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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 기업의 사축 인간이 좀비 세상을 맞닥뜨렸을 때 <좀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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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좀100: 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좀100> 포스터.

 

지난 6월 말, 한국벤처캐리탈협회 면접장에서 면접관이 황당무계한 질문을 던진다. "사축 인간이 있냐"라고 말이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당황스러운데, 뜻을 알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사축'은 회사와 가축을 합친 말로,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생겨나 유행했고 우리나라엔 2010년대 중반 유입되어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회사의 가축과 다름없는 신세가 된 직장인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우리나라지만 일본에선 사축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차고 넘치는데, 만화와 애니메이션 왕국답게 이 방면에 무수한 작품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다. 단어가 새로 생긴 지 시간이 꽤 흘렀건만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2018년부터 잡지에 연재되어 2019년부터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지금도 연재 중인 만화 <좀100 ~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도 그중 하나다. 

 

이 만화의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스토리 작가 아소 하로가 크게 히트 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원작인 <임종의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다. 그리고  <좀100>도 애니메이션화를 거쳐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으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좀100: 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이하, '좀100')다. 주지했다시피 만화도 한창 연재 및 발간 중이고, 애니메이션도 7월에 공개되어 한창 방영 중이며, 와중에 영화까지 공개되는 파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얼마나 재밌길래?

 

좀비와 맞뜨린 회사 가기 싫은 신입사원

 

텐도 아키라는 대학 때 미식축구부에서 활동하며 준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로 열심히 또 잘했지만, 지금은 겨우겨우 취준생 딱지를 떼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처지다. 입사한 게 얼마나 좋았던지 첫 출근하면서 동네방네 인사를 하고 다닌다. 호기롭게 입사한 첫날, 회사 그리고 직원들이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첫날부터 야근이다. 밤새도록 집에 갈 수가 없다. 사람 좋아 보이던 팀장은 갑질을 시작한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어느새 회사에 가기 싫어졌다. 몇 시인지도 모를 시간에 퇴근하면서 자살 생각도 들고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나 출근하는 게 너무 싫다. 그런데 이상하다. 경비원 아저씨가 괴물 같은 얼굴로 사람을 먹고 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옥상으로 도망치는데 수많은 주민이 역시 괴물 같은 얼굴로 쫓아온다. 겨우겨우 한숨 돌린 텐도, 살펴보니 사방이 좀비 천지다. 세상이 망한 것 같다. 그러면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건가? 날아갈 것 같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지옥 같은 회사에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세상은 망했고 사방은 좀비 천지다. 회사에는 안 가도 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긍정회로를 돌리는 텐도, 이렇게 된 이상 하고 싶은 걸 못할 바엔 좀비에게 먹히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버킷 리스트 '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를 작성한다. 한 가지씩 이뤄가는 도중 대학 절친 켄초와 연락이 닿아 그를 구해내고 시즈카라는 연상의 여인과 만난다. 그렇게 텐도, 켄초, 시즈카는 한 팀이 되어 좀비 천지의 망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잃어버린 일본의 사축 인간과 블랙 기업

 

<좀100>은 아포칼립스 좀비 액션에 청춘 코미디 활극이 가미된 독특한 작품이다. 회사에 가기 싫지만 회사에 종속되어 버린 신입사원 사축 인간이 좀비 세상에서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실행에 옮기며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아간다는 내용이니 말이다. 세상은 한없이 암울해 무거운 분위기지만 텐도는 특유의 긍정적인 힘으로 상태를 헤쳐 나간다. 

 

최근 몇 년 새 '오히려 좋아'라는 밈이 유행했다. 누가 봐도 부정적인 상황인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맥락에서 쓰곤 한다. 사자성어 '전화위복'과 뜻이 통할 것이다. 텐도가 망한 세상에서 득시글 거리는 좀비를 보고도 회사에 가지 않아 좋다며 만세를 부르고 방방 뛰어다니니, 누군가 그의 상황을 해설하면서 '오히려 좋아'를 외치지 않을까 싶다. 얼마나 현실이 시궁창이었으면 그랬을까, 안타깝다.

 

노동자에게 비상식적이고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악덕 기업을 일컫는 말이 이른바 '블랙 기업'인데, 공교롭게도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처음 생겼다. 사축과 블랙 기업, 일맥상통하는 회사 관련 신조어들이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생겼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의미 있어 보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관련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상황도 유념할 만하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불황을 일컫는 '잃어버린 10년'이 2010년대 들어 '잃어버린 20년'이 되었고 이젠 '잃어버린 30년'이라고들 한다. 2000년대 중반이면 '잃어버린 10년'이 지나 침체의 최정점에 들어설 때이기에, 취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측과 노측 모두에게 크나큰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본다. <좀100>의 텐도는, 그리고 그가 맞이한 좀비 세상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다. 

 

우선 자신부터 돌봐야 하는 일

 

<좀100>의 만듦새와 스토리는 그리 빼어나지 못하다. 오히려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크게 호평받은 애니메이션조차 독특한 설정과 뛰어난 작화 그리고 빼어난 연출이 대상이었지 스토리가 호평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동시다발적으로 공개되어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비록 그동안 수없이 나온 좀비물이지만 청춘 활극에 방점을 찍어 현시대를 정확히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좀비 세상이라는 배경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기까지 하니 아이러니하지만 알맞다. 

 

텐도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며 한 말이자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인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좀비에게 먹히는 게 낫겠다"는 좀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자유 의지 없이,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 없이 부유하는 듯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을 저격하는 것 같다. 앞서 말한 '사축'이라는 말에는 그런 이들의 자조적인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 없다. 일개 개인이 세상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우린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어릴 적 꿈이나 비현실에 가까운 장래희망을 이루고자 현실에 단단하게 내디딘 두 발을 떼어내 무작정 어디론가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텐도처럼 자신을 갉아먹는 블랙 기업에서 나와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좋은 곳을 알아본다든가, 켄초처럼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찾는 것부터 해 보라는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부터 알아야 할 테고, 그러자면 우선 자신부터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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