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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잃지 않고 사회와 개인 문제를 녹여낸 연극 <2호선 세입자>

생각하다 2019. 10. 25. 08:00



[연극 리뷰] <2호선 세입자>


연극 <2호선 세입자> 포스터. ⓒ(주)레드앤블루



이호선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관사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겨우 얻은 2호선 역무원 인턴, 간신히 취업을 했지만 여자친구가 떠나간다. 술에 취해 잠들어 차고지까지 가게 된 호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아무도 없어야 하는 늦은 새벽 전동차 안에서 한 명 두 명씩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그들은 그곳에서 노숙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선은 역장에게 알린다. 


역장은 확인 후 본사에게 보고해야 하건만, 그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이나 호선 모두 무사하지 못할 거라며, 호선에게 제안/명령한다. 2호선 노숙자들을 쫓아내고나서 본사에 알리면 호선의 능력을 높이 사 정규직의 길이 열릴 거라고 말이다. 호선은 받아들이고 본격적으로 2호선 노숙자들을 쫓아낼 계획을 세운다. 우선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하나하나 잘 아는 것이다. 그러고자 '이호선 상담소'를 연다. 


호선으로선 그들을 쫓아내야 하건만, 정작 그 방법의 일환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연을 들으니 쫓아낼 마음이 들기는커녕 동화된다. 그들이 왜 그곳에서 '노숙자'가 아닌 '세입자'로 있는 것인지 말이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누군가한테 한 달에 10만 원의 '월세'를 내기도 한다. 더 이상 불법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그들을 쫓아낼 순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곳에서 살 수는 없을 텐데...


웹툰 원작의 착한 장르 상업 연극


연극 <2호선 세입자>는 갖가지 사연으로 2호선 전동차 한 칸에서 모여 사는 다섯 명과 그들을 쫓아내려는 역무원 인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휴먼 판타지이다. 일면 있을 법하고 또 흥미롭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발상이자 설정이다. 지하철 체계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을 뿐더러, 그곳에서 삶을 영위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지난 3월 무대로 옮겨져 오픈런으로 공연 중인 이 연극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015년 1월부터 1년간 네이버 웹툰을 통해 선보인 <2호선 세입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10년 간 가장 인기 많은 연극 <옥탑방 고양이>의 제작사에서 발굴해 연극으로 선보인 것이다. <옥탑방 고양이>도 원작이 따로 있다. 당시 반짝이지만 큰 인기를 끌었던 '인터넷 소설'이다. 


향후 대학로 상업 연극의 '착한 장르'에서 새로운 강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2호선 세입자>, 호불호 없이 누구한테든 권할 수 있는 연극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기시감을 가실 수는 없겠다.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즐길 순 있겠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바랄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작품엔 지금 이 순간 사회가 적절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이 순간 우리가 사는 사회


이호선은 역무원 인턴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취업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정규직이라는 올라서기 힘든 계단 위 또는 건너기 힘든 강 건너가 앞을 가로막는다. 고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 잠시 숨이라도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평생 오르고 건너는 일밖에 없다. 


역장이 호선을 시켜먹는 방식이 가관이다. 계약직의 일환인 인턴조차 계속하고 싶으면 잠자코 있고, 정규직의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2호선 세입자들을 쫓아내라는 것이다. 자리를 빌미로 사람을 부리는 파렴치한의 전형이지만, 이 사회에선 그보다 더 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킨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 밥줄이 끊기지 않는가. 한편으론 번듯한 직업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그들은 엄연히 불법이겠지만 그들 나름대로 한 달에 10만 원의 월세를 내며 세입자로 살고 있다. 그런 그들을 강제로 쫓아내려 하는 모습은 재개발 강제 퇴거를 연상시킨다. 그들에겐 다른 곳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고 그에 맞는 개별 대책을 세우는 게 맞지 않겠나 싶다. 적어도 그 일이 그들에게 더 좋을 거라고 주장한다면 말이다. 


정이 가는 사연들


이 작품에 정이 가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호선의 사연도 사연이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사연이 자못 흥미롭다. 그 사연이 갖는 휴머니즘을 전하기 위해 극적인 발상과 설정을 연출한 게 아닌가도 싶다. 그들 다섯은, 할아버지 한 명과 아저씨와 아줌마, 대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남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구의, 역삼, 방배, 홍대, 성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처음 탈 때의 역 이름이다. 


아들에게 버림 받은 할아버지,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아저씨,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아줌마, 꿈이 없는 남학생, 성내역에서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여학생까지. 전동차 안에서 생활하게 된 연유가 제각각이거니와 사회와 개인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나름 다층적으로 여러 줄기가 뻗어가는 면면이 시의적절해 보인다. 


작품은 진지하고 심각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져오면서도 코믹함을 유지한다. 하여 일당백의 역할을 하는 주연 한 명 한 명이 연극의 재미를 오롯이 담당한다. 극중 캐릭터성을 넘어서 연극 고유의 관객친화성을 잘 살린 것이다. 한편, 사연이 주는 감동도 강도(強度)가 만만치 않다. 큰소리로 웃을 수 있게 재미를 주는 만큼 울음의 포인트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성내의 사연이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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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2호선 세입자, 강제퇴거, 개인, 사연, 사회, 연극, 웹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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