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초행>


2017년 마지막을 장식한 독립영화 <초행>. ⓒ㈜인디플러그


결혼한 지 만 2년에 다가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꿈꾸던 결혼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아, 당연하게 생각되어지기 시작한 이 생활에서 때때로 신기함을 느낀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남자'라는 것, 내가 아닌 남자가 꿈꾸던 결혼생활에 가깝다는 건 여자에겐 정반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린 연애 7년 차에 결혼에 다다랐다. 나는 결혼이라는 걸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항상 옆에 있고 싶었다. 무엇을 하든 함께 하고 싶었다. 부부인 건 물론,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또 하나의 나였다. 그러나 쉽지 않은 게 있다. 모든 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말이다. 


영화 <초행>은 연애 7년 차에 접어든 30대 커플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선 자연스러운 일일까, 이 정도 시간 동안 만난 30대 커플이면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까, 이들의 관계에 있어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다. 


모든 삶의 길은 초행길이고 또한 가시밭길이기에...


모든 길이 초행길일 것이다. 그리고 모두 가시밭길일 것이다. ⓒ㈜인디플러그



연애 7년 차 커플 수현(조현철 분)과 지영(김새벽 분), 그들은 동거 중이고 지영이 생리 끊긴 지 2주째라 걱정하고 있다. 임신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수현은 좋아하는 반응도 걱정하는 반응도 없이 그저 '진짜로?'만 되풀이하며 더 이상의 생각을 하기 싫어하는 눈치다. 자연스레 걱정은 지영에게로 집약된다. 


수현과 지영은 인천에 있는 지영네 집과 강원도 삼척에 있는 수현네 집을 차례로 방문한다. 편안하고 무난한 지영네 집에서의 일일, 다만 엄마가 지영이에게 결혼 압박을 가한다. 남들처럼 결혼한 딸 자랑도 하며 손주 또는 손녀도 돌보고 싶다는 것이다. 지영은 이 집에서 내 의견은 없다며 반발한다. 


한편, 수현 아버지 환갑 잔치 겸사 처음 수현네 집에 방문하는 그들. 지영은 곧바로 수현 엄마와 일을 하고 수현은 하릴없이 돌아다닌다. 저녁이 되어서 수현 엄마가 운영하는 횟집에 모이는 일가족. 말 한 마디 없던 수현 아빠가 취하더니 돌변하고 만다. 그렇게 잔치 아닌 잔치를 파하고 만다. 


어느 집을 가도 마음 편할 길 없는 수현과 지영, 더군다나 그들은 각각 좌절의 미술 강사이고 불안의 방송국 계약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보살펴주는 것만으로는 온전하기 힘든 삶의 양태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 또한 삶, 모든 삶의 길들은 누구나에게 초행길이기에 또한 가시밭길이기에 누구에게 묻기도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초행길의 어려움에, 현실의 부정적 작태


영화는 현실의 부정적 작태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인디플러그



영화에서 단연 중요한 모티브는 제목과 같은 '초행길'이다. 수현과 지영이 연애에서 결혼으로 가는 길이나, 서로의 집으로 찾아가서 생전 처음보는 어른들과 너무나도 깊은 인생의 선택을 종용받는 일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 길을 따라 내비게이션 없는 차를 타고 간다. 길을 잃기도 하고 헤매기도 하는 건 당연한 일. 


여기서 왜 내비게이션도 없이 길을 나서는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나서는 건 참으로 위험하고 고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하는구나 하는 상황 자체가 중요하다. 아니,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적 장치. 그들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길을 헤매지 않는 법이 없다. 


영화는 참으로 현실적이다. 여기서 현실적이라는 건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연기 같지 않다는 것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수현과 지영이 투영하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에 있다. 단 한 장면만으로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 수 있는데, 수현이 지영네 집에 갔을 때 가장 처음 한 건 안마의자에 앉아보는 일이었고 지영이 수현네 집에 갔을 때 가장 처음 한 건 수현 엄마와 함께 수현 아빠 환갑 잔치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주장할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접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이밖에도 이 영화에서만 수없이 많은 장면을 근거로 댈 수 있거니와, 굳이 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이 실생활에서 몇몇 장면들만 생각해보아도 훨씬 더 다양하고 적확한 근거를 댈 수 있지 않겠는가. 잔잔하고 오밀조밀하게 초행길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와중에, 세심한 날카로움으로 현실의 부정적 작태를 보여주니 감복할 따름이다. 


이 시대, 청춘의 길이란


결국, 이 시대를 조망하는 영화이다. 청춘의 길이란 무얼까. ⓒ㈜인디플러그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시대상이다. 그중에서도 이 시대의 청춘. 행복하지 않았던 과거, 좌절하는 현재, 불안한 미래를 떠앉고 살아가는 청춘의 길이란, 그게 초행길이라서 힘들고 헤매는 것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이다. 거기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이 영화가 집중하는 건 '지영'일 텐데,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2016년 말에 나와서 지난해 초유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나게 하는 이름으로, 청춘의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힘듦을 지나 다음 '단계'에 진입하려 할 때 그녀에게만 짓누르는 엄청난 압박들. 그 압박에는 가장 힘이 되어주어야 할 수현의 압박 또한 있으며 그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그들이 어떤 길로 나아가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는 모른다. 헤어질 수도 결혼할 수도, 아기를 낳을 수도 낳지 않을 수도, 그들의 직장에서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때론 좌절하고 때론 불안에 떨 수도 뭔가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갈 수도,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자, 우린 이 영화로 충분하고도 넘치는 공감을 받는다. 저건 내 이야기니까. 그렇다면 위로는 받을 수 있을까, 좋은 방법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본래 공감과 위로는 함께 따라오는 법인데, 이번 경우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저런 수많은 어려움이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올 거라는 확신만 생길 뿐이다. 


영화는 더할 나위 잘 만들어진,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다. 군더더기 없지만, 수많은 생각들이 들게 만들며 아련한 여운까지 남긴다.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지루함 없이 헤아릴 요소들을 이러저리 굴려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일말의 판타지적 요소를 찾을 수 없는 칙칙한 현실에 씁쓸해지는 걸 막을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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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민음사



1960년대,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직장 파티에서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본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수적이고 답답하며 까다롭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곧 결혼한 그들은 천생연분이었고, 함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나가길 원했다. 굉장히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을. 


많은 자식을 낳아 키우며 주기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가족들을 불러 함께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반대를 무릅쓰고 분수에 맞지 않는 큰 집을 산다. 큰 집을 사는 것도 사는 거지만, 무엇보다 많은 자식을 낳는 것에 반대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너무 서두른, 그래서 모든 걸 다 움켜쥐려 한다는 인상. 기어코 그들은 많은 자식을 낳는다. 막상 그들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심취한다. 


허위에 가득 차 있는 '칭찬받아 마땅한 생각과 행동'


영국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의 1988년작 <다섯째 아이>는 평범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인상을 주는 초입부를 내보인다. 보수적이고 답답하고 까다로운 젊은 부부의 고집이 많은 이들의 질타를 뚫고 나아간다. 거기엔 왠지 모를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작가가 의도한 바이겠는데, 작가가 보기엔 그들의 '칭찬받아 마땅한 생각과 행동'이 허위에 가득 차있는 것이다. 


1960년이라면 그야말로 세상이 요동치고 있는 시기다. '혁명의 시대', 그런 시대에 이토록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고집을 꺾지 않는 젊은이들이라니. 그들의 고집은 혁명이 야기한 혼돈을 수습하는 훌륭하고 위대하기까지 한 생각이라고 볼 요지가 충분했다. 실제로 그들은 훌륭하게 이어간다. 


지극한 모성애와 책임감 넘치는 가장의식으로 무장한 채 많은 아이들을 낳아 넓은 집에서 키우며 흩어진 가족들을 불러 어디에도 없을 돈독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옛날식의 행복', 어찌되었든 행복은 행복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밖에서 닥쳤다. 좋은 시절이 간 것이다. 데이비드의 회사도 일격을 받고 승진은 없었다. 


아이는 계속 태어났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까지 숨쉴 틈 없이 계속.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지쳐갔지만, 그래도 그들이 상정한 행복의 기준은 그대로였다. 사촌 브리짓은 그들을 자신의 롤모델로 여긴 참이었다.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저도 결혼하면 이렇게 할 거예요. 난 데이비드와 해리엇 같이 될 거예요. 커다란 집을 갖고 애를 많이 낳고... 그러면 모두들 오셔야 해요."


그들이 택한 '행복'의 길, 질문을 계속 던지게 만든다


다섯째 아이 벤은 누가봐도 비정상적인 아이다.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엄청난 힘으로 엄마 해리엇을 괴롭혔다. 벤은 태어나기도 전에 '원수'가 되었고, 해리엇을 '미친 여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 '사건'은 해리엇으로 하여금 평생을 '죄인'처럼 생각하게 한 원인이었다. 다섯째 아이 벤은 태어나서는 안 될 아이였다. 그의 존재는 그를 포함해 다른 모든 이를 불행으로 몰아넣었고, 그 집단을 파괴했다. 


소설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에서 시작해 끝모를 불행으로 나아간다. 모든 '불행'의 씨앗은 물론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선택. 모든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하게 밀어붙인, 시대정신까지 역행하면서도 밀어붙인, '행복'으로의 길이다.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다. 소설은, 작가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시대정신을 역행한 그들은 보수적인가 진보적인가? 다섯째 아이 벤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벤은 파괴자인가, 소외자인가? 당신이라면 벤을 어찌하겠는가? 벤을 제외한 모든 이를 위해서 벤을 삭제하겠는가, 그럼에도 벤을 버리지 않고 다른 모든 이들이 희생하겠는가? 과연 벤을 동정할 수 있겠는가? 


나라면, 벤을 마냥 동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벤을 삭제해버리는 당사자가 될 수도 없을 것 같다. 함께 있되 그저 방관, 관찰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할 가장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는 '무관심'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희생하는 '착한 사람'도 죄책감에 시달릴 '나쁜 사람'도 되기 싫은데. 누구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소외'에 대처하는 방법, '친화적 구별짓기'

 

소설은 그러나, 이런 류의 윤리적·도덕적 가치관의 재고만을 질문하지 않는다.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벤이 소설의 중심에 서게 되는데, '소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를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했을 때, 그가 갈 곳은 어디인가. 그가 해야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부모들은 그를 일반 학교에 보내 보통 아이들처럼 만들고자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는 '틀린'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인데 말이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는 돌연변이가 틀린 게 아니라 다만 다르다는 걸 훌륭한 비쥬얼과 올바른 메시지로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들은 절대 '보통'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이 그들을 적대적으로 구별짓는 한. 오직 방법은 그들을 오직 그들로 받아들여야 하는 바, 하지만 그건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의 적개심과 공포심으로 '소외 당하고 보호 받지도 못한' 채 죽어갈 것이다. 방법이 있을까. 어쩔 수 없이 구별 짓기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구별 짓기에 내재된 적대감을 절대적으로 멀리해야 한다. '친화적 구별 짓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모두에게 칭찬받아 마땅한 삶을 추구한 데이비드와 해리엇에게 벤은 필요 없는 존재다. 절대 있어선 안 될 존재. 하지만 그들은 우리 삶에, 우리 가정에, 우리 사회에, 우리 나라에, 우리 세상에 반드시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가? 그들은 우리에게 '불행'만을 가져다주는가? 우리는 행복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행복의 허상, 그리고 소외의 이면, 다른 것의 정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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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족 쇼크>



<가족 쇼크> 표지 ⓒ월북


우리 가족은 일반적이지 않다. 아버지는 회사를 다니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일을 해오셨다. 일하는 날짜나 시간,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다. 반면 어머니는 큰 마트에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 까지 일주일 내내 일을 하신다. 동생은 외국에 나가 있고, 나는 평범하게 회사에 다닌다. 


내가 퇴근하면 언제나 아버지는 주무시고 있고 내가 잠자리에 들 때 즈음 어머니가 퇴근하신다. 나는 그 모습을 견디기 힘들다. 가장이라면 제일 힘들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왜 어머니가 제일 힘들 게 일을 하는 거지? 아이러니 한 건, 그럼에도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어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밤늦게 까지 일을 하다 보니 아버지가 집안일을 어느 정도 도와준다. 밥, 설거지, 빨래 등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체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나이가 들고 머리가 커져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지만, 이런저런 모습들은 솔직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난 아버지 다운 아버지를 존경하고 싶고, 어머니 다운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다. 잘못된 생각인가?


가족, 혈연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이루어진 형태로, 아버지는 돈을 잘 벌어와야 하고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잘하면서 남편을 보필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며, 아이들은 부모님 말에 순종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모습을 당연한 듯이 봐왔다. 나도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에 대해, 즉 가족에 대해 <가족 쇼크>(윌북)는 혈연이라는 당위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할과 서열이 강조되는 혈연 관계 대신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들과 솔직하고 다정하게 함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게 곧 가족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족'에 대한 충격적인 선언이다. 어머니가 언젠가 말씀하셨던 '천륜'은 더 이상 가족의 필수 조건이 아니게 된 것인가. 가족 간에 천륜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인가. 책은 그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게 무엇일까. 


한국의 부모는 아이들을 주어진 자기 삶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로 보지 않는다. 대신 미래까지 통제할 수 있는 존재, 나아가 자신의 확장된 자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생겨나 평생 계속된다. 부모는 부모이고, 자식은 자식이다. 그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권리도 있을 것이다. 


반면 프랑스 부모에게 아이는 가르치고 이끌고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부담을 안겨주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작고 어린 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아이가 선택한 것에 응원을 보낼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역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존재인 개인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가족은 그런 개인들의 공동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새로운 관계 성립이 결코 말처럼 쉽진 않을 것이다.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문화는 확연히 다르다. 그 나라에 맞는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가족 쇼크>가 가족의 재정립을 말하고 있는 건, 시대의 변화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그에 따라 가족의 개념이나 형태도 변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건, 변화는 변화고 가족의 본질과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본질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해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다. 


이 시대 최대 쟁점 중 하나, 1인 가구


1인 가구는 이 시대의 최대 쟁점 중에 하나이다. 당연히 <가족 쇼크>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가족의 해체와 탄생.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1인 가구가 많은데, 그런 경우 고독사 등 상당히 많은 문제가 노출된다. 그렇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만이 고독사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1인 가구와는 별개로, 유난히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라는 점이 고독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가족 내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고 느낄 때 그 안에 머물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가장이 그렇다. 사회 내 모든 개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생활 방식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혈연은커녕 일생 한 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가족'이 될 수 있을지 실험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들을 모아 8주 동안 매주 한 번씩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게 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새로운 가족'의 핵심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실험이자 중요한 한 걸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가족이라 불릴 만한 관계가 되었다. 진짜 어려울 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든든한 이웃이 생겼다. 


가족에서 공동체로


기능적 역할이 축소된 가족은 이제 온전히 관계로 남게 된 것이다. 결혼이 사랑 이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듯이, 가족 역시 권위와 역할이 아니라 정서적 결속감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나를 타자로 구분하는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가족 실험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일깨웠다. 혈연으로 연결된 구성원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으며 가족이라는 명분을 지키면서 사는 건 더 이상 가족의 삶이 아니다. 가족끼리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를 존중하고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키리위나의 오카이보마 마을엔 약 5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핏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되, 소통을 통해 공존한다. <가족 쇼크>에서 말한, 가족이 지향해야 할 공동체로서의 미래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함께 생산하고 자유롭게 사랑한다. 모든 일은 함께 의논하며 선함의 순환을 믿는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교육을 함께한다. 가족이 처음 만들어질 때의 기본 가치를 이곳에서 배울 수 있다. 그들은 혈연을 중심으로 뭉친 배타적인 집단이 아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를 돌보고 돕는 가족이다. 


'가족'은 자연스레 '공동체'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예전과 같은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핏줄'이 아닌 '관계'이다. 한 집에 사는 것 만으로 가족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가족은 이제 서로의 인생을 지지해주는 공동체인 것이다. 새로운 가족은, 역할에만 충실하면서 서로 의존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개체성을 인정하며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이다. 머잖아 새로운 가족이 올 것이다. 나부터 새로운 가족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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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사귄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년(2016년) 봄날(제발 화창하길!)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 데요. 왜냐하면 아직 지인들한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희 가족들을 제외하곤, 이 글을 보시는 분이 저의 결혼 소식을 최초로 알게 됩니다^^ 영광...이신가요?


그 와중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양가 부모님 허락, 프로포즈, 상견례, 결혼식, 신혼여행, 신혼 집 등. 준비할 게 정말 많습니다. 저와 결혼하게 될 그 친구가 정말 고생이 많아요. 최대한 도와주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하려고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머네요. 5개월 가량 남은 시점인데,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인 듯해요. 아리송 하네요. 앞으로 닥치게 될 모든 것들이 낯설겠지만 따로 또 같이 해나가겠습니다. 그 과정 또한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주 재미있는 추억이 될 게 분명하기에 즐길 수 있으면 즐기고 싶고요. 


앞으로는 결혼 준비 과정을 전해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직접적으로 활발한 소통을 해오진 못했는데요. 이번을 기회로 소통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더 부지런해야 하겠죠~ 저희 결혼 축복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즐겁게 살겠습니다. 왜 갑자기 주례사 선언 같이 된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여하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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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나의 그리스식 웨딩>



<나의 그리스식 웨딩> 포스터 ⓒIFC



2002년에 개봉해 전세계적으로 3억 6천 만 달러의 기록적인 흥행을 올렸던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이 영화는 단돈(?) 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이렇다 할 스타 배우도 없이, 생소한 소재로 이런 사랑을 받았기에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언제 봐도 유쾌하고 기시감이 없고 희망적이다. 


영화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 '사랑은 국경도 초월한다' 등의 명제와 함께 한다. 그리고 민족과 문화의 차이와 그 차이를 넘어서는 사랑의 힘을 유쾌·상쾌·통쾌하게 보여준다. 자칫 무겁고 또 진부할 수 있는 주제이지만 그것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최근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컬러풀 웨딩즈>는 이 영화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겠다. 


킬링 타임 영화는 맞지만, 확연히 달라


주인공 툴라는 30살의 노처녀(?)이다. 그녀는 미국에 이민을 와 사는 그리스 집안의 딸이다. 가업으로 내려오는 레스토랑 '댄싱 조르바'의 매니저 겸 웨이트리스로 잡일을 도맡아하고 있다. 그녀는 굉장한 촌닭으로 평생 연애 경험 한 번 없어, 온 집안이 그녀의 결혼 성사에 관심을 갖고 매달리는 중이다. 


한편 툴라의 아버지는 그리스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 모든 단어의 시작을 그리스어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필사적이다. 심지어 일본어인 '기모노'까지도 그 기원을 그리스어에서 억지로 찾으려 한다. 이민자 집안이기에 역으로 그 자부심이 더욱 커진 것이리라. 거기에 그리스 민족 특유의 공동체(가족, 나라, 민족) 중심적인 문화가 겹쳐져, 절대적으로 그리스인과 결혼을 해야 하고 그리스식 결혼을 해야 하며 아이들도 그리스식으로 교육(예를 들어 그리스 학교에 다녀야 한다.)해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또한 보수적인 측면이 강해서, 여자는 일정 정도 이상의 교육을 받으면 안 되고 빨리 그리스 남자와 결혼해서 그리스 아이를 낳고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 와중에 툴라는 이상형인 남자 이안 밀러를 발견한다. 그러며 자신의 초라한 행색에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그녀는 과감히 새로운 삶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대학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이모의 여행사에 취직을 해 새롭게 시작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자신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그녀 앞에 이상형인 남자가 나타난다. 몰라보게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반한 것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그녀의 변화에서, 그의 변화, 그녀의 가족과 그의 가족의 변화로 까지 이어진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한 장면. ⓒIFC



이 영화는 스토리로 승부를 보지 않는다. 굳이 보지 않아도 스토리 라인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 이해하고 모든 것이 잘 풀리는 해피엔딩. 그래서 연출력과 연기력, 분위기 등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얼마나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가,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적인 스토리에 묻히지 않고 얼마나 영화를 잘 끌고 나갈 수 있는가, 분위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즉 이런 류의 영화는 흔히 말하는 '킬링 타임' 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재미있게 보고 마는 영화. 하지만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여타 '킬링 타임' 용 영화와는 다른 선명한 '주제'가 존재한다. '사랑'이라는 줄기와 '문화'라는 줄기. 영화는 이 두 줄기를 씨줄과 날줄로 탄탄하게 엮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빈틈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사랑'과 '문화' 그리고 '결혼'


툴라와 이안 밀러는 결혼을 결심하고 양가 부모님을 방문한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 남자 쪽의 별로인 듯한 반응. 여자 쪽의 완강한 반대. 그래도 다행인 건 남자 쪽 부모님은 최소한 반대는 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남자친구 이안 밀러는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위해 일생일대의 결정을 한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그리스식 웨딩'을 말이다. 결정은 결정이지만, 그 결정이 실현되기까지 숱하게 겪을 일들을 이들이 과연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한 장면. ⓒIFC



전혀 다른 두 사람, 두 가족, 두 나라, 두 민족이 하는 결혼을 재미있고 유쾌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 하는 건 참으로 어렵구나' 하는 명제도 있다. '결혼 하기도 전에 파산하겠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말, 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집 한 채를 주는 모습, 여자 쪽의 수백 명 하객과 남자 쪽의 10여 명의 하객 차이 등. 이 영화의 두 줄기 '사랑'과 '문화'에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반드시 추가 시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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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