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바이센테니얼 맨>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소니/콜럼비아 픽쳐스
리처드 마틴(샘 닐 분)은 가족들을 위한 깜짝 선물로 획기적인 '가전 제품'을 구입해 선보인다. 그 가전 제품은 다름 아닌 '로봇'. 정확한 명칭은 로봇 NDR-114. 말 그대로 가정의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전 제품이다. 그것은 로봇 3 원칙에 입각해,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인간에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가족들의 놀라움을 뒤로 한 채, 그것은 착실히 해야 할 일을 한다. 언제나 '봉사는 저의 기쁨이죠'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그것은 가끔 기계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예를 들어, 인간들이 하는 식사나 체스 게임에 관심을 가진다든지, 인간이 창조한 음악을 듣고 명상에 잠겨 있다든지 하는 행동들 말이다.
결정적으로 어느 날 그것은 실수로 리처드 마틴의 막내가 제일 아끼던 말 모형 인형을 부수게 된다. 슬퍼하는 막내 아씨의 모습을 보고 그것은 연구를 통해 막내 아씨가 좋아할 만한 목각 인형을 직접 만들어낸다. 모방이 아닌 창조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리처드 마틴은 그것을 '그'로 격상 시킨다. 그를 한 가족으로 생각하며, '특별한 로봇'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그는 '앤드류 마틴' (로빈 윌리엄스 분)이 된다. 바야흐로 200년을 살게 되는 <바이센테니얼 맨>의 진정한 시작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소니/콜럼비아 픽쳐스
"계획을 세우자. 우선, 하루 몇 시간은 창작에 몰두해. 너무 예술적이면 인간이 시기하니까, 적당한 걸 찾아보자. 시계 같은 걸로. 그리고 저녁 땐 나랑 공부하는 거야. 자네에게 프로그램 되지 않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자네는 특별해. 인간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만 넌 우리와 완전히 달라. 네게 시간은 영원해."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은 엔지니어의 실수로 신경 계통에 이상이 생겨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로봇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그가 되고, 그는 인간처럼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종국에는 인간의 역사, 적어도 미국의 역사를 의미하는 생각과 행동까지 한다.
'바이센테니얼'은 200년이라는 뜻이다. 극 중에서 앤드류 마틴(로봇 NDR-114)은 리처드 마틴의 증손녀와 결혼하고 함께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때까지 20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는 인간처럼 죽음을 맞게 될 때까지 투쟁과 쟁취를 계속해왔다.
최초의 가전 제품에서 앤드류라는 이름을 얻고 리처드 마틴 가족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시계를 판돈으로 돈을 벌어 들였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명령을 받지 않기 위해 '자유'를 원했고 쟁취했다. 이후 자신의 동족(인간이 되고자 하는 불량 로봇)을 찾아 여행을 하던 도중, 자신을 창조한 이의 아들을 만나게 되어 인간의 가죽을 얻게 된다. 그는 '자유'를 원했을 당시 이미 자신이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후의 행동은 더 나은 인간으로 진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소니/콜럼비아 픽쳐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수백 만의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쟁취하려 한 것은, 자유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 만큼... 너무나 소중한 것."
이는 미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한 단면인 '흑인 민권 운동'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1776년 문을 연 미국에서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백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가전 제품과 다를 바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로봇 3 원칙의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조차 해당되지 않는 삶이었다.
이후 흑인들의 분노와 저항은 1960년대 대규모로 증폭된다. 그 중심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있었다. 그는 1963년 8월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명한 진리의 의미를 깨달으며 살아가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꿈입니다.'로 시작되는 역사적인 연설을 펼친다. 결국 1965년에는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이 인정되어 적어도 정치적 평등이 실현되었고, 2009년에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탄생해 재선까지 성공하였다.
한편 앤드류는 인간의 피부를 얻었지만, 인간일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인간의 감정이 없었던 것이다. 작은 아씨의 죽음 앞에서 슬퍼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혼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발자국 더 내디딘다. 모든 의학지식을 총동원해 기계를 생명체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실현한다.
죽지 않는 것만 빼고 완전한 인간이 된 앤드류. 그는 작은 아씨의 손녀인 포샤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법적으로 인간일 수 없었다. 비록 그의 겉모습이 인간이고 그의 마음이 인간이며 인간들도 그와 같이 인공적인 장기를 달고 살아가기에 그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만, 전자 두뇌로 인해 그는 영원히 죽지 않았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소니/콜럼비아 픽쳐스
결국 앤드류는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최후의 도전을 하기에 이른다. 진일보된 기술을 이용해 그에게 유한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처럼 죽을 수 있게 되었다. 과연 그는 법적으로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받게 될까?
"전 항상 모든 걸 이해하고 싶었죠. 저의 존재 이유 같은 거 말입니다. 전 점점 늙어서 쇠약해지고 있어요. 곧 기능이 정지 할 겁니다. 로봇이라면 영원히 살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영원히 기계로 사느니, 인간으로 죽고 싶습니다. 저는 인정받길 원해요. 제가 누구인가에 대해, 있는 그대로. 찬사나 평가가 아니라 단순한 진실을 인정받는 것, 이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전 택했습니다. 고귀하게 죽는 길을."
이 영화를 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앤드류를 통해 단순히 겉모습만 인간이 진정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파한다. 엄청난 논란이 일 수 있는 사안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인간의 기준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와 같이 멀지 않은 미래에 로봇이 인간과 굉장히 가깝게 지내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생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조차 없는 그것을 말이다.
앞으로는 점차 모든 기준이 철폐되고 정해져 있는 것들이 해체될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변화는 우리네 삶과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바꿀 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 또한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기계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기계의 역사는 '바이센테니얼'이다. 머지않아 기계는 역사는 사라지고 '바이센테니얼 맨'의 역사가 시작될 지도 모른다.
'오래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드나잇 인 파리> 환상적이고 재미있기만한 과거 여행? (2) | 2014.07.05 |
---|---|
<에일리언> 모든 비극의 시작점은 어디? (2) | 2014.05.30 |
<양들의 침묵> 양의 울음소리는 그쳤는가? (2) | 2014.05.02 |
<그랜 토리노>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미래를 창조하는 데 쓰여야 한다 (1) | 2014.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