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용서 받지 못한 자>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포스터. ⓒ 청어람



철없는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된 남자에게 "군대를 갔다 와야지 철도 들고 정신차리지"라는 말은, 마냥 듣기 싫은 말이기 보다 일종의 기대심리가 적용되는 말이다. 말인즉슨, 누구나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면 세상이 원하는 진정한 남자가 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엔 필수적으로 '변화'가 뒤따른다. 과연 어떤 변화일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국 특유의 위계질서, 그 중심에 있는 남자들만의 위계질서. 군대를 가기 전의 '무질서'에서 군대를 다녀온 '질서'로의 변화가 이를 주도한다. 군대는 문신을 새기듯 질서를 몸에 체득시킨다. 이는 곧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남자가 되는 길인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수많은 '용서 받지 못한 자'들이 존재한다.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군대라는 소재를 아주 미시적으로 접근해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남자로의 변화, 권력의 질서 안에서 변해가는 자들의 모습 등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너무나 공감이 되는 내용에, 몇 번이고 몸서리치며 보고 또 봤던 기억이 난다. 필자 또한 '용서받지 못한 자' 중의 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또 한 번 몸서리가 처진다. 한 점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용서 받지 못한 자들


영화는 두 파트로 나뉘어 진행된다. 승영이 자대 배치를 받고 난 후 군대에서의 이야기와, 승영이 상병 휴가를 나와 태성과 만나는 이야기. 먼저 군대에서의 이야기부터 풀어본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 또한 간단하다. 제목처럼 전부 '용서 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 중에 누가 봐도 용서 못할 인물이 있다. 


말년 병장 '수동'(임현성 분). 그는 내무실 최고참으로 최 정점의 위치에서 권력을 마구 휘두른다. 후임의 팬티를 훔쳐 입고, 후임의 편지를 훔쳐 읽으며, 성추행까지 행하는 등의 각종 부조리한 짓거리를 일삼는다. 그가 하는 말은 대체적으로 이렇다. "고참이 하자면 하는 거지." "야, 나도 옛날에 그렇게 당하면서 지냈어." 그렇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 되물림 하는데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군대가 낳은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그러면서도 제일 큰 희생자이기도 하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일방적 가해자와 희생자로 비춰지는 수동과 승영. ⓒ 청어람



그런 그와 거의 동년배인 분대장이자 병장 유태성(하정우 분)이 있다. 그는 스스로 군대 생활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즉, 뒤 끝없이 조이고 풀어주는 역할을 잘했다는 말이다. 수동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적당히 풀어줄 줄 아는 그는 사실, 수동보다도 더 용서 받지 못한 자라 할 수 있겠다. 이는 그의 신참 부사수이자 중학교 동창이기도 한 이승영(서장원 분)과의 애매모호한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태성은 중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승영과 허물없이 지내려 한다. 그래서 부조리한 군대 생활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는 승영을 언제나 감싸주려 한다. 하지만 결국은 이와 같은 행동이 군대라는 곳에서 승영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승영은 부조리한 군대 권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참을 수 없어 몇 번이고 선임과 다툼을 하고 그럴수록 미움만 받는다. 그런 사이에 승영의 부사수인 허지훈(윤종빈 분)이 들어온다. 지훈은 일명 고문관으로, 지지 리도 어리바리한 인물이다. 승영은 그런 모습을 착하다고 생각하며 한없이 잘해준다. 이윽고 얼마 후 태성이 전역을 하고 그들에게 시련이 닥친다. 여기저기에서 후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승영을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이에 승영은 결국 돌아서고 만다. 그 누구보다도 부조리한 권력을 반대했던 그마저도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훈을 버리고 권력에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승영. 갈 곳 없는 지훈은 자살을 택한다. 어리바리하게 군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지훈을 욕할 것인가, '전향'에 가까운 변화를 택한 승영을 욕할 것인가. 진정 용서 받지 못한 자는 누구인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일방적 희생자였던 승영은 어느샌가 가해자가 되어 있다. ⓒ 청어람



진정 용서 받지 못할 자는 누구인가


영화의 다른 파트를 들여다보자. 승영은 상병 휴가를 나와서 태성을 만나려 한다. 그런데 태성은 좀처럼 만나주려 하지 않는다. '민간인'에게는 '군인'이 별거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그들에게 쓸 시간이 아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여하튼 태성을 만난 승영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 지훈에 대해 상의하려 한다. 물론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승영. 이에 태성은 '군인은 다 힘들어'라는 말을 전달하며 더 이상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군대에서의 일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힘들기 때문에 그냥 버티라는 말 밖에는 해줄 말이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며 애초에 차단을 해버리니, 승영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태성한테 말해봐야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겠는가. 그는 어설픈 자기 학대를 시도하고, 태성에게 매달려 울어도 본다. 하지만 남는 건 생채기와 '괜찮아'라는 태성의 영혼 없는 위로 뿐. 


이 타이밍에서 영화가 말하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승영이다. 그는 신병 때부터 고수해온 권력에의 반(反)함과 '후임이 왕이다'라는 생각을 완전히 반대로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 때문에 지훈은 자살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사실 지훈은 여자친구와의 헤어짐으로 인한 충격으로 승영과 다른 선임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고, 이를 본 승영은 폭발해 지훈을 심하게 나무랐고 지훈은 자살을 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휴가를 나온 승영이 자살을 택하고 만 것이 아닌가. 이는 누구 때문일까. 자신의 선택으로 빚어진 일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택했으니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걸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태성이 조금이라도 승영의 말을 들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렇다면 태성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용서 받지 못한 자'인가? 몇 번이고 돌려봐도 진짜 '용서 받지 못한 자'를 찾기란 가히 쉽지 않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멱살잡기는 가해자와 희생자를 상징하는 듯하다. ⓒ 청어람



혹시 나는 용서 받지 못한 자가 아니었나?


테이프를 앞으로 감아본다. 다시 처음부터. 용서할 수 없는 또는 자신도 모르게 용서 받을 수 없는 자가 된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태성은 승영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승영은 결정적일 때 지훈을 질책하며 그를 저버렸다. 지훈 역시 시간이 가도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동을 비롯한 승영과 지훈의 선임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군대에 만연한 권력 구조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이며 후임들을 몰아세웠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모두 군인이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용서 받지 못한 자'는 군대란 말인가. 몇 번이고 영화를 돌려봐서 얻은 결론이다. 군대로 상징 되는 이 시대의 거대한 틀, 구조.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 희생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용서 받지 못한다. 가해자이기 때문에. 


생각해본다. 나는 군대에서, 사회에서 희생자인가. 가해자인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희생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사슬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처음 볼 때는 코믹하고 일상적인 군대 이야기로 보이다가, 보면 볼수록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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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리뷰] <파수꾼>


영화 <파수꾼>.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이지만, 표지에는 두 명뿐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필라멘트 픽쳐스

좁혀지는 미간, 꿈틀대는 눈썹, 뿜어져 나오는 한숨, 쯥쯥거리는 입술, 바싹 당겨지는 뒷목. 영화 <파수꾼>을 보고 난 후 남겨진 것들이다. 10대 친구들을 그린 이 '성장영화'를 보며 이런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서 나의 오욕의 학창시절을 투영했기 때문일까. 영화 자체가 소름끼치게 하였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은 독립영화에 속한다.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소규모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눈을 속이는 현란한 특수효과나 가슴을 뻥뚫리게 하는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는 없다. 대신 디테일하기 그지없는 미시적 심리묘사와 짜임새있는 스토리가 송곳에 찔린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필자가 독립영화를 처음 본 기억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주인공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케이블 TV에서 보내줬던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휴가나와서 하필이면 군대 영화를 보다니. 그럼에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면서 계속해서 나만의 해석을 덧붙였지만, 여전히 그 재미는 반감되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2008년에 <똥파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2011년, <파수꾼>을 접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인데, '파수꾼'이라는 단어와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같았기에 자연스레 접하게 된 케이스이다. 거기에 3년마다 찾아오는 명작 독립영화라는 일종의 징크스가 작용했을지도.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학생 3명이라는데 과연 어떻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궁금하였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를 접하기 전에 영화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아주 간단한 거였는데, 바로 제목이었다. 한글 제목은 <파수꾼>이지만, 영어 제목은 <Bleak Night>였던 것이다. 풀이하면, 암울하고 절망적이고 음산하고 황량한 밤 정도가 되겠다. 그들이 누군가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 그려졌다.


영화는 역순으로 진행된다. 자살한 기태(이제훈 분)의 아버지가 기태의 죽음을 쫓아 기태의 생전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그렇게 찾아낸 기태의 친구 희준(박정민 분). 그는 기태가 자살하기 몇 주전에 전학을 갔지만, 그 전까지는 기태와 가장 친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 동윤(서준영 분). 그는 중학교때부터 기태와 가장 친한 친구였고, 희준이 전학간 사이 기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세 친구는 단짝이었다. 그들은 철로가 끝날 때까지 같은 걸어갈 수 있을까. ⓒ 필라멘트 픽쳐스



주지한대로 주인공은 세 명의 단짝 친구들이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때부터 친구였고, 희준은 고등학교때 알게된 친구이다. 이들 셋은 언제나 붙어다닌다. 그런 그들의 관계에 약간의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윤과 희준이 좋아하는 세정과 보경이와 함께, 남자 셋 여자 셋 월미도 여행을 떠난다. 기태는 진심으로 친구들의 사랑이 성사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보경이는 희준이 아닌 기태를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보경은 기태에서 고백하고 이 장면을 본 희준은 기태에게 따지고 든다. 이에 기태는 언짢음을 느낀다.


이어서 학교에서의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기태 앞에서 부모님 얘기를 하지 말자는 동윤과 다른 친구의 눈짓을 본 기태가 또 다른 의미의 언짢음을 느낀다. 또한 기태는 싸움을 제일 잘하는 일명 '짱'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부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때부터 단짝인 동윤을 제외하고, 희준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에 역시나 언짢음을 느끼는 희준이지만, 기태는 그런 희준에게 자신의 속마음과는 다른 서툰 감정 표현을 하고 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툰 표현들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으로 이들의 관계는 점철되고 만다.


결국 기태와 그의 불량한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지 못한 희준은 전학을 가버리고, 동윤은 그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재를 하지 못한 채 희준의 편만을 든다. 이에 기태는 동윤에게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그의 여자친구인 세정이 과거에 안 거쳐간 남자가 없었다는 것. 이어서 기태는 세정에게 말한다. 동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동윤은 기태를 찾아가서 대판 싸운 끝에 절교를 선언한다. 이 도중에 기태의 불량친구들 또한 기태를 떠나간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자살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프로이트는 방어 기제를 '미성숙한 방어 기제'와 '성숙한 방어 기제'로 나누었다. 미성숙한 방어 기제로는 부정, 투사, 행동화, 건강 염려증, 퇴행, 수동 공격적 행동, 신체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기태가 사용하는 방어 기제는 행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미성숙한 자아와 어미니가 안 계시는 상황,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이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극 중의 내용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그와 관련하여 갈등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태가 말한다.


"난 집에 가면 내가 밥 해먹어. 가끔 아버지 얼굴 보면 인사하고 아침에 눈 떠보면 지각이라서, 왜 안 깨웠냐고 막 화내거든. 안 계시잖아. 엄마가. 아무도 없어. 그 정도야. 그 정도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우리 집 관련된 얘기야. 됐지? 됐냐고?"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기태의 자살이 결국은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사소한 오해와 갈등으로 그들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 필라멘트 픽쳐스



기태는 희준이 좋아하는 보경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기태는 계속해서 희준에게 다가가 사과를 한다. 그의 표현 방법이 조금은 서툴고 거칠지만 희준이 받아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희준은 시종일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 조금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태는 계속해서 엇나가고 만다. 급기야 희준을 향한 분노가 극단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다. 이번엔 희준이 말한다.


"너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내가 언제까지 네 앞에서 꼬리 흔들며 살아야 되는데? 내가 네 앞에서 그렇게 맞고도 오기로 버텨온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알량한 자존심. 나도 한 번 부려봤다. 왜, 안 되냐? 저 친구들도 네 옆에 있는 거 아니야. 착각하지마. 너랑 학교 다니면 편하니까 붙어있는 거지. 나도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고, 알아?"


영화를 보는 내내 희준을 향한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인간 관계란 것이 칼로 무자르듯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죽고 못사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일로 인해 단번에 그 친구와 절교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매일같이 사과를 했지만 나는 무엇인지 모를 오기로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의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성숙한 지금의 내가, 미성숙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의 사과를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불안한 관계, 그 끝은...


우리가 믿고 있는 깊숙한 관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친구는 무엇일까. 진정한 친구와의 깊숙한 관계는 불안정한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일까. 이 영화는 자칫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만연한 불안은 관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려 끝까지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고 상대를 대하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기태는 겉으론 한없이 강한 척 하며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면서도 나약했다. 그는 희준에게 거듭 사과를 하며 불안을 감추려 한 것이다. 하지만 희준은 자신의 불안을 완전히 굳혀서 기태를 대한다. 희준의 입장에서는 기태야말로 자신의 불안을 극도로 내보이며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또한 미성숙하기 그지없었다.


미성숙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동윤. 그야말로 제일 미성숙한 인물일 것이다. 시종일관 기태와 희준의 갈등 속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일방적으로 희준의 편만을 들었을 뿐. 또한 기태의 마지막 사과를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제일 성숙해 보였던 그였기에, 그의 말은 꽤나 반전이었다. 동윤의 말이다.


"너한테 기분 상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똑바로 들어.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지껄일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알아?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네 진정한 친구였단 생각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역겨우니까... 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있잖아 가식적인 인간 싫다고. 근데 네가 제일 가식적이야. 네가 역겨우니까 다 너 떠나는 거야...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혼자 남게된 동윤.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는 없었다. ⓒ 필라멘트 픽쳐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빛을 갚는 다는 속담이 있다. 죽마고우도 말 한 마디에 갈라진다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말'의 힘은 대단하다. 말은 '관계'에 있어 그 시작과 끝을 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파수꾼>은 10대 친구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고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세대를 초월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bleak night에 던져진 이들은 비단 미성숙한 그들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규명하고 있는 거대한 bleak night에 던져진 우리들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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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꽃> ⓒDK FILM


[리뷰] 독립영화 <가시꽃>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던 성공(남연우 분). 그는 고등학생 때에도,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어리숙하고 찌질하기까지 하다. 정황상 그는 주동자들의 폭력에 의해 집단 성폭행에 어쩔 수 없이 가담했지만, 실제 행동에 옮겼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 거라 추측된다. 주인공인 성공이 분명 가해자이지만, 한편으로 피해자라는 걸 명확히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이 영화 <가시꽃>의 주제와도 이어진다.

 

<가시꽃>의 한 장면. ⓒDK FILM


사건 이후 10년의 시간이 흘러, 성공은 의류공장에서 착실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리숙한 성격 때문에, 여러 가지 피해를 보곤 한다. 10년 전 성폭행 주동자 중 한 명인 친구와는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 결정적으로 10년 전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매일 같이 악몽을 꾸며 스스로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왜 성공은 악몽을 꾸고 그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분명 성폭행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또한 그와 같이 어리숙하고 착해 보이는 이가 그런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주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는 말인가? 이 부분이 중요한지, 영화가 계속되어도 좀처럼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성공은 교회에 나가게 된다. 교회에 나가서 진실로 하느님을 믿으면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인 장미(양조아 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바로 10년 전 성공을 비롯한 4명의 고등학생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었다.

 

처음에 성공은 이를 알고 혼란에 빠지지만, 점차 그녀를 향해 마음을 열고 그녀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를 지켜주려는 생각을 굳게 다짐한다. 그녀를 향한 속죄의 표시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된 원인(성공), 원인의 결과를 보살펴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바로 교회이고 하느님()이다.


<가시꽃>의 한 장면 ⓒDK FILM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을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한다. 또한 하느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한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감옥에 들어가서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새롭게 태어났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감하기 짝이 없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생 죄를 짓지 않고 산 사람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경우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는 사람이 하느님을 믿게 된 경우. 이 딜레마를 과연 누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영화는 이 부분도 살짝 건드리고 있는 것 같다.

 

성공은 친구를 찾아가 교회를 다니라고 말한다. 그래야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그의 말과 행동은 지극한 순수함에서 나온다. 그것이 굉장히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발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더욱이 성공의 친구이자 10년 전 집단 성폭행의 주동자 중 한 명은 그래서 이제 와서 어쩌라고?”라며 오히려 성공을 타박하기까지 한다. 성공의 말과 행동은 이기적이지만, 친구의 말과 행동은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성공은 이 간극에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혼자만 죄를 씻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공은 교회에서 청년부에 발을 들여놓고 장미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바닷가로 MT를 가게 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진실게임 시간. 평소엔 아무것도 아닌 단순히 재미 위주의 시간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가시꽃>의 한 장면 ⓒDK FILM


같이 가게 된 교회 친구 중 한명이 과거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장미도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털어놓으려 한다. 10년 전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을 하려 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차마 성폭행을 당한 사실은 털어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을 털어놓으며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다. ‘그 자식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었다. 그 극도의 분노는 성공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긴다. 그리고 성공은 그 즉시 자리에서 빠져 나와, 단죄를 하기 위해 주동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기에 이른다.

 

성공이 주동자들에게 묻는 말은 단순하다. “네가 한 짓을 알지? 미안해, 안 미안해?” 3명 모두 미안하지 않으며, 이제 와서 어쩌라는 투의 말을 건넨다. 이에 성공은 참지 못하고, 그들을 죽인다. 그리고 결국 자신도 죽인다. 어느새 성공을 좋아하게 된 장미는 갑자기 사라진 성공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으로 돌아간다.

 

장미가 다시 혼자가 되는 마지막 부분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의 축축하고 서늘한 땅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녀의 모습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성공의 단죄에만 시선이 쏠려 있다가 그녀에게로 시선이 옮겨가게끔 했다. 그 한 장면으로 균형을 잡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는 300만원의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웬만한 독립 영화라도 억 단위를 넘어가는 영화판에서, 이 정도의 예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액수이다. 그래서 꽉 짜인 스토리와 탄탄한 연기가 더욱 빛을 발한다. 다만 초반에 밀도 있게 짜인 스토리가 후반에 가서 폭발함과 동시에 느슨해진다는 느낌이 난다.

 

연기 부분에서는 나무랄 때가 없다. 특히 주인공 성공의 어리숙한 연기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여주인공 장미 또한 잔잔함을 유지한 채, 일상 속 고통스러운 순간과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파수꾼> 그리고 <명왕성>에 이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주인공의 선택이 자살로 귀결되는 부분이 안타까운 동시에 독립영화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의 슬픔 또는 공허함이 눈에 띈다. 아직까지는 이런 결말이 아쉬움으로 다가오진 않지만, 계속된다면 조금 식상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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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영화는 토끼 사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 아이들이 토끼 사냥하듯 한 친구를 몰아서 쓰러뜨리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다음 날 그 친구는 시체로 발견되고 학교에서 다른 한 친구가 용의자로 심문을 받는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용의자 친구 준(이다윗 분). 


그는 학교 지하의 숨겨진 곳으로 가 죽은 친구 유진(성준 분)을 입에 올리며 졸업 축하 파티를 하려는 몇몇 친구들에게 비아냥 댄다. 그 친구들 또한 맞받아친다. 이들은 서로에게 죽은 친구를 죽인 놈은 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준은 가져온 수제 폭탄으로 그들을 위협하며 솔직히 말하라고 한다. 그러며 영화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 잘 살려내


영화 <명왕성>은 기존 독립영화의 특징을 잘 살려 충실히 계보를 이어나간 듯 보인다. 독립영화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스토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시공간 뒤틀기이다. 먼저 현재를 보여주고, 이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법 말이다. 


또한 사회 부조리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고, 관심 밖의 소외된 일들이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경우에도 눈을 돌리곤 한다. <명왕성>은 사회 부조리와 함께 너무나 자주 일어나 오히려 소외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끝모를 경쟁에 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그리는 동시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군대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와 청소년기의 미성숙한 소통에 의한 파멸을 예리하게 집어낸 <파수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결정적으로 이들 독립영화가 추구했던 시공간 뒤틀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고3 학생들의 비극적인 말로


준은 일반 고등학교에서 명문사립고로 전학을 왔다. 전 학교에서는 1% 안에 들었지만, 이곳에 오니 성적이 형편 없다. 룸메이트 유진은 전교 1등인데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런데 과학 시간에 그와 반대되는 명왕성 이론을 주장하고 만다. 선생님이 질문한 명왕성의 퇴출 이유를 두고 유진은 당연한 듯이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제일 멀리 있고, 크기와 질량이 매우 작으며,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준은 작고 소심한 목소리지만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던진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본다면 명왕성은 퇴출일거야... 하지만 그 기준이 뭐지? 당연한듯 태양계를 중심으로 기준을 정하는 건 옳지 않아."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그렇지만 준은 좋은 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반대한 태양계 중심 사상에 찬성하는 자기 모순적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전교 톱 10의 스터디 그룹 오답 노트. 준은 룸메이트이자 전교 1등, 그리고 스터디 그룹의 수장격인 유진에게 찾아가 오답노트를 구걸한다. 


이에 스터디 그룹 아이들은 준에게 아주 악질적인 미션을 부여한다. 행인 퍽치기와 성추행격 행위, 그리고 선생님에게 복수하려는 이유에서의 수제 폭탄 제조까지.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유진은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데...


영화는 기존의 여러 학원물 콘텐츠에서 차용한 듯한 분위기와 캐릭터, 그리고 문제의식을 여기저기 잘 버무려놨다. 한 발 더 나아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데, 이는 자칫 판타지로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죄책감 없이 이를 너무나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겠다. 


19살 고3에 불과한 학생들이 피말리는 경쟁 시스템에 내몰려 서로를 죽이는 비극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명왕성을 퇴출시키듯, 톱 10 안에 올라온 학생을 아주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살인까지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란... 


"난 19살 밖에 안 되었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돼!"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 고발


영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다 가진듯한 1%의 횡포를 고발하는 형식을 띤다. 비록 무한 경쟁에 내몰렸다고 하지만, 거기에 어떠한 편법이 존재하지 않고 정당함을 기반으로 한다면 충분히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방법임과 동시에, 획일성과 절대성을 띄지 않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어찌 보면 당연한 본성이 꿈틀댄다. 한 번 높이 올라가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테지만, 떨어져 남들의 아래로 내려간다는 사실 너무나 싫고 두렵고 아니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는 횡포를 저지르고 마는 것이리라. 


영화 <명왕성>은 그 방법으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인 살인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확실히,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인해 <명왕성>은 단순히 학원 부조리 비판 영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부조리 비판으로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7등인 준을 보고 유진이 말한다) 1등 하는 거 어렵지 않아. 너 위로 66명만 죽이면 돼."


ⓒ㈜에스에이치필름, 준필름


이 영화의 감독은 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그에 걸맞게 큰 그림을 잘 그렸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직하게 끝까지 끌고 나갔다. 비록 예측이 가능하지만 문제의식 또한 잘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영화로써 가지는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왕성 퇴출 이론을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단지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것에 불과했고, 그래서 준이 천체과학에 특기가 있는 부분은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그리고 준이 갑자기 그리고 악질적인 미션을 수행하면서까지 오답노트를 가지려 하는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준이 아이들을 찾아가 함께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한다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유진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게 된 이유도 충분치 않다. 이 또한 준과 마찬가지로, 유진이 죽는 설정을 미리 해놓고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장치 없이, 인기 절정의 출연진 없이 이 정도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앞날이 밝다는 확고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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