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소니픽쳐스
이런 말을 자주하는 지인이 있다. “1930년대에 태어나고 싶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거리를 활보했던 그 낭만적인 시대에.” “조선 시대에 태어나고 싶다. 그때 태어났으면 뭐가 되어도 되었을 텐데.” “중세시대 유럽에서 태어나고 싶다. 산 속에서 세상 모르게 소박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끝없이 이어지는 과거 지향적 발언에 두 손 두 발 다 들곤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조금은 다른 의미로 나도 과거 지향적이니까.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 역사 교육의 폐해인지는 몰라도, 연도나 인물 그리고 사건 등의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몇 년도에 누가 어떤 사건을 일으켰거나 휘말렸는지 그 자체가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물론 머리가 커짐에 따라, 그 의미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때에 태어나고 싶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유명한 무엇에 대한 갈증이 있나 보다.
파리를 사랑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한 남자
우디 앨런의 2011년 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를 사랑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3분을 할애해 파리의 아침부터 밤까지의 하루 전경을 달달한 음악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주인공의 파리에 대한 예찬, 예찬, 예찬.
“끝내주네! 저길 봐! 이런 아름다운 도시는 세상에 다시 없을 거야. 파리에 자주 못 오니까, 비 내리는 이 도시가 얼마나 멋진지 사진 한 장 찍자. 1920년대의 이 도시를 상상해봐. 20년대 파리를. 빗속에 작가들과 화가들을.”
전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주인공 길(오웬 윌슨 역)은 파리를 예찬하며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 역)에게 파리에서 살 것을 권한다. 하지만 이네즈는 미국으로 돌아가 살 것을 확고히 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소니픽쳐스
사실 이 첫 장면에서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려하는 길이 못마땅한 이네즈인데, 더군다나 파리라는 이상에 사로잡혀 있다니 말이다. 더욱이 1920년대의 과거를 사랑한다니. 영화의 줄거리는 안 봐도 뻔하고, 이 둘의 끝 또한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 예정된 결말까지의 과정이 너무나도 재미있고 환상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법한 보편적 생각을 끄집어내 이야기에 버무리고 있어 결코 가볍지는 않다. 그 이야기는 길이 현실에 지친 어느 날, 자정이 지난 골목에서 클래식 푸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를 지치게 한 현실이라 하면, 그의 약혼녀 이네즈가 있다. 이네즈는 낭만이라고는 없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이고 속물이다. 또 그녀의 부모는 어떤가? 역시 속물이다. 그리고 그들은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길은 환영해도 소설가 지망생 길은 못마땅해 한다. 여기에 이네즈의 친구들도 가관이다. 그 중에서도 길이 사이비지성인이라 칭하는 폴은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는 아주 재수 없는 녀석이다. 길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무시해 현실에서 도망치려 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건 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과거 지향적이지 않던가.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과거 여행
여하튼 길의 비현실적인 과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클래식 푸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어느 파티 현장. 그곳에서 길은 스콧 피츠제럴드 연인을 만나고, 헤밍웨이를 만나게 된다. 그 파티는 장 콕토가 주최한 것이었고, 시종일관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는 콜 포터가 피아노치는 소리였다. 그는 꿈에 그리던 1920년대 파리에 와 있던 것이었다. 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는 황홀경에 빠져 이 시간을 즐기고 매일 자정에 어김없이 클래식 푸조를 타고 1920년대 파리를 누빈다.
가는 곳마다 역시나 전설적인 명사들이 즐비하다. 피카소, 찰스톤, 벨 몬테, 달리, 부뉴엘, 레이, 앨리엇, 거트루드 스타인 등. 이 밖에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명사들이 나온다. 즉, 1920년대 파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이들이 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는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이지만, 이미 말이 되지 않는 설정 위에서의 설정이므로 웃으면서 흥미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큰 흥미거리 중 하나가 이 전설적인 명사들의 면면인 것이다.
그러던 중 길은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 역)을 알게 된다. 당시 그녀는 피카소와 염문을 뿌렸지만, 곧 헤어진 뒤 헤밍웨이와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고 돌아온다.(이는 영화적 설정이 많이 가미된 부분이다. 실존 인물이고 헤밍웨이와 관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시기가 맞지 않고 피카소와의 관계는 없었다.) 길은 아드리아나와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타이밍에 그들은 1890년대로 가는 마차에 오른다.
1890년대로 가자 더욱 더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로트렉, 고갱, 드가... 아드리아나는 이 시대를 황금시대라 칭하며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 자신이 사는 1920년대는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길은 1920년대야말로 완벽한 황금시대인걸? 그때 불현 듯 깨달음을 얻게 된 길. 그는 아드리아나와의 사랑이 지속될 수 없음을 직감한다. 그러며 미래에서부터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그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을 봐요. 이 사람들의 황금기는 르네상스에요. 이들은 황금시기를 버리고 미켈란젤로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해요. 또 그때 사람들은 쿠빌라이 칸 시기를 동경할걸요?... 아드리아나, 당신이 여기 살면 여기가 현실이 되는 거요. 그럼 당신은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게 돼요. 진짜 황금시기를요... 현실은 그런 거예요. 항상 불만족스럽죠. 인생은 그런 거니까요... 저도 당신처럼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어요. 황금시기로... 하지만 이건 진짜가 아니에요. 내가 진정한 글을 쓰고 싶다면 내 환상을 없애야 해요. 과거가 더 좋았다는 환상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장면. ⓒ소니픽쳐스
이 영화가 더욱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음악가이면서 음악애호가이기도 한 우디 앨런 감독의 음악적 취향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리를 가본 적도 없거니와 그 실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파리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극단의 과거 지향적 성향에 대해서는 결국은 비판의 형식을 취하고 말지만, 파리에 대해서는 끝까지 우호적인 감정을 유지한다.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상당히 많다. 우디 앨런 감독에 대해 알고 있는 분이라면 그의 색다른 취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파리의 기막힌 전경을 감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또한 위에서도 주지했듯 수없이 등장하는 전설적인 명사들을 보는 재미가 무엇보다도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현실에서의 도피와 과거에 대한 동경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영화라 하겠다.
'오래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한 번만 와요" (0) | 2014.07.29 |
---|---|
<타인의 삶> 언제 어디서나 휴머니즘은 살아 있다 (0) | 2014.07.24 |
<에일리언> 모든 비극의 시작점은 어디? (2) | 2014.05.30 |
<바이센테니얼 맨> 고귀하게 죽는 길을 택한 '로봇' (11) | 2014.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