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소설 읽기] <전당포를 찾아서>


<전당포를 찾아서> 표지 ⓒ아시아



짧은 단편소설에는 등장인물이 최소한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몇몇의 등장인물을 통해 짧고 굵게 그리고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에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끔 장편소설에서 소수의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가 있는데, 굉장히 느리거나 반대로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곤 한다. 


그런데 소설가 김종광은 단편이고 장편이고 수많은 등장인물을 등장시키곤 한다. 특히 단편에서 수많은 등장인물을 등장시키고도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능력은 발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그의 소설은 단연 재미있다. 재미를 추구하는데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신기한 능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짧디 짧은 단편 <전당포를 찾아서>는 그 대표 중 하나이다. 


1998년 당시의 한국사회 자화상


단행본으로 채 50쪽도 되지 않는 짧은 단편 안에 자그마치 16개의 챕터가 있고 챕터마다 한 명의 주인공이 있으니, 최소 16명의 등장인물이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가 박무현인데, 약관 20살의 한민대학교 2캠퍼스 1학년생이다. 


그는 이사장이 학교발전기금으로 적립된 수백억 원 중 수십억 원을 빼돌린 것에 대한 항의 집회를 위해 서울로 향하는 결사대에 합류한다. 다만, 그에겐 투쟁의 각오 같은 건 없고 소값이 개값 되는 시국에 이사장 놈이 있다는 게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소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시골 청년의 시선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매우 가볍게 이어나가는 듯하다. 시골 청년 박무현의 어리바리한 모습을 가벼운 터치로 보여주고 있는 게 그 단적인 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예리한 칼날이 번쩍인다. IMF 당시의 상황을 그리는 것은 물론, 데모와 시위가 더 이상 호응을 얻지 못하는 90년대 말의 대학가 자화상, 대학의 서울캠퍼스와 지방캠퍼스의 은근한 대립에서부터 서울과 지방의 대립까지, 은퇴 후 서울로 올라온 노인의 소회, 처량한 처지의 대학 시간 강사, 금모으기 풍경 등이 16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배어 있다. 


그렇게 하나의 에피소드에는 한 명의 주요 등장인물과 그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1998년 당시의 한국사회 자화상이 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박무현의 행적을 꼼꼼히 살핀다. 다름 아닌 시골 청년 박무현이 서울에 무심코 올라와 겪게 되는 웃지 못할 헤프닝들 말이다. 그 헤프닝에서, 박무현의 모습에서, 우리를 볼 수 있다. 


사회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흐른다


박무현은 '정신 못 차린 애들' 중 하나로 '요즘 세상에 설마' 하는 데모에 참석하고는 얻은 것 없이 전경에게 진압 당한다. 그러곤 한강을 건너서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강제 하차 당한다. 본격적으로 서울 바닥을 헤매기 시작한다. 어딜 가든 불빛이 보이고 사람이 있고 편의시설이 있는 서울이, 조금만 나가도 아무것도 없는 시골보다 헤매기 더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다. 


헤매다가 차비도 다 소진해버린 박무현. 결국 그가 생각해 낸 건 '전당포'. 그곳에 가서 뭐라도 맡기면 돈을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전당포 찾기가 왜 그리 힘든지. 모든 게 다 있을 것 같은 서울인데, 왜 전당포는 보이지 않는 건지. 과연 박무현은 전당포를 찾아서 돈을 받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설령 전당포를 찾아 돈을 받는다고 해도 쉽게 집으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이건 마치 1998년이 아니라 2016년을 보는 것 같다. 하등 다를 바가 없다. 90년대 이후 대학가는 여전하다. 아니, 퇴보했다고 하는 게 맞다. 이도 저도 아닌 취업양성소가 되었다. 그 시작이 IMF 당시였겠다. 서울(캠퍼스)과 지방(캠퍼스)의 대립도 여전하다. 참으로 쓸 데 없는 걸로 자신을 드러내는, 그야말로 무식한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대학 시간 강사의 처량한 처지와 은퇴 후 서울 숲에 갇힌 노인의 소회는 20년이 지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아래에 있다.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들이 지금에 비로소 꽃을 피운 것이리라.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무참히 짓밟히고, 사회는 차근차근 그런 식으로 흘러가서 지금에 이르렀다. 


솔직히 두렵다. 또다시 IMF, 그 이상의 위기가 도래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사이에 세계금융위기를 겪었는 데도 말이다. 그럴 때도 이렇게 날카롭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소설을 쓰고 읽을 수 있을까. 그나마 '전당포'라는 희망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 수나 있을까. 웃기지만 슬프고 재밌지만 씁쓸하다. 


아시아 출판사가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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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1996년을 시작으로 5년을 전후로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그 다섯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에일리언> 시리즈처럼 편마다 모두 다른 감독과 함께 하니 만큼,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와 분위기를 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이번에도 역시 기존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그 매력은 전적으로 감독에 따라 달라질 텐데, 이번 작품의 감독은 '크리스토퍼 맥쿼리'로 <작전명 발키리>와 <유주얼 서스펙트>, <엣지 오브 투머로우>의 각본가로 유명하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인 2012년 <잭 리처>로 톰 크루즈와 함께 한 적이 있다. 톰 크루즈와는 각본과 연출로 벌써 다섯 번째 함께 하고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로 돌아온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그동안 흥행 면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룩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는데, 2011년에 개봉한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700만이 넘는 흥행 성적을 올렸다. 이번 다섯 번째 이야기도 그에 근접하는 성적을 올릴 거라 예상된다. 반면 비평 면에선 여전히 1편이 최고의 명작이라 칭송되고 있을 뿐, 2편에서 '망작' 소리를 들었고, 3편과 4편은 그럭저럭 선방을 했다. 과연 5편은 어떨까? 


IMF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라!


5편은 감독이 바뀜에 따라 바뀌는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시리즈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질문'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시리즈보다 앞으로 계속될지 모를 시리즈를 위해서 말이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 분)는 시리즈가 시작됨과 동시에 예의 영화사에 길이 남을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요즘의 히어로물이나 스파이물에서 보이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나 혼란은 느낄 새도 없다. 그는 세계 평화를 위해 악당을 쳐부술 생각만 했다. 모든 건 그에 맞춰졌다. 


이제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영화는 그 고민을 IMF(Impossible Mission Force)의 위기로 보여준다. 그동안 IMF는 에단 헌트를 위시로 해 수많은 불가능한 작전을 수행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그에 맞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곤 했는데, 4편에서 러시아 크렌림궁 폭파 사건에 연류 되고 테러리스트에게 핵미사일 발사 코드를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 악당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윗분들이 보시기엔 정치적으로 굉장히 문제가 많을 행동이었다. 


급기야 5편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CIA 헌리 국장(알렉 볼드윈 분)은 청문회에서 IMF를 CIA에게 편입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더욱 큰 사고를 치기 전에 말이다. IMF,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과연 IMF는 필요한가? 그러면서 '신디케이트'라는 조직을 쫓고 있는 에단 헌트를 잡아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신디케이트는 허상의 조직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CIA의 첩보망에도 잡히지 않는 신디케이트였기 때문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로 인해 에단 헌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IMF의 와해, CIA의 추격, 다친 몸에도 불구하고 신디케이트를 쳐부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상에는 발을 붙이지 못한 채 허공 어딘가에 떠 있는 무엇을 붙잡아 끌어내려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수없이 많은 작전을 함께 수행하며 목숨보다 진한 우정을 나눈 동료들이 있었기에 작전은 계속된다. 어떻게 하든 IMF의 존재 가치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시리즈도 계속될 것이 아닌가. 여러모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그들이다. 


또 하나의 에단 헌트, 그녀의 출현


영화는 기존 시리즈처럼 에단 헌트의 원맨쇼와 그를 돕는 동료들의 기막힌 협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거기에 한 여인이 등장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 5편에 등장하는 여인은 기존과 전혀 다르다. 스웨덴 출신의 레베카 퍼거슨이 분한 일사는 영국 정보부가 신디 케이트로 보낸 스파이다. 그녀는 신디 케이트의 신임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동맹국 미국의 위험을 간과할 수 없기에 에단 헌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도와준다. 그러면서 월등한 실력으로 그를 따돌리며 방해를 하기도 한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일사의 월등한 실력과 에단 헌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도와주는 부분이다. 그동안에도 여자 캐릭터가 항상 나왔지만 전형적이었다. 희생적이거나 약했다. 얼굴과 몸매만 예쁜 캐릭터를 가져오기도 했다. 반면 이번엔 이 모든 걸 거부했다. 예쁘고 몸매도 좋은 편이지만 강인하고 주체적이다. 자신이 갈 길을 직접 판단하고 선택한다. 에단 헌트의 조력자가 아닌, 에단 헌트의 경쟁자이자 또 하나의 에단 헌트로 포지셔닝 되어도 충분할 정도이다. 앞에서 말한 중요한 질문과 함께 기존과 달라질 앞으로의 시리즈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아날로그 액션과 에단 헌트의 나이에 걸 맞는 액션의 상응 작용


한편 이번에도 톰 크루즈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이 화제가 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보여주는 비행기 액션이 대표적인데, 실제로 이륙 중인 비행기에 두 손으로만 매달렸다는 후문이다. 1962년 생, 한국 나이로 54세인 그는 열정과 실력만으로 수많은 팬들을 불러올 수 있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 나이에 걸 맞는(?) 액션을 선보이는 노련함도 갖췄다. 장비를 갖추지 않고 바이크를 탈 때, 무릎이 바닥에 닿자 움찔하는 디테일을 보여주기도 했고, 제대로 미션을 완수하지 못해 동료에게 도움을 받아 죽다 살아나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바로 작전을 수행하려다 실수를 연발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의 나이에 걸 맞는 액션에 맞춘 것인지 반대로 영화의 액션 스타일에 그가 맞춘 것인지는 몰라도, 이번 5편이 지향하는 액션과 에단 헌트의 액션은 훌륭히 상응 작용을 일으켰다. 시리즈가 거듭 될수록 진화한 기술과 함께 액션 스타일도 변화했는데, 이번에는 역행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 아날로그적인 액션을 선보였다는 얘기다. IT 기술과 함께 하는 액션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액션이 주를 이루었다. 오히려 에단 헌트 보다 일사에서 그런 액션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본> 시리즈의 주인공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거에 초점을 맞춘 대신 능력 자체는 비인간적이기에 어폐가 많다고 느끼고, <007> 시리즈의 주인공은 너무 심하게 여유를 부리면서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이기에 어폐가 많다고 느끼는 반면, 만능에 가깝지만 인간적 매력이 충분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 헌트는 영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다. 


어찌 보면 이번 5편은 잠시 쉬어가는 편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달려왔던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앞날을 정해야 할 때라고 판단해서 이다. 그러면서 액션은 역행하고, 여자 캐릭터는 진보를 이룩했다. 결과는 둘 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와 맞물린 에단 헌트 캐릭터의 희생 또한 성공적이었다. 그들의 앞날이, 이 시리즈의 앞날이 걱정되기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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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접속 1990>



<접속 1990> 표지 ⓒ한겨레출판



수많은 사건 사고와 더불어 IMF 때문에 최악의 시대 중 하나로 기억될 법했던 1990년대를 '추억의 시대'로 끄집어 낸 건 TV였다. 2012년 <응답하라 1997>은 IMF가 터진 1997을 겨냥한 듯이, 그때는 오로지 IMF만으로 기억되는 건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1990년대의 또 다른 한 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2013년 <응답하라 1994>가 방점을 찍고, 2015년 새해에 <무한도전-토토가 스페셜>이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는 그 전후로 수많은 1990년대 영화들이 재개봉을 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 몰이를 하기도 했다. 너무 많이 해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간략히 나열하자면, 한·미·일을 대표하는 1990년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타이타닉>, <러브레터>. 어느 순간부터 1990년대는 팍팍한 현실에서 등을 돌려 돌아가고 싶은 시대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접속 1990>(한겨레출판)이라는 영화 <접속>을 연상시키는 제목에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이라는 부제까지 달고 나온 책은, 이 분위기를 이어 가려는 기획에서 나왔을 거라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한 꼭지 정도를 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본 꼭지가 '낙동강의 페놀은 이제 대학가로 흐르는가'라는 제목의 '두산 페놀 사태'를 다룬 꼭지였다. 충격이었다. 


정작 1990년대를 상징하는 건 'PC 통신'


그야말로 이 책의 이 꼭지 하나로 1990년대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인지했던 '사건 사고'가 난무하고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변화'가 지배했던 그 시대를 몸소 느끼게 된 것이다. 30대 초반만 되어도 1990년대 당시를 오롯이 인지하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 당시를 오롯이 느끼고 인지하는 가장 적합한 위치는 대학생이 아닐까? 저자는 1990년대를 대학생으로, 군인으로, 신입사원으로 살아냈다고 한다. 거기에 PD였기에 느끼는 바가 남달랐을 거였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1990년대 하면 제일 생각나는 게 IMF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1990년대를 상징하는 건 다른 데 있다고 본다. 다름 아닌 PC 통신의 출현이다. 저자도 말했듯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제작팀이 제일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당시를 재연하는 데 필요한 소품들을 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1990년대는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던 '변화의 시대'였고, 시작에 'PC 통신'이 있었다.


PC 통신이 변화를 주도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PC 통신으로 문화계가 바뀌었다는 사실. PC 통신에서 연재 형식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판타지 소설들이 책으로 출판되어 국내 문학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드래곤 라자>, <퇴마록> 등이 그것인데 이런 소설의 등장은 국내 문학계에서 1990년대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기이다. 이들은 훗날 게임, 영화 등에 까지 영향을 끼친다. 한편 PC 통신을 소재로 한 영화들도 있다. <접속>, <엽기적인 그녀> 등이 그것인데 특히 <접속>은 한국 로맨스 영화의 새로운 틀을 이룩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온나라를 소용돌이치게 한 사건사고들


개인적인 생각으로 1990년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무지막지한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그 어느 시절이라고 사건·사고가 없었던 때가 있었던가. 하지만 유독 1990년대가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건, 그것들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고 그 상상을 초월한 사건·사고들이 연이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저자의 입을 빌려 그 연쇄적인 대형 사고 퍼레이드를 읊어본다. 


최초의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시작된 1993년 1월 청주에서 화재가 발생해 28명이 죽고 사상자가 76명에 달했다. 3월에는 구포역에서 무궁화호가 전복 되어 78명이 죽고 부상자는 198명에 이르렀다. 7월에는 목포공항에서 뜬 아시아나 항공기가 추락해 66명이 죽고 40명이 다쳤다. 10월에는 서해훼리호가 뒤집어져 292명이 죽고 70명만 구조되었다. 이 모든 사고가 1993년에 있었다. 


1994년 10월에는 그 유명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32명이 죽었고 12월에는 아현동 가스 폭발 사고로 12명이 죽었다. 1995년에는? 한국 역사에 남을 초대형 사고가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501명이 죽었고 부상자만 937명이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사고 행렬이었다. 이런 사건·사고의 행렬은 이미 한국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로부터 2년 후에 한국 사회를 덮칠 IMF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떠나지 않는 망령이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그리워하는 이유


이런 것들은 결코 '우리가 열광했던 것들'이 아니다. 삐삐, 휴대전화, 금 모으기 운동, 박세리와 박찬호, 김광석, 서태지와 아이들 등에 열광했을 지 몰라도, 이런 것들은 1990년대에서도 그리고 책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1990년대를 그리워할까. 단순히 언론의 힘인가? 드라마의 힘인가? 예능 프로그램의 힘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결코. 그만큼 2010년대의 지금이 힘들다는 반증이다. 차라리 그때 그 시절에 힘들고 좌절하고 슬펐던 일들이 더 나아 보이는 것이다. 격동과 전환이 살아 숨 쉬는 그때가, 정체 되어 있고 숨 쉬지 않은 것 같은 지금보다 살기 좋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왜 못 사냐고 책망하는 대신, 차라리 그때가 낫다고 현재를 체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안타깝다. 안쓰럽다. 그런 날을 그리워하고 있는 우리가.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현재는 생각조차 하기 싫고, 과거는 최악의 그때를 생각하고 있는 우리가. 책을 읽고 손을 놓으니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마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접속 1990 - 10점
김형민 지음/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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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상의 인문학>


<일상의 인문학> ⓒ민음사

흔히들 IMF 이후 우리들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극단으로 치달아, 물질(돈)이 최고의 가치이자 덕목이 되어버렸죠. 그 결과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소외되었습니다. 이는 기업은 고사하고, 학문의 가치를 숭고히 해야 하는 대학에까지 침투하고 맙니다. 교수들은 어떻게든 취업률을 올려놓아야 하고, 학생들도 스펙 위주의 학습으로 눈을 돌립니다. 자연스럽게 문·사·철을 위주로 하는 인문학을 비롯한 순수학문은 나몰라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장기 불황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지금 사람들을 구석으로 몰아가는 것들은 더 있습니다. 정치 불안, 각종 살인 사건,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세계 1위라는 자살 문제, 이혼, 부익부 빈익빈 등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죠. 이 깊은 수렁에서 사람들은 찾으려고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을. 그래서 많은 서적들이 나오고 있죠. 치유서, 인문서들이. 


책으로 인문학을 말하다


여기 생애 전체를 독서에 몰두해, "밥을 먹듯, 또한 노동을 하듯" 책 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3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해마다 1000여 권의 책을 사들이고 그것들을 매일매일 읽는 것을 생의 큰 보람과 기쁨으로 여깁니다. <일상의 인문학>의 저자 장석주 시인입니다. 


이 책은 기다림, 망각, 사랑, 죽음, 소비, 여행, 일 등 50여 가지의 주제를 300여 권의 책 읽기를 통해 인문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볍지 않은 책과 주제들이지만, 그 안에는 일상이 생활이 숨쉬고 있어 다가가기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살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지만 그것보다 죽지 않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내 사유는 책과 더불어 싹을 텄고 풍성해졌다. 그동안 내 사유의 주제는 기다림, 망각, 타인, 결혼, 사랑 (줄임) 같은 것들이었다. 삶과 세계 속에서 이것들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하고, 다시 그것들이 어떻게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드높이고 메마른 삶을 윤택하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궁리했다." (본문 중에서)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인문의 바다'에서 뛰놀던 저자가 이번엔 책을 통한 인문의 사유 방식을 택한 듯합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에는 수많은 사유의 주제로 약 300편의 책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지금 당신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 대신에 다만 기다림의 주체와 대상이 사라지고, 기다리는 시간들이 흘러가 부재에 이를 뿐이다." (본문 중에서)


"일요일 정오. "요일 중의 요일. 가장 늦게 탄생한 요일의 막내 자매. 모든 요일의 여왕이자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날!"(서동욱 <차이와 타자>) 일요일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먹고 마시며 즐길 시간이 그만큼 빠르게 줄고 있다는 뜻이다." (본문 중에서)


자칫 흔한 서평집이 될 수 있는 것을 저자는 서평과 사유와 문학적 글쓰기로, 독자로 하여금 지식을 얻을 수도 있고 같이 생각해보며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는 엄연한 '인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서 확장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메마른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에서, 일상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어떤 가치를 갖게 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인문학과 책, 그리고 일상은 하나다


저자는 말하길, 현실이 던적스럽고 갈 길이 흐릿할 때 인문학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적이 아니었을 때가 있었나 싶지만, 요즘 들어 심화된 것 같네요. 인문학이 언제나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 아닌, 현실이 힘들고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으면서도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언젠가부터 필요의 학문이 되어버린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많이 힘들어들 하고 있다는 반증 때문입니다. 


모든 학문의 요체는 '책'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문학의 정수는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책에만 있을까요? 심오한 글의 세계에서만 인문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대한 이해와 애정을 근간으로 삼는 인문학이 모든 사람들에게로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이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일상 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인문학과 책 읽기가 우리의 삶,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기반으로,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리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이 요즘들어 거센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학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치유'도 인문학에 대한 깊은 천착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행복이 사라진 것 같은 지금, 인문학을 알아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문학은 가까운 '일상'에도 있고, '책'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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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