장히 조심하는 편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말할 때는 가끔 말을 더듬기도 할 정도다. 조심도 조심이지만, 스스로 남녀평등에 대해 절대적이리만치 선을 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는-’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 남자를 옹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특히 민감한 사항인 군대, 결혼 얘기가 나올 때가 그렇다.

 

여자들이 여자니까 ~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할 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영화에서 남자들의 생각에 당연한 듯 동조하는 여자들의 심리처럼 말이다. 그런 이들이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남자는~’이라고 말하면 내 머릿속에서 남녀평등이 흔들리곤 하는 것이다.


요즘 페미니즘에 관해 수많은 논란이 오고간다. 이 영화는 그 시작이 성스러웠음을 보여준다. 비록 폭력을 동반했지만, 합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그들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했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는 그런 나의 고민을 붙들어 주었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여성 참정권을 되찾기 위해 전진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성스럽게 다가왔다. 올바른 일이라면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거기엔 많은 고민과 고충이 뒤따르겠지만, 실제로 뒤따랐겠지만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보여주지 않았다. 행동만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금 생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심각했다. 여자친구도 지금은 웃으며 그때의 본심을 이야기 하지만, 당시에는 절대 웃을 수 없었다. 그건 명백히 여자친구의 나에 대한 시험이었다. 며칠 밤을 새도 풀리지 않을 시험. 하지만 그 시험은 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아직 우리가 사귀기 전이다. 옥신각신. 일종의 밀당이라고 할까. 우리 사이는 겉으로는 태평해 보였지만, 안에서는 태풍이 불고 있었다.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아마도 나의 사랑을 믿지 못하였나 보다. 그땐 내가 한없이 약했으니까. 역시 약한 지금보다도 훨씬 더. 


그녀는 처음에 장난 비슷하게 시작했다. 가끔씩 자기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면 그래도 자기를 사랑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진지하기 그지 없었으니까. 그 반응이 재미 있었는지, 아니면 그 반응에 실망했는지 점점 장난이 아닌 것 처럼 물어보는 거였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 저 남자예요. 어쩌실래요?"



anisos.tistory.com



흠...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그녀가 장난을 치는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후이기 때문에, 나는 그 질문에 혼란이 밀려왔다. 참으로 오랜 고민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그녀는 줄기차게 물어 왔다.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셨냐고. 정말로 난감했다. 살면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앞으로 그런 생각을 할 마음도 없는데 말이다. 결국 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녀의 말에 감동을 받았고 큰 도움이 되었다. 


"난 오빠가 뭐든 상관 없어요. 오빠 자체가 중요해요."


그러며 내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다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내가 인간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그 말에 감동받지 않을 자 누구인가.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을 고민한 뒤 나도 그녀에게 같은 말을 했다. 


"너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 없어. 너 자체가 나에겐 중요해."


당시에는 그 말에 그녀가 크게 감동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에게는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그게 사실 일종의 실험이었다는 걸. 물론 오빠 자체가 중요하다는 건 당시와 지금의 변함 없는 진심이지만. 


덕분에 지금 어느 커플보다 공고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다. 웃지 못할, 그렇지만 웃음이 나오는 추억인데 중요한 걸 남겨 주었다. 그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의 사랑이 흩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그 자체로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그녀는 그녀로 남아있을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나간 책 다시읽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동녘라이프

사랑은 참 힘들다. 사랑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나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지,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 건지, 행복하지 않은 사랑을 계속 해야 하는 건지, 그럼에도 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은지, 왜 웃음보다 울음이 기쁨보다 슬픔이 자주 찾아오는지... 


사랑은 참 어렵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그 이론은 단 한 사람한테 해당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만큼 그들이 하는 사랑도 모두 다 다르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겠지만 완벽한 정답은 없다. 사랑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이 나를 버릴 때 나는 기꺼이 삶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을 자신 만의 콘텐츠로 형상화 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지만, 실상은 사랑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 가장 적확한 이론이 담겨져 있는 책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 사랑에 대한 이론이 없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삶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분명 비슷하게라도 만들어냈을 것이 분명하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동녘라이프)는 나온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애의 교과서이자 사랑의 지침서임에 분명하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책 중에서 사랑에 대해 가장 적확한 이론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이 조명하는 건 남녀 간의 차이이다. 


이 책이 시종일관 천명하는 건 남녀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여자는 '이해'와 '관심'을, 남자는 '인정'과 '격려'를 원한다. 이는 얼핏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엄청나다 못해 거의 모든 걸 가르는 큰 차이이다. 


남녀 간의 차이를 조명하다


이건 실제 연인·부부관계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바인데,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문제를 이야기할 때 남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여자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차분히 들어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원할 뿐이다. 


또 다른 자주 반복되는 상황을 보면, 여자는 자신이 받았으면 하는 이해와 관심을 남자에게 쏟아붓곤 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려 하며 염려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자칫 남자를 짜증스럽게 하기 쉽다. 여자로부터 조종 당하고 느끼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반면 남자는 여자가 상심해 있을 때 문제의 중요성을 축소화시켜 '그까짓 것' 처럼 보이게끔 해 떨쳐버리도록 도와주고자 하거나, 자신이 그러는 것처럼 여자를 방치시킴으로서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여자로 하여금 무시 당하고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 


위의 상황들은 모두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들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의 본능에 가까운 생각이나 행동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알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이해해도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차이를 끊임없이 각인 시키며, 그것을 기반으로 해 일종의 컨설팅을 해준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저자가 컨설팅 하거나 저자 본인의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 현실적이며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 한다. 그리하여 이론과 방법, 사례와 실천의 사 박자가 두루 갖추어진 교과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연애의 교과서'를 넘어선 '관계의 교과서'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을 한 적이 무수히 많다. 이 정도로 많은 횟수는 근래 들어 처음 있을 정도이다. 아니, 그 어떤 책을 읽을 때에도 이토록 진실된 반응을 보인 적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이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연애의 교과서'라는 다소 고루하고 과분한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손색이 없다. 사실은 타이틀이 잘못 붙어 있는 것 같다. 다 읽고 느끼는 바는 '관계의 교과서'라는 타이틀이 어울리겠다 하는 것이다. 물론 남자와 여자에 대한 특징을 연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통용되는 바이다. 


이 책은 남자가 남자를 또는 여자를, 반대로 여자가 여자를 또는 남자를 대할 때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 속속들이 알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연애'에만 천착되어 있었다면, 단연코 이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봐두어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남자의 종말>


<남자의 종말> ⓒ민음인

'종말'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흥미롭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단어가 상당히 많이 쓰였다. 대표적으로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론이 있을 테고, 최신에는 2012년 12월 21일 종말론이 있었다. 마야달력에 이 날 이후가 없다는 논거이다. 비록 흔한 가십거리로 넘어간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그 단어에서 오는 파급력에 인간의 본성이 질 때가 많다. 


이런 힘을 이용해 유명해 지고 싶은 것이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자 하는 것이든, 그동안 '종말'이라는 단어를 쓴 거대 담론이 출현했던 것은 사실이다. 


종말 시리즈의 대표격인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호소력있는 현실 비판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논 바 있다.

 

<빈곤의 종말>로 유명한 제프리 삭스는 경제 현실 비판으로, 진정한 인간적 가치 추구를 위한 경제적 실천을 강조해 왔다.

 

이밖에도 <역사의 종말>, <질병의 종말> 등의 책이 나와 있는데, 상당히 위험하고 폭발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다. 지금 소개하는 책인 <남자의 종말>(민음인)도 미국 출간 후 여론의 반응이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갈렸다고 한다.

 

남성 우위 시대의 종언 선언


2009년은 미국에서 특별한 해라 아니할 수 없다. 최초로 미국 노동 인구 중 여성 비율이 남성을 넘어선 것이다. 20만년 동안 남성 위주였던 역사가 저물고 그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게 된 것.

 

이듬해인 2010<애틀랜틱>'남자의 종말'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칼럼이 실린다. 이 칼럼은 미국의 대학 입학률, 이혼율 등을 예로 들며 남성 우위 시대의 종언을 냉정히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 칼럼을 쓴 '해나 로진'은 관련된 칼럼, 주장, 취재 등을 종합해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들, 거시적인 이론과 주장 같은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콘텐츠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통한 분석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고 있다. 또한 억측이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은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지난 40년간 어떤 부분에서, 노동시장은 신체적 크기나 힘에 대체적으로 무관심해졌고, 그 이후 남자 노동자들은 더 이상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와 정보 경제에서 가치 있는 것은 사회적 지능과 열린 소통, 차분히 앉아서 필요한 자격증을 얻을 때까지 충분히 오래 집중하는 응력이다. 이 모든 영역에서 여자들은 남자들과 적어도 동등하며, 많은 부분에서 남자들을 능가한다. 기술은 남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했고, 육체노동은 한물갔다고 여겨지며 경제학자들이 '대인관계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는 능력이 되었다."-본문 중에서

 

남성이 월등히 유리했던, 힘의 '전쟁''노동'의 시대는 퇴조하고 있다. 반면 '정보'와 서비스' 경제 시대에서 중요한 의사 소통력, 사회적 지능, 차분히 집중하는 능력은 동등하거나 많은 여성이 낫다고 말한다. 미래의 직업은 여자의 몫이 될 것이며, 남자들은 적응이라는 과제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기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전망이다. 현재의 상태가, 정상의 자리는 영원하고도 굳건히 남성의 차지로 남을 것임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곧 사라질 시대의 마지막 숨결을 드러내는 진실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조차도 최정상 권력을 움켜쥔 남성의 지배가 느슨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본문 중에서

 

여성 우위 시대로의 전망 


분명한 건 있다. 적어도 비율로 따졌을 때, (평균적으로) 현재까지는 남성의 임금이 여성보다 높고 최고경영자, 국가원수, 국회위원 등 각계각층의 고위급 성비율에서도 남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앞서 언급했던 요직의 여성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급격히 증가할 전망이다. '남성 위주'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에서는 이미 여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27개국에서 여성 대졸률이 남성보다 높다고 한다. 소위 여성의 눈이 높아져 멀지 않아 '시소 결혼', 즉 지금의 통념 상에 있는 결혼 모델이 반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이 전유물이다시피 던 주요 직업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절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상당히 가부장적인 한국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란다. 추락을 거듭하는 남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최근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저서 <남자의 물건>에서 저자는 한국 남성에게 습관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그들의 가부장적인 형태는 사라져 가는 유물이다."-본문 중에서

 

남자와 여자, 그 본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책이다. 언제나 나오는 비판인 몇몇 사례로 성급한 일반화를 한다는 비판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종말'이라는 과감한 제목을 들어나온만큼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힐 거대담론 조성을 기대해 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