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독자에게] <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이로운 것들> 출간에 부쳐


<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이로운 것들(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3) 표지 ⓒ아시아



2년여 전 쯤이었을 겁니다. 우연히 책 두 권을 접했습니다. 시리즈인듯 아닌듯 같은 출판사(웅진닷컴)의 같은 저자(제임스 헤리엇), 같은 번역자(김석희)의 책이었죠. 한 권은 2001년, 다른 한 권은 2002년에 나왔더군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제목과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동일한 부제인 '수의사 헤리엇이 만난 사람과 동물 이야기'로 책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지 재미있었습니다. 어쩜 이리 아기자기 하면서 풍성하고 행복하면서 슬프고 긴박하면서 느긋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들을 어찌 이리 잘 표현해내는지,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편했던 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즉시 국내에 출간된 제임스 헤리엇 책을 모조리 구입해 직원들 모두가 돌려가며 읽고 분석에 들어갔죠. '어떤 식으로 복간을 할 것인가?'가 목적이었습니다. 


그에 앞서 이미 저작권 해결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가장 먼저 김석희 선생님께 전화해 복간 작업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원고를 가지고 계시는지와 더불어 계약과 진행 관련된 사항을 간략히 주고받았죠. 그러곤 에이전트에 판권은 살아 있는지, 이전에 출간한 출판사에서 복간할 의향이 있는지 문의하고는 바로 계약에 들어갔습니다. 


'제임스 헤리엇' 시리즈를 결정하다


알고 보니, 제임스 헤리엇이 쓴 책이 수십 권에 이르더군요. 기본이 되는 4권의 시리즈가 있고, 나머지 책들은 대부분 그 책에 상당 부분 가져와 추가 원고를 더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들은 시기도 출판사도 번역자도 중구난방이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1, 2권이 4권으로 분리되어 나왔고, 2000년에도 1권이 나왔으며, 2001년과 2002년에 각각 2권과 3권이 나왔었습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소개되어 왔던 제임스 헤리엇이지만, 사실 많이 알려지게 된 건 2001년과 2002년부터죠. 그리고 2003년에는 '개 이야기'가 2권으로 분리되어 같은 출판사와 번역자의 손에 출간되었습니다. 이후 2005년에는 다른 출판사와 다른 번역자가 '동물 이야기'와 아동용 책들을 출간합니다. 


우리는 우선 기본이 되는 4권에 더해, 3권을 추가로 계약했습니다. '개 이야기' '고양이 이야기' '동물 이야기'가 그것이고요. 일관성 있는 시리즈를 위해 김석희 선생님께 7권 모두를 맡겼습니다. 이 시리즈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이 분명하고,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실력은 두말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본인께서 1권부터 끝까지 제대로 번역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우여곡절 끝에 1년여 만에 2016년 10월 첫 책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아시아)이 나왔습니다. '제임스 헤리엇'을 아시는 분들이 은근히 많아서 소소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김석희'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도 크게 작용했고요. 이후 12월 <이 세상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들>과 2017년 2월 <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를 내놓았습니다. 


연작 소설 또는 연작 에세이


2개월 주기로 2017년 내로 7권 모두를 내놓자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식 시리즈 3권에 해당하는 <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이로운 것들>을 출간하기 전에, 말씀드릴 순 없지만 지나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더불어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와 같은 동물 관련 책인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를 출간하기도 했고요. 여하튼 계획한 것보다 2개월 늦은 6월에 3권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연작 소설' 또는 '연작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굳이 1권부터 읽지 않아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이왕이면 1권부터 접하며 제임스 헤리엇가 이제 갓 수의대를 졸업하고 요크셔 지방의 대러비로 이주해 수의사로 일하게 된 사연과 수의사로서의 일들, 그리고 장차 아내가 될 이와의 연애와 결혼까지 들여다보고, 2권으로 본격적인 시골 수의사로서의 일들과 달콤한 신혼을 들여다볼 수 있죠. 


3권인 <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이로운 것들>에선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공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는 제임스 헤리엇과 대러비에서의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룹니다. 4권은 제대 후 대러비로 돌아와 아이를 낳고 지역의 명사가 되는 이야기가 나오죠. 더불어 '개 이야기' '고양이 이야기' '동물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천착한 이야기들입니다. 


동물을 넘어 생물로


그렇습니다. 이 시리즈는 하나 같이 1930년대 요크셔 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1916년에 태어난 제임스 헤리엇이 50세가 넘은 1970년대에 들어 비로소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어낸 것이죠. 의도한 게 아닌, 우연히도 시리즈 첫 책을 낸 2016년은 제임스 헤리엇 탄생 100주년이었습니다. 좀 더 세밀하게 조사해 일찍 알았다면 뭔가 더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더 많은 분들께 알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아무래도 이 시리즈가 갖는 태생적 한계도 존재하지 않나 싶습니다. '수의사'라는 그다지 관심이 많이 가지 않을 수 있는 키워드를 타이틀에 넣어야 하는 반면, '반려동물' 하다못해 '동물'도 타이틀에선 다루지 않죠. 엄연히 '수의사 제임스 헤리엇'이 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인지 책 곳곳에서 우린 1930년대의 원시적인 의약품과 시술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소중한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이죠. 더불어 그가 '시골 수의사'이기 때문에 알게 되는 외딴 요크셔 지방의 생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동물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의 인간 주인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였죠. 즉, 순수한 자연에서 지내며 모든 '생물'들에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보인 것입니다. 수의사(獸醫師)의 수(獸)가 짐승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생물을 의미하게 만드는 위대한 진보입니다. 


그렇다면 '제임스 헤리엇'을 알리는 길밖엔 없을 텐데, 서양에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며 최소 수천만 부 이상 최대로 잡아 1억 부는 족히 팔리고 1권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앤서니 홉킨스가 제임스 헤리엇의 은인과 같은 동업자 시그프리드 파넌 역을 맡았으며 BBC에서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이 또한 수천만 명은 봤을 정도로 위인의 자리를 꿰찬 그를 이곳에서 반의 반도 끌어올리지 못했습니다. 제임스 헤리엇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시리즈는 이제 막 절반을 지났습니다. 잘하면 올해 내로, 못해도 내년 초까지는 시리즈가 일단락날 것 같고요.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할 테지만, 모든 생물을 사랑한 제임스 헤리엇을 이보다 더 알리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연장선상에서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시리즈를 더 알리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간절함을 담아 한 번 여쭤보려고요. 후회하지 않을 그 이름, '제임스 헤리엇'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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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지난 10월 29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3'에 이어집니다.

숨가쁘게 달려온 '출간 연재'가 끝났습니다^^ 혹시! 더 원하시는 분이 많다면 더 이어나가보도록 하겠지만, 책을 구입해서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ㅋ 그리고 시리즈가 계속 이어나간다고 하니~ 소장해보심이? 저는 다 구입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출간 연재'를 카카오 채널에서 연재해 왔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블로그와 카카오 채널에 동시 연재 해보았어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해보고 싶네요^^



나는 상자로 돌아가서 무서운 기구를 꺼내고, 개구기도 함께 꺼내서 앞니에 끼우고 말의 입이 크게 벌어질 때까지 톱니바퀴로 개구기를 열었다. 그러자 모든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문제의 원인은 거기에 있었다. 입의 반대쪽에도 첫 번째 것과 똑같은 거대한 가지가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이제 나는 그것을 두 개나 잘라내야 했다.

늙은 수말은 다 알아차린 것처럼 눈을 감다시피 하고 참을성 있게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발가락을 꼬부린 채 작업을 계속했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이빨이 부러지자 하얀 테를 두른 눈이 크게 뜨였지만, 그 눈에는 가볍게 놀란 표정이 떠올랐을 뿐이다. 말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반대쪽 뼈를 잘라내는 동안에도 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개구기가 턱을 억지로 벌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말은 따분해서 하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기구를 치우는 동안 존 노인은 풀밭에서 뼛조각을 집어 들고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가엾은 녀석. 잘했소, 젊은 선생. 이젠 녀석들도 기분이 훨씬 좋아지겠지.”

돌아오는 길에 건초꾸러미에서 해방된 존 노인은 아까보다 두 배나 빨리 걸을 수 있었고, 쇠스랑을 지팡이처럼 사용하여 맹렬한 속도로 언덕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나는 기구 상자를 몇 분마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기면서 숨을 헐떡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절반쯤 올라갔을 때 기구 상자가 내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 기회에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렸다. 존 노인이 초조하게 중얼거리는 동안 나는 뒤에 남겨두고 온 말 두 마리를 돌아보았다. 말들은 여울로 돌아가 놀고 있었다. 활기차게 서로 쫓아다니고 발로 물을 튀겼다. 벼랑은 그 장면에 어두운 배경막을 이루었다. 반짝이는 강물, 청동색과 황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나무들, 향기로운 초록색 풀밭.

농가 마당으로 돌아오자 존 노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한두 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고맙소, 젊은 선생.” 그러고는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내가 일을 무사히 끝낸 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구 상자를 자동차 트렁크에 집어넣고 있을 때, 아까 언덕을 내려가는 도중에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양지바른 구석에 여느 때처럼 쾌활하게 앉아, 수북이 쌓인 자루에 등을 기대고 낡은 군용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그 늙은 짐승들을 보러 내려갔었군요?”

“영감님은 규칙적으로 그 말들을 찾아갑니까?”

“규칙적이라고요? 날마다 가죠. 날마다 영감님이 거기로 터벅터벅 내려가는 걸 볼 수 있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어요. 그리고 갈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가져가지요. 곡식자루나 잠자리에 깔아줄 짚이나.”

“그런 일을 12년 동안이나 했군요?”

남자는 보온병 마개를 열고 홍차 한 잔을 따랐다.

“그동안 말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녀석들을 말고기 장수한테 팔았다면 목돈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지 않나요?”

“맞아요. 이상한 일이네요.”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는 생각은 병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줄곧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날 아침에 파넌과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았다. 그때 우리는 가축을 많이 키우는 사람이 개개의 동물에게 애정을 느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방금 다녀온 목장에는 축사마다 가축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존 노인은 가축을 수백 마리나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날씨와 상관없이 날마다 그 언덕을 내려가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왜 그는 그 늙은 말들의 말년을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채웠을까? 왜 그는 자신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마지막 안락과 평안을 그 말들에게 주었을까?

그것은 정녕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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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2'에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들은 까불면서 장난을 치려고 존 노인의 주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발을 구르고, 머리를 흔들고, 그의 모자를 주둥이로 눌러서 눈을 덮어버리기도 했다.

“그만 해!” 그가 외쳤다. 하지만 그는 암말의 갈기를 잡아당기고 수말의 목을 쓰다듬었다.

“이 말들이 마지막으로 일을 한 게 언젭니까?” 나는 물었다.

“한 12년쯤 됐을 거요.”

나는 존 노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12년 동안 말들은 줄곧 여기 있었나요?”

“여기서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놀고…… 은퇴한 거나 마찬가지요. 그때까지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만한 보상은 받을 만하지.” 그는 잠시 어깨를 웅크리고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말없이 서 있다가 마치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했다. “내가 노예처럼 일하던 무렵엔 이 녀석들도 노예나 같았지.”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연푸른 눈 속에서 그가 동물들과 함께 나눈 고통과 고난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감추어졌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2년이라니! 도대체 이 말들은 몇 살이나 됐습니까?”

존 노인의 입이 한쪽 구석만 말려 올라갔다.

“당신이 수의사니까 나한테 알려줘 보시오.”

나는 이빨의 마모도와 경사도 같은, 말의 나이를 판정하는 여러 단서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얌전히 서 있는 암말의 윗입술을 뒤집고 이빨을 살펴보았다.

“맙소사!” 나는 놀라서 숨을 헐떡거렸다.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앞니는 엄청나게 길었고, 앞으로 튀어나와 약 45도 각도로 위·아랫니가 서로 만나고 있었다. 어금니에 홈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닳아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웃으면서 존 노인을 돌아보았다.

“나이가 몇 살인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영감님이 말씀해주셔야겠는데요.”

“암말은 서른 살쯤 됐고, 수놈은 한두 살 어려요. 암말은 새끼를 열다섯 마리 낳았고, 이빨에 약간 문제가 있는 것 말고는 병을 앓은 적이 없다오. 이빨을 몇 번 갈아주었는데, 이제 또 갈아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둘 다 쇠약해지고 있어서, 건초를 씹다가 입에서 조금씩 흘리고 있지. 수놈이 더 심해서 먹이를 씹는 것도 이 녀석한테는 아주 힘든 일이오.”

나는 암말의 입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혀를 잡고 한쪽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어금니를 재빨리 조사해보니 내가 의심한 대로 윗니의 바깥쪽 가장자리가 너무 많이 자라서 톱니처럼 깔쭉깔쭉해 볼을 자극했다. 아래쪽 어금니의 안쪽 가장자리도 비슷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혀의 피부가 약간 벗겨져 있었다.

“제가 곧 암말을 편안하게 해주겠습니다. 저 날카로운 이빨 가장자리를 줄로 갈아내면 신품과 마찬가지로 좋아질 겁니다.”

나는 기구 상자에서 줄을 꺼낸 다음, 한 손으로는 말의 혀를 잡고 뾰족한 부분이 충분히 줄어들 때까지 이따금 손가락으로 확인하면서 이빨의 거친 표면을 갈아냈다.

“이 정도면 되겠어요.” 잠시 후에 나는 말했다. “너무 매끄럽게 갈고 싶지는 않네요. 그러면 말이 먹이를 으깨지 못할 테니까요.”

존 노인은 약간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소. 이젠 다른 녀석을 좀 봐주시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저 녀석이 훨씬 더 잘못되어 있다오.”

나는 수말의 이빨을 만져보았다.

“암말과 똑같은데요. 이 녀석도 금방 고쳐놓겠습니다.”

하지만 줄을 밀 때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줄이 입 뒤쪽까지 완전히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줄을 막고 있었다. 나는 줄질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최대한 밀어 넣어 탐색해보았다. 그리고 이상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될 장애물이었다. 그것은 입천장에서 아래쪽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뼈 같았다.

이제는 제대로 봐야 할 때였다. 나는 회중전등을 꺼내 혀 뒤쪽을 비추었다. 이제 문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위쪽의 마지막 어금니가 아랫니 위에 겹쳐져서 뒤쪽 가장자리가 이상할 만큼 비대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8센티미터쯤 되는 칼 모양의 미늘이 잇몸의 부드러운 조직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뽑아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도 당장. 나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는 것을 겨우 억눌렀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가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긴 손잡이가 달린 그 가위에는 가로대로 작동하는 나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보기만 해도 오싹했다. 나는 누군가가 풍선을 부는 것도 무서워서 못 보는 사람인데, 이것은 그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우선 가위의 날카로운 날을 이빨에 고정시키고 가로대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린다. 곧 이빨이 거대한 지레장치 밑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언제라도 이빨이 부러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빨이 부러질 때는 누군가가 귀에 대고 소총을 발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개 큰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이때였다. 하지만 다행히 이 말은 얌전한 늙은 말이니까, 뒷다리로 일어나서 춤을 추며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자란 부분에는 신경이 공급되지 않으니까, 말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소음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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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출간 연재-1'에 이어집니다. 



데너비 농장은 그냥 규모가 큰 농장이 아니라 한 남자의 인내와 기술이 낳은 기념비적 농장이었다.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집, 넓은 축사들, 낮은 산비탈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목초지는 모두 존 스킵턴 노인이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이룩한 성취의 증거였다. 그는 교육도 전혀 받지 못한 농장 일꾼으로 출발하여 이제 부유한 농장주가 되어 있었다.

그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존 노인은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했을 만큼 힘든 일을 평생 계속해왔다. 그 생애에는 아내나 가족이 들어갈 여지도 전혀 없었고 육체적 쾌락을 누릴 여유도 없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그에게는 농사 문제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있었고, 그것이 존 노인을 이 지역의 전설로 만들어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 길로 갈 때 나는 다른 길로 간다”는 그가 즐겨 인용하는 격언이었고, 다른 농장들이 파산으로 내몰리고 있던 어려운 시기에도 그의 농장들이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 데너비는 존 노인의 여러 농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는 데일 저지대에 각각 150헥타르쯤 되는 넓은 경작지를 두 개나 갖고 있었다.

그는 승리를 얻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랫동안 승산 없는 싸움을 했고, 너무 격렬하게 자신을 몰아대서 이제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온갖 사치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밑에서 일하는 일꾼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도 존 영감보다는 나은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 잠시 멈춰 서서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 집을 바라보았다. 혹독한 기후를 300년 넘게 견뎌온 그 저택의 우아함에 나는 새삼 감탄했다. 사람들은 데너비 저택을 보려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납으로 씌운 높은 창문이 달려 있고 이끼가 자란 낡은 기와 위로 거대한 굴뚝들이 우뚝 솟아 있는 우아한 장원 저택의 사진을 찍었다. 방치된 정원을 지나고 넓은 계단을 올라가 거대한 문 위에 돌로 만든 넓은 아치가 씌워져 있는 입구까지 가보는 사람도 있었다. 옛날에는 중간 문설주가 있는 그 여닫이 창문에서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아름다운 여인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고, 주름장식이 달린 저고리와 반바지를 입은 기사가 끝이 뾰족한 갓돌을 얹은 높은 담장 아래를 걷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존 노인이 초조하게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단추도 다 떨어지고 누더기가 된 그의 코트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허리에 두른 기다란 삼실 한 가닥뿐이었다.

“잠깐 들어오시오, 젊은 선생.” 그가 외쳤다. “갚아야 할 외상값이 조금 있다오.”

그는 앞장서서 집 뒤쪽으로 돌아갔고, 나는 요크셔에서는 청구서가 항상 ‘약간의 외상값’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우리는 판석이 깔린 부엌을 지나 우아하고 널찍하지만 가구라고는 탁자 하나와 나무의자 몇 개와 부서진 소파 하나밖에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존 노인은 벽난로로 다가가서 시계 뒤에서 종이 다발을 꺼냈다. 그리고 종이 다발을 뒤져서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은 다음, 수표책을 꺼내 내 앞에 탁 내려놓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청구서를 꺼내 거기에 적힌 금액을 수표에 옮겨 쓴 다음 서명해달라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중하게 정신을 집중하여 글씨를 썼다. 이목구비가 작고 세파에 찌든 얼굴을 낮게 숙여서, 낡은 헝겊 모자의 앞챙이 펜에 닿을 지경이었다. 바지가 다리 위쪽으로 치켜 올라가서, 의자에 앉으면 앙상한 장딴지와 복사뼈가 드러났다. 그는 양말도 신지 않고 맨발로 무거운 장화를 신고 있었다.

내가 수표를 주머니에 넣자 존 노인은 벌떡 일어났다.

“강까지 걸어가야 할 거요. 말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는 거의 뛰다시피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갔다.

나는 기구 상자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꺼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닐 때마다 내 환자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상자는 납으로 가득 찬 것처럼 무거웠고, 담장으로 둘러싸인 목초지를 지나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가벼워지지는 않을 터였다.

존 노인은 쇠스랑으로 건초꾸러미를 푹 찔러서 자루를 어깨 위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경쾌한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통용문을 차례로 지나갔고, 목초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를 때가 많았다. 존 노인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나는 숨을 조금 헐떡거리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그가 나보다 적어도 쉰 살은 더 많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절반쯤 왔을 때 우리는 오랜 전통의 ‘담쌓기’ 작업을 하고 있는 남자들과 마주쳤다. 데일스의 푸른 언덕 비탈 곳곳에 무늬를 그리고 있는 돌담에 뚫린 구멍을 보수하는 작업이었다. 남자들 가운데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그는 쾌활하게 외쳤다.

“안녕이고 뭐고 어서 일이나 해.” 존 노인은 투덜거리며 대꾸했고, 사내는 칭찬이라도 받은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비탈을 다 내려가 평지에 도착하자 나는 기뻤다. 내 팔은 몇 센티나 늘어난 것 같았고,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존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였다. 그가 어깨에 걸쳤던 쇠스랑을 흔들자, 갈퀴에 꽂혀 있던 건초꾸러미가 풀밭에 쿵 떨어졌다.

말 두 마리가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좁은 강변은 초록빛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잔디밭으로 차츰 변했다. 그 강변 바로 너머에 자갈이 깔린 여울이 있었다. 말들은 그 여울에 발목까지 물에 잠긴 채 서 있었다. 말들은 우리가 접근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서로 코와 꼬리를 맞대고 턱을 상대의 등에 부드럽게 문질렀다. 건너편 강둑 위로 튀어나온 높은 벼랑이 바람을 막아주었고, 우리 양쪽에는 참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숲이 가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말들이 아주 멋진 곳에 있군요.” 나는 말했다.

“그래요. 더운 날씨에도 여기서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고, 겨울이 오면 헛간으로 가지요.” 존 노인은 문이 하나뿐인 건물을 가리켰다. 벽이 두껍고 지붕이 낮은 건물이었다. “말들은 제 마음대로 오갈 수 있지.”

그의 목소리에 말들이 뻣뻣하게 굳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쳐서 강물에서 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말들이 정말로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말은 밤색이었고 수놈은 적갈색이었지만, 회색 털이 너무 많이 섞여서 둘 다 회색이나 흰색 얼룩이 있는 말처럼 보였다. 특히 얼굴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하얀 털이 얼굴 전체에 흩뿌려져 있고 눈은 움푹 들어가고 눈 위에 깊은 구멍이 있어서, 정말로 고귀해 보였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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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제임스 헤리엇'이라는 영국 수의사의 이야기 시리즈가 국내에 다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에 계속해서 재출간되었는데, 2010년대에도 어김 없이 돌아왔다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 판매가 되었고,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2,0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해요. 


이번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이 1탄이고, 올해 말에서 내년까지 계속 이어진다고 해요. 네이버 책/문화판에서 10.11~10.20까지 '출간 전 연재'가 있었고, 제 블로그에서 특별히 4회에 걸쳐 '출간 연재'가 있겠습니다. 사실 맛보기죠~ 아시아 출판사에서 협조해주셨습니다^^ 본문 36화 중에, 25화에 해당됩니다. 다시 4회를 쪼갰어요. 오랜만에 정말 재밌는 글 읽은 것 같아요. 많이 봐주세요!



나는 아침 식탁에 앉아서 아침 햇살에 가을 안개가 차츰 사라지는 것을 내다보았다. 오늘도 맑은 날씨가 될 것 같았지만, 낡은 건물 안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어서 몇 달 동안 계속될 혹독한 겨울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상기시켜주듯 오슬오슬 추웠다.

“여기 이런 기사가 실려 있군.” 파넌이 《대러비 타임스》지를 커피포트에 조심스럽게 세우면서 말했다. “농부들은 키우는 동물들한테 동정심이 전혀 없다고.”

나는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잔인하다는 뜻인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농부에게 가축은 영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친구는 주장하고 있어. 가축을 대하는 농부의 태도에는 어떤 감정도…… 애정이 전혀 없다는 얘기지.”

“농부들이 모두 킷 빌턴 같다면 도저히 해나가지 못할 겁니다. 모두 미쳐버릴 거예요.”

킷 빌턴은 트럭 운전수였는데, 대러비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족의 식용으로 마당 한구석에 돼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돼지를 잡아야 할 때가 오면 킷이 사흘 동안 흐느껴 운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그가 돼지를 잡았을 때 우연히 그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와 딸은 고기를 삶아서 소금에 절이기 위해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었지만 킷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화덕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100킬로그램이나 되는 곡식자루를 번쩍 들어서 트럭 짐칸에 던질 수 있는 거구의 사내였지만, 내 손을 움켜쥐고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헤리엇 선생님. 그 돼지는 기독교도 같았어요. 정말로 꼭 기독교도 같았다니까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파넌은 몸을 앞으로 구부려서 홀 부인이 손수 구운 빵을 한 조각 잘랐다. “하지만 킷은 진짜 농부가 아니야. 이 기사가 다루고 있는 건 많은 동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가축한테 휘말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거지. 쉰 마리의 암소한테서 젖을 짜는 낙농가가 그 암소들을 정말로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암소들은 단순히 우유를 생산하는 기계에 불과할까?”

“흥미로운 문제군요. 원장님은 가축의 수를 강조하신 것 같은데, 고지대에는 가축을 몇 마리만 키우는 농부도 많습니다. 그들은 암소한테 이름을 붙여주지요. 데이지라든가 메이벨이라든가. 요전 날에는 키펄러그스라고 불리는 암소도 만났습니다. 이런 농부들은 자기가 키우는 가축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가축을 키우는 농부들이 어떻게 애정을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파넌은 식탁에서 일어나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아마 자네 말이 맞을 거야. 어쨌든 오늘 아침에는 자네를 정말로 많은 가축을 키우는 농부한테 보낼 거야. 데너비 농장의 존 스킵턴이라는 사람인데, 이빨을 갈아야 할 말이 있다는군. 늙은 말 두어 마리가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인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니까 기구를 모두 챙겨서 가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복도를 지나 작은 방으로 가서 치과용 기구를 조사했다. 큰 동물의 이빨을 치료해야 할 때면 언제나 중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고, 말이 짐수레를 끌던 시대에는 그것이 정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어린 말의 낭치(狼齒: 앞어금니 앞쪽에 있는 작은 어금니)를 뽑는 일이었다. 이 이빨이 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의 어금니 바로 앞에 작은 낭치가 있었다. 어린 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낭치가 책임을 뒤집어썼다.

퇴화하여 흔적만 남은 작은 이빨은 말의 건강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고 문제는 아마 기생충 때문일 거라고 수의사들이 항의해도 소용이 없었다. 농부들은 완강했다. 어쨌든 그 이빨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끝이 둘로 갈라진 금속 막대를 이빨에 대고 나무망치로 때려서 이를 뽑았다. 낭치는 제대로 된 뿌리가 없기 때문에 뽑아도 별로 아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가 망치로 한 번 때릴 때마다 말은 대개 두세 번쯤 앞발을 들어 올려 우리의 귀 주위에서 휘두르곤 했다.

이 일을 끝내면, 단지 농부를 만족시키기 위해 잠깐 마술을 행했을 뿐이라고 말해주곤 했지만, 곤혹스러운 것은 그 후 말의 상태가 호전되고 그때부터는 계속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농부들은 우리가 치료비를 더 많이 청구할까 두려워 대개는 우리의 수고가 성공한 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지만, 이 경우에는 조심성을 모두 던져버렸다. 그들은 시장 건너편에서 우리를 보면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이봐요, 당신이 낭치를 뽑아준 말을 기억하슈? 그 말이 아주 좋아졌어요. 낭치가 문제였던 거요.”

나는 치과용 기구를 떨떠름한 눈으로 다시 살펴보았다. 60센티미터 길이의 팔이 달린 겸자, 날카로운 턱을 가진 가위, 개구기, 망치와 정, 줄. 마치 종교재판소의 조용한 구석에 있는 고문 기구들 같았다. 우리는 손잡이가 달린 길쭉한 나무상자에 그 기구들을 넣어서 갖고 다녔다. 나는 꽤 많은 기구를 골라서 나무상자에 담고 자동차로 가져갔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 - 10점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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