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신칸센 대폭파>
비행기, 기차, 버스 등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영화가 종종 나온다. 액션 위주에 심리 스릴러가 가미된 장르가 주를 이루는데, 대개 괜찮게 흥행하는 편이다. 그 시조 격의 작품이 의외로 일본에서 나온 바, 1975년작 <신칸센 대폭파>다. 장르적 선구자라는 평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다.
바로 그 <신칸센 대폭파>가 정확히 50년 만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재탄생했다. 동명으로 <신칸센 대폭파>지만 리메이크가 아닌 속편 형식이다. 얼개가 이어지는 만큼 50년 전 영화에 나온 이가 50년 후 속편에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50년의 강을 건너 또 한 번 역사를 이뤘을지 기대해마지 않는다.
영화는 흥미진진한 설정, 현대사회의 특징에 기인한 서사와 인간군상, 긴박감 넘치는 와중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직업정신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막강한 시너지를 낸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상당한 바, 일본 영화 특유의 신파 어린 오글거림을 감당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만했다고 생각한다.
시속 100km 이상이어야 폭파하지 않는다
신아오모리역에서 출발해 도쿄로 향하는 하야부사 60호에 기관사, 차장, 운전사, 판매승무원과 승객 345명이 탑승한다. 별일 없이 쾌속운행 중, JR동일본 고객센터로 익명의 전화가 걸려와 하야부사 60호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한다. 시속 100km 이하면 자동으로 터질 거라며, 증거로 다른 화물 열차를 폭파시킨다. 그러며 전 국민에게 각각 1,000엔씩 걷어 1,000억 엔을 만들어 오라고 지시한다.
JR동일본 센터에 곧 본부장, 경시청 관계자, 총리 보좌관까지 모여들어 대책을 마련한다. 하지만 정부의 기본 지침은 테러범과 절대 협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 하여 실무진 책임자 총괄 지령장이 아이디어를 도출한다. 그렇게 겨우겨우 폭탄이 터지지 않게 연명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현장이다.
하야부사 60호를 책임지는 기관사 타카이치는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직업 정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결국 극한의 아이디어 끝에 적어도 승객은 아무도 다치지 않는 방법을 도출한다.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성공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는데, 과연 모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편 테러범은 누구이고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
일본의 핵심 시스템 '신칸센'을 폭파한다는 것
'신칸센'은 일본의 고속철도를 총칭하는 개념으로 단순히 빠른 열차가 아닌 체계적인 시스템이 기반이기에 일본 철도 교통의 척추와 다름 아니다. 아울러 일본 시스템의 정시성과 기술의 안정성을 만방에 내세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인 것이다. 그런 철저함에 '대폭파'라는 설정은 일본의 핵심 중 하나를 건드린 것과 다름 아니다. 대놓고 일본에 항존하는 문제점들을 파헤쳐 보겠다는 의도다.
그런 만큼 영화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나와 현대 일본 사회의 역린을 찾아낸다. 조건 만남으로 전 국민의 조롱 거리가 된 국회의원, 니트족 출신의 SNS 인플루언서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질타를 받는 헬기 업체 사장, 특정인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사이버 렉카, 학생들을 보살피는 게 아니라 문제만 안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선생님 등 다양한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반면 특별한 듯하지만 맡은 일을 할 뿐인 이들이 있다. 기관사와 조종사, 총괄 지령장 등 열차 및 철도 관계자들로 그들은 투철한 직업 정신의 화신들이다. 박수받아 마땅하거니와 영화 속 아닌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하지만 매우 평면적인 캐릭터들이라 매력이 솟아오르진 않는다. 물론 튀는 인간군상을 감싸는 수단으로는 제격이다.
기차 안의 서스펜스와 테러의 이유
이 영화는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기차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어린 일들이 핵심이다. 수백 명에 달하는 승객을 무사히 살려내야 하니 어려움의 연속, 산 넘어 산이다. 그런 면에서 합격점을 줄 만하다. 별일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와중에도 긴장을 놓지 않을 수 없게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가 하면 테러의 이유도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을 이룬다. 50년 전 <신칸센 대폭파>의 히카리 109 열차 폭파 미수 사건에서 이어지는데,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한다기보다 개인적인 문제를 가져왔다는 의외성이 상당한 호불호를 야기시킬 거라고 본다. 하여 모든 게 밝혀지는 후반부 들어 오히려 맥이 풀리는 양상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피해가 막심할 게 자명한 가운데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신칸센 열차를 '일본호'로 치환해 보다 더 사회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는 데 치중하게끔 그에 맞는 범행 동기였으면 좋았겠다 싶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확실한 미덕이 있다면, 본 기억이 없는 일본 재난 액션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이다. 괴수 재난이나 재해 재난이 아닌 인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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