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파수꾼>


영화 <파수꾼>. 영화의 주인공은 세 명이지만, 표지에는 두 명뿐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필라멘트 픽쳐스

좁혀지는 미간, 꿈틀대는 눈썹, 뿜어져 나오는 한숨, 쯥쯥거리는 입술, 바싹 당겨지는 뒷목. 영화 <파수꾼>을 보고 난 후 남겨진 것들이다. 10대 친구들을 그린 이 '성장영화'를 보며 이런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서 나의 오욕의 학창시절을 투영했기 때문일까. 영화 자체가 소름끼치게 하였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은 독립영화에 속한다.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소규모의 자본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눈을 속이는 현란한 특수효과나 가슴을 뻥뚫리게 하는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볼 수는 없다. 대신 디테일하기 그지없는 미시적 심리묘사와 짜임새있는 스토리가 송곳에 찔린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필자가 독립영화를 처음 본 기억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주인공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케이블 TV에서 보내줬던 <용서 받지 못한 자>이다. 휴가나와서 하필이면 군대 영화를 보다니. 그럼에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면서 계속해서 나만의 해석을 덧붙였지만, 여전히 그 재미는 반감되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2008년에 <똥파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난 2011년, <파수꾼>을 접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인데, '파수꾼'이라는 단어와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같았기에 자연스레 접하게 된 케이스이다. 거기에 3년마다 찾아오는 명작 독립영화라는 일종의 징크스가 작용했을지도.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학생 3명이라는데 과연 어떻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궁금하였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를 접하기 전에 영화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아주 간단한 거였는데, 바로 제목이었다. 한글 제목은 <파수꾼>이지만, 영어 제목은 <Bleak Night>였던 것이다. 풀이하면, 암울하고 절망적이고 음산하고 황량한 밤 정도가 되겠다. 그들이 누군가의 파수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 그려졌다.


영화는 역순으로 진행된다. 자살한 기태(이제훈 분)의 아버지가 기태의 죽음을 쫓아 기태의 생전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그렇게 찾아낸 기태의 친구 희준(박정민 분). 그는 기태가 자살하기 몇 주전에 전학을 갔지만, 그 전까지는 기태와 가장 친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 동윤(서준영 분). 그는 중학교때부터 기태와 가장 친한 친구였고, 희준이 전학간 사이 기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세 친구는 단짝이었다. 그들은 철로가 끝날 때까지 같은 걸어갈 수 있을까. ⓒ 필라멘트 픽쳐스



주지한대로 주인공은 세 명의 단짝 친구들이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때부터 친구였고, 희준은 고등학교때 알게된 친구이다. 이들 셋은 언제나 붙어다닌다. 그런 그들의 관계에 약간의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윤과 희준이 좋아하는 세정과 보경이와 함께, 남자 셋 여자 셋 월미도 여행을 떠난다. 기태는 진심으로 친구들의 사랑이 성사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보경이는 희준이 아닌 기태를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보경은 기태에서 고백하고 이 장면을 본 희준은 기태에게 따지고 든다. 이에 기태는 언짢음을 느낀다.


이어서 학교에서의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 기태 앞에서 부모님 얘기를 하지 말자는 동윤과 다른 친구의 눈짓을 본 기태가 또 다른 의미의 언짢음을 느낀다. 또한 기태는 싸움을 제일 잘하는 일명 '짱'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부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때부터 단짝인 동윤을 제외하고, 희준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에 역시나 언짢음을 느끼는 희준이지만, 기태는 그런 희준에게 자신의 속마음과는 다른 서툰 감정 표현을 하고 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서툰 표현들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와 갈등으로 이들의 관계는 점철되고 만다.


결국 기태와 그의 불량한 친구들의 괴롭힘을 참지 못한 희준은 전학을 가버리고, 동윤은 그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재를 하지 못한 채 희준의 편만을 든다. 이에 기태는 동윤에게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그의 여자친구인 세정이 과거에 안 거쳐간 남자가 없었다는 것. 이어서 기태는 세정에게 말한다. 동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참을 수 없는 동윤은 기태를 찾아가서 대판 싸운 끝에 절교를 선언한다. 이 도중에 기태의 불량친구들 또한 기태를 떠나간다.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자살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프로이트는 방어 기제를 '미성숙한 방어 기제'와 '성숙한 방어 기제'로 나누었다. 미성숙한 방어 기제로는 부정, 투사, 행동화, 건강 염려증, 퇴행, 수동 공격적 행동, 신체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기태가 사용하는 방어 기제는 행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미성숙한 자아와 어미니가 안 계시는 상황,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이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극 중의 내용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그와 관련하여 갈등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태가 말한다.


"난 집에 가면 내가 밥 해먹어. 가끔 아버지 얼굴 보면 인사하고 아침에 눈 떠보면 지각이라서, 왜 안 깨웠냐고 막 화내거든. 안 계시잖아. 엄마가. 아무도 없어. 그 정도야. 그 정도가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우리 집 관련된 얘기야. 됐지? 됐냐고?"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는 기태의 자살이 결국은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증거는 또 있다.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사소한 오해와 갈등으로 그들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 필라멘트 픽쳐스



기태는 희준이 좋아하는 보경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기태는 계속해서 희준에게 다가가 사과를 한다. 그의 표현 방법이 조금은 서툴고 거칠지만 희준이 받아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희준은 시종일관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정말 조금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태는 계속해서 엇나가고 만다. 급기야 희준을 향한 분노가 극단으로 흐르고 마는 것이다. 이번엔 희준이 말한다.


"너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이라도 있냐? 내가 언제까지 네 앞에서 꼬리 흔들며 살아야 되는데? 내가 네 앞에서 그렇게 맞고도 오기로 버텨온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알량한 자존심. 나도 한 번 부려봤다. 왜, 안 되냐? 저 친구들도 네 옆에 있는 거 아니야. 착각하지마. 너랑 학교 다니면 편하니까 붙어있는 거지. 나도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 한 번도 없고, 알아?"


영화를 보는 내내 희준을 향한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인간 관계란 것이 칼로 무자르듯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죽고 못사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어떤 일로 인해 단번에 그 친구와 절교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매일같이 사과를 했지만 나는 무엇인지 모를 오기로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의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성숙한 지금의 내가, 미성숙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의 사과를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불안한 관계, 그 끝은...


우리가 믿고 있는 깊숙한 관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진정한 친구는 무엇일까. 진정한 친구와의 깊숙한 관계는 불안정한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일까. 이 영화는 자칫 손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만연한 불안은 관계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려 끝까지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고 상대를 대하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기태는 겉으론 한없이 강한 척 하며 자신의 불안을 꺼내들면서도 나약했다. 그는 희준에게 거듭 사과를 하며 불안을 감추려 한 것이다. 하지만 희준은 자신의 불안을 완전히 굳혀서 기태를 대한다. 희준의 입장에서는 기태야말로 자신의 불안을 극도로 내보이며 상대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또한 미성숙하기 그지없었다.


미성숙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동윤. 그야말로 제일 미성숙한 인물일 것이다. 시종일관 기태와 희준의 갈등 속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 일방적으로 희준의 편만을 들었을 뿐. 또한 기태의 마지막 사과를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제일 성숙해 보였던 그였기에, 그의 말은 꽤나 반전이었다. 동윤의 말이다.


"너한테 기분 상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똑바로 들어. 내가 네 진정한 친구다,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지껄일 때,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는지 알아?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네 진정한 친구였단 생각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역겨우니까... 네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있잖아 가식적인 인간 싫다고. 근데 네가 제일 가식적이야. 네가 역겨우니까 다 너 떠나는 거야... 처음부터 잘못된 거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영화 <파수꾼>의 한 장면. 혼자 남게된 동윤. 아무도 그들을 파수해줄 수는 없었다. ⓒ 필라멘트 픽쳐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빛을 갚는 다는 속담이 있다. 죽마고우도 말 한 마디에 갈라진다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말'의 힘은 대단하다. 말은 '관계'에 있어 그 시작과 끝을 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 <파수꾼>은 10대 친구들을 통해, 관계에 대한 밀도 높은 고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세대를 초월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bleak night에 던져진 이들은 비단 미성숙한 그들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규명하고 있는 거대한 bleak night에 던져진 우리들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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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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