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웹툰 <수업시간 그녀>


<수업시간 그녀> ⓒ애니북스



흔한 사랑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린다. 왠지 남자라면 누구나 해봤을, 통과의례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안에는 여지없이 사랑에 대한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는 걸 아는가? 설렘과 흥분, 희망과 좌절, 억측과 반목, 엇갈림과 기다림, 분노와 후회, 아쉬움과 안타까움 등.


대학생이 된 어느 남자. 수업시간 때 우연히 옆에 앉게 된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말을 건네보고 싶지만 여의치가 않다. 친구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지만, 돌아오는 건 욕지거리 뿐. 그래도 응원의 메시지는 잊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그녀와 같은 조가 되어 같이 조활동을 하게 된 그. 조활동을 핑계로 둘 만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숫기없는 그는 실수를 연발한다.


한편 그에게는 아주 편하게 지내는 여자친구가 있다. 여지없이 그녀는 그를 좋아한다. 그녀가 혼자였을 때 도움을 준 유일한 이가 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모른다. 단,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그녀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단지 여자가 아닌 친구로 생각할 뿐이다. 과연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자신이 좋아해마지 않는 수업시간의 그녀를 선택할까? 아니면 오랜 세월 곁에서 함께 해오며 자신을 좋아하는 편한 친구를 선택할까? 그것도 아니면 둘 다 놓치고 말까?


아주 단순하면서도 전형적인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디서 본듯한 이 이야기는 네이버 웹툰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박수봉의 <수업시간 그녀>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번에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원래 박수봉 작가의 개인 블로그에서 연재되던 것이, 네이버 웹툰에 입성하게 되었고, 이어서 애니북스 출판사에 의해 단행본으로까지 나온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로 이렇듯 전문가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 따로 있을 것이었다. 무엇일까?


이 만화의 사뭇 다른 특성들


만화는 엄연히 시각의 콘텐츠이다. 스토리텔링으로써의 콘텐츠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못지 않게 시각적인 콘텐츠는 전통적으로 강자의 위치에서 군림해왔다. 그래서 만화는 스토리텔링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집중을 해야 한다. <수업시간 그녀>는 일단 시각적으로 여타의 만화들과는 차별점을 두고 있다. 무엇인고 하면, 스케치로만 만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수업시간 그녀>의 첫 장면. ⓒ애니북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봤을 때 오로지 펜촉으로만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칫 성의없어 보이고 느슨해 보일 수 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자연스레 컬러감이 전혀 없는 만화가 되었다. 자칫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는데, 이 또한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더더욱 신기할 따름이다. 생각해보니 이 만화가 가지는 '감성'과 '스토리라인'이 커버해주고 있었다. 적당한 풋풋함과 반전과 현실성과 코믹 요소 등. 


거기에 이 만화의 캐릭터들에는 결정적으로 눈이 없다.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만화 그림체에 영향을 받았다면 무엇보다도 눈을 선명히 그려야 할텐데, 그 부분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또한 종종 눈에 띄는 어설픈 듯 거슬리지 않는 '비유'. 예를 들면, 주인공 남자가 비참한 상황에 놓였거나 스스로 아주 바보갔다고 느꼈을 때, 피를 뚝뚝 흘리며 가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캐릭터의 시선으로 카메라 워킹을 시도하는 영화적 기법도 도입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렇게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 말한 영화적 기법에 더해 과거 회상 씬까지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말 다채롭고 색다른 시도를 결코 추하지 않게 잘 활용하였다. 


단숨에 읽히는 젊은 날의 기억


이 만화의 키워드는 스토리텔링도 아닌 그림체도 아닌 캐릭터도 아닌, '느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편집자가 우연히 작가의 블로그에서 만화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다 읽어버린 다음 곧바로 출판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 또한 550여 쪽에 달하는 이 만화책을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또 읽게 되면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느끼는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젊은 날의 일기를 조금은 아쉬운 기분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땐 그랬었지 하는 그런 느낌. 거기엔 차라리 몰랐었으면 하는 사실들도 있고, 왜 그래야만 했었는지 하는 안타까움도 있고, 조금만 더라고 되뇌이는 아쉬움도 있다. 


그땐 왜 그리도 못났는지, 왜 그리도 몰랐는지, 왜 그리도 좁은 사람이었는지. 그런데 이 만화의 배경이 '그때'인 건 아니다. 나한테만 그렇게 느껴졌을 뿐, 누군가에겐 지금일 수 있다. 나 또한 훗날에, 지금의 나를 다시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못나 보일까? 얼마나 답답해 보일까? 그래도 결국 하는 말은 같을 것이다. "그땐 그랬지. 그때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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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