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의 예술, 만화] <어쨌거나, 청춘> 



<어쨌거나, 청춘> 표지 ⓒ교보문고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경제가 폭삭 주저 앉고 너나 할 것 없이 힘들었던 시기, 특히 취업이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려워져 아르바이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 수많은 청춘들이 있었다. 그들의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위로한다며 나온 책이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는데, 우주 대폭발 급의 공감을 얻으며 기록적인 흥행 성적을 보였다.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이 책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기란 힘들었다. 모든 걸 다 이루다시피 한 서울대 교수의 메시지라는 점도 그렇지만, 제목에서 오는 패배주의적인 느낌이 싫었다. 청춘이 청춘이지, 왜 청춘은 아파야만 하지? 기가 막힌 제목인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공감이 되면서도, 아픈 곳을 또 때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이 책은 나에게 가치 없는 책이 되었다. 


아파도 슬퍼도 외로워도 어쨌거나 청춘은 청춘이다


그런 와중에 '청춘'에 관한 책을 하나 접했는데 웹툰이었다. 빵빵한 스토리와 블록버스터 급 액션을 선보이며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빼앗는 웹툰들이 수두룩한데, 이 웹툰에 눈길이 간 건 작가의 추종자인 지인의 추천도 있었지만 그 소소함에 있었다. 더군다나 센치해지기 쉬운 청춘 관련 콘텐츠가 소소하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할 진데, 이 책은 얼핏 내공이 고고한 것 같지도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출간 1년 후에 나와 그 신드롬을 이어가려는 듯하지만 다시 보면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제목인 <어쨌거나, 청춘>. '아파도 슬퍼도 외로워도 어쨌거나 청춘은 청춘이다'라는 메시지가 보인다. 앞의 책이 청춘을 아파도 슬퍼도 외로워도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통과의례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이 책은 그래도 청춘은 아름답고, 지나가면 생각나고 그리워하는 게 청춘이라고 말한다. 거창하지 않은, 오히려 소박하고 소소하고 인터넷 용어로 병맛(?) 같기도 한 그림으로. 


이 책의 등장 인물은 5명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 후 거즌 3년 째 공무원 시험 준비만 하고 있는 주인공 차현정. 차현정의 절친이자 정석적인 삶을 살아온 김대리. 그녀는 고교시절과 대학시절 모두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고교 동창이자 차현정의 전 남자친구 안민규. 그는 차현정과 함께 취업 준비를 하다가 그녀와 헤어졌고 입사했다. 이들은 모두 27살이다. 한편 차현정의 엄마와 차현정이 아르바이트하는 커피샵의 사장님이 등장한다. 


웃기고 슬픈 청춘의 한복판을 그리다


이 책을 보고 있자면, '웃프다'(웃기고 슬프다)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난다. 다름 아닌 주인공 차현정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는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져도 웃으면서 지나갈 정도로 누구보다 쿨하지만, 친구 김대리 앞에서는 자면서도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마음이 가녀리다. 시험에 떨어져도 엄마한테 당당히 만원을 빌리려 해 결국은 이 만원을 뜯어내지만 뒤에 가서는 엄마한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해내며 역시 눈물을 떨어뜨리는 친구이다. 


그런 이 친구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개그 본능이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의 모습이 상당 부분 투영되어 있는 것 같은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정녕 웃기고도 슬픈 이 시대 청춘의 전형이 아닌가. 


그런 와중에 작가는 취업해서 잘 나가고 있는 김대리와 취업에 성공한 안민규까지 출현 시켜 청춘의 바운더리를 넓히려 한다. 이 시대에서 청춘에 대해 다뤄지는 콘텐츠는, 대부분 청춘을 '취업 못하고 빌빌 거리지만 꿈을 꾸고 싶어 하는 20~30대'로만 그리고 있다. 반면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석대로 흘러가지만 그런 인생에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김대리와 사랑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민규를 통해서 말이다. 


꿈을 꾸지만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청춘, 남 부럽지 않은 인생이지만 끊임없이 회의감이 들곤 하는 청춘,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청춘. 이 모른 청춘이 어쨌거나 청춘이라고 말하고 있다. 취업 못하고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처지에 있는 청춘들만이 청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단계를 넘어섰어도 청춘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이 시대는 애써 피하는 듯하다. 


더 이상 청춘을 말할 때 위로를 들이대지 말기를


작가는 그런 이들까지 보듬고 있다. 이 시대의 청춘론에서 피해를 봤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려고 하지 않는 이들을. 작가가 어느 매체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청춘이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10대, 20대, 이제는 30대, 그저 시기별로 그때 그때 겪어야 할, 지나가야 할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온 몸으로 온전히 느끼는 것, 그런 것들을 쌓아나가는 것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다." (bnt 뉴스, 2011-06-17)


그래서 이 책은 취업을 하지 못할 때 봐도 재미가 있고 공감이 가지만, 취업을 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 봐도 여전히 재미가 있고 공감이 간다. 만화라고 우습게 보고, 거창하지 않다고 무시할 지 모르지만 그 진정성이 주는 감정은 어느 콘텐츠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선뜻 보게 되지 않지만, 일단 보게 되면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청춘을 말할 때 위로를 들이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비난을 해달라는 건 아니다. 그저 얘기를 들어주거나 얘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소소하고 소박한 얘기를. 꾸밈 없고 진솔한 얘기를. 그런 얘기라면 훗날 청춘이 지나 청춘을 그리워하게 되었을 때, 그때의 청춘들에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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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


<설국열차> 표지 ⓒ 현실문화연구

<구약성서> '창세기' 6~8장을 보면,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온다. 최초의 인류가 타락한 생활에 빠져 있어 하느님이 대홍수로 심판하려 한다. 홀로 타락하지 않고 바른 생활을 하던 노아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홍수가 올 것을 미리 알게 된다. 그는 120년에 걸쳐 길이는 약 135m, 폭은 약 23m 높이 약 14m의 삼층 구조 배를 만든다. 8명의 가족과 여러 쌍의 동물들을 데리고 방주에 탑승한다. 


대홍수는 40일(또는 150일)동안 계속되어, 노아의 방주에 탄 이들을 제외한 모든 생물이 전멸한다.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재앙을 피할 길은 오로지 노아의 방주 뿐인 상태이다. 언제 끝날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 노아의 가족은 어떤 생활을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종교적 상징을 뒤로 하고 상황 자체만을 두고 봤을 때,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이다. 극도의 두려움과 절망감, 고립감 그리고 안도감 등의 수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 칠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사랑, 정치, 종교가 뒤섞일 것이다. 


극악의 상황에 놓인 인간들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의 배경은 이와 비슷하다. 동서 양 진영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아 기후 무기까지 개발하기에 이르렀고, 세상은 눈으로 뒤덮였다. 설국열차에 오른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전멸했다. 이 대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설국열차에 탑승하는 것뿐이고, 설국열차의 정지는 죽음을 의미한다. 


영원히 달리게끔 되어 있는 설국열차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이 인류 생존의 마지막 보루에도 계급이 존재하는데, 위기가 닥치자 위의 계급이 아래 계급을 밀어내려 한다. 일명 '꼬리 자르기'로, 꼬리칸을 떨쳐버리려 하는 것이다. 이 죽음의 레이스의 전말을 알게 된 꼬리칸의 한 남자는 반란(혁명)을 시도한다. 


4년 전에 개봉해 엄청난 흥행과 더불어 많은 논란거리를 남겼던 영화 <2012>의 후반부 스핀오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마야설에 근거해 2012년에 세상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후반부에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출현한다. 영화는 재난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노아의 방주 탑승과 노아의 방주 내에서의 생활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 내린 노아의 방주 탑승자들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설국열차>는, 이런 극악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극도로 좁은 공간에서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극대화된 상징성들


<설국열차>는 그래픽노블로서의 장점(눈을 자극하는 화려한 그림체와 시각적 상상력 등)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까지 상징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철저히 인간을 그리려는 문학에 가까워 보인다. 그 상징성을 몇 가지 살펴본다. 


계급

설국열차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구조이다. 고로 계급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엄연히 칸이 나뉘어져 있고 그에 따라 계급이 확연히 나뉘어져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죽음에 가까워 있으면서도, 공존의 길을 찾지 않고 공멸의 길로 가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오히려 서로를 더욱 증오하는 모습은 자못 아이러니하다. 


전염과 이분법

꼬리칸에서의 치욕스러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칸으로 건너가려는 주인공은 군사당국에 붙잡히고 만다. 이때 그들은 주인공에게 '전염병'이 있을지 모른다며, 그의 머리를 밀고 목욕을 시킨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가 꼬리칸 출신이라는 것. 낮은 계급에, 못 먹어서 건강하지 못하고 못 씻어서 더럽다고 생각한다. 극명한 이분법적 생각이다. 너는 너, 나는 나. 너는 우리가 될 수 없고, 나는 너희가 될 수 없다. 


돌진

<설국열차>를 영화로 제작한 '봉준호'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격렬하게 앞으로 돌진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보고나면 우리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인간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들으면 무슨 뜬구름 잡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배경이 들어가면 이해가 된다. 꼬리칸 출신의 주인공은, 처음엔 끌려가고 나중엔 반란을 일으킨다. 그가 가고자 하는 칸은 부자와 권력자들의 칸이다. 즉, 돌진은 혁명이고 혁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은 다른 의미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가령 '돌진'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자체를 생각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고 말이다. 


고립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이상 뛰어내릴 수 없다. 그런데 설국열차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또한 설국열차의 밖은 곧 죽음이기에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다. 모든 것이 완벽히 차단된 고립무원의 상태이다. 옛날 달마대사는 소림사에 들어가 면벽좌선 9년 후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고립을 자처해 한계를 넘어섰다. 감옥에서 또 다시 사고를 치면 아무도 없는 독방에 고립시켜 놓지 않는가. 고립은 그토록 끔찍하다. 고립된 설국열차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타인과 분리되어 멀어진 상태인 고립과 수많은 사람들이 만났을 때, 어떤 문제들이 일어나는지는 이미 수많은 콘텐츠들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인간

<설국열차>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간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자행된 파멸, 파멸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과 전쟁 그리고 혁명, 영원히 멈추지 달린다지만 인간이 있어야만 하는 기계. 한마디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이다. 기계의 움직임도 목적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공존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협력이 가능하다


언제 어느 때나 생존은 중요하다. 인간의 역사가 곧 생존의 역사이다. 그 역사에는 무수한 반목과 협력이 있어왔다. 반목의 역사는 지워졌고, 협력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협력이 무조건적인 찬성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의 조건이 필요할 것이고, 반목 또한 무조건적인 반대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협력과 반목에 공존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함은 자명하다. 


우리나라는 시간이 갈수록 '갑과 을', '너 아닌 나'와 같은 이분법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은 시간이 갈수록 자국만 생각하는 일방적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먼 이웃나라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인류 공동의 가치 실현에 앞장서려는 나라를 찾을 수 없다. 그런 인간을 찾기도 어렵다. 


인간은 '人'의 생김새에 기반을 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때 희망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돌진'하지 않으면 '전염'의 공포로 점철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계급'주의적 세상의 '인간'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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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느 날 이름도 성도 신이라는 그가 나타났다 <신신>


<신신> ⓒ휴머니스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이 자본으로 수렴된다. 예를 들어 보자면 이렇다. 불과 30여년 전까지 못 잡아먹어서 안달했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상의 정점에 서 있는 것들, 1960년대 전 세계적인 반 사회적 열풍이었던 히피 문화, 그리고 언제나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는 전쟁과 테러까지. 이런 것들은 물론이거니와 반 자본주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것까지 자본주의는 끌어안아서, 콘텐츠화 시킨다. 그리고 돈을 받고 판매한다. 무엇이든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파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쿠바 혁명의 상징이자, 반미·반자본주의의 상징인 체 게바라는 세상 무엇보다 브랜드 가치가 높은 '상품'이다. 걸프전 당시 3류 방송이었던 CNN은 전쟁을 여과없이 생중계로 방영해 단번에 세계적인 방송국으로 올라섰다. 이와 연장선상으로, 인류 역사상 주요 전투·전쟁들은 영화, 소설을 비롯한 문화 콘텐츠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작년에 개봉해서 국가적 신드롬을 낳았던 영화 <설국열차>, <변호인>은 계급혁명과 반국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현상을 극단적으로 끌어 올려 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결국 모든 것의 궁극점에 위치해 있는 '신(GOD)'까지 도달할 것이다. 과연 '신'까지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답은 두말 않고 그렇다이다. 일례로,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만들어진 신>이나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은 신과 관련된 상품들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한편 엄청난 논란을 낳기도 하였다. 


자본주의는 '신'조차 상품으로 팔아먹는가?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그래픽 노블 <신신>(휴머니스트)은, 자본주의의 신에 대한 노골적인 소비성 시각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세계에 출현한 '신'. 그는 성도 이름도 신이었다. 그리고 역시 신답게 전지전능하다. 이에 전 세계가 들썩인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능력을 즉, 신다운 능력을 보여주는 이 '신신'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관심이 생각지도 못한 곳을 흘러간다. 진짜 신으로 설정된 순간 더 이상 신이 있다 없다의 논쟁은 필요가 없어지고,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며 동시에 신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수많은 콘텐츠와 상품들이 부지기수로 나오기에 이른다. 


논쟁은 신에 대한 재판으로까지 진행된다. 이 재판은 신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과연 신의 역할은 어디까지 일까? 신은 세계와 인간을 창조했다. 그런데 인간 세계에는 수많은 부정적인 것들이 판치고 있다. 왜 신은 이 세계를 구하지 않는 걸까? 왜 능력이 있으면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는 걸까? 이 재판은 신의 역할, 그리고 신의 능력(과연 신은 전지전능한가?)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신을 이용해 상품을 만들고 있는 현상이다. 부조리와 부정적인 것들이 판치는 몹쓸 이 세상(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이 세상)에 출현한 신의 존재는 그 자체로 확고부동하고 완벽한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가 이를 놓칠 리는 만무하다. 출판, 전시회, 미디어, 테마파크까지. 심지어 재판조차도 신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돈을 벌려는 일종의 쇼에 불과하다. 과연 이 거대한 쇼는 어떻게 끝을 맺을까? 


예상했겠지만, 쇼의 마지막은 가짜 신을 이용한 'I-신 이어폰'의 상품 프로모션이었다. 이 가짜 신이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건 다 이 상품 덕분이었던 것이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부터 해당 지식을 바로바로 전해 들었던 '신신'은 모르는 게 없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진짜 신이 내려와 인간의 궁금증을 풀어주려 했다면 인간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엇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신'조차 상품으로 기획하여 팔아 먹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책을 덮고 나면 어안이 벙벙하다. 


'신'의 출현에 미디어가 대응하는 법


하지만 이 거대한 쇼를 기획한 이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미디어(언론)'. 자본주의 사회는 단지 충실하게 소비했을 따름이다. 미디어는 신이 출현하자 기민하게 대처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인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운' 것으로 여겨진 신신의 증거들은 '몹시 놀라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완전 놀라운' 다음에는 '놀라 자빠질 만한'... 그리고 마침내 '신신'은 신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여기서 되짚어 봐야 할 사항이 출현한다. 미디어라고 하는 심지어 '신'까지도 조작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네 삶을 지배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살고 있는 것일까? 매일같이 접하게 되는 미디어가 작정하고 일을 벌인다면, 그것을 믿지 않을 수가 있는가?


미디어는 현실 속에서 국가 최고 기관인 대통령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2088년과 2012년 대선 당시 SNS(쇼셜네트워크서비스)의 대표 주자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어렵지 않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오바마가 미디어를 이용한 건지 미디어가 오바마를 이용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미디어가 오바마를 당선 시킨 것과 마찬가지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미 미디어는 '신'과 다름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옳고 그름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미디어가 가지는 힘이 폭주하게 될 때의 쏠림 현상인 것이다. 미디어라고 언제든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떠나 '조작'을 통해 명백히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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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낢이 사는 이야기>


<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3-1> ⓒ시네21북스

흔히 일상을 다람쥐 쳇바퀴에 비유하곤 한다. 뚜렷한 목적도 의미도 없이 똑같은 일을 매순간 반복하고 있는 현실을 빗댄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란 말도 존재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함'을 비유한다고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 안달이고, 탈출하고자 매번 색다른 것들을 계획한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일상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남자는 군대를 가봐야 아버지의 아픔을 공감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아봐야 어머니의 아픔을 공감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길러봐야 부모님을 이해하듯이,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갖은 고생을 할 때이다. 그럴 때면 일상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평소에 일상의 위대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매순간 나를 찾아와 무료함이라는 지독한 처벌을 내리는 일상을 어떻게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때 필요한 게 '재미'이다. 그리고 이 재미는 '공감'에서 온다. 일상의 공감은 다른 누군가도 나와 똑같은 일상을 영위한다고 느낄 때 자연스레 발현된다. 


웹툰 초창기인 2007년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네이버 웹툰에 연재 되고 있는 초장기 인기 연재작이 있다.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 여러 장르 중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일상툰'의 시조격이라 할 수 있다. 2007년부터 연재되었다지만, 실제 그녀가 그린 시기는 2004년부터이니까 말이다. 이 웹툰은 얼마 전에 시즌 3이 끝났고, 얼마 전에 시즌 3이 책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일상툰은 베스트셀러라기 보다는 스테디셀러로, 그 매력을 '공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안에서 독자는 외로움와 무료함을 불식시키고,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호사를 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을 조금은 더 좋은 쪽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인터넷이 가지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가장 잘 받아들이고 이를 가장 좋은 쪽으로 발전시켰다고나 할까. 독자들이 일상툰을 즐기며 얻게 되는 웃음은 행복을 머금은 미소이다. 


"사람의 마음은 사소하다. 나의 사소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사소한 기쁨이 된다면 좋은 거 같다."


이번 시즌3-1은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른의 길에 들어선다는 작가 자신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연인이 되고, 2004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0년 차로 접어든 만화가의 삶을 자못 진지하게 그러나 웃음을 잃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리고 있다. 


<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3-1>의 한 장면. ⓒ시네21북스


특히 여자 만화가가 직접 자신을 화자로 내세운 만화를 적지 않은 나이인 서른에 접어들 때까지 그리고 있는 상황을 자조 섞인 목소리로 표현해내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이번 만큼은 그녀도 조금은 센치해지고 싶나 보다. 


그리고 작가의 말마따나 극 중의 '낢'은 작가 자신이면서도 작가 자신이 아닌 것 아닌가. 일종의 페르소라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 개인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즐거운 내용만 그려야 한다는 강박감, 반면에 작가의 내면을 솔직하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감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시즌3부터 '균형'의 묘미를 살리려 노력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강박감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내어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서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할 때, '헛점이 있으면서도, 무개념이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세웠다. 그리고 아무래도 남녀 문제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시즌3에서는 남녀 차이에 대한 균형에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단순히 재미있고 즐겁기만 한 만화가 아니라 정말 '좋은' 만화를 그리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아니 우리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낢이 사는 이야기>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그녀의 일상, 성장, 사랑의 스토리를 지켜보며 함께 울고 웃고 같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녀에게 말하길.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녀의 만화를 보시길. 외롭거나 무료하거나 즐겁거나 행복할 때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고 공감하고 미소 짓기를. 낢이 사는 이야기는 곧 우리가 사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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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빵 굽는 고양이>


<빵 굽는 고양이> ⓒ애니북스

반복되는 일상, 그 안에는 지루함, 속상함, 기쁨, 슬픔, 좌절, 환희 등 무수한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크게 두 개로 나눠서 달콤하고 쌈싸름하다고 치자. 우리는 이 반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계속되는 반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자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색다른 취미도 가져 보고, 평소 잘 못 보는 사람도 만나며, 처음 가는 곳으로 여행도 떠나곤 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게 있다. 


바로 '음식'이다. 사실 음식은 우리가 가장 많이 반복하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 이지만, 지루하지도 지치지도 않는 걸 보니 거기엔 어떤 힘이 있는가 보다. 아마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본능'일 것이다. 배고프면 모든 게 맛있어 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전과 다름 없이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솜씨로 똑같은 재료를 써서 똑같은 시간을 들여 만들었음에도, 항상 미묘하게 다른 맛이 드는 것도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또 어떤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제일 큰 이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음식의 종류일 것이다. 


여기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때론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고 때론 일상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달래주며 때론 일상에서 얻는 환희를 나누는 이가 있다. 웹툰 <빵 굽는 고양이>(애니북스)의 주인공 정미이다. 그녀는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한치, 두치, 삼치(꽁치). 그녀에게 음식과 함께 이 세 마리 고양이는 달콤 쌈싸름한 일상을 잘 보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만화는 일상의 아주 소소한 부분들을 정갈하고 꾸밈 없이 보여준다. 만화가 이리 멋을 내지 않아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화려하고 예쁘고 귀엽고 멋있는 그림체와 배경을 주로 봐온 눈이 오랜만에 큰 움직임 없이 담담한 눈 굴림으로 호강(?)을 하고 있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보다 보니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다. 스토리를 훑고 있노라면, 마냥 편하지는 않기 때문일까. 


주인공 정미는 20대 여성으로,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실패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졸지에 백수 신세에 봉착하고 말았다. 막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음식과 고양이들과 지인들 덕분에 버텨가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처지에 있는 게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비록 만화에 불과하지만 현실에는 훨씬 더 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차마 말로 옮기기도 싫고 새삼스레 옮기기에는 너무 만연해 있다. 


그래도 주인공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니, 사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상황을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혼자서도 잘 챙겨 먹고 지인들에게 맛있는 걸 대접해 주고 고양이에게도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음식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음식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점을 포착하고 놓지 않으며 만화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동시에 만화 스토리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작용하게끔 한다. 


<빵 굽는 고양이>의 한 장면. ⓒ애니북스


음식이 좋고, 요리(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유독 '빵'을 자주 만들어 먹고 또 좋아한다.)하는 게 좋다면, 그리고 실력까지 갖춰져 있다면 그 방면으로 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결국 그녀는 제빵제과를 배우고 언니와 함께 커피숍을 차리기에 이른다. 대박일까? 쪽박일까? 그건 여기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반복되는 일상을 긍정적 에너지로 채워 나가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다. 그 앞에 어떤 것들이 있든, 내 옆에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동반자가 있을 테니까.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슬펐다가 빵을 배우게 되어 기뻤다가 카페를 하게 되어 설렜다가 주변의 멋진 카페들에 기가 눌렸다가... 그렇게 들떴다가 진정되는 날들 속에 카페 BABA 문을 엽니다." 

(본문 중에서)


이 만화는 '빵 굽는 고양이'라는 제목에 걸 맞게 빵과 고양이에 대한 상세하고 알찬 정보들로 가득하다. 따로 섹션 페이지를 통해 총 11가지의 빵 만드는 실질적 레시피를 상세히 알려주며 아울러 만화 속에서 주인공의 제빵제과 실력의 당위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또한 중간 중간에 고양이를 키우며 고양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아는 고양이의 행동들을 주인공의 말을 통해 비교적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느슨한 듯 알차고 얇지만 꽉 찬 만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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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길찾기


우리나라 만화계의 경우, 여타 문화 전반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귀엽고 미성숙한 모습의 그림체, 혼을 쏙 빼놓는 액션 위주의 스토리 등. 그래서인지 몰라도 만화를 생각하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림체는 예뻐야 하며 어린 친구들만 봐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을 내버리곤 했다.


하지만 일본의 만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및 유럽) 만화계는 일찍이 그 방향을 크게 틀었다. 이른바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장르가 출현했고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문학과도 견줄 수 있는 스토리와 철학이 아닌 만화는 거의 퇴출되다시피 하였다. 그들에게 만화는 더이상 우리나라처럼 미풍양속을 해치고 어린 친구들에게나 읽히는 B급 내지 하류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그림체에 액션 위주의 스토리를 추구해도, 그 안에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굳이 철학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생각할 거리'가 있다. 이는 어린 친구들을 위한 교육용 만화와는 전혀 다르다.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리를 시각적으로 더 잘 전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학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모든 상상력을 그림에 쏟아 붓다


그런 면에서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라는 부제가 달린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이미지프레임)는 일반적인 만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분히 교육적이고 정보전달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제나 소재가 결코 쉽게 다뤄질 수 없다는 면에서, 작가의(나아가 출판사의) 문제의식이 깊숙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만화를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작가는 스토리에서의 상상력은 완전히 배제한 채, 그 모든 상상력을 그림에 쏟아 붓는다. 한국현대사에서, 겉으로는 가장 화려했지만 안으로는 가장 더럽고 추악하고 저질의 시대였던 1970년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대의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인지, 작가의 그림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너무나 불편해서 피해버리고 싶지만, 반드시 인지해야 할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을 정말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챕터마다 한국현대사에서 결코 지울 수도 지워서도 안 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려진다. 위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스토리라인에서 상상력을 배제한다. 그 대신 수많은 현대사 관련 책들을 인용해서 사건들의 디테일을 채웠고, 더불어 작가가 직접 당시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 인터뷰까지 하였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의 한 장면. ⓒ길찾기


요즘 한창 네이트 웹툰에서 연재 중인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도 상당히 많은 책들을 참조하고 인용하고 있는데, 그 차이는 명확하다.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가 몰랐던 혹은 눈 감고 지나치려 했던 정보의 정확한 전달과 문제 의식 고취를 최우위에 두고 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이를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눈에 띈다. 굳이 나누자면, 팩트와 팩션이라고 할까.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우리 역사


이 만화는 분명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작가도 말했듯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용히 울부짖고 있는 피해자들을 그냥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만화를 본다고 해서, 그렇게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당장 뭔가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과 행동 앞에 '앎'이 오는 것 아니겠는가. 먼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반면 누군가들은 말한다. 직접 그 시절에 살아보지도 않고 직접 그 상황에 맞딱뜨려 보지도 않고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투철한 정신과 박학한 이론으로 무장해도, 조용히 있어야만 하는 걸 알고 있느냔 말이다. 그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미래로 전달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것이 조작되고 삭제된 현실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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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웹툰 <수업시간 그녀>


<수업시간 그녀> ⓒ애니북스



흔한 사랑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린다. 왠지 남자라면 누구나 해봤을, 통과의례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안에는 여지없이 사랑에 대한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는 걸 아는가? 설렘과 흥분, 희망과 좌절, 억측과 반목, 엇갈림과 기다림, 분노와 후회, 아쉬움과 안타까움 등.


대학생이 된 어느 남자. 수업시간 때 우연히 옆에 앉게 된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말을 건네보고 싶지만 여의치가 않다. 친구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지만, 돌아오는 건 욕지거리 뿐. 그래도 응원의 메시지는 잊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그녀와 같은 조가 되어 같이 조활동을 하게 된 그. 조활동을 핑계로 둘 만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숫기없는 그는 실수를 연발한다.


한편 그에게는 아주 편하게 지내는 여자친구가 있다. 여지없이 그녀는 그를 좋아한다. 그녀가 혼자였을 때 도움을 준 유일한 이가 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모른다. 단,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그녀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단지 여자가 아닌 친구로 생각할 뿐이다. 과연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자신이 좋아해마지 않는 수업시간의 그녀를 선택할까? 아니면 오랜 세월 곁에서 함께 해오며 자신을 좋아하는 편한 친구를 선택할까? 그것도 아니면 둘 다 놓치고 말까?


아주 단순하면서도 전형적인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디서 본듯한 이 이야기는 네이버 웹툰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박수봉의 <수업시간 그녀>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번에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원래 박수봉 작가의 개인 블로그에서 연재되던 것이, 네이버 웹툰에 입성하게 되었고, 이어서 애니북스 출판사에 의해 단행본으로까지 나온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로 이렇듯 전문가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 따로 있을 것이었다. 무엇일까?


이 만화의 사뭇 다른 특성들


만화는 엄연히 시각의 콘텐츠이다. 스토리텔링으로써의 콘텐츠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못지 않게 시각적인 콘텐츠는 전통적으로 강자의 위치에서 군림해왔다. 그래서 만화는 스토리텔링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집중을 해야 한다. <수업시간 그녀>는 일단 시각적으로 여타의 만화들과는 차별점을 두고 있다. 무엇인고 하면, 스케치로만 만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수업시간 그녀>의 첫 장면. ⓒ애니북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봤을 때 오로지 펜촉으로만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칫 성의없어 보이고 느슨해 보일 수 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자연스레 컬러감이 전혀 없는 만화가 되었다. 자칫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는데, 이 또한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더더욱 신기할 따름이다. 생각해보니 이 만화가 가지는 '감성'과 '스토리라인'이 커버해주고 있었다. 적당한 풋풋함과 반전과 현실성과 코믹 요소 등. 


거기에 이 만화의 캐릭터들에는 결정적으로 눈이 없다.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만화 그림체에 영향을 받았다면 무엇보다도 눈을 선명히 그려야 할텐데, 그 부분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또한 종종 눈에 띄는 어설픈 듯 거슬리지 않는 '비유'. 예를 들면, 주인공 남자가 비참한 상황에 놓였거나 스스로 아주 바보갔다고 느꼈을 때, 피를 뚝뚝 흘리며 가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캐릭터의 시선으로 카메라 워킹을 시도하는 영화적 기법도 도입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렇게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 말한 영화적 기법에 더해 과거 회상 씬까지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말 다채롭고 색다른 시도를 결코 추하지 않게 잘 활용하였다. 


단숨에 읽히는 젊은 날의 기억


이 만화의 키워드는 스토리텔링도 아닌 그림체도 아닌 캐릭터도 아닌, '느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편집자가 우연히 작가의 블로그에서 만화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다 읽어버린 다음 곧바로 출판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 또한 550여 쪽에 달하는 이 만화책을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또 읽게 되면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느끼는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젊은 날의 일기를 조금은 아쉬운 기분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땐 그랬었지 하는 그런 느낌. 거기엔 차라리 몰랐었으면 하는 사실들도 있고, 왜 그래야만 했었는지 하는 안타까움도 있고, 조금만 더라고 되뇌이는 아쉬움도 있다. 


그땐 왜 그리도 못났는지, 왜 그리도 몰랐는지, 왜 그리도 좁은 사람이었는지. 그런데 이 만화의 배경이 '그때'인 건 아니다. 나한테만 그렇게 느껴졌을 뿐, 누군가에겐 지금일 수 있다. 나 또한 훗날에, 지금의 나를 다시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못나 보일까? 얼마나 답답해 보일까? 그래도 결국 하는 말은 같을 것이다. "그땐 그랬지. 그때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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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트 슈피겔만의 <쥐>


아트 슈피겔만의 <쥐> ⓒ 아름드리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콘텐츠가 있다. 그 콘텐츠를 접하고 난 후 받게 될 거대한 무엇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주제나 소재가 너무 방대하거나 나의 관심 밖 또는 나의 지식 너머를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책을 사놓거나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놓고 차마 보지 못하고 고이 모셔두기만 한 것들이 30%에 육박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아름드리)도 그 중에 하나였다. 우리나라에는 1994년에 출간되었으니, 올해로 20년째이다.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정보 하나만을 접한 채, 최고의 그래픽 노블이라고 남들에게 추천만 해줬을 뿐 직접본 적이 없었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념비적 작품


사실 이 만화를 보기 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년 작)를 본 뒤 여기저기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상물과 책을 찾아보곤 했다. 그래서 더 이상 홀로코스트에 대한 건 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래픽 노블에 부쩍 관심이 생겨 책들을 검색하다 보니 어김없이 <쥐>가 나오곤 했다. 애써 지나치려 했는데, 한 번 볼 용기가 생겼다. 과연 이 만화는 다를까? 1992년 만화로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점,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


기존의 홀로코스트 관련 콘텐츠는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데, 하물며 이 작품도 역시 당사자가 직접 겪은 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가 아니던가? 증명된 콘텐츠에 대한 기대 반, 그만큼 분량의 불안 반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저자의 부모 세대가 겪었던 실제 이야기


두 번째 페이지부터 참으로 끔찍한 대사가 나온다. 그러며 아버지가 블라덱 슈피겔만이 아들 아트 슈피겔만에게 해주는 13년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본문 속에서)


이 만화는 저자와 그의 아버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씀드린다. 실제와 마찬가지로 아트 슈피겔만은 극 중에서 만화가이고 예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홀로코스트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위해 아버지에게 수시로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에 블라덱 슈피겔만은 돈이 되는 만화를 그리지 왜 이런 만화를 그리려 하냐고, 또 홀로코스트에 대한 만화를 그리려면 그때 당시의 상황만 물어볼 것이지 왜 관련도 없는 전쟁 전 이야기까지 물어보느냐고 말한다. 아트 슈피겔만은 이렇게 답한다.


“이건 히틀러나, 대학살과는 관계도 없어요!... 이건 대단한 소재예요. 이게 다 이야기를 더 사실적으로 더 인간적으로 만들거든요. 전 아버지 얘길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어요,”(본문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만화로 옮기는 극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앞뒤 사정 또한 빼놓지 않음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바(홀로코스트)를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만화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 만화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바


<쥐>에는 아버지의 회상 스토리 말고 한 가지 스토리가 더 존재한다. 그건 바로 현재 이야기로, 주로 아들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또는 그 전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면 이런 모습들인데, 블라덱 슈피겔만은 아내를 잃고 새로운 아내를 얻어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사이가 좋지 못하다. 아트 슈피겔만 또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에게는 유대인 특유의 생존 방식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눈치가 빠르고, 극도로 예민하고,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하고, 그래서 너무나도 구두쇠인 점 등. 쉽게 말해 억척스러운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모순적이게도 흑인에 대한 선입관이 깊이 박혀 있다. 자신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으면서도 흑인은 모두 범죄자라는 생각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어찌 이처럼 인간적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끔 한다.


아트 슈피겔만은 이런 그를 포용할 수 없지만, 그의 회상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티격태격하면서도 인터뷰를 따오곤 하는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일어난 모든 일 또한 마치 제3자 인양 너무나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심지어 아버지가 죽은 아내의 모든 기록을 불태워 없애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에게 “당신은 살인자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며 심한 말을 하는 것도 그대로 그릴 정도이다.


한(限)이 없는 객관적 리얼리즘


이 만화의 객관성과 리얼리즘은 아버지의 회상에서 정점에 달한다. 지옥문을 해치고 살아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아버지가 회상하는 장면은 너무나 비참하고 참혹하지만, 정작 당사자에게서 그에 대한 한(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듣는 사람이, 보는 사람이 눈물이 맺힐 정도로 지옥 같은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당사자는, 정작 아무 감정 없이 일상으로 되돌아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억울하지도 않을까?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을지라도 그 한을 씻어낼 길이 없어 보이는 데 말이다.


극도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 만화의 특성을 지키려고 일부러 그렇게 고쳤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리얼리즘이 파괴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아버지의 객관적인 회상이 이 만화의 원동력이 되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객관성 있는 시선에 힘입어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래서인가? 저자는 이 만화 1권을 그리는데 자그마치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만화’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오히려 더 천착한 것이다.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모든 사람들을 동물로 표현해 내는 등의 표현기법(이 또한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에 관한 고민을 깊이 했을 수도 있겠다.


이 만화가 단지 홀로코스트만을 다루고 있었다면 여타 다른 콘텐츠와 하등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이 만화는 ‘인간’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옥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의 인간을 보여줌(오히려 이성적인 행동과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과 동시에, 일상에서 살아가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오히려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행동과 사고를 내비치곤 한다)을 보여준다.


이를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그것도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성의가 없다거나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논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철저한 객관성과 리얼리즘은 마치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의 발견을 보는 것 같다. 이 만화는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진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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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다른

나에게 있어 미국은 몇 가지 유명한 사건들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아직 머리가 크지 않았을 때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작으로 히틀러에 의해 유린된 유럽을 복원시켰고 원자폭탄으로 일본을 파멸시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행한 나라. 또한 타국임에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출전하여 공산주의를 저지시키려 한 나라. 그리고 걸프전을 통해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그의 악랄한 나라인 이라크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나라. 미국은 고마운 나라이자, 믿음직한 나라이자,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나라였다. 


2001년 9월 11일, 세계 평화 수호자인 미국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대형 사건이 발발한다. 미국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슬람 테러단체가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무너지고 수천 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반 탈레반 정권을 수립한다. 2년 뒤에는 이라크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초강대국 미국의 추락이 시작됨과 동시에, 미국의 침략과 폭력이 부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진짜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이 미국의 진짜 모습일까. 자유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평화를 바라는 미국이 진짜일까. 간섭과 침략과 폭력의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진짜일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과 시도로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었고 내놓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내놓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하워드 진'이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전쟁에 참가한 전력이 있으며, 흑인여자 대학에서 교수 직책을 잡은 적이 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는 한평생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했고 전쟁을 반대했으며 평등을 외쳤다. 그는 <미국 민중사>라는 명저를 남겼는데,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다른)는 <미국 민중사>와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화이다. 


만화의 콘셉트는 하워드 진이 강의를 통해 들려주는 미국사이다. 1890년 '운디니드 학살'을 시작으로 2001년 9.11 테러까지를 다루며, 미국이 어떻게 세계 초강대국으로 되어 가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일들을 저지르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하워드 진이 직접 겪었던 사건, CIA 기밀 문서에나 나올만한 내밀한 사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제 머리가 클만큼 커서 미국에 대한 환상을 져버린지 오래이고 그래도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만화를 보니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진짜 미국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더 내밀한 진짜 미국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 군대는 도덕적 목적이 아닌, 정치·경제·군사적인 목적에 이용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신이, 자신들에게 미개하고 미성숙한 나라에 민주주의라는 축복을 전하라는 운명을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말입니다."(본문 중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진실-침략 전쟁


저자는 미국사의 익히 알려진 사실을 나열하고 있다. 그중에는 알려져 있지만 숨겨진 진실들이 부지기수이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많다. 몇몇 주요 사건들을 간략히 다뤄보며 미국사을 빠르게 해부해 보겠다. 


지금은 전설적인 존재들이지만,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악덕 자본가들'이 있다. J.P. 모건, 존 D. 록펠러, 제이 굴드, 조지 폴먼 등이다. 그들은 미국 초기 때 광산과 철도 등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들의 악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제이 굴드가 했던 말인 "나는 노동계급의 절반을 고용해서, 나머지 절반을 죽일 수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조지 폴먼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계속해서 삭감하면서, 사택 임대료는 그대로 두었다. 그로인해 그는 고용주로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이어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평화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간섭과 전쟁이, 사실은 미국 내의 파업과 저항운동의 반항적 에너지를 외부의 적에게 돌리려 한다는 수작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대표적 시작은 미국-에스파냐 전쟁으로, 이미 19세기 말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만 아니었을 뿐, 19세기 중반부터 온갖 간섭을 명목으로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했다. 


전쟁은 계속 이어진다. 하외이, 필리핀, 멕시코,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전쟁은 아닐지언정 미국이 뒤에서 조종한 전쟁이 일어난 곳도 쿠바, 니카라과, 이란 등 지면이 없어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숨겨진 진실-조용한 전쟁


미국의 전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외부 침략의 전쟁과 맞물려 내부에서 조용하지만 격렬하고 끔찍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책의 시작에 나오는 '운디드니 학살'은 내부에서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엄연한 '침략'이었다. 수천 년동안 살고 있던 터전에 갑자기 타인이 쳐들어온 것이 아닌가?


이어서 악덕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이 계속된다.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건 파업밖에 없었고, 자본가들을 위시한 국가가 할 줄 아는 건 억압과 폭력뿐이었다. 그것으로 안 되니까 주지했다시피 외부로 눈을 돌린 것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부 전쟁이 있다. 바로 인종 전쟁. 백인과 흑인 간의 오래된 전쟁이다. 이는 내부에서도, 전쟁 중에서도 계속된다.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인종 차별의 정신이기 때문에, 참 오래가기도 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는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이 모든 반항적 에너지를 전쟁에 돌렸듯이, 이들 모두가 모여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을 벌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이자 작중 화자인 하워드 진이 강의하는 장면에선 그의 등 뒤로 여지없이 '이라크 전쟁 반대' 보이는 게 인상적이다. 이처럼 미국사는 '(모든 류의) 전쟁'과 '전쟁 반대'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의 한 장면 ⓒ다른


이 만화책은 그동안 접해왔던 교양학습만화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저명한 학자의 저서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만화로 옮긴 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만화로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옮겨졌을 뿐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학자의 연구 결과 그 자체이다. 하지만 저자(하워드 진)의 것인지 아니면 각색자의 것인지 모를 높은 수준의 유머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화로써 가지는 최소한의 코믹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 만화책은 만화가 가지는 시각적 특징을 최대한도로 이용했다. 위의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글을 적절히 혼합하였다. 시각적인 요소로써 만화와 사진은 동일한 장점을 지니지만, 실사는 객관성과 신뢰 그리고 때론 잔혹성을 높여주는 측면까지 지니고 있다. 여기에 일반적인 만화책보다 월등히 많은 글은 오히려 학습만화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만큼 마지막은 저자의 글로 끝마치도록 하겠다.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어려울 때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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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서평] 프랑스 그래픽 노블 <68년, 5월 혁명>


<68년, 5월 혁명> ⓒ휴머니스트

아트 슈피겔만의 <>라는 만화가 있다. 만화로서는 최초로 1992년에 퓰리처상을 비롯해 구겐하임상과 전미 도서평가 협회 상을 수상했다. 퓰리처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보도·문학·음악 부문에서 시상한다. ‘만화’ <>는 문학으로 취급된 것이다. 그만큼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감각이 충만했다는 말이겠다.

 

구겐하임상은 어떤가? 세계적인 권위를 갖춘 국제 미술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만화의 가치를 몇 단계 상승시킨 효과를 가진다고 하겠다. 전미 도서평가 협회상은 퓰리처상과 콤비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말인즉슨,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소설이나 인문·과학 도서들이 퓰리처상과 전미 도서평가 협회상을 동시에 받곤 한다는 말이다. 그 자체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또 하나의 그래픽 노블


이처럼 만화를 여타 웬만한 예술 작품보다 더 높이 쳐주는 장면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볼 수 없다. 유명 만화가들을 화백(畵伯)’이라고 높여 부르기는 하지만, 이는 그림 분야에 한해서 인 것이다. 예술 분야를 통틀어 만화가 가지는 영향력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예술 강국 프랑스에서는 1970년대에 만화를 9의 예술로 규정하면서, 기존의 8가지 (연극, 회화, 무용, 건축, 문학, 음악, 영화, 사진)를 이은 엄연한 문화예술의 한 범주가 되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법적으로 만화가 문화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얼마 전 6월 달에 만화를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만 들려올 뿐이다.


본래 만화(주로 일본 만화)를 좋아했던 나는, 올해부터 그래픽 노블류의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만화에 있어 어찌 차등을 둘 수 있겠냐 만은, 거기에 분명 온도 차이는 존재하는 듯하다. ‘오락만을 위한 만화가 아닌, ‘교육또는 일깨움을 주는 만화라고나 할까?

 

얼마 전에 도서관을 가서 세계 역사 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대작과 명작, 수작과 망작, 구작과 신작이 뒤섞여 있던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만화 한 편을 발견했다. 그게 또 우연찮게도 접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그것도 올해 처음으로 보게 된 그래픽 노블인 <앨런의 전쟁>(휴머니스트)의 옮긴이들이 고스란히 참여한 작품이라니. 운명인가 싶었다.

 

제목은 <68, 5월 혁명>(휴머니스트), 앞의 책과 옮긴이도 같았고 출판사도 같았다. 결정적으로 지은이의 나라가, 프랑스로 같았다. 처음으로 만화를 9의 예술로로 규정한 프랑스라는 나라 태생이라니, 역시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감이 없이, 연속으로 나를 만족시켰다.

 

만화로 혁명을 이야기하다


<68년, 5월 혁명>의 첫 장면 ⓒ휴머니스트


만화예술작품은 프랑스 68년 혁명의 40주년을 기념해 기획되어 2008년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사실 68년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지라, 4년 뒤인 2012년에 번역출판 되었어도 어떤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소위 경제 발전에 미친 듯이 공력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에, 혁명의 기운이 스며들 틈이 없었다. 이미 8년 전에 혁명을 성공했지만 군부 세력에 무참히 짓밟혔고, 저항은 계속되었지만 그 세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상태였던 것이다.

 

혁명이라는 단어 혹은 그 연원 속에는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68, 5월 혁명>은 그러한 요소를 완전히 배제시켜 버렸다. 아무런 상관없는 제3자의 화자가 나와서 당시를 설명한다. 으레 그렇듯이 감정이 들어간 회고나 한 쪽으로 치우친 설교를 하지 않고 오로지 객관성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68년 봄 제2차 대전 승전 이후 경제적 풍요 속에서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권위를 거부하며 체제에 대항해 시위와 토론을 하던 프랑스의 젊은 대학생들. 그들은 흩어진 정치 파벌로 제대로 뭉치지 못하고 그냥 으레 하는 통과의례처럼 학생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던 3월 파리 낭테르대학의 과격파 학생들이 미국계 은행 폭파사건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이를 기회로 삼아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를 기치로 한 운동이 시작되고, 판은 점점 더 커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정부와의 대처 과정에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이에 샤르트르, 자크 라캉 등의 지식인들이 지지선언문을 발표하고, 노동자와 공무원 그리고 시민들까지 연대해 천만 명이 참여한 총파업으로 발전한다. 사회 전체가 참여한 혁명에 준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이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드골이 의회를 해산시키고 국민 투표를 제안하는 등의 초강수를 두었고, 결국 한달 만에 혁명의 열기가 수그러든다. 어떠한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실패한 혁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만화는 진짜 같은 가짜 인터뷰이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아주 생생하고 자세하게 전한다. 그들은 각각 혁명 당시 마오주의자로 깊숙이 개입했다고 하는 프로듀서 사미아, 혁명 당시 트로츠키주의였던 JCR(혁명적 공산주의청년회)과 함께 어울리며 개입했다고 하는 조형예술 교수 프랑수아즈, 혁명 당시 한발 물러선 곳에서 사건을 빠짐없이 지켜봤던 평범한 학생이라고 하는 은퇴한 교육가 루이, 혁명 당시 국무총리였던 조르주 퐁피두의 보좌관이었다는 전직 고위 공무원 샤를이다. 그리고 아무런 상관없는 화자인 학생 폴.

 

이들은 각각 혁명 당시 혁명의 주역인 운동권 학생, 가까이에서 혁명을 계속 목도한 평범한 학생, 그리고 정부를 대변하는 핵심 인물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화자가 적절히 끼어들어 만화를 더할 나위 없이 객관적인 산물로 만들고 있다.

 

엄연한 역사책임과 동시에 만화예술 작품


너무나 객관적인 서술에만 치우쳐 있어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방면을 대변하는 인터뷰이들의 현장감 있는 중계(?)들로 인해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어떻게 취재를 하고 리서치를 했는지 궁금하게 만들 정도로 시간, 장소, 입장에 맞게 적확하고 디테일한 사실들을 내보이고 있다. 내용 전달과 교육적 차원에 몰두를 하다보면 그림에 소홀해질 수도 있는데, 이 만화는 거기에도 엄청난 공력을 쏟는 게 느껴진다.

 

엄연한 역사책임과 동시에 만화예술 작품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 왜 이 만화가 도서관의 역사파트에 자리 잡았는지 명확하게 알게 해주면서, 아트 슈피겔만의 <>가 생각나게끔 한다. 서문을 장식한 68년 혁명의 주역 다니엘 콩-방디의 글도 이 작품의 품위를 한층 올리는 것 같다.

 

과거와 새로움 사이에는 그날의 유작밖에 없다!’

 

첫 페이지에서 685월 혁명을 아름다운 혼란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그림과 아름다울 정도로 정교하게 재연된 그날, 그리고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린 그날, 하지만 혼란의 한 가운데에 있던 그날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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