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배우 콤비 10] 이준익과 정진영


그거 아시는지요?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가 13개인데, 그 중에서 사극이 2개이고, 공교롭게도 2 작품 모두 폐위된 조선의 왕(연산군, 광해군)을 내세웠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 중 연산군을 내세운 작품이 그 유명한 <왕의 남자>인데. 이준익 감독의 2005년 작이죠. 그 이준익 감독이 2015년에 사도세자 폐위를 다루는 <사도>로 돌아와 1,000만을 노린다고 해요. 얼마 전에 1,000만을 넘은 <베테랑>에서 열연한 유아인이 사도세자 역을 맡았고, 2번의 1,000만 영화와 2번의 900만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바 있는 송강호가 영조 역을 맡았습니다. 1,000만 기대해 볼만 하겠죠?


한편 이준익 감독은 1993년 이래 <사도>까지 10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그 중에서 사극이 5편이었죠. 그야말로 사극 전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왕의 남자>로 비평과 흥행에서 대박을 내고, <라디오 스타>로 호평을 받은 후 사실상 내리막 길을 걷고 있는데요. 2013년 <소원>으로 조금은 반등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사도>가 진짜 분수령이 되겠네요. 


이런 이준익 감독의 10편 연출작 중 총 5편에 주연으로 출현한 배우가 있어요. 정진영 배우죠. 거기에 이준익 감독이 제작과 기획에 참여한 3개의 작품에도 출현했으니, 이만하면 대표 콤비라 할만 하겠죠? 정진영 배우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수재인데요. 1989년에 연극으로 데뷔해 오래 지나지 않아 영화계로 넘어 왔습니다. 이후 조, 주연으로 탄탄한 배우 생활을 이어갔죠. 1998년 <약속>으로 청룡과 대종 조연상을 휩쓸기도 했습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죠. 그의 지적인 이미지에 딱 맞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준익 감독과 정진영 배우는 2003년 <황산벌>로 처음 조우하지만, 사실 그 전에 2001년 <달마야 놀자>부터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준익 감독이 <달마야 놀자>를 제작했으니까요. <달마야 놀자> <황산벌>의 흥행 이후 이들은 2004년 <달마야, 서울 가자>에서도 기획과 주연으로 같이하고, 2005년 <왕의 남자>로 정점을 찍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2006년, 2007년, 2008년, 2011년까지 이들 콤비는 계속 됩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준익 감독의 전성기를 정진영 배우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정진영 배우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비평과 흥행에서 꾸준히 믿음직한 배우로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이준익 감독은 조금 부침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 둘은 2011년 <평양성>을 마지막으로 한 편도 같이 하지 않았는데요. 꼭 다시 한 번 뭉쳤으면 좋겠습니다^^ 이준익의 역사 코미디 3부작 <황산벌>과 <평양성> 모두를 함께 한 이들인데요. 3부인 <매소성>에서도 함께 하겠죠?






<황산벌, 2003>





<왕의 남자, 2005>





<즐거운 인생, 2007>





<님은 먼곳에, 2008>





<평양성,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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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배우 9] 장진과 정재영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배우가 중앙대학교 1년 선후배 사이로, 윤종빈 감독의 전 작품을 하정우와 함께 했다는 사실은 유명한데요.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역시 대학교 1년 선후배로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 해왔던 영화계 콤비가 있습니다. 바로 장진 감독과 정재영 배우죠. 


장진 감독과 정재영 배우는 각각 1971년, 1970년생으로 1살 차이인데요.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이라고 해요. 그런데 장진 감독이 1년 선배라고 하네요. 나이는 한 살 적은데 1년 선배네요^^ 여하튼 정재영은 일명 '장진 사단'의 제1의 멤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영화를 하기 전에 이미 연극에서부터 함께 해왔습니다. 1996년 연극 '허탕'이 그 시작이라고 하죠. 





이후 영화계에 들어와 몇 편을 한 후 이들은 같이 하기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1998년인데요. <기막힌 사내들>입니다. 아직 정재영이 자리를 잡지 못할 때인데요. 장진은 그에게 단역을 주죠. 1999년 <간첩 리철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 나서 2000년부터 정재영은 본격적으로 주연 자리를 꿰차는 데요. 그 본격적인 시작 또한 장진과 함께 합니다. 유명한 작품이죠? 2001년 작 <킬러들의 수다>입니다. 


이후로도 이들은 거의 매년 함께 합니다. 장진 감독이 연출뿐만 아니라 기획, 제작, 각본 활동도 활발히 하는데요. 그때마다 정재영이 함께 한 것이죠. <킬러들의 수다> 이후에도 2002년, 2004년, 2005년(2 작품), 2006년, 2007년(2 작품), 2008년, 2010년까지요.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함께 한 콤비가 있을까요? 예전에는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불가능하죠. 그렇게 이 둘은 단역, 조연, 주연 그리고 연출, 기획, 제작, 각본을 다 합쳐 12 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이후에는 한 작품도 같이 하지 않았네요. 그렇지만 이후로도 이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둘이 함께 하지 않으니 폼이 조금 떨어진 듯한 인상입니다. 특히 장진 감독의 경우, 2010년 이후 흥행에서 상당히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죠. 물론 장진 사단을 이끌고 연극으로 건너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곤 하지만 말이죠. 한편 정재영 배우도 나쁘지 않은 행보입니다. 최근에는 최초로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KBS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죠. 시청률과 상관 없이 환호할 만한 드라마인데요. 역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역시 최고예요~ 

장진 감독님, 정재영 배우님. 앞으로도 좋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아래의 포스터는 이 둘이 함께 한 영화 12편 중 조연 이상 그리고 연출한 작품만 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킬러들의 수다, 2001>





<아는 여자, 2004>





<거룩한 계보, 2006>





<퀴즈왕,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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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배우 콤비 8] 윤종빈과 하정우


개인적으로 독립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요. 그 시작이 2005년 작 <용서 받지 못한 자>였습니다. 지금은 대세가 된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배우가 함께 했죠. 윤종빈 감독은 연출과 함께 3명의 주연 배우 중 한 명으로 출연도 했습니다. 이후 이 둘은 3편의 영화를 더 찍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4편의 영화가 윤종빈 감독의 연출 필모그래피 전부죠. 즉, 윤종빈 감독은 모든 영화를 하정우와 함께 한 것이죠. 





단순한 관계는 아닌 걸로 보이죠?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배우는 무슨 관계일까요? 다름 아닌 대학교 선후배 관계라고 합니다. 둘 다 중앙대학교 출신인데요. 윤종빈 감독은 1979년생 영화학과, 하정우 배우는 1978년생 연극학과네요. 과는 다르지만 학부는 같은 셈이지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 감독의 졸업 작품으로 2,000만 원을 들여 만들면서 학교 선후배를 총동원했다고 해요. 같이 출연했던 서장원, 임현성, 한성천도 모두 학교 선후배이고 이 작품이 데뷔작이에요. 임현성, 한성천은 조연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윤종빈 감독 작품에 자주 출연하고 있네요. 이들 모두가 윤종빈 사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작품이 들쑥날쑥한 면이 있는데요. 첫 작품은 굉장히 좋았고, 두 번째는 상대적으로 별로 였습니다. 세 번째는 다시 좋았고, 네 번째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죠. 다음 작품은 좋을 거라 예상됩니다. 대중 산업의 최전선인 영화계에서 이런 식의 우정을 계속 이어나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물론 서로 실력으로 믿을 만해야 하겠지만 말이에요. 그럼에도 감독의 입장에서 자신의 모든 작품 주인공을 한 사람 만으로 채운다는 건 모든 걸 넘어선 무엇이 있어 보입니다. 두 분 모두의 원년 팬으로서 두 분의 앙상블이 계속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용서 받지 못한 자, 2005>





<비스티 보이즈, 2008>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군도: 민란의 시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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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과 배우 '류승범' 이름에서 어떤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맞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유명한 형제지간이자 콤비이죠. 류승완 감독이 1973년생 형이고, 배우 류승범이 1980년생 동생입니다. 이들은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 처음으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죠. 

 

 

류승완 감독과 배우 류승범


류승완 감독은 일찍이 1996년에 단편으로 데뷔를 합니다. 이후 유명 감독 아래서 연출부 생활을 하며 데뷔작까지 총 3편의 단편을 찍습니다. 좋은 평을 받고 상까지 타게 되죠. 그리고 이 단편들을 붙이고 에피소드를 더해 2000년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화려하게 장편 데뷔를 하게 됩니다. 물론 독립영화라고 칭해야겠지만요. 많은 화제를 뿌린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류승범은 바로 이 작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류승완 감독이 생양아치 역을 찾고 있었는데, 동생 류승범이 딱 맞더라고 하는 일화가 전합니다. 생양아치 그 자체였다고 하죠. 그렇게 형의 영화에 발탁되어 큰 활약을 한 류승범은 펄펄 날아다닙니다. 형 류승완 감독의 작품에도 연달아 출연하게 되고요. 


그러던 중 2004년 <아라한 장풍대작전>으로 이들은 독립영화가 아닌 메이저급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주요 길목에서 다시 좋은 시너지를 보이게 되는 것이죠. 이후 이들의 메이저급 합작은 계속되고, 그 영향력 면에 있어서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보입니다. 최근 들어서 정점을 찍은 느낌이 듭니다. 2010년 <부당거래>, 2013년 <베를린>까지. 


이들은 절친한 형제 사이이지만, 현장에서는 깍듯이 서로를 존중한다고 합니다. 감독과 배우로서 말이죠. 그러하기 때문에 이들의 시너지가 더욱 더 빛을 발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들이 합작한 영화가 은근히 많은데요. 그 중에 류승범이 조연으로 열연한 작품이 몇몇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나열해 보겠습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0>

 

 

 

 

<다찌마와 리, 2000>

 

 

 

 

<피도 눈물도 없이, 2002>

 

 

 

 

<아라한 장풍대작전, 2004>

 

 

 

 

<주먹이 운다, 2005>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

 

 

 

 

<부당거래, 2010>

 

 

 

 

<베를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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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었다 하면 무조건 세계 유수의 상을 타는 '김기덕' 감독. 우리나라 영화 감독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리고, 가장 논쟁거리가 많은 영화를 만드는 '김기덕' 감독. 사실 그는 영화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집안 형편 상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부사관 생활을 하다가 무작정 파리로 건너가 회화 공부를 하던 도중 생전 처음 본 영화들 때문에 감독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영화 각본가로 활동하였고, 1996년 <악어>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배우 '조재현'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영화죠. 


한편 조재현은 1989년에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서 주로 로맨스 드라마에 얼굴을 비치곤 했습니다. 그렇게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열 몇 편을 찍고 김기덕 감독과 조우를 하게 되죠. 그것도 2년 연속으로 두 편이나요. 1990년 중반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실험적이며 어둡고 우울한 신인 감독의 작품에, 이제 막 날개를 활짝 필 배우가 출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잘 한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조재현'이라고 하면, 마냥 대중적이고 상업적이지만은 않은 뭔가 모를 도전적이고 독립적인 느낌이 드니까요. 



김기덕 감독과 배우 조재현



김기덕 감독은 온전히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의 대부분 작품들이 직접 제작, 연출, 각본, 편집한 것을 보면 더욱더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는 '김기덕 사단'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의 영화적 페르소나들을 다수 거느리고(?) 있습니다. 조재현이 그 첫 번째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한 때 이들 사이에 불화설이 있었습니다. 조재현이 2001년 <나쁜남자> 이후 상업 영화에 주로 얼굴을 내밀게 된 것 때문이죠. 급격한 전향(?)을 감행한 조재현은 역시나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지금까지도 엄청나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2013년에 파격의 강도를 한층 높인 <뫼비우스>로 이들은 조우하게 됩니다. 비록 김기덕 감독의 영화 중에서 제일가는 혹평을 들었지만 말이죠. 그래도 이들이 10여 년만에 다시 만나 작업을 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자, 그렇다면 이들은 그동안 어떤 작품들을 함께 해왔을까요? 한 번 보시죠.







<악어, 1996>





<야생동물 보호구역, 1997>





<섬, 2000>





<수취인불명, 2001>





<나쁜 남자, 2001>





<뫼비우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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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넘어 세계적인 비쥬얼리스트로 손꼽히는 왕가위 감독. 그는 특유의 미장셴(영화에서 무대 위의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연출가가 배열하는 작업)으로 독보적인 영상미학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1990년 <아비정전>에서 시작해 2000년 <화양연화>로 끝나는 1990년대의 왕가위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당시 영화팬들을 둘로 나눠본다면, 왕가위의 세계에 속해 있는 영화팬들과 그 밖의 있는 영화팬들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주로 각본 작업을 하다가 1987년 <열혈남아>로 데뷔한 이후 1990년 두 번째 작품인 <아비정전>으로 홍콩금상장영화제를 석권하며 홍콩영화계를 평정한 그였다. 이후 그는 1997년 <해피투게더>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정점을 찍는다. 


한편 양조위는 20대 초 약관의 나이로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주연을 꿰찬다. 이후 1980년대 후반 수십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실력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1990년 <아비정전>으로 왕조위와 조우한다. 소위 '대박'을 터뜨리며 win-win한 두 사람. 양조위는 이 인기가 반영된듯 1991년 5편, 1992년 6편, 1993년 7편, 1994년과 1995년 4편씩 주연을 맡는다. 1980년 후반에 엄청나게 영화를 찍었던 주윤발의 뒤를 이은 듯한 느낌이다. 


왼쪽이 왕가위, 오른쪽이 양조위


왕가위와 양조위는 1994년 두 편의 영화 <동사서독>, <중경삼림>으로 다시 조우한다. 이 두 작품은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전혀 촌스럽거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세련된 작품들이다. 그야말로 왕가위의 미장셴이 100% 담겨져 있다. 양조위는 이런 왕가위의 미장셴에 가장 적합한 배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바꿔 말하면, 양조위는 그 명성에 비해 자신만의 색깔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야만 왕가위 특유의 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여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양조위는 오랫동안 무던히도 사랑받는 배우가 되었다. 


이 둘은 1990년대 왕가위 전성시대 때의 대표작품을 합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도 명작으로 뽑히는 <2046>과 최근 개봉했던 <일대종사>를 함께 했다. 또한 2002년 왕가위가 제작한 <천하무쌍>의 주연을 양조위가 맡았으며, 2000년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에서 함께 주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아비정선, 1990>





<동사서독, 1994>





<중경삼림, 1994>





<해피투게더, 1997>





<화양연화, 2000>





<2046, 2004>





<일대종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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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넘어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작품을 단 하나 뽑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영웅본색'을 말할 것입니다. 그만큼 '영웅본색'은 수많은 영화팬의 뇌리에 깊게 아로새겨져 있죠. 이 영화는 잘 알려져 있듯이, 제작자 '서극'과 감독 '오우삼'의 합작품입니다. 당시 서극은 미국유학파 출신으로 이미 흥행영화들을 다수 제작한 유명 제작자였던 반면, 오우삼은 일명 3류 쿵푸 액션물과 코미디 영화판을 전전하는 감독이었습니다. 이들은 '영웅본색 1'에서만 의기투합 했을 뿐, 이후 '영웅본색 2' '영웅본색 3'와 '첩혈쌍웅' 등에서는 갈등이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오우삼은 '주윤발'이라는 희대의 캐릭터와 함께 '홍콩 누와르'라는 말까지 만든 '영웅본색'을 찍게 된 것입니다. 1986년 당시 주윤발은 2년 전의 작품인 '등대여명'으로 금마장 남우주연상,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받으며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로 우뚝 서 있었습니다. 참고로 주윤발은 1983년 4편, 1984년 4편, 1985년 5편, 1986년 10편, 1987년 12편, 1988년 9편, 1989년 6편에서 주연을 맡는 믿기 힘든 행보를 보입니다. 하지만 '영웅본색' 단 한 편으로 이 모든 걸 상쇄시킬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영웅본색'에서 오우삼은 오우삼식 액션이 무엇인지를 만방에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에 적확한 페르소나인 주윤발은 이를 완벽히 소화해내죠. 이후 한동안 이들의 합작은 계속됩니다. 거의 매년마다 한 편씩 영화를 찍었죠. 그렇게 1986년 '영웅본색'을 시작으로 1992년까지 5작품을 같이 합니다. 그 이후 이들이 감독과 배우로 만난 적은 없지만, 1989년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 3>을 오우삼이 제작했으며 1998년 주윤발이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로 할리우드에 진출할 당시 오우삼이 이 영화의 기획을 맡았고 2003년 주윤발 주연의 할리웃 작품  <방탄승>을 제작한 바 있습니다. 이들이 감독과 배우로 함께 했던 작품들을 만나 보시죠. 






'

영웅본색 (1986)



영웅본색 2 (1987)



첩혈쌍웅 (1989)



종횡사해 (1991)



첩혈속집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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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하면 기괴하고 매력적이며 풍부한 상상력과 판타지가 넘치는 영화들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가 '천재'라는 타이틀을 넘어서 '대가'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그 속에서도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죠. 단지 표현하는 방법이 특이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표현의 한 가운데에는 그만이 창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물론 평범하지 않은, 아니 엄청 특이한 캐릭터일 것입니다. 


'조니 뎁'은 팀 버튼이 원했던 특이한 캐릭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표정과 행동이 딱 들어맞죠. 예를 들어보자면, 이들이 합작한 영화는 아니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보시면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익살스럽고 장난끼 가득한 표정에, 요리조리 잘 피해다니면서 깐족거리는 잭 스패로우 선장 캐릭터 말입니다. 딱 그 캐릭터죠. 사실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 선장은 팀 버튼과의 수많은 합작에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니 뎁(왼쪽)과 팀 버튼(오른쪽). 이름조차도 잘 어울립니다.



이 둘은 5살 차이 나는 콤비인데요. 팀 버튼이 1958년생이고, 조니 뎁이 1963년생입니다. 그렇지만 데뷔년도는 비슷했습니다. 팀 버튼이 1982년, 조니 뎁이 1984년이죠. 그렇게 탈없이 자신들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던 그들은 1990년에 조우해 <가위손>을 만들어 냅니다. 가히 전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죠. 


팀 버튼의 경우는 데뷔부터 자신만의 독특하지만 확고한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조니 뎁의 경우는 아주 색다르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잘 헤쳐나간 듯 보입니다. 이후 이들은 1990년대에만 <가위손>을 비롯해 3편을 합작했고, 2000년대에도 3편을 합작합니다. 그리고 2010년대에만 벌써 2편을 같이 했죠. 과연 이들이 같이 작업한 영화들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가위손(1990년, 폭스)





에드 우드(1994년, 디즈니)





슬리피 할로우(1999, 파라마운트)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년, 워너브라더스)





유령 신부(2005년, 워너브라더스)





스위니 토드(2008년, 파라마운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년, 디즈니)





다크 섀도우(2012년, 워너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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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1995년 <카지노>를 마지막으로 20여년 동안 그의 영화적 페르소나였던 '로버트 드 니로'와 더 이상 작품을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2년 <갱스 오브 뉴욕>을 시작으로 일명 2세대 콤비라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작품을 이어나가죠.

 

아무래도 <타이타닉>이나 <아이언 마스크>의 이미지보다는 2000년 작품인 <비치>에서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윌리엄 골딩의 대표작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파리대왕>에서 상당부분 모티브를 따왔을 것 같은 분위기의 <비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광기와 욕망을 진지하게 표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비록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눈매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죠. 개인적으로 <갱스 오브 뉴욕> 이후 디카프리오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후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선굵은 영화들을 합작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뉴욕 슬럼가의 갱단 이야기 <갱스 오브 뉴욕>, 전설적인 인물 '하워드 휴즈'의 실화 <에비에이터>, 홍콩영화 <무간도>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 <디파티드>, 베스트셀러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영화화한 스릴러 반전 영화 <셔터 아일랜드>까지. 그리고 그들은 2014년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열어젖힙니다. 이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요,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합니다.

 

자, 그러면 이들이 합작한 5작품을 살펴 보겠습니다.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넘게 함께 해오고 있죠. 디카프리오가 벌써 40대에 접어 들었네요. 스콜세지 감독은 70대구요.

 

 

 


 

 

 

갱스 오브 뉴욕



갱스 오브 뉴욕(2002, 미라맥스)



 

 


에비에이터(2004, 미라맥스)




 


디파티드(2006, 워너브라더스)




 


셔터 아일랜드(2010, 파라마운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 파라마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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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페르소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고 하네요. 칼 구스타프 융에 의하면,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죠. 이를 영화로 치환하면, 영화감독이 배우를 통해 자신의 분신이자 상징을 표현할 때 페르소나라는 말이 쓰입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는 대표적인 콤비입니다. 그들이 함께 한 작품은 8개나 되는데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마틴 스콜세지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하는 역으로 로버트 드 니로를 선택합니다. 사실 이 둘은 각각 1942년생, 1943년생으로 한 살 터울의 친한 친구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죽이 척척 맞았을까요?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탈리아계 2세였죠. 즉 로버트 드 니로는 미국 뒷골목을 떠도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자신을 대변하는 페르소나였던 것입니다. 같은 뉴욕 출신의 로버트 드 니로는 그 이미지를 완벽히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는 연기자였습니다.  

자, 그럼 이들이 합작한 영화 8편을 볼까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20년을 함께 했습니다. 






[비열한 거리], 1973년





[택시 드라이버], 1976년




[뉴욕, 뉴욕], 1977년





[성난 황소], 1980년





[코미디의 왕], 1983년






[좋은 친구들], 1990년





[케이프 피어], 1991년






[카지노],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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