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열흘 가량 남았다. 지난해 8월에 시작해 9개월을 달려왔다. 초중반부터 '레스터시티'가 상위권으로 올라오더니 급기야 1위까지 탈환, 36라운드에서 맨유와 비겨 우승이 늦춰졌지만, 바로 다음날 토트넘이 첼시와 통한의 무승부를 기록하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창단 132년 만의 우승이다. 


한편 맨유는 4위 경쟁에서 한 발 늦춰진 것 같다. 2016~2017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요원해 보인다. 2013~2014 시즌 7위, 2014~2015 4위에 이어 이번에는 마지막 2라운드 결과에 따라 5~7위가 가능하다. 이정도면 명문의 확실한 몰락이다. 


이번 시즌 진정한 명문의 몰락은 첼시다. 초반 역대 최악급의 부진으로 강등권까지 가능하다는 진단이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을 긴급 수혈해 10위권 안으로 들어 체면 치례를 하고 있다. 최종 순위는 10위권 안일 가능성이 100%다. 





명문의 몰락은 또 있다. 35라운드까지 단 3승 만을 챙기며 19위에 승점 14점을 뒤져 일찌감치 짐을 싼 아스톤 빌라다. 비록 최근 몇 시즌 동안 강등권을 겨우 면하는 경기력을 보여줬었지만, 저력 있는 명문으로 꽤 높은 순위를 기록했던 기억이 있다. 그보다 더 유명한 명문 뉴캐슬 또한 강등될 위기에 처해 있는데 안타깝다.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선수들이 많은 팀의 강등을 보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몰락까진 아니지만, 토트넘과 함께 빅4를 위협하곤 했던 에버턴이 10위권 밖인 게 조금 충격이다. 보는 입장에서 참 흥미진진하다. 


몰락이 있으면, 흥성과 번영이 있는 법. 2015~201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대표적 흥성은 누가 뭐라 해도 레스터시티와 토트넘이다. 1위, 2위에 나란히 포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젊은 선수들의 공격과 베테랑의 수비가 조화를 이룬 토트넘의 1위를 응원했는데, 핵폭풍 같은 레스터시티의 질주를 막진 못했다. 


토트넘은 하루 아침에 반짝한 그런 팀이 아니기에, 흥성은 했으되 대이변은 아니다. 항상 빅4를 위협하는 위치에 있었고, 맨유와 리버풀이 몰락했을 때도 그 자리를 지켜 이들 위에 있었다. 더욱이 세대 교체가 완벽하게 이루어졌기에 다음 시즌, 그리고 이후 10년이 기대되는 토트넘이다. 


진정한 라이징 스타는 레스터시티다. 시즌 후반 들어서는 계속 언급해 왔기에 이젠 새롭지도 않을 정도다. 그렇지만 그들의 역사를 간단히 집어보면 그들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항상 새롭다. 그들은 지난 시즌엔 14위, 지지난 시즌엔 1부 리그에 없었다. 그 전에는? 2010년 들어서도 없었고, 그 전에도 한참 없었다. 





결정적으로, 레스터시티 현재 멤버들의 이적료를 전부 합치면 어느 정도일까? 약 3200만 유로 정도라고 한다. 한국으로 하면 420억 정도 된단다. 정말 억! 소리 나게 비싸 보이지만, 저 정도 금액이면... 손흥민이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하면서 발생한 이적료가 약 3000 유로 정도였다고 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레스터시티는 EPL 역사를 새로 썼다. 


이번에도 '사스날'의 과학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벵거 감독이 부임한 1996~1997부터 단 한 번도 4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고, 2003~2004 전설의 무패 우승 이후로 한 번을 제외하고 3위와 4위 만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번에도 맨시티에 밀리고 맨유에게는 이겨 4위를 차지할 것 같다. 어느 면에서는 진정한 명문은 아스날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데, 팬들과 언론들은 벵거를 무능하다며 깎아 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박진감이 넘친다. 세계적인 재벌들의 취미 생활(?) 일환으로 구단을 사들여 FM(?) 같이 유명 선수들을 사들여 믿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박지성, 이영표 이후로 우리나라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진출해 좋은 모습들을 보여 왔기에 익숙하다. 우리가 EPL에 푹 빠져 보는 이유다. 


객관적인 실력에서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따라잡기 힘들다. 솔직히 상위 톱클래스는 이탈리아 세리아A나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앙도 이기기 힘들 것이다. 그들 리그는 이변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리아A는 유벤투스의 5연패, 분데스리가는 바이에른 뮌헨의 4연패, 리그앙도 파리 생제르망의 4연패를 확정지었다. 프리메라리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의 바로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독무대다. 최근 들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분전이 돋보이지만, '분전'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힘에 겨워보이지 않는가?


이에 반해 EPL은 거의 매년 순위표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물론 과거에도 빅4라는 거대 장벽이 존재했지만 영원하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은 한치 앞도 보지 못할 혼전이 계속되고 있다. 4연패, 5연패는커녕 최근 5년 간 2연패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EPL이 사랑받는 진정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예측 불허',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장 기다리고 고대하는 단어다.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라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에 앞서 자본이 존재하게 된 현대 스포츠에서 '예측 불허' '이변' '몰락' '흥성' '혼전' 같은 단어는 가장 설레는 단어다. 이번 EPL은, 아니 최근의 EPL은 이를 가장 잘 실현해주고 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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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충격적인 성적, 사우샘프턴의 활약 등 항상 여러 이슈들이 있어 왔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다르다. 활약의 정도와 충격적인 성적의 정도가 역대 그 어느 시즌보다 심하다. 심각한 수준이다. 


총 38경기를 하는데, 2015년 12월 16일 현재 16경기까지 치렀다. 거즌 시즌의 중반까지 진행된 것인데, 순위가 가히 충격이다. 초반 반짝 돌풍일 줄 알았던 '레스터 시티'가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다. 10승 5무 1패로 단 한 번 패했을 뿐이다. 


유럽 6대 리그 선두 팀 중 현재까지 1패를 한 팀은 극히 드물다.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이 무패 행진을 하고 있고,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이 1패를 기록 중이다. '바로셀로나'도 '레알 마드리드'도 인터밀란도 2패를 안고 있다. 레스터 시티의 1패 성적은 그 정도 수준이다. 그 때문에 '토트넘'의 14경기 무패행진, '왓포드'와 '크리스탈 팰리스'의 선전이 빛을 바랬다. 




한편, 2014/2015 우승팀 '첼시'의 성적도 충격이다. 현재 4승 4무 8패로 16위, 강등권과 승점 1점 차이다. 작년에 우승할 당시 불과 3패를 했던 첼시다. 당시 4위를 했던, 즉 챔피언스리그를 진출할 수 있는 순위에 있었던 팀이 맨유인데 8패를 했다. 


말인 즉슨, 첼시가 챔피언스리그를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22경기를 모두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 4위를 해서,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한 플레이오프를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단순 산술적인 계산이지만,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충격을 더해보자. 레스터 시티의 간판 공격수 '제이미 바디'다. 작년 18골로 득점 4위를 기록했던, 13부 리그 신화 '찰리 오스틴'과 결을 같이하는 그다. 그는 7부 리그 신화다. 현재 16경기 15골로 득점 단독 선두, 2위와는 3골 차이다. 유럽 6대 리그에서 공동 2위에 해당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의 연속골 신기록이다. 기존 2003년 '반 니스텔루이'가 세웠던 프리미어리그 최다 연속골 기록이 10골인데, 제이미 바디가 11골로 갈아 엎은 것이다. 그 때문에 '로멜로 루카쿠'의 7경기 연속골(진행 중)과 '외질'의 13도움이 빛을 바랬다. 엄청난 기록들임에도 말이다. 레스터 시티 발 태풍이 모든 걸 집어 삼키고 있다. 


그 와중에도 아스널,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 3, 4위에 위치해 팀의 위상에 흠집이 가지는 않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3패, 4패, 3패를 기록했다. 아직까진 레스터 시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레스터 시티 태풍을 잠재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 


리그가 끝날 때는 상위권 순위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끼리 나눠먹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아스널,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그 밑으로 토트넘, 리버풀 등이 자리잡을 것이다. 레스터 시티 만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인데, 최소한 5, 6위권으로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는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폼으론 챔피언스리그를 노려볼 만하다.  





그런데 첼시는 힘들어 보인다.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10위권 안으로 들어오는 게 현실적 목표가 아닐까 싶다. 2015/16 EPL이 상향평준화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자칫 2부리그로 강등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는 한편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한 번도 2부리그로 떨어진 적이 없는 '애스턴 빌라'의 강등이 눈앞에 보인다. 1승 3무 12패의 처참한 성적이다. 혼자 한 자리 승점(6점)이다. 반등이 쉽지 않다. 어찌되든 역사에 남을 한 해가 될 것이다. 올해 EPL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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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고연전 날에 연대생 우는 소리~

지고~가는~ 연대XX! 처량도 하구나.

어기야 디여차 어기야 디여어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뱃노래-



가슴 속에 터지는! 힘으로 힘으로!

연대생을 눌러서! 울려라 승전고를!

지성의 힘으로! 야성의 힘으로!

엘리제도 기뻐해 고대의 승리를

엘리제도 기뻐해 고대의 승리를

-엘리제를 위하여-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그 유명한 '고연전'에서 쓰이는 고대 응원가의 양대 산맥! 

'뱃노래',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중간에 끼여 있는 연대XX, 연대생은 가져다 붙인 것이다. 

오늘 10월 10일부터 내일까지 '고연전'이 시작된다.

(사실 이번 연도는 짝수이기 때문에 '연고전'이 맞지만... 언제나 내 마음 속엔 '고연전'이다. )



흠...사진을 다 어디에 놔뒀지ㅠ



'고연전'의 역사는 의외로 깊다. 

해방이 된 직후인 1945년 12월 제1회 보성전문(고대 전신)·연희전문(연대 전신) OB의 

축구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OB 농구전, 이듬해에 현역 선수들의 축구, 농구 경기가 

열리면서 정기 대항전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정식 정기 '고연전'은 1965년부터 시작되었고,  각종 사태와 사정으로 열리지 않은 6년을 제외한 후 2013년까지 아쉽게도 고대가 16승 9무 18패로 뒤져 있다.

올해와 내년에 꼭 승리해서 동률을 맞추시오!


2003년과 2012년에 '고연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한 번은 비기고 한 번은 이겼다. 

그런데 솔직히 응원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관심도 없었다. 

아니, 관심은 지극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고대와 연대에서는 (연대는 모르겠고) 축제 그 이상의 축제가 바로 '응원'이다. 

고대에서는 '입실렌티'라고 하는데 (연대는 아카라카라 뭐라나), 

'고연전' 응원 OT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축제인 '석탑대동제'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축제에서도 맛 보지 못할 함성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고연전 ⓒ고려대학교 체육위원회



오늘 10월 10일에는  잠실야구장에서 야구(11:00)를,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는 농구(15:00)를, 

목동 아이스링크에서는 아이스하키(17:00)가 치러질 예정이다. 

참, 개막식은 10:00에 잠실야구장이다. 

내일 10월 11일에는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럭비(11:00)가, 같은 장소에서 축구(13:30)로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정식 5개 종목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e스포츠 고연전도 매년 열리고 있다고 한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e스포츠 고연전에서는 고대가 압도하고 있다^^

2011년만 제외하고 모두 이겼다고 하니 말이다. 

10월 11일에 안암골 참살이길 폐막 행사를 장식할 예정이다. 

그리고 대망의 '기차놀이'도 안암골의 참살이길에서 열릴 것이다!

후한 인심과 함께 좋은 추억이 되길~


(비록 TV로 중계 되지는 않지만, 각종 인터넷 매체에서 생중계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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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일찍이 세계 3대 스포츠 축제 중 두 개에 해당하는 ‘올림픽’과 ‘월드컵’에 열과 성을 다해왔다. 그 결과 ‘올림픽’의 경우에는 1988년 제24회 서울대회를 개최하였고, ‘월드컵’의 경우에는 2002년 제17회 한국・일본대회를 공동 개최하게 되었다.


‘올림픽’은 1932년 첫 출전과 1936년 첫 메달을 시작으로,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대회 때의 10위 쾌거를 이룩해 이후 꾸준히 10위권 내에서 자리매김 했다.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에 반해 ‘월드컵’은 1954년에 처음으로 참가해서 이후 1986년 제13회 멕시코대회부터 2010년 19회 남아프리카공화국대회까지 7회 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하였다. 2002년 17회 한국・일본대회에서는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개의 스포츠 축제는 어떤 대회가 속할까? 통상적으로 ‘포뮬러1 월드 챔피언십’(이하 ‘F1’) 또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뽑는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느냐는 것일 테고, 또한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갈까 하는 것일 테다. 물론 이 둘 중에 우선은 많은 사람의 관심이다. 그래야지만 그만큼 많은 돈이 오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 먼저 세계 스포츠 축제의 양대 산맥이자 터줏대감인 ‘올림픽’과 ‘월드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이후에 ‘F1’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살펴보며 나름 비교분석해, 어느 대회를 껴줄지 결정(?)하도록 한다.


월드컵


왼쪽: FIFA 월드컵 트로피, 오른쪽: 제1회 FIFA 월드컵 우루과이 대회 포스터

월드컵(World Cup)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올림픽 중간 연도를 택해 4년마다 한 번씩 개최하는 세계선수권대회로, 단일종목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이자 제일 먼저 탄생한 세계선수권대회이다.(단일종목으로서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는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이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제1회 대회가 개최되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대회까지 19회에 이르렀다.


월드컵에 경우 올림픽과는 다르게 참가자 수가 그 위상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대회에는 199개국의 대표팀이 예선전에 참가했다. 본선에는 32개국만이 진출할 수 있다. 다만 월드컵을 개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속해있는 나라는 205개로 올림픽보다 많다.


또한 단일 대회의 전 세계 누적 TV 시청자수만 600억 명(2002년 한일대회 기준)을 넘어섰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어서 올림픽 때 오고가는 돈의 수치는 얼마나 될까? 월드컵의 경우 전 세계에 판매하는 중계권료의 가격이 27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원화로 3조4000억원이다. 올림픽보다 훨씬 많은 시청자를 불러들이고 있지만, 중계권료는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단일대회라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의 스폰서프로그램은 올림픽과 비슷하게 운영된다. 먼저 FIFA를 공식으로 후원하는 Official FIFA Partner. 이들 업체는 대회기간 동안 경기장 내에 펜스 광고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회로고와 마크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월드컵 기간 뿐 아니라 FIFA에 관련된 모든 대회와 행사에서 가능하다는 얘기다.


FIFA World Cup Sponsor는 단일 월드컵 대회만을 후원할 수 있고, National Supporter는 단일 지역 내에서만 권리를 취득할 수 있다. 참고로 FIFA Partner의 권리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8년간 3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FIFA 월드컵 우승 국가 표시 ⓒ위키피디아


그 어느 스포츠 대회보다도 오래되고 또한 많은 인기를 누린 두 스포츠 축제 ‘올림픽’, ‘월드컵’은 명실상부한 세계 3대 스포츠 축제 중 두 개다. 이에 의문을 가질 수도 가질 필요도 없다. 문제는 남은 한 자리인데, 과연 ‘F1’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중 어느 대회가 이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 ‘F1’의 전성기인 1970~80년대에는 그 자리에 단연 ‘F1’이 들어 앉아겠지만, 또한 여전히 ‘세계육상선수권대회’보다 훨씬 많은 돈이 오가는 대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대세로 떠오르고 있단 말이다.


다음 시간에 이 두 대회의 혈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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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축구]


ⓒ연합뉴스

초등학생, 중학생 때까지 참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즐겼다. 매일같이 축구를 하며, 어떻게하면 더 잘할 수 있을 연구하곤 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가족이 둘러앉아 응원했다. 축구를 못하게 되면 울었을 정도이니, 짐작이 가시리라. 그렇게 어린 시절을 축구와 함께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도 축구는 계속 했다. 다만 예전같이 재미있지가 않았다. 어릴 때의 '재미'를 위한 축구가 점차 퇴색되어 갔기 때문이리라. 머리가 커지다보니, 축구를 함에 있어 어떤 위계 질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축구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과의 명백한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 내지 박탈감이었다. 즉,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축구를 마지막으로 하게 된 군대에서까지 계속된다. 


이후 나의 축구를 향한 관심은 다르게 표출된다. play(경기)에서 watch(TV)가 되고 다시 play(게임)가 되고 지금은 그냥 watch(방관)이 되었다. 직접 경기에 출전해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축구를 하다가,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직접하는 건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는 것마져 지쳐서, 축구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 저것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몸은 굳어져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어디 가서 축구 좀 아는 사람 정도의 지식만을 가진 채 방관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단적인 예로,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을 할 때마다 전 세계 누적 시청수가 몇 백억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그뿐이랴? 유럽선수권대회와 유럽 4대 리그 경기들도 이와 버금가는 인기를 구사한다. 당연히 그곳에서 오가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축구는 더이상 '사람들에 의해서' 굴러가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축구'가 사람들을 지배하게 된 지경에 이르렀는가? (나름 추측, 연구, 조사를 해보았다. 이 가운데 추측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자세하고 학문적인 해석을 원하신다면 따로 책을 구입해서 보는 게 좋은 듯.) 


축구의 종주국은 영국이다. 영국은 또한 산업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가? 그렇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와 축구가 시작된 시기는 엇비슷하다. 본래 옛날부터 공을 가지고 하는 놀이나 경기가 있어왔지만, 거기에 정형화된 규칙이 적용되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리게 된다.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에 하릴 없이 노닐다가 공을 발견한다. 그렇게 공놀이를 하게 된다. 이를 본 관리자는 자신이 나서서 규칙을 만들기도 하고, 심판을 보기도 한다. 분별없이 쉬는 시간을 허비하는 노동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여하튼, 걔 중에는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고 잘하진 못해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다. 그들은 동호회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클럽이 생기기 시작한다. 초창기에 이들은 노동자 생활과 축구 선수 생활을 병행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영국 전역의 산업혁명 중심지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지금의 맨체스터, 리버풀 등은 산업혁명 당시의 중심지였다. 


산업혁명의 열기는 전 세계를 덮기 시작하고, 자연스레 축구의 열기도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간다. 점차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어가자, 돈이 몰리고 전업 축구 선수가 출현하고 스타가 탄생한다. 동호회 모임 대회는 도시 대항전이 되고 전국 대회가 되고 급기야는 전 세계 선수권 대회가 된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22명의 몸좋은 선수들의 경기에 열광한다. 그 크기에 압도되고, 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감동한다. 그리고 압도되고 감동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덩달아 신난다. 비로소 축구는 축제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축구의 본질은 사라진다. 


축구는 사람들 손에서 시작했지만, 곧 그 손을 떠나 세상을 횡행한다. 소설가가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사실 그 캐릭터는 이미 소설가의 손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지만 대중에게 내놓는 순간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축구는 그렇게 사람들 손에서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이제 축구는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돈으로 지배하고, 축구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로 지배하고, 결국은 축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정신적 지배. 


사실 축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축구를 피해갈 수 없다. 관련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물질적 이득을 주겠고,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이득을 준다. 그리고 이들의 수는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들은 고립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90% 이상 추측에 의한 해석이니, 재미로만 봐주세요. 

올바른 해석을 알고 계신 분께서는, 가차없는 해체와 비판, 비난, 비평을 해주세요. 


언젠가는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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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일찍이 세계 3대 스포츠 축제 중 두 개에 해당하는 ‘올림픽’과 ‘월드컵’에 열과 성을 다해왔다. 그 결과 ‘올림픽’의 경우에는 1988년 제24회 서울대회를 개최하였고, ‘월드컵’의 경우에는 2002년 제17회 한국・일본대회를 공동 개최하게 되었다.


‘올림픽’은 1932년 첫 출전과 1936년 첫 메달을 시작으로,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대회 때의 10위 쾌거를 이룩해 이후 꾸준히 10위권 내에서 자리매김 했다.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에 반해 ‘월드컵’은 1954년에 처음으로 참가해서 이후 1986년 제13회 멕시코대회부터 2010년 19회 남아프리카공화국대회까지 7회 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하였다. 2002년 17회 한국・일본대회에서는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개의 스포츠 축제는 어떤 대회가 속할까? 통상적으로 ‘포뮬러1 월드 챔피언십’(이하 ‘F1’) 또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뽑는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느냐는 것일 테고, 또한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갈까 하는 것일 테다. 물론 이 둘 중에 우선은 많은 사람의 관심이다. 그래야지만 그만큼 많은 돈이 오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 먼저 세계 스포츠 축제의 양대 산맥이자 터줏대감인 ‘올림픽’과 ‘월드컵’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이후에 ‘F1’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살펴보며 나름 비교분석해, 어느 대회를 껴줄지 결정(?)하도록 한다.


올림픽


왼쪽 위: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대회 포스터. 오른쪽 위: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기념 우표. 아래: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당시 최초의 IOC 모습 ⓒWikipedia


먼저 올림픽이다. 올림픽(Olympic Games)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선정한 도시에서 4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스포츠경기 대회로, 고대 그리스 제전경기(祭典競技)의 하나인 올림피아제(Olympia祭)에서 기원되었다고 한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대회가 개최되어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30회에 이르렀다. 1924년부터는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기 시작해서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까지 21회에 이르렀다.


올림픽의 위상은 참가국에서부터 드러난다. 2008년 베이징에 이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204개국에서 11000여명에 이르는 인원이 참가했다. 한편 동계 올림픽에 경우, 2010년 벤쿠버 대회에 82개국에서 2600여명의 인원이 참가했다. 이들은 엄연히 다른 종목에 출전하기 때문에, 나라는 204개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라도 인원은 13600여명에 이르는 것이다. 이밖에 장애인 올림픽으로 불리는 패럴림픽과 2010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청소년 올림픽(14~18세에 한정)이 있다. 이들을 모두 합한다면 약 20000여명에 이른다.


또한 단일 대회의 전 세계 누적 TV 시청자수만 230억 명(2000년 시드니 대회 기준)을 넘어섰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어서 올림픽 때 오고가는 돈의 수치는 얼마나 될까? 올림픽의 경우 전 세계에 판매하는 중계권료의 가격이 38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원화로 4조 1800억 원이다. 참고로 이 중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60%에 이른다고 한다.


올림픽의 스폰서 프로그램은 Top Olympic Partner programme(이하 ‘TOP’)과 Domestic Sponsor 등의 형태를 띤다. 먼저 TOP은 IOC에서 관리하고 있는 최고의 스폰서십 프로그램으로, 9개의 세계적 기업들이 4년 동안 동계와 하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로 홍보 및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IOC로부터 구매하는 걸 말한다. 즉, 올림픽이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관련된 홍보와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4년간 대략 8억 달러 내외로 알려져 있다.


Domestic Sponsor는 개최국, 혹은 개최도시에서 조직된 올림픽 준비위원회에서 관리하는 스폰서십 프로그램으로, 단일대회 후원 혹은 대회가 열리는 지역 내에서만 스폰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제품이나 속해있는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National Sponsor, Official Supporter, Official Supplier의 3개 부문 중 하나를 지원할 수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올림픽 스폰서로서,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에서 Domestic Sponsor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8회 연속 무선통신기기 분야 Top Olympic Partner programme으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수익과 함께 이미지 향상에 성공하였다. 


전 세계적으로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부터 활동해온 굴지의 ‘코카콜라’가 있다. 이처럼 올림픽 스폰서 프로그램은 세계 유수 기업에 있어서,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절대적으로 행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다음 시간에 ‘월드컵’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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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배구가 위기에 처했다. 2012년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팀은 4강의 쾌거를 이룩한 반면 남자 배구팀은 12년 째 예선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재작년에는 스포츠계를 강타한 승부조작으로 많은 유명 배구선수들이 코트를 떠났다. 모 기업의 경영난으로 드림식스 배구단은 해체 위기설이 나돌기도 하였다. 다행히 '러시앤캐시'에게 스폰서쉽을 받아, 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난제에서 프로 8년 차를 맞이한 한국 남자 배구는 이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지. 그때가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는 어둠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남자 배구는 1958년 아시안게임 은메달로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최초 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978년, 2002년, 2006년 아시안게임을 제패했고(1966년부터 2010년까지 금메달 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 획득), 1984년부터 2000년 올림픽을 5연속 진출해 아시아 최강팀의 면모를 이어갔다. 임도헌-하종화-박찬종 라인에서 김세진-신진식-후인정까지 최고의 공격수를 보유해 왔다. 특히1995년 월드리그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6위를 마크할 당시, 김세진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 6명 안에 드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남자 배구의 위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4년 올림픽부터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은 이후 올해까지 12년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002년과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16년 만에 동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아시아를 호령하고 세계를 향해 힘찬 비상을 했던 한국 남자 배구는 왜 이렇게 추락하게 되었을까. 



2013 월드리그에서 한국 남자 배구팀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내년 월드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앞날이 불투명하다. ⓒ연합뉴스



세계 배구 흐름 따라잡지 못해...

1990년대 배구는 공격에 많이 치우쳤다. 걸출한 공격수가 많았던 한국 남자 배구는 세계 무대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맞설 수 있었다. 2000년 대에 들어와 세계 배구는 브라질의 쌈바 리듬에 휘둘렸다. '영원한 우승 후보'라는 칭호를 달고 있는 브라질 남자 축구팀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힘과 스피드 배구. 그것이 2000년대를 호령하고 있다. 

반면, 한국 남자 배구는 아직 90년대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라이트 공격수를 이용한 한방 공격 배구. 그것이 한국 남자 배구의 현실이다. 세계 배구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머물고 있는 것이다. 박철우-김학민-김요한 등의 걸출한 공격수가 있지만 그들을 받쳐줄 스피드있는 조직력이 부족한 상태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남자 배구의 위기가 시작될 시기와 프로 배구 개막이 거의 일치한다. 거기에는 프로 배구가 시작되면서 한국 배구 코트로 날아온 용병들이 있었다. 

용병 시대의 개막

04-05시즌, 한국 프로 배구가 출범한다. 2년 뒤, 06-07시즌 혜성같이 등장한 용병들 사이에서 삼성화재의 레안드로는 단연 빛났다. 이후 2년 동안 역시 삼성화재의 안젤코, 그 이후 2년 동안 삼성화재의 카빈이 한국 배구의 공격을 주도한다. 5년 연속 득점 1위를 용병이 독점한다. 09-10시즌에는 카빈이 득점 1100을 돌파하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한다. 

한국 남자 배구의 한방 공격 위주 배구 스타일은 용병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래도 월등한 공격의 용병들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다 보니 세터들의 기술과 다른 한국 공격수들의 기술 저하가 동반되었다. 세터들은 게임이 안 풀릴 때 무조건 용병들에게 공을 올렸고, 한국 공격수들은 레프트로 자리를 옮겨 보조 공격수로 전락해 버렸다. 국제 무대에 나가게 될 때, 용병 부재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르게 되었다. 

스타 플레이어의 부재와 국제 무대의 부진

국내 리그에서 보조 공격수로 전락해 버린 한국 공격수들은 국제 무대에서 맥을 못 추었다. 계속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년에는 승부조작으로 많은 배구 선수들이 코트를 떠났고, 배구계는 더욱 위축되었다. 

스타 플레이어들은 종적을 감추었다. 문성민-김요한 등이 잘 생긴 외모와 출중한 능력으로 많은 조명을 받았지만, 국제 무대에서의 미미한 존재감과 계속되는 배구계의 악재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4년 만에 돌아온 희망인 올림픽은 진출조차 하지 못했다. 예선전에서 3승 4패로 8개국 중 6위를 기록해 세계예선 2위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본선권을 얻지 못했다. 계속되는 국제 대회 부진은 국가대표의 존재 의미까지 흔들었다. 실력이 있어도 국가대표에 뽑히는 것이 탐탁치 않은 것이다. 국내 리그에서도 설자리가 제대로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대표에 뽑혀 부상이라도 당하게 되면 연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배구 꿈나무의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 안그래도 어려운 운동인 배구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 

국제 경제력을 키워야

총체적 난관에 부딪힌 한국 남자 배구의 부활을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를 뽑는다. 소통과 투자, 장기적 계획. 배구계를 위한 소통의 기구를 만들고 진정성있는 소통을 해야하고, 배구를 위한 현실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긴 시간에 걸쳐 탄탄히 끌어올릴 수 있는 장기적 계획까지. 

결국은 국제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중을 불러들이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는 야구 리그, 전통과 역사가 숨쉬고 있는 축구 리그. 이 두 종목은 각각 2006년·2009년 WBC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며 부활하고 비상했다. 배구도 예전의 빛났던 시절의 부활을 위해서는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수많은 배구 꿈나무와 대중들의 폭발적 관심을 받아 일어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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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결승] 앤디 머레이, 노박 조코비치 완파'영국의 희망' 앤디 머레이(26·세계랭킹 2위)가 2013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머레이는 8일(한국시각)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2013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26·세계랭킹 1위)를 세트스코어 3-0(6-4 7-5 6-4)으로 완파하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앤디 머레이가 2013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로이터


5년 연속 윔블던 4강에 오른 머레이는 지난해 이 대회 준우승을 한 바 있어,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77년 만에 영국 선수의 남자 단식 우승에 대한 열망을 부풀려 왔다. '영국의 희망'으로 불리는 머레이는 홈 팬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큰 변수없이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3-0 완파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노박 조코비치의 긴장과 실수1세트부터 조코비치와 머레이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승부를 펼쳤다. 엎치락뒤치락하며 3-3까지 왔고, 이후 머레이가 2게임을 내리 따냈다. 머레이는 5-3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지키며 1세트를 따냈다.2세트는 조코비치가 리드했다. 서로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따내며 1점씩 나눠가진 상황, 조코비치는 결점 없는 안정된 플레이와 모든 방면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강력함으로 3게임을 따냈다. 스코어는 4-1로 조코비치 리드. 하지만 머레이가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지킨 이후 투지가 빛나는 모습을 보였고, 힘겨운 듀스 게임 끝에 동점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기세를 몰아 조코비치의 서비스게임을 브레이크 시키고 자신의 서비스게임을 완벽한 서브로 가져오면서, 2세트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머레이는 3세트에서 기세를 몰아 2-0으로 앞서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현존 최강의 세계 랭킹 1위의 사나이.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엎은 머레이에 맞서 믿을 수 없는 괴력을 선보이며 4게임을 따낸다. 조코비치가 4-2로 앞선 상황. 그러나 조코비치는 결정적인 순간 때마다 계속 실수를 했고, 머레이는 이를 놓치지 않고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조코비치는 게임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드랍샷으로 활로를 개척했지만, 이 역시 어이없는 실수로 빛을 바랬다. 해설진도 믿지 못할 정도로 실수를 연발한 조코비치의 플레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앤디 머레이, 우승... 영국의 77년 염원을 이루다2세트와 마찬가지로, 당연한 수순인 듯 따라잡는 머레이. 스코어는 4-4가 되었고, 오히려 머레이가 앞서가기에 이른다. 머레이는 5-4로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자신의 서비스 게임에서 한 포인트도 내주지 않고 챔피언십포인트까지 간다.마지막 한 포인트를 남겨두고 머레이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주춤거렸고, 조코비치는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풀어나갔다. 결국 듀스까지 따라잡히고 말았다. 이후 4차례나 계속되는 듀스 게임 끝에 조코비치의 백핸드샷이 네트에 걸리면서, 머레이의 우승이 확정되었다. 머레이는 우승 직후 모자를 벗고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승리를 만끽했다. 영국의 77년 염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노박 조코비치는 준결승전의 혈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듯했지만, 결과에 깨끗히 승복하고 머레이를 축하해 주었다. 노박 조코비치의 부모님 또한 머레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축하해주는 훈훈한 모습이 보였다. 2013 윔블던 테니스 대회... 이변 속출이번 윔블던 대회에서는 이변이 속출했다. 얼마 전 있었던 2013 프랑스 오픈에서 챔피언을 차지한 라파엘 나달이 1회전에 탈락하더니, 2012년 윔블던 챔피언이자 대회 7회 우승자인 로저 페러더는 2회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로써 로저 페러더는 2004년 윔블던 대회부터 이어온 메이저 대회 36회 연속 8강 행진이 중단되었다.이변은 여자 단식에서도 이어졌다. 현 세계 랭킹 3위 마리야 샤라포바가 2회전에서 덜미를 잡혀 짐을 쌌고, 2012 윔블던 챔피언이자 현 세계 랭킹 1위 세레나 윌리엄스는 4회전에서 '돌풍의 핵' 자비네 리지키에게 져 조기탈락하고 말았다. 4회전에서 세레나 윌리엄스를 꺾었던 자비네 리지키는 프랑스의 마리온 바톨리(15위)에게 덜미를 잡혀,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한편 시니어 남자 단식과 동시간대에 벌어진 주니어 남자 단식 결승에서는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17·삼일공고)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오마이뉴스" 2013.7.8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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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윔블던 테니스 대회 주니어 남자 단식] 결승서 퀸치에게 0-2 패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17·삼일상고)이 2013 윔블던 테니스 대회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주니어 세계 랭킹 41위인 정현은 한국시간으로 7일 오후 9시에 영국 윔블던 올잉글랜드 클럽에서 열린 2013 윔블던 테니스 대회 주니어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주니어 세계 랭킹 7위 지안루이치 퀸치(이탈리아)에게 세트 스코어 0-2(5-7, 6<2>-7)으로 패했다.



정현, 2013 윔블던 테니스 대회 주니어 남자 단식 준우승... 한국 테니스의 희망을 쏘다ⓒ 연합뉴스


여러 모로 아쉬운 패배...물집 치료의 여파

여러 모로 아쉬운 패배였다. 1세트에서 정현은 특유의 스트로크와 강력한 투핸드로 기선을 제압했고, 5-3까지 리드해 나갔다. 강력한 왼손 서브를 장착한 퀸치의 세브 게임도 세 차례나 브레이크할 정도로 안정감과 강력함을 겸비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퀸치의 강력함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연달아 2게임을 내줘서 5-5로 쫓기게 되었고, 이후에도 2게임을 연속으로 내주고 말았다. 충분히 1세트를 가져올 수 있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지키지 못했던 여파가 작용한 듯하였다.

퀸치의 큰 키와 강력한 왼손에서 오는 서브의 위력이 정현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은 서브 위력의 차이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낸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정현의 서브 최고 속도는 113마일(약 182km)이었던 반면, 퀸치의 서브 최고 속도는 124마일(약 200km)에 이르렀다. 거의 시니어 수준에 이르는 강 서브를 앞세웠다.

정현은 마음을 다잡고 2세트 초반을 리드했다. 0-40으로 밀려 있던 자신의 서비스게임에서 대역전극을 펼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2-1로 앞서 있던 상황에서 정현의 오른쪽 발바닥 엄지 발가락 아래 부분에 물집이 잡혀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해설의 말마따라 동네 대회가 아닌 세계 최고의 대회 결승전이었던 만큼, 작은 차이는 엄청난 차이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현은 아픈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6-6의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며 초미의 접전을 펼쳤다. 하지만 전세를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2세트마저 내주며 아쉬운 우승 도전을 마무리 지었다.


윔블던 남자단식 준우승, 한국 테니스 역사상 최초

비록 정현은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윔블던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는 한국 테니스 역사상 최초의 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국 선수는 메이저 대회(윔블던, 호주, 프랑스, US 오픈) 주니어 단식에서 총 3번의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1994년 윔블던 여자단식 전미라, 1995년 호주오픈 남자단식 이종민, 2005년 호주오픈 남자단식 김선용. 한국 선수가 윔블던에서 결승에 오른 적은 없었다.

한편 정현은 대회 16강전에서 주니어 세계 랭킹 1위 닉 키르기오스(호주)를 물리치는 등의 파란을 일으켰다. 어찌 보면 그의 파란은 예상된 것이었다. 정현은 2011년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주니어 대회 오렌지볼 16세부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테니스의 희망으로 불리기 시작했었다.

또한 정현은 지난 6월 경상북도 김천에서 열렸던 퓨처스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연소(17세 1개월)로 단식 우승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선수이다.


"오마이뉴스" 2013.7.8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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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프랑스 오픈 테이스대회 남자 단식 결승] 라파엘 나달, 새 역사 쓰다

2013년 5월 21일부터 6월 9일(현지기준)까지 테니스 팬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2013 프랑스 오픈 테니스대회가 막을 내렸다. 


최근 10여년 동안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은 주인공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주인공은 '라파엘 나달'(스페인, 현재 랭킹 4위). 2001년에 프로로 전향한 나달은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연속 프랑스 오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클레이 코트의 황태자'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2009년 준우승에 이어 2010년, 2011년, 2012년 우승으로 7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그리고 2013년 프랑스 오픈 우승으로 메이저 단일 대회 8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최초 대기록에 도전한다. 


이에 반해 그의 결승 상대 '데이비드 페러'(스페인, 현재 랭킹 5위)는 메이저 대회 첫 결승 진출과 첫 우승 도전, 그리고 개인적으로 42번만에 결승 안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왔다. 해설자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그의 펜조차도 알기 힘든 지극히 개인적인 도전사였다. 


한가지 고무적인 사실이 있다면, 페러는 이번 프랑스 오픈에서 결승에 오르기까지 단 한 차례도 세트를 내주지 않고 모두 '3-0'으로 이기고 올라왔다는 것. 그것이 과연 라파엘 나달에게 통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반면 나달은 준결승전에서 세계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를 4시간 40분의 대접전 끝에 3-2로 간신히 이기고 올라와 체력에서 상당한 손실이 있는 터였다. 또한 이 둘은 같은 스페인 출신으로 국대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하였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었다. 


결과는 어느정도 예상했던대로였다. 라파엘 나달의 3-0(6-3, 6-2, 6-3) 승리. 이로써 나달은 프랑스 오픈 8회 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대회 역사상 최초였다. 대회 4연패는 덤이었다. 더불어 최초로 단일 대회 8회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나달은 우승을 만끽하며 코트에 드러누웠고, 우사인 볼트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초반의 접전, 페러의 실수


첫 세트는 초반부터 팽팽하게 흘러갔다. 듀스 접전이 계속되었고, 체력을 많이 비축해놓은 페러는 특유의 집념을 보여주었다. 집념과 끈기로는 누구 못지 않은 나달이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듯했다. 


그럼에도 위기때마다 터져주는 나달의 대각선 포핸드 스트로크의 위력은 대단했다. 페러가 손도 못대는 상황이 연출되곤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4-3으로 나달이 이기고 있던 때, 듀스의 팽팽한 접전 하에서 서브에 약하다는 나달이 서브 에이스를 연속으로 두 번 작렬시키며 점수를 벌린다. 


5-3으로 앞서는 나달. 궁지에 몰린 페러는 탄탄한 기본기가 장점이라는 해설자의 말을 비웃듯 실수를 연발한다. 결국 페러는 계속되는 실수와 폴트로 첫 세트(6-3)를 내주고 만다. 초반의 접전과는 대조적인 모습의 첫 세트 후반이었다. 


빗속에서 계속되는 게임


첫 세트 후반의 모습 그대로 두 번째 세트가 계속되었다. 두 명 다 강력한 포핸드 스토로크가 주무기이지만 페러는 이를 잘 살리지 못했다. 큰 무대 경험에서 오는 차이, 클레이 코트에서의 경험과 능력 그리고 자신감의 차이, 빗속에서 치러짐에 따라 둘 간의 나이차에서 오는 체력의 차이 등에서 점수는 벌어져만 갔다. 


그러던 중 나달이 2-1로 앞선 상황에서 비로 인해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곧 속개되었고, 페러는 심기일전한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나달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 모습도 잠시, 페러의 계속되는 폴트에 이은 세컨 서브가 나달의 강력한 리턴에 제동이 걸리면서 페러의 서비스 게임이 브레이크당했다. 


두 번째 세트는 나달이 러브 게임을 만들고 페러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5-1까지 손쉽게 진행되었다. 이후 페러가 힘을 내 나달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5-2를 만들었다. 이미 점수차가 너무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그의 서비스 게임을 따내고 다시 나달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해설자의 말처럼 방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나달이 결국 두 번째 세트마저 6-2로 손쉽게 따냈다. 첫 세트와는 다르게 페러는 허무하게 세트를 내주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벌써부터 패색이 짙어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달의 탄탄한 기본기와 위력적인 무기


운명의 세 번째 세트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나달의 서비스 게임으로 시작되었고, 가볍게 러브 게임(테니스 경기에서 어느 한 쪽이 1점도 얻지 못하고 연속으로 4포인트를 내주며 진 게임)으로 페러를 돌려세웠다. 


이어진 두 번째 게임은 페러의 서비스 게임이었지만, 나달이 위력적인 무기인 포핸드 스트로크를 앞세워 페러를 꼼짝못하게 하면서 잡았다. 2-0으로 몰리게 된 페러, 그는 힘을 내며 3-3까지 스코어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모습이 마지막 불꽃이었다. 


이어진 게임에서 페러는 두 번째 세트에서 보여줬던 아쉬운 모습을 다시 보이며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연속된 실수로 나달을 도와주고 말았다. 나달의 탄탄한 기본기와 위력적인 무기인 포핸드 스트로크, 페러의 연속되는 실수. 


결승전은 2시간 20분도 안 되어 나달의 3-0 승리로 조금은 싱겁게 막을 내리고 만다. 마지막은 페러의 더블 폴트였다. 준결승전에서의 마지막, 노박 조코비치의 실수가 겹쳐보였다. 페러는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결승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나달은 프랑스 오픈 9회 출전에 8회 우승을 달성하며 살아 있는 전설의 칭호가 아깝지 않은 선수가 되었다. 2010년 남자 테니스 역사상 두 번째로 커리어 골든 슬램 달성(4개의 그랜드 슬램 대회(윔블던, US, 프랑스, 호주 대회) 우승 및 올림픽 금메달 획득-베이징 올림픽 우승)한 이후 또 다른 전설의 페이지를 작성한 그의 차후 행보가 그 누구보다도 주목된다. 


2013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라파엘 나달'이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며 기뻐하고 있다. ⓒ 로이터



"오마이뉴스" 2013.6.1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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