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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

'쇼'로 양산된 싸움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피해자... <안개 속 소녀> [리뷰] 형사 보겔(토니 세르빌로 분)은 사고를 일으킨 채 하얀 셔츠에 피를 묻히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찰은 정신 감정을 위해 정신과 의사 플로렌스(장 르노 분)을 부른다. 보겔은 플로렌스에게 이곳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의 전말을 들려준다. 외딴 산골 마을, 성탄절을 이틀 앞둔 새벽 한 소녀가 사라진다. 박수만 몇 번 쳐도 주민들이 나와서 쳐다볼 정도로 조용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속속들이 알 정도로 밀접한 동네이기에 그 파장은 생각보다 크다. 도시에서 수사를 하러온 형사 보겔은 이 사건이 그냥 묻혀버릴 게 뻔하다는 걸 알아채고는 소녀의 부모와 동네 경찰을 설득해 '쇼'를 시작한다. 그는 언론이 벌 떼 같이 몰려오게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을 잘 아는데, 얼마전 테러 사건에서 잘못 이용하는 .. 더보기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의 주요 길목길목들 <역사는 식탁에서 이루어진다> [서평] 얼마전 회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었다. 시작과 끝은 어김없이 식탁이다. 우리 회사 대표님만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점심 시간엔 밥을 함께 하며, 저녁 시간엔 술을 함께 하며 그렇게 결정된다. 회사가 오래 살아남아 역사라고 칭할 만한 게 만들어진다면, 주요 길목길목마다 역사가 식탁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식탁에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자 고로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의식주 중 없으면 절대적으로 안 되는 게 바로 '식'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얼 왜 어떻게 하든 인간은 먹어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인간의 역사 속에 먹는 거야말로 가장 깊게 아로새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훑어본다. 아내와의 결혼 .. 더보기
가부장 문화라는 신화를 한순간 전복시키기 위해, 소설 <가출> [편집자가 독자에게] 조남주 작가의 K-픽션 023 저희 아시아 출판사는 태생부터 '세계인'과 함께 하는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왔습니다. 2006년 국내외 유일무이한 한영대역 문예 계간지 를 시작으로 2012년 한국문학의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들의 대표작을 주제별로 선정하여 선보인 (이하, '바이링궐'), 2014년 최근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엄선하여 매 계절 한 편씩 선보이는 , 2017년 한국 대표 시인의 자선(自選) 시집 시리즈 까지. 이중 은 지난 2015년 장장 110권으로 마무리된 가운데, 다른 한영 대역 문학 시리즈들을 계속 출간하고 있습니다. 과 시리즈는 를 통해 먼저 부분적으로 선보인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나오는데, 은 2012년 처음 선보였습니다. 의.. 더보기
모든 엄마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헌사, 하지만 끔찍한 현실 <툴리> [리뷰] 마를로(샤를리즈 테론 분)는 두 아이를 키우는 임산부다. 큰딸은 의젓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리기에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하고 챙겨주어야 한다. 둘째 아들은 조금 특별하다, 조금 다르다. 예민한 게 정도를 지나칠 때가 많다. 와중에 그녀는 이제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될 운명이다. 육아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셋째가 태어나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전쟁에 돌입한다. 큰딸을 최소한으로 챙기고 둘째 아들에게는 여전한 관심을 쏟는 와중에, 정녕 밤낮 없이 셋째 키우기가 계속된다. 와중에 남편은 아이들과 적당히 놀아주고는 게임 삼매경이다. 끝이 없을 것 같고 변함도 없을 것 같다. 사소한 것부터 큼직한 것까지 모든 게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나'라는 존재는 없다. 마를로의 오빠는 자신들이 야간 보모의 .. 더보기
아이들을 통해 아이들을 보여주는 마법 같은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리뷰] 더 이상 아이가 아니지만, 아이의 생각과 시선과 행동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아이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내가 아닌 아이들이 바라보고 대하는 무엇에는 관심이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아이는 특별하고 신기한 존재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짓게 하기도 하지만 분노를 일으키게 하기도 하는. 어른들이 보기에 아이들은 참으로 답답할 존재일 것이다. 생각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일삼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동물 아닌 인간인 바 어떤 식으로든 소통이 가능하다. 어른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아이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유추하고 내보인다.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일까. 창작 콘텐츠에 한해, 글과 그림 하다못해 사진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아이들의 생각과 행.. 더보기
국내 최초로 소개된 '몽골 대표 시인'의 몽골 감수성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 [편집자가 독자에게] 편집자로 일하면서 난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편집자뿐만이 아니라 어느 직종에서 일을 하든 마찬가지이겠지요. 급작스레 결정된 사항, 많지 않은 준비 시간, 팔리지 않을 게 뻔한 상품,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중요한 행사 관련 책, 시간과 공력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물질적으로 많은 걸 남기지 못하는... '아시아에서 평화를 노래하자'는 기치로 지난해 시작된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올해 2회째를 맞이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광주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정식으로 개막하기 전 초청된 아시아 작가들이 가장 먼저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하는 만큼, 민주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앞장 섰던 광주의 기치와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은 주요 프로그램과 별도이지.. 더보기
"거짓은 누가 왜 만들어내고, 대중은 어떻게 거짓에 속는가." <제0호> [서평]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15년 전에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소설 을 열렬히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도 주로 등하교(출퇴근)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었더랬는데, 그 유명한 서문을 읽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이후 본격적인 사건에 돌입했을 때는 그 어렵고 어려운 지식의 향연 속에서도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에코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는 서문은 충격적이었다.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이 서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점이다. 지금에야 이 서문이 가짜를 진짜처럼 쓴 '너스레' 떠는 기법이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그의 소설에는 수많은 진짜 같은 가짜들이 있.. 더보기
연극톤의 재미있는 웰메이드 블랙 코미디 <완벽한 타인> [리뷰] 성형외과 의사 석호(조진웅 분)와 정신과 의사 예진(김지수 분)은 속도위반으로 낳은 딸이 스무 살이 되면서 빚어진 남자친구 문제로 소소한 갈등을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석호의 40년 지기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성공적으로 치러야만 한다. 왁자지껄, 화기애애, 7명이서 너나 없이 한 마디씩 한다. 와중에 석호는 우리들 사이에 비밀은 없다며 우정을 자랑하고, 예진은 믿을 수 없다며 게임을 제안한다. 지금부터 7명 모두 각자의 전화, 문자, SNS, 이메일을 여과없이 공개·공유하자는 것. 꺼림칙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부인 속옷도 간섭하는 보수의 화신 변호사 태수(유해진 분)와 세 아이들과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태수까지 모시고 사는 와중에도 문학적 감수성을 유지하는 수현(염정아 분) 부부.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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